#01. 아무튼 장화랑 만나서 전투 중.



“드라코! 뒤로 물러나세요!”


쾅하는 소리와 함께 드라코는 강한 충격에 입술을 깨물었다.

한계다,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뒤엔 자신의 지휘관, 엄마라는 존재가 없는 우리에게 엄마가 무엇인지 느끼게 해 준 존재가 있다.

드라코는 잠깐 망설였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피해선 안된다.


“드라코!”


두 번째 폭발.

뿌옇게 낀 연기 속에서 홍련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건 방패의 파편들이었다.


“아.. 아아..”


[마더! 괜찮아요!?]


[젠장! 도넛에서 히어로에게, 확인이 가능한가!?]


[될 리가 없잖아! 지금 빌딩보다 고도를 높였다고!]


홍련의 인이어에서 흥분한 팀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폭발 때문이었을까 띵 하는 이명 소리만 홍련의 귓가에서 맴돌았다.


“그 표정 좋은데..? 그래.. 그거야. 그걸 보고 싶었어!”


쓰러진 드라코의 머리를 짓밟고 있는 발을 따라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리자 비열하게 웃고 있는 장화의 얼굴이 보였다.


“마더에서 전달합니다. 몽구스팀 전원 현 위치에서 대기하세요. 반복합니다. 현 위치에서 대기하세요.”


홍련은 다시 냉정하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장화가 드라코를 죽이는 건 순식간일 거다. 협상해야 한다. 드라코를 살려야 한다.


“판단이 빠르구나? 멍청한 짓 하면 금방 머리를 쪼개려고 했는데 말이야.”


장화의 와이어가 드라코의 머리 위에 스르륵 하고 내려온다.

시야를 가리는 연기가 바람에 흩어져 사라지자 하늘에서 날고 있는 핀토가 보였다.


[저 자식이 드라코를..!]


[히어로 진정해. 마더, 사정거리예요. 신호만 주시면 명중시킬 수 있어요.]


“들리지도 않는데 들리는 기분이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너네 저격수가 있는 건물에 폭탄이 있거든.”


킥킥대며 웃는 장화의 말을 들은 홍련은 조용히 귀에 손을 가져다 댔다.


“대기하세요. 제가 얘기를 해보죠.”


홍련은 무전을 마친 뒤 컴파운드 보우를 땅에 내려놓고는 두 손을 들었다.


“그 아이를 풀어주세요. 그러면.. 원하는 걸 들어드리겠어요.”


“원하는 거..? 글쎄, 내가 원하는 게 뭘까? 사실 너의 비명소리를 들으면 괜찮아질 거 같았는데 방금 마음이 바뀌었어. 모든 걸 잃고 절망한 표정을 보고 싶네. 그러니까.. 이 녀석 먼저 죽이고 생각해야겠어.”


홍련이 차마 말리기도 전에 장화는 웃는 얼굴로 와이어를 들어 드라코를 죽이려고 한다.

찰나의 순간, 장화는 멀리서 화살이 날아오는 것을 봤고, 재빨리 뒤로 점프해 화살을 피했다.


“드라코!”


불가사리가 어디선가 뛰어와 쓰러진 드라코를 안아 들고는 홍련의 앞에 가져왔다.


“… 아직 살아있어요! 작전관님!”


“내가 분명 경고했지?”


싸늘해진 얼굴로 버튼을 누르는 장화를 보곤 홍련이 급히 뒤돌아 무전했다.


“미호! 피하세요! 미호! 미.. 미호..?”


폭발음이 들리지 않아 다시 고개를 돌리자 자신만만하게 버튼을 누른 장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 아. 들리세요? 역시 통신이 이어져있었군요. 폭탄 해체 완료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엘리 퀵 핸드의 목소리가 들려 건물 옥상을 올려다봤더니 검은 무언가가 활을 들고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서있었다.

검은 라텍스를 입은.. 시라유리인가?


