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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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령관은 문득 잠에서 깨어 어둠이 내려앉은 밤공기의 차가움에 놀라고 말았다.

 


 

 침대맡에 놓은 전등을 약하게 틀고서, 사령관은 누워있는 몽구스 팀의 지휘관을 침대에 걸터 앉아 내려다보았다. 홍련. 사령관은 배꼽 아래까지 내려간 이불을 끌어올려 그녀의 목까지 덮어주었다. 밤 공기가 육지에 상륙하기 전에 생각한 것보다 찼고, 바이오로이드가 감기 따위에 쉽게 걸릴 일은 없었지만 사령관은 그렇게 했다.

 


 

 잠들기 전까지 그의 품에 안겨, 한없이 사랑한다 말하던 여자. 그의 품에. 주인의 크고 단단한 팔에 안기에 한 몸이 될 것처럼. 붉은 머리칼만큼 뜨거웠던 일에 사령관은 지금 옆에 누워, 조용히 잠이 든 그녀의 머리칼을 쓸었다.

 


 

 사랑해요. 지금 곁에 누워 잠든 홍련이 말한다. 사랑해요. 그녀와 같은 바이오로이드가 말한다. 사랑해요. 그녀가. 사랑해요. 그녀가. 사랑해요. 그녀들이. 그 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이. 인간의 손으로 빚어내고, 세공한 완벽한 여신들이 그의 눈빛을 갈구하고 그의 손길을 원한다. 사랑해요. '사랑해.' ...사랑해줘요.

 


 

 '너희를 사랑해.'

 


 

 사령관은 입을 닫은 채, 혀를 굴려 누구도 듣지 못하게 말했다. '사랑해.' 마치, 앵무새가 말하는 것처럼. 녹음 된 오래된 테이프에서 새어나오는 것처럼. 공허하고, 감정이 담기지 않은 그 말이.

 


 

 마치 자신이 인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조용히, 소리를 죽이고 창가로 간 사령관은 번쩍이는 빛과 함께 비가 오는 것을 알았다. 문은 굳게 닫혀 외부와 소리가 단절되어 있었지만 찬 공기는 그 사이를 뚫고 들어와 그에게 닿았던 것이다.

 


 

 '차가워.'

 


 

 평소였더라면 사령관은 누가 입을 열거나, 혹은 잔소리 하기 전에 미리 셔츠를 입고 두터운 웃옷을 껴입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찬 새벽의 공기와 번쩍이는 불빛. 소리 없이 내리는 비를 보며 그는 그저 조용히, 적막한 새벽의 고요를 견딜 따름이었다.

 


 

 사랑해. 홍련이 말한다. 사랑해. 그가 말한다. 그러면 그녀는 웃고, 다가와 그 체온을 나누고, 그의 온기와 정기로 몸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세상을 전부 가진 이들처럼 만족한 모습으로 그의 곁에서 잠이 들고.

 


 

 그는 다시 차디찬 고독과 마주한다.

 


 

 "사랑해."

 


 

 '사랑해요. 주인님.' '사랑해주세요. 주인님.' '저를 버리지 말아 주세요. 주인님.' '안아주세요.' '죽을 때까지, 사랑해주세요.' '시간이 멎었으면 좋겠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그리고 다시, '사랑해줘요, 우리를'

 


 

 "....사랑해."

 


 

 사령관은 창밖을 보았다. 새벽. 그치지 않고 언제부터 왔는지 모를 빗소리는 여전히 들리지 않았다.

 

 

ㅡㅡㅡ


 

 "지금! 여기! 알비스 백작이 강림했노라!"

 


 

 알비스의 외침과 함께 들고 다니는 가방에서 초콜릿이 쏟아져 나왔다. 080기관을 완전히 해부하다시피 한 머리 좋은 스파이 바이오로이드들이 작업을 하는 사이, 레오나와 그녀의 발할라 대원들은 주변 시설을 확보하고, 남아있는 철충을 조각냈으며, 거기에도 시간이 남아 아직까지 냉동보관이 되어 있는 식량 창고를 찾아냈던 것이었다.

 


 

 "대장님! 여기 쪼꼬바 있어요!"

 


 

 "알비스 많이 먹으렴."

 


 

 "대장님 최고!"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지휘관. 레오나는 그런 알비스를 보며 웃었다. 입안 가득 초코바를 넣고, 버팔 래빗 안에도 가득 초코바와 간식거리를 잔뜩 집어넣는 알비스는 소꿉장난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직도 안나오네. 곧있으면 정오인데. 홍련. 그 계집애.'

 


 

 레오나는 육지에 임시로 설치한 간이 건물. 병사들과 지휘관들이 지내는 막사 중앙에 설치한 것들 중에서도 가장 크고 신경을 써서 만든 가건물 안에는 몽구스 팀의 지휘관 홍련과 그들의 사령관, 인간 남성이 지난 밤부터 들어간 뒤로 나오지 않고 있었다.

