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https://arca.live/b/lastorigin/32654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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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https://arca.live/b/lastorigin/34762444 

8화:https://arca.live/b/lastorigin/35154988 



“각하. 준비되었습니다.”

 

함장실의 창 밖을 보고 있는 사령관의 옆으로 마리가 다가와 말했다.

 

리앤이 더치걸을 찾으러 요안나 아일랜드로 떠나고 며칠 뒤, 사령관을 비롯한 오르카 호의 지휘부는 결국 알바트로스 휘하의 극동기지와 전쟁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사령관이 고민하는 그 며칠간, 극동기지와 맞붙을 거라는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오르카 호 전체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대부분의 소문들이 그렇듯, 입에서 입으로 거쳐가며 부풀리고 과장되어지는 이 최악의 전염병은 빠르게 병사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있었다.

각 부대의 간부들부터 말단 브라우니까지, 정보에 대한 차이는 조금씩 있을지언정 대부분 어렴풋이 떠도는 전운과 불안함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사령관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알바트로스라는 명칭은 타 부대의 지휘관들과의 그것과는 다른 의미를 가졌다. 

불굴의 마리, 철혈의 레오나, 멸망의 메이 등 각 부대의 지휘관들을 부르는 이름 앞에 붙는 이명들은 각각 그녀들의 특색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알바트로스에겐 그런 것은 없었다. 그의 이름 자체가 곧 수식어이자, 승리를 의미하는 하나의 고유명사였다.

 

사령관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바꿔야만 했다. 지금의 이 분위기를. 

 

“알았어. 곧 준비하고 나갈게.”

 

사령관은 곧 있을 연설을 위해 마지막으로 자신의 복장을 다시 한번 체크한 뒤 갑판으로 올라갔다. 

 

오르카 호는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잠수함이었다. 

그 넓은 갑판 위엔 수백명의 바이오로이드들이 행렬을 맞춰 절도 있는 모습으로 사령관을 기다리고 있었고, 바다 위엔 오르카 호를 호위하기 위해 호라이즌의 함대들이 그 위풍당당한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연단 위에 선 사령관은 말없이 그녀들을 쭉 둘러보았다. 

 

너 나 할 것 없이 다들 표정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겁나나?”

 

사령관의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은 꽤나 의외였다.

 

“다들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다. 지금 무슨 소문이 도는지 또한 알고 있고. 알바트로스와 전투를 한다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름없다는 것이라는 것도. 맞다, 사실이다.”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사령관의 말을 들은 그녀들의 눈동자는 정처없이 떨렸다. 

특히 스틸라인 부대원들의 앞에 서있는 레드후드의 경우에는 혹여나 동요하는 표정이 실수로라도 장병들 앞에 나올까봐 표정관리에 힘을 너무 쓴 나머지, 무표정이다 못해 살기가 흘러나올 정도였다.

 

“알바트로스는 지금까지 져 본적이 없고, 극동기지는 항상 자신들보다 몇 배는 많은 철충들을 상대로 연전연승만을 해온 오르카의 최정예 부대라는 것도 사실이다. 오메가를 비롯한 펙스의 레모네이드 세력들 또한 동시에 견제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필요하다면 그들은 불타는 지옥을 전장에 구현해낼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극동기지가 강한 이유는 그들의 막강한 화력뿐만 아니라, 전략적으로 항상 세력들 간의 미묘한 힘의 균형을 잘 맞추기 때문이라는 것도 전부 사실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여러분들이 우려하는 모든 것이 다, 사실이다.”

 

사령관은 알바트로스의 업적을 깎아내릴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그만큼 오르카 최정예 부대의 전력은 타 세력들보다 월등히 강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이 지금의 형태로 바뀌었을지라도 그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겁나나?”

 

사령관은 자신의 앞에 서있는 마리를 향해 질문했다.

 

“마리, 우리의 주적은?”

 

“철충과 북미대륙의 펙스 잔존세력들입니다. 각하.”

 

“더 크게! 우리의 주적은?”

 

“철충과 펙스의 잔존세력들입니다!”

 

“아스널! 우리의 주적은?”

 

“철충놈들과 펙스의 잔존세력들이다!”

 

아스널은 웃으며 자신의 대물저격총을 한쪽 어깨에 걸친 채 호쾌하게 외쳤다.