[믿을 수 없네요. 정신 차리세요, 홍련님. 사령관님께서 믿고 맡긴 임무입니다. 실망시키는 일 없도록 하세요.]


“…죄송합니다. 장화, 투항하세요. 마지막 경고입니다.”


“그래.. 인정할게. 이번엔 내가 졌어, 언니.”


장화가 고개를 툭 떨구곤 말했다.

그러나 눈빛만큼은 여전히 불타고 있었다.


“그러니까, 다음엔 반드시 그 가족놀이를 부숴줄게.”


장화는 자신의 발 밑에 무언가를 던지더니 연기가 펑! 하고 피어올랐다.


“마더! 제가 쫓아갈게요!”


“아뇨. 멈추세요. 그것보단 드라코의 치료가 먼저입니다.”


홍련은 멍하게 연기가 흩어지는 모습을 쳐다봤다.

사령관이 보낸 지원 부대가 드라코를 들것에 들어 옮기기 시작한다.


“제 잘못으로.. 저의 아이가 다쳐버렸네요..”


홍련은 실려가는 드라코를 쳐다보고는 땅바닥에 널브러진 방패 조각을 하나 주워 만졌다.

다시는 이런 실수 하지 않으리라.

다시는..


“엄마..”


불가사리와 핀토는 조용히 눈물 흘리는 홍련을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02. 시라유리도 가끔은 외로움을 탄답니다.



“… 여기는 시라유리. 타깃은 도주했습니다. 전투 지역에서 남동쪽으로 이동했어요.”


[음.. 알겠어! 도망친 표적은 나한테 맡겨둬.]


“… 당신은 괜히 실수하지 마세요. 위험인물입니다.”


[걱정해주는 거야? 나 감동받을 거 같은데..]


“자비로운 리앤. 당신의 그 쓸데없이 물렁한 성격과 별개로 능력은 인정하니까 하는 말입니다.”


시라유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글을 벗었다.

난간 아래에선 미호가 총을 들쳐 맨 채 엘리를 웃으며 쓰다듬고 있었다.

저 틈에 껴서 웃는 게 가능할까.

실없는 생각을 하니 되려 웃음이 나왔다.

친구 같은 게 시라유리 모델에게 가능할 리가 없지.

시라유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다시 고개를 들었다.


“퇴각하죠. 저희의 임무는 끝났어요.”


“저기, 고마워. 시라유리. 덕분에 엄마도, 드라코도 살았으니까..”


“후후, 감사인사는 됐어요. 해야 할 일을 한 거뿐이니까요.”



#03. 누군가 다치면 화가 나는게 당연하죠.



“아! 오빠, 드라코 언니의 상태를 봤는데.. 수복은 문제없이 진행됐어. 근데 상당한 중상이라 한동안 임무는 어렵고 재활에 집중해야 할 거 같아.


“고마워 닥터. 수고했어.”


사령관은 누워있는 드라코의 손을 꼭 잡고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드라코가 다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지원 부대를 빨리 보냈다면..

애초에..


“사령.. 관..”


드라코가 사령관의 손을 잡자 사령관은 빠르게 드라코의 손을 잡고는 눈을 맞췄다.


“엄.. 마는..?”


“홍련도 지금 치료 중이야. 많이 다치진 않았으니까 걱정하지 마.”


“다른, 대원들은..?”


“모두 무사해. 네 덕이야. 고생했구나.”


드라코는 다행이다 하면서 두 눈을 감고 다시 잠에 빠졌다.

커피색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심스레 잡은 손을 침대에 올려놨다.


“시라유리 언니가 그러는데, 리앤 언니랑 니키 언니가 장화를 포박하기 위해 추적 중 이래. 두 언니 다 이쪽 능력은 뛰어나니까 믿고 맡겨도 돼. 그러니까.. 오빠도 좀 진정해.”


꽉 쥔 손에 온기가 느껴진다.

