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을 싫어한다. 힘들고 괴롭고, 돌아오는 것도 없고. 그 어두컴컴한 지하에서 곡괭이질이나 하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치가 떨린다. 오르카호에서 공병 업무를 하고 있을 때도 그랬고, 하여튼 나는 정말 일을 하기 싫어한다.


그런데 내 스스로도 이상하다 생각할만큼, 최근들어 지나치다 싶을만큼 굳이 맡기지 않은 일도 도맡아서 하려고 할만큼 일을 하려고 한다. 작게는 지나가던 바이오로이드들의 일을 도와줄까?하며 살짝 돕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좀 심하게는 그냥 부른거만으로도 안전모부터 쓰고 보는 등. 몸이 조금씩 피곤해지는게 느껴지면서도 이것을 자제하기가 힘들어졌다.


이유는... 차라리 모르겠으면 정말 좋았을텐데, 내 스스로도 알 듯한 이유들이다. 우선 첫 번째로, 사령관에게서 새 옷을 건네받고 어느정도 보호 받는 입장으로 바뀐 뒤에는 내가 오르카호에서 맡는 뚜렷한 업무 같은게 없어졌다는 것. 대체적으로 일선에 나가 철충들과 전투를 하거나, 뒤에 빠져있는 오르카호의 인원들도 여러 연구를 진행하거나 하는 등 많은 역할이 있다. 나 또한 가끔 잡무처리 같은 것을 받고는 하지만, 일을 싫어하며 다른 바이오로이드들도 익히 알고 있는 과거가 있기 때문인지 굉장히 적은 빈도로 일감을 받는다.


두 번째로는, 불행하게도 일을 하지 않게 되었더니 반대로 내가 쓸모 없는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받게 되었다는 것. 그렇다. 일을 하고 있을 땐 돌아오는게 없어서 일을 하기 싫다고 생각했더니 이젠 또 일을 진짜로 안하니까 내가 갑자기 사라져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것 같아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된 것이다. 일 중독 중에서도 흔히 말하는 내가 일을 하는게 아닌 일이 나를 하는 유형이다.


과거사에 대한 이야기나 사령관에게 새 옷을 선물 받은지는 짧진 않아도 그렇다고 오래 된 것도 아니다보니, 사실 대체적으로 도와주려고 알아서 오더라도 가급적 내게 일을 맡기는 것을 꺼려하는 바이오로이드들이 대부분이다. 나 뿐만 아니라 저마다 다 불행한 과거들은 하나씩 가지고 있을텐데 왜 그것 때문에 꺼려하는건지 참 이해하기가 힘들지만서도, 마음은 고마운데 나는 조금이라도 일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에 여러가지로 복잡해진다.


나는 아이가 아니다. 겉모습은 어린 아이여도 지하에 갇혀서 적어도 몇 십년은 갇혀 살았던만큼 보통의 인간 기준으로는 나도 늙으면 늙었지, 절대 어린 아이는 아니란 말이다. 적어도 그렇다면 내가 이 곳에서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만 하는데, 왠지 도움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 실질적으로 들지가 않았다. 그래서 강박관념이란게 생기고, 일 하기가 싫은데 안하면 불안해서 해야겠고. 하여튼 안그래도 복잡한 정신머리가 훨씬 더 복잡해져버렸다.


하여튼,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들을 하면서 바닥을 보며 오르카호 내부를 터벅터벅 걸어가다보니 인기척이 느껴져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잠깐 위를 보니 아니나다를까 서류를 든 채로 멈춰서서 나를 바라보는 콘스탄챠가 있었다.


"아... 콘스탄챠였구나?"


"네, 안녕하세요 더치 걸."


"어, 응..."


그냥 대충 인사 정도만 하고 가려고 했더니, 아까 콘스탄챠가 들고 있던 서류가 내 눈에 들어오고 말았다. 나는 옮기려던 발걸음을 다시 멈추고는, 다시 콘스탄챠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물었다.


"저기, 그러고보니까 아까 그 서류... 많이 무거워보여... 내가 좀 들어줄까?"


"네? 전 괜찮은데..."


"... 정말로...?"


최근에도 몇번씩 어떻게든 일감을 떠맡아서 처리하는 일이 부쩍 늘어났던걸 콘스탄챠도 알고 있었는지, 잠시 어쩔 줄 몰라하는게 역력했지만 무슨 의미인지 모를 한숨을 푹 쉬고는 서류를 잠시 내려놓고 몸을 숙인 채 나를 바라보며 나지막히 물었다.