 

“메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는 사령관에게 메이는 하기 싫다는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사령관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옆에서 나이트앤젤이 분위기 좀 읽으라는 귓속말과 함께 팔꿈치로 툭 치자, 못마땅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철충과 레모네이드 세력이야, 사령관.”

 

원하는 대답을 들은 사령관은 씩 웃으며 손을 내리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에게 힘차게 외쳤다.

 

“그래! 우리의 주적은 철충과 북미의 펙스뿐이다! 알바트로스만 철충과 싸워본 것이 아니야! 우리 역시 소수의 병력으로 항상 몇 배나 되는 다수의 철충들을 상대로 승리를 이어나갔다! 펙스 세력중 가장 강하다는 오메가의 계획을 백지로 만들어버린것도 우리였고, 그토록 자랑하던 케스토스 히마스를 빼앗은 것도 우리였다! 그 수많은 전투와 전투 사이에서 우리는 언제나 승리만을 이어나갔고 사상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앞에서 사령관의 연설을 듣고 있던 그녀들의 눈에 점차 자신감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용한 침묵의 시간이 언제 있었냐는 듯, 그녀들 속에서 수군거림은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알바트로스가 최강의 지휘관인 것은 맞다. 극동기지가 매번 철충과의 전투에서 승리한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그게 뭐? 우리도 매번 지긋지긋하게 외계벌레들과 싸워가며 항상 승리를 거머쥐어 왔다! 승리는 극동기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 또한 산전수전 다 겪어온 베테랑들이자, 역전의 용사들이다!”

 

사령관은 다시 손을 뻗어 브라우니 하나를 가리켰다.

 

“브라우니 2056! 우리의 주적은?”

 

“철충과 레모네이드임다!”

 

“레프리콘 1058! 우리의 주적은?”

 

“철충과 레모네이드 일당입니다! 각하!”

 

“이프리트 하사! 우리의 주적은?”

 

이프리트는 대답하기 싫었다. 

전쟁이고 나발이고 그저 편하게 숙소에서 짱박혀 잠이나 자고 싶을 뿐인데, 전역하고 편하게 요안나 아일랜드에서 남은 생을 보내고 싶었을 자신을 간부로 임관시켜버린 임펫도, 그런 자신을 지목하며 굳이 ‘하사’라는 말을 뒤에 붙인 사령관도 전부 싫었다.

하지만 자신의 앞에서 웃는 얼굴로 엄청난 압박을 넣고 있는 임펫과 레드후드 앞에서 그런 사소한 감정은 금세 사그러들고 말았다.

 

“처, 철충과 펙스 일당입니다!!”

 

애석하게도 사령관은 임펫과 레드후드의 뒷모습만 보였기 때문에, 그런 이프리트의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알바트로스는, 극동기지는! 우리의 주적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주적은 항상 우리보다 강하고 거대했고, 우린 항상 그런 괴물들과 싸워왔기 때문이다! 그런 미지의 공포들과 싸워오며 패배를 모른 채 이겨온 것은 다름아닌 내 앞에 서있는 그대들이다! 여러분, 자신이다! 어깨를 펴고 당당히 외쳐라! 우리가 곧 승리이고, 우리가 바로 죽지 않는 불사의 군단이며, 도전해 오는 것들은 죄다 잿더미로 만들어버릴 것이라고!”

 

어느새 그녀들의 얼굴 속에서 처음의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소문이라는 형체없는 적은 결국 어디론가 도망쳐 그녀들의 앞길을 가로막지 못했다.

 

“나, 오르카 호의 함장이자, 최후의 인간이자, 인류저항군의 총사령관은 지금 이 자리에 맹세한다. 이번에도 역시 그대들을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무사하게 복귀시킬 것이다. 그리고 모두에게 당당히 알리겠다. 이번 전투 역시 우리가 승리했노라고!”

 

연설을 끝마친 사령관은 사기가 충전된 그녀들의 함성소리와 함께 연단에서 내려와 아까부터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레모네이드 알파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연설을 들은 나머지 바이오로이드들과는 다르게 그녀의 표정은 어두웠다.

 

“주인님. 방금 에이다로부터 긴급 메시지가 도착했어요.”

 

레모네이드가 보여준 화면 속에는 알바트로스의 부대의 이동이 포착된 모습이 찍혀 있었다.

 

“에이다의 통신에 따르면…아무래도 알바트로스 지휘관은 극동기지를 전부 비울 생각인 것 같아요.”