닥터의 작은 손이 내 손을 만지자 손에 들어간 힘이 풀린다.


“알겠어.. 몸조심하라고 전해줘. 나도 조금, 머리를 식히고 올게.”



#04. 사실은 말이죠..



“젠장.. 실패라니 웃기지도 않네.”


역시 난 쓸모없는 걸까.

장화는 자신의 장비를 정비하면서 생각한다.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인간들 모두 죽고, 죽지 못해 살아왔을 뿐이다.

삶의 의미도, 목적도 없이 그냥 살아만..

살아만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걸까.


“그래.. 그 녀석들을 죽이면 좀 달라질 수 있어. 아니면 되려 죽는 것도..”


그래, 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장화는 폭탄을 만지작 거리던 손을 멈췄다.

킥, 이 정도면 오래 살았지.


장화는 콘크리트 벽에 등을 기댔다.

죽이는 것도, 죽는 것도 좋다.

어느 쪽이든 곧 있으면 모든 걸 끝낼 수 있으리라.



#05. 니키는 몸 쓰는 쪽을 더 좋아하는거 같죠?



“리앤을 보고 있으면 꼭 우리 가족 같다니까.”


“하하, 그건 내가 토모였어서.. 앗 쉿!”


니키를 잡아당긴 리앤은 벽에 붙어서 멀리 보이는 작은 불빛을 흘깃 쳐다본다.


“빙고, 표적 발견. 좌표 송신..”


“그럼 형사님? 이제 어떡할 거야?”


“본부에 지원 요청해야지. 위험한 바이오로이드니까..”


“으응~ 그럼 그렇게 해. 나는 내 일을 할 테니까.”


리앤이 무슨 말이냐고 묻기도 전에 니키의 노란 코트가 툭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반투명한 와이셔츠를 입은 니키의 몸에서 붉은 전류가 타닥- 타닥 하고 튀었다.


“어.. 싸우게?”


리앤의 말에 니키는 빙긋 웃고는 한 손으로 묶은 머리카락을 풀었다.

머리를 흔들자 자주색 머리가 폭포수처럼 흘렀다.


“그동안 몸이 근질근질했거든. 정보 모으기는 정말… 따분해.”


“저기, 살짝 눈이 풀린 거 같은데.. 니키? 니키?”


불빛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는 니키의 뒤를 리앤이 불안하다는 듯 쫓아간다.

니키 전투력을 생각하면 괜찮겠지만, 되도록 위험을 피하고 싶었는데..



#06. 번개 앞에선 평등하죠. 아줌마 한분을 제외하면요.



“너네 뭐야?”


“네가 장화구나~?”


장화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니키를 쏘아봤다.

니키의 눈에 비친 장화는 꼭 주인에게 배신당한 강아지처럼 보였다.

그래, 딱 세상 모든 걸 믿지 못하게 된 강아지.


“너도 홍련이 말한 인간 밑에 있는 녀석이야?”


“맞아.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얌전히 투항할래?”


니키의 권유가 뭐가 그리 웃기는지 장화는 깔깔대기 시작했다.

한참 웃고는 와이어를 탁 하고 바닥에 튕겼다.


“.. 너흰 하나같이 정말 마음에 안 드네.”


“그렇게 나와야지. 아쉬울 뻔했잖아.”


니키의 와이셔츠에서 다시 전류가 흘러나오자 리앤은 벽 뒤로 뛰어갔다.


“가엾은 녀석.”


장화의 와이어가 샤악하고 공기를 찢었다.

그러나 무언가를 가르는 소리가 나기도 전에 엄청난 빛이 번뜩였다.


“정말, 왓슨한테 생포해가겠다고 했는데..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나..”


리앤은 벽 뒤에서 패널로 연락을 하며 생각했다.

흠, 설마 죽진 않았겠지?


“끝났어, 리앤.”


