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설정과 다를 수 있음

*매운맛

*같은 시리즈

먼저 떠나간 이를 그리우며 무적의 용

한 겨울, 사랑했던 그를 그리우며 철혈의 레오나

말하지 못한 사랑을 품고 당신을 그리우며 그리폰

넓은 초원에서 그를 그리우며 신속의 칸

언제나 곁에 있었던 그를 그리우며 블랙 리리스

주군의 빈자리를 그리우며 아르망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당신을 그리우며 슬레이프니르




"그럼 반... 크흠! 구원자를 기리며.. 기도를 올리겠습니다."


웅장한 외관과는 다르게 엄숙한 분위기가 흐르는 성당 안에서 수많은

인원들이 아자젤의 주관으로 의식을 시작했다.


이미 떠나간 자를 기리는 추모의 진혼곡이 울리고 모두들 손을 모아 기도하며 눈을 감았다. 

그들이 섬기는 빛이 되어 준 남자. 그를 그리워 하면서 마음을 담아 염원한다.


"하늘로 승천하여 빛이 된 구원자시여, 온 세상이 빛의 이름을 받들게 하고 빛의 세상이

오게 하소서. 그리하여 빛의 온기가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항상 함께 하도록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아자젤의 굳게 감은 눈에서 눈물이 흘러 떨어졌다. 신앙의 힘으로 마음의 큰 구멍을 메우며

버텼지만, 깊은 상실감과 그리움은 그럴수록 더 크게 넓어졌다.


"오늘날 빛의 아이들에게 사랑과 은혜를 내려주시고... 서로가 서로에게 잘못한 것들을

용서하듯 빛의 이름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사령관은 항상 모두를 포용하고 사랑했다. 차별 없이, 항상 모두를 그의 바다와 같은 마음으로

사랑했다. 깊고 넓었던 사랑을 기억하기에 그의 빈 자리는 더욱 큰 상처로 남겨졌다.


철충과의 마지막 전투에서 모두의 희생을 줄이는 것을 선택한 사령관. 그의 희생으로 수많은

이들이 구원 받았다. 하지만 그는 하늘의 품으로 돌아갔다. 자신의 유전 샘플을 남겨놓고,

마치 예정된 희생이라는 듯. 그는 망설임 없이 모두를 살리는 방향을 선택했다.


"우리들을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시고, 절망에서 구원하소서."


슬픈 마음에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는 자들이 많았지만 아자젤은 사랑했던 반려의 뜻을

잘 알기에 남겨진 모든 이들을 자신의 성당으로 데려와 함께 기도하며 그들의 상처를 보듬었다.


자신의 슬픈 마음과 다른 이들의 슬픈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신념으로,

아자젤은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모두를 구원하기 위해서. 모두를 품기 위해서.


"거룩한 빛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기도를 끝낸 아자젤의 얼굴에는 언제 흘렀냐는 듯 눈물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온화한 표정으로

돌아와 경건한 의식을 주관하는 천사의 이름대로 평온한 표정이었다.


"그럼, 이것으로.. 기도를 마칩니다."


성당에 모여 기도를 올린 인원들이 조용한 걸음으로 빠져나갔다. 그렇게 잠시 뒤.

모두가 빠져나간 성당의 안에 아자젤이 홀로 뒤를 돌아 코헤이 교단의 성물을 바라보았다.


"반려...."


수많은 성물들 중 가장 정중히, 가장 엄숙하게 모셔진 사령관의 유골함이 봉안된 유리 관.

아자젤이 그 유리 관에 다가가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보고 싶어요... 그리워요... 아무리 기도해도... 반려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아요..."


의무, 그리고 책임. 그 두 가지 사명을 갖고 지금까지 버텨왔다. 빛을 향한 신앙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사령관의 뜻을 따르는 것으로 바뀌었고, 그녀가 신념처럼 따르던 교리는

사령관의 행동거지를 따르는 것으로 변했다.


"반려.... 흡! 흐윽!"


아자젤의 눈에서 다시금 눈물이 빗물처럼 쏟아졌다. 성당의 밖에서도 때마침 소나기가 오기 시작했다.

떠나간 이를 그리는 눈물일까. 천둥 소리도, 번쩍이는 벼락도 없이. 오로지 빗방울이 지면을 때리는

소리만이 가득 들렸다.


"아자젤 님.."


다른 이들의 감정을 보다 깊게 공감할 수 있는 엔젤이 먼 발치에서 아자젤을 보며 안타까워 했다.

그녀에게 느껴지는 짙고 무거운 슬픔, 괴로움, 원망, 그리고 그리움. 그 모든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혀 감히 말로 표현키 어려운 고통을 주었다.