 

 

•••

 

 

부관은 곰곰히 생각에 빠져있었다.

 

과연 이게 맞을까? 혹시라도 아니라면? 

 

아니, 알바트로스의 전략을 의심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은 판단이다. 

자신의 상관은 언제나 옳았다.

 

“후…미치겠네.”

 

극동기지의 병력은 오르카 호 전체의 병력에 비하면 전력차가 큰 것이 사실이었다.

 

제아무리 철옹성 같은 극동기지라고 하더라도, 전략핵을 가지고 있는 멸망의 메이나 그 못지않게 상호확증파괴(MAD)를 일으킬 수 있는 오베로니아 레아를 막을 수는 없었다. 둘 중 아무나 그러고자 마음먹으면, 기지는 과연 복구조차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무적의 용은 또 어떤가?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월터 롤리의 말처럼, 해양장악력은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그 옛날 로마제국에서 시작해 스페인, 영국, 미국에 이르기까지 기업에게 넘겨주기 전 세계의 패권을 주름잡았던 국가들은 전부 바다를 지배하고 있었다. 

인류가 멸망한 지금, 바다의 패권은 누가 잡고 있는가? 북미대륙에서 어설픈 고립주의 노선이나 택하는 펙스 일당들? 바다를 두려워해 넘볼 수조차 없는 철충들? 무적의 용이 사령관에게 합류한 시점부터 답은 이미 나와있었다.

그런 무적의 용이 함대를 이용해 기지 근처를 에워싸고 압박을 가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때문에, 부관은 어떻게든 이 어마어마한 전력차를 좁혀야만 했다. 

그리고, 한가지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쳤었다. 부관 자신이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계책이었지만, 의외로 알바트로스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나아간 계책을 설명한 그의 모습에 부관은 순간 자신의 상관이 미치지 않았나 의심했다.

 

“알바트로스. 혹시 미쳤어요?”

 

“아니다.”

 

“그럼 침착하게 미쳤나요?”

 

“자네만 할까.”

 

부관이 말한 계책이란,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사마의를 상대로 공성계를 썼던 것처럼, 기지를 비운 척을 하자는 것이었다. 비록 제갈량은 진짜로 주력 병력이 다른 곳에 가 있어, 성루에서 거문고를 연주하는 것으로 사마의를 속였다지만, 이쪽은 주력 병력이 기지에 그대로 있었기 때문에, 기지를 비운 척 속인 다음 포위해 에워싸는 것으로 마무리하자는 것이었다.

기만과 위장은 부관의 특기였고, 철충 상대로는 언제나 효과가 뛰어났었다.

 

반면, 알바트로스는 부관의 생각을 뛰어넘었다. 그는 정말로 기지를 비우기로 결심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런 어설픈 기만으로는 사령관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유는 더 있다.”

 

“뭔데요.”

 

“알다시피 우리는 사령관의 병력과 힘의 균형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다. 그렇다면 최소한 사령관의 병력을 분산시키는 것이 더 유리하다.”

 

“그래서요.”

 

알바트로스는 뚱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부관을 무시한 채 기지를 둘러보았다.

 

“이 곳은 전략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요충지이다. 이 곳이 철충들에게 뚫린다는 것은 단순히 땅을 잃는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지. 앞으로 구대륙으로 진출할 길은 물론, 펙스 세력으로부터 태평양의 패권을 제대로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부관은 서서히 알바트로스의 말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군대는 움직이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 규모가 크면 클수록 더욱 말이다.

만약 극동기지가 무주공산인 상태로 비워져 있다면 사령관은 이를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반드시 빠르게 도달할 수 있는 부대와 함께 비어있는 기지를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정예 부대를 보낼 것이다. 예로 들면, 무적의 용의 호라이즌 부대나, 스카이나이츠, 오베로니아 레아가 소속된 페어리 시리즈 등이 그러했다.

 

“아니, 그러다가 각하의 지원군이 오기전에 철충놈들이 먼저 점거해버리면요?”

 

“그럴 걱정은 없다. 왜냐하면—”

 

 

•••

 

 

“—왜냐하면 그 곳엔 타이런트가 잠들어 있기 때문이지.”

 

아이러니하게도 레오나가 부관과 같은 질문을 했을 때, 사령관은 회의실에 모인 지휘관들에게 그렇게 답했다.

 

“각하. 그게 무슨?”