니키의 말에 리앤은 쓰러져있는 장화의 목을 손가락으로 꾹꾹 찔러보고는 팔을 뒤로 돌려 수갑을 채웠다.


“음, 아직 살아있네! 좋아 좋아. 장화, 당신을 테러 및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합니다. 지금부터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습니다.”


“미란다 카드? 의미가 있어? 어차피 변호사도 없고 묵비권도 행사 못할 텐데.”


“아하하, 버릇이야.”


니키는 머리를 쓸어 올리며 고지식해~라고 중얼거리며 웃었다.


“아 왔네. 이봐~ 여기야~”


니키가 손을 흔들며 소리치자 리앤이 부른 지원 부대의 비행 소리가 가까워졌다.



#07. 위험한 물건은 조심히 다뤄야해요.



“크윽..”


“정신이 들어?”


정신을 차인 장화는 인상을 쓰며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는 인간이 있었다.

몇십 년 만인지.. 아니, 백 년이 넘었나?

장화의 눈앞에 잠깐 빛이 지나간 듯했다. 인간이라면 잃어버린 삶의 의미를 찾아줄 수 있을 것이다.


장화는 잠깐 희망을 봤지만 이내 고개를 툭 떨어트렸다.

아니, 사냥개에게 주인이 두 명이라니 있을 수 없다.


“여기까지 모셔오는데 정말 힘들었어. 그러니까, 좀 불편해도 이해해줘.”


사령관은 바이오로이드가 인간을 해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불안해하는 대원들을 위해 장화의 수갑은 그대로 뒀다.

물론, 블랙 리리스 역시 사령관의 옆에서 안광을 빛내며 장화를 노려보고 있었다.


“…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글쎄, 일단 나는 원하는 건 없는데.. 우리 유능한 대원들이 필요한 정보를 전부 찾아줬거든. 너에 대한 거까지 말이야.”


사령관은 커피를 홀짝이며 책상 위에 종이를 툭툭 건드렸다.

사실, 그는 처음에 니키 혼자서 장화를 잡았다고 했을 때 믿을 수 없었다.

단신으로 몽구스팀을 공략한 장화를 혼자 잡으리라곤 생각도 못했으니까.

상황 설명을 부탁하자 니키는 빙긋 웃으면서 장화의 대한 모든 것을 패널로 전송했다. 그러곤 선공 필승이라며 목욕하러 갔다.

확실히 몽구스팀도 기습이 아니었다면 충분히 장화에 대해 대처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긴. 그게 아니더라도 바이로이드나 AGS나 니키의 공격에서 멀쩡하긴 쉽지 않겠지.


“마리아 리오보로스가 만든 첫 번째 바이오로이드. 홍련의 유전자를 베이스로 만든 테러리스트. 평생 이용만 당한 불쌍한 아이.”


사령관은 종이뭉치를 집어 읽고는 장화에게 다가갔다.

장화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피식 웃었다.


“하.. 어쩔 건데? 동정이라도 할 셈이야? 아니면 명령이라도 해보게? 소용없어. 내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여제님 뿐이니까!”


“동정.. 글쎄, 평소의 나라면 죄책감을 느끼면서 사과라도 했겠지.”


사령관은 종이 뭉치를 떨어트리곤 장화와 눈을 맞췄다.


“근데 어쩌지. 난 내 가족을 건드린 녀석은 가만두지 않아.”


아, 난 결국 죽겠구나.

장화는 속으로 되뇌었다.

의미 없는 삶을 드디어 끊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슴 한편 뜨거운 무언가가 목으로 치솟아올랐다.

두려워. 역시, 죽는 건 싫어.


추하다.

수많은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넣곤 고작 본인의 죽음을 두려워하다니.


“.. 큭.. 좋아, 가만둔다면 다시.. 너의 가족들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테니까. 기회가 왔을 때 반드시 죽이는 게 좋을 거야.”


되려 웃음이 나왔다.