 


 

 '바람둥이 같으니.'

 


 

 . 레오나는 괜히 식사를 같이 하고자 아침도 거르고 사령관을 기다린 것을 후회했다.

 


 

 "알비스! 너 또!"

 


 

 "우움!! 대장님이 괜찮다고 했써!"

 


 

 "이 돼지야!"

 


 

 알비스의 약간의 보급품 횡령을 눈감아주던 레오나였지만, 그것이 같은 부대원 전원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잘못해써요오오."

 


 

 결국 칼리아흐 베라에게 혼이 나고, 볼이 잡혀 찹살떡처럼 주우욱 늘어난 알비스가 풀이 죽어 말했다. 통통하던 버팔 래빗이 다시 홀죽해졌다.

 


 

 "어휴. 죄송합니다, 대장님."

 


 

 "괜찮아. 베라도 가서 좀 쉬고 있어. 지역 장악은 다 끝났으니까. 알비스도 너무 먹지 말고. 가서 엘알엘이나 더치걸한테 나눠주고."

 


 

 "! 대장님!"

 


 

 장난스럽게 경례한 알비스와, 보모처럼 뒤를 쫓는 베라를 보며 레오나는 그만 풋, 웃고 말았다.

 


 

 레오나는 부대원들이 떠나고 난 풍경을 지켜보다, 허리를 펴고 기지개를 폈다.

 


 

 부는 바람. 새벽의 찬 공기와는 다르게 후끈하게 달아오른 정오의 태양. 간이 점령지 안에서 풍겨오는 스프 냄새. 흰 구름들. 멀리서 들리는 AGS의 기계소리. 스틸라인 병사(특히 브라우니)의 노랫소리. 그리고 귀를 귀울이면 들을 수 있는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 레오나는 잠수함 안에서의 답답했던 기분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사령관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

 


 

 레오나는 문득, 자신의 속마음에 놀라고 말았다. 처음부터 그 남자가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첫 모습은 어설프기 짝이 없고, 감정적이면서, 그저 멍청해 보였다.

 


 

 언제부터 그 남자의 마음에 들고 싶어졌던 걸까? 바보같고, 감정적이고, 실수하고, 자주 웃는 그 남자가. 멸망 전의 인간들처럼 자신들을 쓰고 버리는 말로써 쓰지 않아서? 인간과 바이오로이드 사이에 결코 넘을 수 없는 상하관계를 보이지 않아서? 레프리콘이나 브라우니 같은 말단 병사들에게도 친절하게 대해서? 레오나는 전장을 지휘하던 자신의 고급 모듈에도 알지 못했다. 사령관은. 처음부터 좋아하게 될 수밖에 없는 남자였다는 것을.

 


 

 이유따위는. 처음부터 상관 없었던 건지도.

 


 

 그의 품에 안기고. 그의 손길이 맨살에 닿으면. 레오나는 자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자신보다 먼저 재생산되어 사령관에게 안겼던 발키리의 마음을 이제는 레오나도 알았다. 저항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친절함이. 그의 웃음이. 그의 손길이. 그의 모든 것들이 공기를 타고 넘어와 그녀들을 잠식해 예전과는 다른 무언가로 바꿔버리고 만다. 그것이 더 나은 것인지, 더 나쁜 것인지 가리지 않고.

 


 

 변화는 그에게서 왔다. 레오나는 저기 노래를 부르고 있는 브라우니들도 사령관과 한 침실에서 잠이 들고,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깬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 브라우니마저도 레오나는 부러웠다. 홍련도. 마리도. 심지어는 직속 부하인 발키리도. 모든 오르카 호의 바이오로이드는 사령관의 여자이면서, 서로를 아끼고, 또 질투의 대상이었다.

 


 

 '나만이, 그의 것이었으면. 다른 바이오로이드를 보지 않았으면.'

 


 

 내가, '인간'이었더라면. 달랐을까?

 


 

 바이오로이드가 아닌, 순수한 인간. 그랬더라면 사령관의 곁에, 그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지 않을까? 만약. 만약에. 내가 '바이오로이드'가 아니었더라면....

 


 

 "레오나. 여기 있었나."

 


 

 상념은 깨지고 말았다. 소리없이 다가온 호드의 지휘관 칸이 전투화장도 하지 않은 얼굴로 레오나에게 온 것이었다.

 


 

 "사령관이 찾고 있더군. 같이 식사하자는데. 레오나?"

 


 

 ", . 그래. 고마워. 어서 가자."

 


 

 전투슈트를 벗어두고, 간단한 평상복을 입고 있는 칸의 모습은 낯설지만 아주 어색한 모습은 아니었다. 레오나는 방금까지 생각하던 것을 잊고서 칸의 빠른 걸음에 맞추어 걸었다.