 

“극동기지가 철충들에게 함락될 뻔했던 그 날 이후, 난 알바트로스와 얘기했어. 다시 한번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기지의 지하 가장 깊은 곳에 타이런트를 재워 놓자고 말이야. 알바트로스도 그 제안에 동의했어. 지휘관들은 물론 참모들도 몰랐던 게 당연해. 왜냐면 그건 알바트로스와 나, 둘만 아는 기밀 사항이었으니까.”

 

사령관은 그렇게 말하며 쓴 미소를 지었다.

 

“미리 알려주지 못해서 미안해. 설마하니 나도 이런 식으로 상황이 흘러갈 줄은 몰랐어.”

 

“아니오. 괜찮소. 어차피 타이런트는 그대의 명령밖에 따르지 않으니. 오히려 잘됐소. 그대 말대로 기지는 철충들에게 쉽게 함락되지는 않겠군.”

 

용은 지도에 표시된 극동기지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렇다 하더라도 타이런트 혼자서 기지를 방어하는 것은 무리요. 어느정도 시간은 끌 수 있을지 언정, 완벽하게 방어해낼 순 없을 것이오. 따라서 소관은 이대로 극동기지로 향하겠소.”

 

“주인님, 에이다로부터 연락이 도착했습니다.”

 

용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레모네이드 알파가 사령관에게 보고했다.

 

“알바트로스가 기지를 비운 것을 철충들도 알아챘나 봅니다. 지금 대규모 철충 병력이 기지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알파가 공유한 화면속에는 수많은 철충 병력들이 무리 지어 극동기지로 향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개중에는 일반 개체들만 있는 것이 아닌 스토커, 레이더 등 연결체들도 보였다.

 

“아무래도 용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네. 스카이나이츠와 로크, 페어리 시리즈도 준비시켜줘.”

 

사령관의 말을 들은 용은 회의실을 나가며 자신의 부대원들에게 향했다.

 

“알바트로스가 몰랐을 리는 없어. 우리 쪽에서 기지로 오는 철충들을 막아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병력을 옮겼을 거야. 바로 이 곳으로.”

 

말을 마친 사령관은 지도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

 


“알바트로스.”

 

부관은 앞에 가는 알바트로스에게 말했다. 

 

“부탁, 기억하고 있나요?”

 

부관의 말에 알바트로스는 그날 밤의 기억이 떠올랐다.

 

「알바트로스. 이번 전투에서 이기지 말아주세요. 부관으로서 드리는 마지막 부탁이에요.」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군. 전투에서 져 달라는 뜻인가?」

 

「아뇨. 절대로 지면 안 돼요. 극동기지는 그 누구에게도 져서는 안 돼요. 다만 이기셔도 안 됩니다. 사령관 각하 역시 언제나 불패로 남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세력이 감히 넘보질 못해요.」

 

「이해할 수가 없군. 자네의 말대로라면, 양쪽에 겉잡을 수 없이 피해만 쌓일 것이다. 그건 알고 있나?」

 

수 천년 전에 만들어졌지만, 아직까지도 병법의 교과서로 취급되는 손자병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승리가 확정된 상황을 만들고 싸우는 것이었다. 물론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겠지만, 그럼에도 전쟁을 해야만 한다면 최대한 빠르고 피해 없는 승리를 거둬야만 했다. 그것이 전쟁의 미덕이었다.

 

하지만, 부관의 말은 이와 반대되게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기지 못하도록 전투를 계속 끌어야만 한다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을 얘기하고 있었다.

 

부관 역시 자신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모를 리가 있나요. 그래서 부탁드리는 거에요. 다른 사람은 못하고, 당신만이 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부관은 아부를 떠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는 사실을 얘기하고 있었다. 자신이 부탁하는 것을 들어줄 수 있는 존재는 눈앞의 상관을 제외하면 아마 사령관 정도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 기억한다. 참 어이가 없었지.”

 

「양쪽에 최대한 사상자가 나오지 않게 해달라고? 제정신인가?」

 

전투에서 이기지도 지지도 않게 시간을 끌면서 사상자는 최소한으로 줄여라.

 

도대체 자신 앞에 있는 이 조그만 인간이 무슨 정신으로 그런 부탁을 요구했는지, 알바트로스는 알 길이 없었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가 보기에 이미 부관은 미쳐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부관이 뒤이어 자신이 할 계획을 밝히자, 그의 태도는 더욱 단호해졌다.