살아생전 처음으로 스스로의 추한 감정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여기서 죽자. 죽기 위해 발버둥치자.


장화의 이러한 생각을 읽었는지 사령관은 차가운 눈빛을 거두곤 다시 패널을 들여다보았다.


“말 예쁘게 하도록 해. 지금 네가 여기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 홍련 덕분이니까.”


“홍련님 오십니다.”


콘스탄챠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홍련이 입장했다.

홍련은 절도 있게 사령관에게 인사했다.


“어서 와 홍련.”


“사령관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사령관은 패널을 조작하며 업무를 처리하다 잠깐 멈췄다.

그러곤 홍련을 빤히 쳐다봤다.


“말해봐.”


“장화를.. 제게 맡겨주실 수 있을까요?”


“안돼.”


자신이 예상했던 결과가 아닌지 홍련의 눈이 커졌다.

항상 냉정하던 홍련의 표정이 이토록 다양하게 변할 수 있음을 사령관은 장화를 통해 알게 된 것이 씁쓸했다.


“이유를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하아.. 홍련. 이미 기회는 충분히 줬어. 내가 준 기회는 너에게 준거지만, 그건 장화에게도 준거였어.”


사령관은 더 이상 업무를 할 상황이 아님을 느끼고 패널을 닫았다.


“홍련, 만약 드라코가 잘못되었어도 장화를 맡겨달라고 할 수 있었을까?”


홍련은 반박하고 싶었으나, 반박할 수 없었다.

사령관 답지 않은 차가운 억양이 홍련의 마음속에 있던 죄책감을 일깨웠다.

방금 전까지 드라코가 있는 수복실에서 그녀의 손을 잡아주고 오던 길 아닌가.

자신이 장화를 맡게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면 드라코가 다치지 않았을 것이다.


“… 그건..”


“당연하지! 엄마는 가족은 절대 포기하지 않으니까.”


뜬금없이 문을 박차고 들어온 드라코의 말에 방 안에 있던 모든 인원이 고개를 돌렸다.


“드라코?”


“사령관! 다 들었어. 엄마한테 못되게 말하지 마!”


여기저기 붕대로 칭칭 감은 웃긴 꼴로 드라코가 사령관에게 삿대질한다.


“계속 생각했어. 내가 강했다면 모두을 지킬 수 있었을까.. 하고.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어. 내가 모두를 지키는 게 아니야. 서로가 서로를 지키는 거야. 그러니까..”


말이 꼬인 걸 느꼈는지 드라코는 머리를 감싸고 잠깐 끙끙대다가 홍련을 바라봤다.

드라코의 눈이 활처럼 휘더니 답지 않은 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마쳤다.


“그러니까.. 엄마가 지키고 싶어 하는 건, 우리가 모두 지킬 거야.”


사령관은 드라코를 쳐다보고, 홍련을 쳐다봤다가 흘깃, 장화를 쳐다보았다.

장화의 눈이 커져서 빛났다.


“.. 드라코, 넌 직접적인 피해자야. 널 다치게 한 장화를 용서할 수 있겠어?”


“당연하지. 아프지만.. 엄마 동생이라면서? 그럼 우리에게도 가족이야. 가족끼리는 잘못도, 용서도 없어.”


장화는 입술을 깨물었다.

가족? 용서?

장화는 그런 따스한 단어를 들어본 기억조차 없다.

자신의 여제를 위해 목숨을 걸고 일했지만 성공하면 당연한 것, 실패하면 쓰레기가 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자신한테 당한 약골이 스스로를 용서한다고, 가족이라고 말해주다니.


“난.. 살아있을 가치가 없는 존재야.. 그러니까..”


철컥.

장화는 자신의 손이 자유로워진 것을 느끼곤 사령관을 올려다봤다.

사령관은 장화가 차고 있던 수갑을 책상 위에 올려두곤 장화를 내려다봤다.