 


 

 "그런데 칸. 같이? 우리 말고 누가 더 있어?"

 


 

 "? 그건 아닐세. 사령관이 자네가 안보인다고 해서 내가 직접 왔을뿐. . 부럽군. 각하가 잠시라도 안보이면 찾고 말이야."

 


 

 "...놀리지 마."

 


 

 "후후."

 


 

 레오나는 괜시리 화가 나서, 성큼성큼 걸었다. 그래도 칸은 아무렇지 않은 듯 레오나의 빠른걸음에 속도를 맞췄고, 그래서 레오나는 더 짜증이 났다.

 


 

 "아아! 진짜! 떨어져서 걸어!"

 


 

 레오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결국 둘은 나란히 사령관이 있는 숙소로 갔다. 레오나는 칸이 불편하면서도 싫지 않았다. 칸 앞에서는 속마음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내면의,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도록 꼭꼭 숨겨둔 더럽고 추악한 자신의 본모습이 그대로 칸에게 보여지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칸은 하하 웃으며 계속해서 계속해서 그녀를 찾았고, 결국에는 '친구'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둘은 가까워졌다.

 


 

 "맛있는 냄새가 나는군. 소완이 신경을 쓴 모양이야."

 


 

 "뭐어. 사령관이니까. 항상 그렇지."

 


 

 괜히 심술이 난 레오나는 칸을 때리고 싶었다. 하지만 같은 지휘관 개체더라도 확연히 차이가 나는 신체능력 앞에서, 레오나는 늘 그렇듯이 팔짱을 낄 뿐이었다. 장난으로라도 한대 때리고 싶어질 때면, 칸은 레오나보다도 먼저 거리를 두고 도망치고는 했다.

 


 

 사령관이 있는 가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고기를 양껏 넣은 스프 냄새와 따뜻한 빵, 그리고 접시 가득 담겨진 스테이크와 신선한 야채 샐러드가 차려져 있었다. 사령관과 홍련이 이미 자리에 앉아서 둘을 기다리고 있었고, 뒤에는 요리사 소완이 턱시도까지 갖춰 입고 대기하고 있었다.

 


 

 "레오나, . 어서와. 기다리고 있었어."

 


 

 사령관이 말했다. 그의 왼편에 앉은 홍련이 다소곳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레오나는 홍련도, 소완도, 같이 온 칸도 잊은 채 사령관의 목소리에 웃고 말았다.

 


 

 그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고 있다면. 그가 나를 불러준다면.

 


 

 나는. 당신이 원하는 무슨 일이라도 해낼 거야.

 

 

ㅡㅡㅡ

 


 오르카 호는 사령관이 점령한 육지로 향했다.

 


 

 유미들은 상황실에서 졸린 눈을 비비고, 커피를 마시며 덮쳐오는 수마와 싸우며 최대한 빠른 속도로 사령관이 있는 육지로 향하게 오르카 호를 관리했다.

 


 

 철충들과의 싸움으로 부족해진 물자를 공급하고, 잠수함의 정비를 위해 이번에 확보한 육지에서 재정비 시간을 갖고자 라비아타는 사령관께 말씀드렸고, 허가가 떨어졌다는 말에 오르카의 승무원들은 이제 쉴 수 있겠거니 하며 기운을 냈다.

 


 

 그러나 유미 13과 유미 16은 자신들에게만 내려온 함구령에, 입을 닫고 눈을 감고 방에서 반강제적인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 날, 지난 날 본 그것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그것이 사람이었을까? 그건 철충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인간과 철충이 합쳐진 끔찍한 무언가였을까?

 


 

 유미들은 사령관 각하를 대신하는 권한을 위임받은 라비아타의 말에 저항하거나 대응하지 않았고, 그저 조용히 방으로 돌아가 육지에 상륙할 때까지 비밀을 지키라는 라비아타의 '명령'에 순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기에. 인간도 바이오로이드도 아닌 끔찍한 소리를 그 자리에서 듣고 나면 그것이 인간의 뇌파가 뿜어져 나온다고 하여 인간이라고 여길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 어떤 바이오로이드라도.

 


 

 유미들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리곤, 어둠 속에서 속삭이던 '그것'의 목소리를 잊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것의 목소리는. 그 말은. 언어는 그녀들의 귓가에 울려퍼지어 사라지지 않는 얼룩이 되고 말았다.

 


 

 '추워.... 여긴.... 너무 춥다....'

 


 

 진즉에 죽었어야 할 그 육신에서 나온 말을 마주하며. 라비아타는 지난 날 조용히 검을 들었다.

 


 

 그리고 그녀들이 악몽에서 눈을 떴을 때, 오르카 호는 사령관이 점령한 육지에 거의 접근해 있었다.



















오르카 호에서 깨어난 사령관의 정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