 

「안돼. 아니, 불가능하다. 차라리 사령관에게 항복하고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이 더 빠르겠군.」

 

「거짓말하지 마세요. 제 말을 듣자마자, 이미 당신은 자동으로 성공시킬 계획부터 세웠을 거라는 걸 알아요. 그리고 전 당신이 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밤새도록 이어진 대화의 공방 끝에, 결국 부관은 알바트로스를 어렵사리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모든 부탁을 전부 들어주기로 약속한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것을 들어줄 수는 있었지만, 알바트로스는 단 한가지 조건만은 결코 양보할 수 없었다. 전투에 관한 모든 것은 전부 그에게 맡기는 것. 그것이 알바트로스가 내건 조건이었다.

 

회상을 끝낸 알바트로스는 어느새 자신이 목표했던 장소에 도달해 있었다.

 

“이 곳이다.”

 

“여긴?”

 

높은 곳에서 지형을 살펴본 부관은 꽤나 당혹스러웠다. 

확실히 적은 병력으로 수비하기엔 꽤나 좋은 장소였다. 

하지만 이 지역의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여긴 안개가 자주 끼는 곳이잖아요?”

 

극동기지에서 남서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이 장소는 딱히 큰 방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지금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평소 철충들의 습격에 대비해 이 곳에 병력을 따로 주둔시킬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는 이유는 바로 안개 때문이었다. 한치의 시야 확보도 제대로 되지 않는 이 곳은 철충들마저도 피해가는 그런 곳이었다. 또한 근처에 있는 늪지대는 안개와 더불어 이 곳을 악명 높게 하는 골칫거리 중 하나였다.

 

“그렇다.”

 

“안개를 이용하려는 것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각하에겐 레아가 있어요. 기상조작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그녀에게 여기 기후가 통할까요?”

 

“오베로니아 레아는 오지 않는다.”

 

“그걸 어떻게, 아니, 좋아요. 그렇다고 하죠. 안개가 자주 낀다는 건 우리 역시 시야 확보가 제대로 안 된다는 말이에요. 알고 계시죠?”

 

“알고 있다. 그보다 전투에 관한 모든 것은 내게 맡긴다고 하지 않았었나?”

 

알바트로스는 자신을 영 못미더워하는 기색을 띈 부관에게 말했다.

 

“사상자를 최대한 적게 내달라고 부탁하였었지. 그렇다면 이 곳이 적당하다.”

 

부관은 안개 때문에 피아식별은커녕, 아군끼리 오인사격이나 안 하면 다행일 이 곳이 어째서 사상자를 가장 적게 낼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알바트로스가 그렇게 말했으니 분명 그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자네가 모르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뭔데요?”

 

“사령관은 이 곳의 지형은 알아도, 기상상태는 잘 모른다는 것이다.”

 

 

•••

 

 

칸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앞으로 몇 시간 뒤면, 오르카 호는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극동기지로 출발할 것이다.

그럼에도 칸은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 도착할지, 도착하기는 할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기다렸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는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의 눈에 오르카 호 근처로 오는 작은 소형 선박 하나가 보였다.

선수에는 그녀도 잘 아는 누군가가 있었다.

 

“오랜만이군 리앤.”

 

칸은 배에서 내리는 리앤을 잡아주며 말했다. 

 

“시간이 없으니 가면서 설명을 듣고 싶군. 그쪽은?”

 

리앤을 따라 배에서 내리는 작은 소녀를 보며 칸은 리앤을 향해 물어보았다.

 

“더치걸이에요. 이번 사건의 아주 중요한 증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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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은 새벽에 올려서 미안허다. 글쓰는 실력이 떨어졌나...

완결에 다가갈수록 뭔가 유난히 복잡해지는 기분이야. 10화 이내로 끝내고 싶은데. 잘 될지 모르겠다.

혹시나 눈치 빠른 라붕이들은 이런 의문이 들수도 있어.

"아니, 철충 움직이는건 에이다를 통해서 잘만 파악하면서, 왜 안개 낀다는 정보는 막상 잘 모름? 말이 안되는데?"

미안하다. 그 대답은 글쓴이인 내가 역량 부족이라서 그래. 어떻게든 커버칠수가 없다. 

그럼에도 너그럽게 계속 봐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정말 고맙다. 

졸리니까 별 두서없는 말만 계속 나오네. 아무튼 정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