“뭐, 당사자가 용서했다는데 내가 뭐라 할 자격은 없지. 그래도 무기는 압수야. 홍련, 장화를 맡길게.”


홍련이 재빨리 일어나며 감사하다고 연신 고개를 숙이자 사령관은 그제야 평소같이 웃어주었다.


“드라코, 너는 수복실로 돌아가 얌전히 있어. 알겠어?”


“응..! 고마워 사령관!”


드라코도, 홍련도 장화도 모두 떠나고 나니까 리앤이 빙긋 웃으며 들어왔다.


“사령관, 마음에도 없는 소리 잘하던데?”


“마음에도 없다니. 난 진심이었어.”


리앤은 사령관이 내려놓은 종이 뭉치를 집어 들었다.


“그래? 우리가 가져온 장화의 정보를 본 뒤 죄책감 가득한 표정을 해놓고선 발뺌할 셈이야?”


리앤이 빙긋 웃자 사령관은 표정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장화도 결국은 인간이 만들어낸 피해자일 뿐이다.

분노와 상실감을 쏟아내는 방법을 몰라서, 옳지 못한 길을 걸어야만 했던 가엾은 아이..


“…그런 적 없어.”


“아하하하 부끄러워하긴.”


리앤은 종이를 척척 정리해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고는 그 옆에 장화가 차고 있었던 수갑 들어 손가락을 넣고 두어 번 돌렸다.


“어쨌든, 오늘은 사령관도 수고했으니까 성과상여금은 내일 밤에 받아갈게. 수갑도 필요하니까 미리 챙겨가고.”


“.. 응?”


“그럼 푹 쉬어둬, 왓. 슨.”


리앤은 손뽀뽀를 날리곤 웃으며 퇴장했다.



#08. 만남이 어떻든, 이별은 아쉬운 법이죠.



“… 떠나기로 했구나.”


“내 손에 많은 피를 묻혔는데 나 혼자 행복해지다니.. 나는 그럴 자격이 없어. 함께하는 동안은 기뻤지만, 아직은 아닌 거 같아.”


장화의 표정은 아쉬운 거 같기도, 후련한 거 같기도 했다.

사령관은 처음 봤던 독기 가득한 표정보다는 훨씬 소녀다운 표정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에 머물러줄 순 없나요? 우리도, 사령관님도 당신 삶의 의미가 되어줄 수 있는데..”


홍련이 말하자 장화가 사령관을 물끄럼이 쳐다봤다.


“… 얼마든지?”


“킥, 네가 뭐라도 된 거 같아? 그거 자의식 과잉이야. 그래도..”


장화는 몽구스팀이 준비한 가방을 매고는 얼굴을 조금 붉혔다.


“그래도 너희만 한 삶의 의미가 없다면 다시 돌아올 거야. 그때 가서 귀찮아졌다거나 하면서 후회하지 마.”


“가족끼리 그런 건 없어!”


닥터와 다프네의 집중 케어로 순식간에 완치한 드라코가 밝게 웃으면서 장화에게 손을 내밀었다.

장화는 드라코의 손을 쳐다보곤 조금 웃었다.


“그래. 가족.. 이니까.”


장화가 드라코의 손을 잡자 불가사리도, 핀토도, 미호도 다 같이 장화 옆에 가서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많이 아쉬우면 명령해서 여기 남게 할 수도 있어.”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사령관의 농담에 홍련은 빙긋 웃었다.


“하지만 괜찮아요. 장화와는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어요. 장화와 저는 사령관님과 아이들처럼.. 가족이니까요.”


“맞는 말이야. 가족이니까.”


아쉬움의 작별인사를 마친 장화는 빙긋 웃는 홍련을 쳐다보았다.


“다음에 봐. 언니.”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며, 두 자매는 이별을 맞이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홍련의 얼굴에는 슬픔 대신 미소가 가득했다.


<연꽃 위에 피는 장미 END.> 


—————————————-


080 애들 스토리에 다시 출연시켜’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