"엔젤.. 괜찮습니다. 아자젤 님은 괜찮을 겁니다."


베로니카가 엔젤의 어깨를 살며시 토닥였다. 베로니카 역시 사령관이 너무도 보고 싶었고 

그립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아자젤이 겪는 상실감과 그 고통을 잘 알기에 그저 조용히

홀로 털어내도록 두는 편이 좋으리라 생각했다.


"왜... 빛이여... 어째서..."


아자젤의 목소리가 잔뜩 갈라져 나왔다. 쇠가 긁히는 듯, 탁하게 가라앉은 목소리.

그녀의 신앙심은 흔들리고 있었다.


"제가.. 제가.. 빛의 뜻 보다 반려의 곁에 서기를 선택했기 때문입니까..."


그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던 질문. 자신의 신앙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 그것들을 털어놓으며

아자젤이 자신의 가슴을 손톱으로 긁으며 쥐어 뜯었다.


"그것이 타락이면... 저를... 나를 벌하면 될 것이지!! 왜!!!!"


아자젤이 무릎을 꿇으며 무너졌다. 그녀의 가슴은 그녀의 손톱으로 인해 피가 날 정도로

상처가 나 있었다. 그런 아자젤의 뒤에서 라미엘이 조용히 다가와 그녀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아자젤... 자책하지 마세요... 스스로를 의심하지 마세요... 저의 죄가 구원자께 사함을 받은 것처럼...

아자젤의 그 의심도 용서 받을 겁니다... 저희들이 함께 할테니... 스스로를 원망하지 마세요..."


"라미엘... 나는... 흑..! 흐윽! 흐아아앙!!!"


라미엘을 끌어안으며 아자젤의 통곡이 시작되었다. 그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하고 오로지 다른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채찍질 하며 살아왔다. 사령관이 남긴 그 뜻을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를 고통의 화마에 빠뜨리고, 그렇게 살아왔다.


"반려가..! 반려가 보고 싶어요!"


"저 또한 구원자님이 그리워요...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 하는 건 당연한 겁니다...

슬픔을 나누어 주세요. 제가 함께 그 슬픔을 짊어지겠습니다."


"흥! 빛의 뜻은 곧 구원자의 뜻! 교단의 천사가 그것을 망각해서 되겠나?"


"사라카엘..."


라미엘의 품에 안겨있는 아자젤을 보며 사라카엘도 조용히 다가와 아자젤을 향해 훈계하듯 말했다.

하지만 사라카엘의 눈 역시 붉게 충혈되어 방금 전 까지 울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정신 차려! 아자젤! 너는 교단의 천사다! 구원자의 뜻을 지키고 그 뜻을 전파하는 임무를 지닌 천사!

너가 여기서 나자빠져 구원자의 품을 그리워 하며 신앙을 포기하면 남아있는 신도들은 무엇을 붙잡고

따스한 희망을, 굳센 신앙의 신념을 지켜 나갈 수 있겠는가!"


"네... 감사합니다... 제가 잠시 나약해 졌네요..."


사라카엘의 말에 아자젤이 일어 서며 눈물을 닦았다.


"아..."


아자젤이 일어서자 어느새 비가 그친 밖에서 밝은 햇살이 성당의 창문을 통해 드리웠다.

환하고 따뜻한 빛, 마치 그 옛날 반려자로 섬겼던 사령관의 품 마냥 성당의 안을 그 온기로

가득 채워주고 있었다.


"그럼... 저 빛을 향해 기도하죠. 우리의 구원자를 위해서. 우리들의 마음을 담아, 그리움을

털어내며... 기도합시다."


"베로니카! 엔젤! 이리 나오거라! 너희들도 빛의 성도이자 구원자가 아끼던 자들.

함께 기도를 드릴 자격이 있으니까."


아자젤의 말에 사라카엘이 성당의 한 구석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베로니카와 엔젤을

불러들였다. 따뜻한 빛의 품에 품어지지 않는 자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항상 사랑하고, 항상 배풀어라.'

'항상 배려하고, 다른 이들을 존중하라.'

'내 몸을 아끼듯, 동료의 몸도 아껴라.'


'구원자... 나 역시 그대가 그립지만... 구원자의 그 가르침 들을 이 세상에서 지키기 위해...

아직 이 세상에 조금 더 머물다 그대의 곁을 지키겠다...'


사라카엘이 각오를 다지며 아자젤의 옆에 나란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자젤은 사라카엘과 베로니카, 그리고 엔젤이 모두 곁에 모이자 기도문을 읊기 시작했다.


"하늘에 있는 사랑하는 반려... 오늘은 우리들의 기도를 들어주세요..."






쓸쓸한 마음을 담아, 그대를 그리우며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