"... 더치 걸, 뭔가 고민 같은게 있나요?"


"... 응?"


"그냥, 최근 들어서... 너무 무리하게 일을 맡으려는게 보여서요..."


지금 당신은 많이 피곤해보여요. 그 말대로다. 사실 나도 알고 있다. 사령관이 준 새 옷은 뭐라도 잘못 될까봐 자주 입지도 않고 있고, 그 꾀죄죄한 옷에 다시 일을 다 떠맡느라 생긴 다크서클에. 가다가 쓰러지지 않을까 싶을만큼 조금씩 비틀거리는 걸음걸이에. 그래도 그걸 끊을 수가 없다. 끊는 순간 내가 고립 될 것 같았으니까.


"... 난 괜찮아."


"제발,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많이 위험해보여요..."


"... 진짜 괜찮다니까. 나도 그 정도는 도와줄 수 있어. 내가 어떤지는 내가 잘 알아. 아직은 버틸만해, 아직은..."


그러니까, 제발 한번만 도와주게 해주면 안될까. 사실상의 심경 고백 수준으로 함축적인 말을 끝마치며 고개를 푹 떨궜다. 미안해. 걱정해주는데 이런 말이나 하고 있다니. 그래도 내가 무언가라도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된다면 좋겠어.


"... 이번만이에요. 그래도 걱정 되니까, 이번엔 같이 가자고요."


"... 고마워, 그리고 항상 미안해."


"저는 괜찮아요... 저보단 항상, 당신이 걱정이죠..."


사실상 몇 장 수준으로 얇은 서류 뭉치를 건네주고는, 가야 할 길을 알려주며 같이 동행해주는 콘스탄챠. 확실히 콘스탄챠가 건넨 말처럼, 순간적으로 넘어질 뻔할 정도로 크게 휘청거리는 순간도 종종 찾아왔다. 말은 그렇게 했는데, 이제 진짜 한계가 온건지 어떤건지. 그래도 악착같이 견디면서 같이 동행하던 순간에, 누군가와 몸을 살짝 부딫혔다.


털썩.


들고 있던 서류가 흩어지는걸 본 채로 주저 앉아버렸고, 그 상태에서 위를 올려다봤다. 아뿔싸. 하필이면 사령관이다.


"더치 걸이잖아? 왜 콘스탄챠랑 같이 있어?"


"그... 그게... 으, 으아아... 아..."


한계다. 하필 이럴 때 사령관이랑 만났다. 누적 되어 있던 스트레스가 한번에 폭발하는게 느껴지자, 거의 발작하듯 쓰러져 고통스러운 소리만을 내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며 다급히 나를 끌어안는 사령관, 너무 놀란 나머지 서류 뭉치조차 내팽겨치고 사령관과 함께 나를 부축해주는 콘스탄챠 정도가 그 때 내 눈에 담겼던 마지막 풍경이였다.




'... 여긴...?'


다시 눈을 떠보니 밤이 된 듯 어두운 창문 너머의 풍경이 보였고, 여러 곳곳에 여기가 사령관실이라는 것을 알리는 물건들이 있었다. 내가 누워 있는 곳이 사령관실의 침대였구나. 어째서 수복실이 아니라 여기로 온 것인지 생각하던 찰나에 사령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ㅎ, 히익...! 저, 사령관, 그, 그게..."


"아니, 괜찮아. 너무 놀라지는 마. 그게 어떻게 된거냐면..."


일단 처음엔 수복실에 옮겨졌었다고 한다. 그 상태로 콘스탄챠와 함께 상태를 지켜보다, 조금 나아진 것이 느껴지자 개인적으로 나눠보고 싶은 대화가 생겼다며, 지금보다 더 안정 되면 사령관실로 옮겨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실제로 사령관실에 옮겨진건 그 대화가 있고 훨씬 시간이 지난 뒤였다고.


"... 미안해 사령관."


"그냥 괜찮은데, 정말로. 근데 궁금한건... 더치 걸은 원래 일을 하기 싫어했잖아? 왜 그렇게까지 무리를 했던거야...?"


"... 내가 쓸모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어."


"...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사령관의 선물도 기쁘게 받고, 일도 많이 줄고. 분명히 기뻤고, 지금도 기쁜데... 이상하게 일이 없으니까 오히려 내가 필요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어. 다들 자기 위치에서 자기 일을 열심히하고 있는데, 나만 뒤에서 쉬고 있고. 아무 것도 안 하는 것 같고... 정말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으을 것만 같았어..."


"..."


막상 털어놓고 나니까, 설움이 조금씩 올라오는게 느껴지면서 내 눈가가 제대로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눈물 때문이랴. 여하튼 사령관이 침묵을 지키는 사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받기만 하고, 왠지 주는건 없는 것 같아서... 그냥 이렇게 지내도 되는걸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다른 사람들을 도와줬어... 근데 결국 실수를 했잖아, 심지어 그걸 사령관이 봐버렸으니까... 그냥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어...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


지금까지 일을 하기 싫어했는데 이젠 또 일을 해야만 한다고 했고, 그랬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일을 일단 맡으면 실수 없이 잘 해냈다. 그런데 이제 실수를 해버렸지 않는가. 그것도 사령관이 보는 앞에서. 일을 안하면 무쓸모한 존재가 될 것 같은데, 일을 하면 또 실수만 할 것 같고. 이 뫼비우스의 띠 같은 복잡한 정신세계에 정말 미쳐버릴 만큼 복잡한 알고리즘이 하나 더 추가가 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정말 되는건 하나도 없고, 다 철저히 마이너스적인 방향으로만 치닫는 것 같은데, 이젠 아예 그냥 내가 여기에 남아있는 것 자체가 해가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닿으려고 했다.


그렇게 점점 자학적인 분위기로 이어지려는 찰나, 갑자기 사령관이 나를 품 속에 왈칵 끌어안으며 말 없이 몇 초 정도 내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 사령관...?"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란건 어디에도 없어. 여기서도 그렇고, 다른데서도 그렇고... 너는 충분히 도움이 되고 있어. 니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같아보이고, 설령 진짜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한들. 그냥 오르카호에서 잘 지내는 모습만 봐도 충분히 힘이 나니까. 다른 아이들도 그렇게 생각할거야."


"... 사령관..."


"다들 맡은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간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그냥 별 탈 없이 잘만 지내줘. 네가 맡은 위치는 그거라도 충분해. 더 이상 너무 무리하지말고... 그냥 흘러가는대로,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잘 놀고 잘 지내주고... 나는 그거면 충분해."


"... 흑, 흐끅... 사령과아안..."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지만. 확실한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어 하나하나가 내 복잡했던 정신머리를 시원하게 박살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울음을 터트리며 사령관을 불렀지만, 그래도 이번엔 슬픔의 의미가 아니라 안도의 의미였을거라고 내 스스로도 장담할 수가 있다.


"미안해... 내가 너무 무리해서... 흐끅, 잘, 지내볼게... 선물까지 해줬는데, 정말... 흑, 미안해..."


"충분히 고민할 수 있었던거라고 생각해... 나도 너무 너에 대해서 더 깊게 알아가려고 하지 않은 것 같아서 미안해."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알려고 해도, 분명 이 정도로 복잡한 내 머릿 속을 이해하지 못했을 테니까 사령관의 잘못이 아닐게 분명해. 그런거야. 그렇게 몇분동안 오열하듯 품에 안겨있다 잠이 들었고, 어쩌다보니 아침이 되었다. 철저히 악순환만을 만들어 내는 지독한 악령이 마음 속에서 퇴치 당한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래도 당시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듯 나는 여전히 불안하고 그것을 완벽하게 떨쳐내는데는 시간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그래도 확실한건, 이제 내가 굳이 억지로 일을 도맡아가며 무리하지 않아도 충분히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 그래도 그 사실을 상기시키며 아침을 맞이했더니, 더 이상 아침이 두렵게만 느껴지진 않는다.


"아, 일어났어 더치 걸?"


"으응, 사령관..."


다시 만난 인류가 이 남자라는 것이, 내게는 너무 큰 행운이고 너무나도 행복한 사실이다. 부디, 새로이 자리잡을 인류들도 이 남자의 정신을 계승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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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화이자 맞으러가서 씀 악


* 화이자 맞는거랑 이 글 주제랑 도대체 뭔 상관이 있냐면 그건 나도 몰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