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 드라코가 나에게 다가왔다.


단정하고 멍청한 머리를 가진 녀석이다. 스틸 드라코는 멍청해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물었다.


“장화. 엄마 봤어?”


스틸 드라코를 죽이는 것은 성가시다. 언제나 두꺼운 방패를 들고 다니기 때문이다.


스틸 드라코를 죽이기 위해서는 방패를 뚫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폭탄을 쓰거나, 아니면 폭발반경이 넓은 폭탄을 잔뜩 뿌려 소모시켜야 한다. 아니면 방패가 없는 방향에서 폭탄을 터트리던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아, 사탕 먹을래? 아까 전에 토모가 나눠줬어.”


나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래? 나중에라도 먹고 싶으면 말해. 또 보자.”


나의 냉담에도 불구하고 스틸 드라코는 웃으며 나를 떠난다.



잠시 후 또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왔다.


“장화. 스틸 드라코 어디 갔는지 알아?”


제대로 정돈이 안 되는 보라색 머리를 핀으로 고정시키고 다니는 불가사리다.


불가사리를 죽이는 것은 쉽다.


동작이 굼뜨고 자신을 보호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폭탄 몇 개만 던져주면 끝.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스틸 드라코가 사라진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고마워. 아. 젤리 먹을래? 아우로라 일 도와주고 얻었어.”


나는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맛있는데……자.”


불가사리는 기어코 내 손을 펼쳐 낱개 포장된 젤리를 쥐어준다.


“너도 어서 오르카 호 생활 익숙해졌으면 좋겠어.”


그렇게 말하고 불가사리는 나를 떠난다.



“장화, 발견!”


활발한 목소리가 나에게 다가온다.


길다란 핑크색 양갈래 머리를 한 저격수 미호다.


미호를 죽이기 위해선 우선 미호의 저격포인트를 찾아야한다. 미리 저격 포인트를 예상하여 폭탄을 설치하고 운이 좋으면 단숨에 없앨 수 있지만 실패하면 성가셔진다. 자신을 보호할 수단이 없는 미호는 조금만 위험하다 싶으면 줄행랑을 치기 때문이다.


“에헤헤. 뭐해, 장화?”


붙임성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내 앞에 서는 미호.


“아. 손에 그거 뭐야?”


나는 말없이 손에 들고 있던 젤리를 미호에게 넘겨주었다.


“젤리네? 먹어도 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호는 부시럭 거리며 젤리를 까먹었다.


“아. 맞다. 엄마가 찾으셔. 아까 갑판에 계셨으니 거기에 계실걸?”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떠났다. 그런 내 등을 향해 미호가 말했다.


“젤리 고마워. 잘 먹을게.” 



갑판에 올라가니.


“장화. 여기 있었구나!”


새된 목소리를 내며 핀토가 나에게 날아왔다.


핀토가 제일 성가시다. 날아다니기 때문이다. 건물 사이에 와이어를 거미줄처럼 치는 방법이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방법이지만 이마저도 성공확률이 높지 않다. 하지만 그녀도 언젠가는 땅으로 내려온다. 그 순간을 노려야 한다.


핀토는 내 앞에 내려왔다.


“엄마가 찾으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흠……왜 그리 죽상이야? 스마일. 스마일.”


두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가를 밀어 올리며 웃는 핀토.


“혹시 기분 나쁜 일 있으면 말해. 얼마든지 들어줄게.”


나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핀토 옆을 지나갔다.


그런 나를 향해 핀토가 말했다.


“나로는 부족하다고 느끼면 엄마한테 말하면 될 거야. 아니면 사령관님이라던가.”


그 말이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멀어졌다.



“장화. 찾고 있었어요.”


홍련이 나를 반겼다.


홍련을 죽이는 것은 쉽다. 몽구스 팀의 다른 부대원을 인질로 잡거나 시체를 보여주면, 혹은 내 얼굴을 보여주면 얼어붙어서 아무것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 때 폭탄을 쓰든 와이어를 쓰든 처리하면 된다.


“오르카 호에서의 생활은 익숙해졌나요? 불편한 점이 있으면 말해주세요. 완전한 해결은 보장 못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해결할 수 있게 도와드릴게요.”




오르카 호의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다. 얼마 전까지 적대하던 나를 받아들여 줬고, 그중에서도 특히나 몽구스 팀의 부대원들은 직접 싸웠으면서도 나를 반기기까지 했다.


마치 가족처럼.


이 며칠 동안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인정받은 것 같았고, 그래서 처음으로 행복했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홍련.”


“네.”


“나 오르카호 떠날게.”


“잠깐. 장화.”


홍련은 놀라서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왜 그러시죠? 무슨 일이 있었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말씀해주세요. 최대한 제가 도와드릴게요.”


내 과거의 숙적, 나의 목표, 나의 이유 없는 원한의 대상, 그리고……나의 언니는 걱정이 가득한, 하지만 단호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르카호의 생활이 불만스러우신 건가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만족스러워. 사실 지금까지의 삶에서 가장 행복한 때를 보내고 있어.”


“그러면 왜?”


“행복한 만큼 고통스러우니까.”


“무슨 말씀이시죠?”


나는 머릿속에 있는 말을 정리한 후 천천히 풀어냈다.


“홍련.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몽구스 팀원들을 죽였다고 생각해?”


“…….”


“내가 얼마나 많은 몽구스 팀원들을 죽였다고 생각해?”


“…….”


“내가 얼마나 많은……너를 죽였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들과 저는 다르잖아요.”


“맞아. 달라. 하지만 내 머리는 제대로 분리시키지 못하고 있어.”


“…….”


“나는 말이야 너와 몽구스 팀원들을 너무 오랫동안, 너무 많이 죽였어. 조건반사가 될 만큼. 너를 볼 때마다. 몽구스 팀원들을 볼 때마다 나는 어떤 방법을 써야 너희들을 죽일 수 있는지 계산해.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하지만 지금은……안 그러고 계시잖아요.”


“맞아. 하지만 사고가 일어나면 늦어.”


“저희가 최선을 다해서 도와드릴게요.”


홍련은 너무나도 간절하게 나를 도와주려고 했다. 이런 와중에도 나는 어떻게 그녀를 죽일지 계산하고 있었다. 저 가느다란 목에 와이어를 걸고 조르면 손쉽게 끝날 것이다.


“홍련. 너와 몽구스 팀원들이 나에게 잘해주면 잘해줄수록 나의 충동은 강해져. 너무 무방비해서. 마치 길을 가다가 동전을 줍는 것처럼 손쉽게 죽여버릴지도 몰라.”


“그러면 적당히 거리를 벌리면서 천천히 가까워지는 방법도 있잖아요.”


“그런 방법도 있을 수도 있어. 그런데 문제는 하나 더 있어.”


“무엇이죠?”


“죄책감.”


“…….”


“나를 가족처럼 받아들여 주는 몽구스 팀원들을 보면 나는 매일 매 순간 내가 옛날에 죽였던 몽구스 팀원들의 죽음이 떠올라. 내가 죽인 그녀들을. 내가 그녀들을 죽였던 방법들을.”


나는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새하얀 손이지만 나는 그 손에 묻은 피가 보였다.


“내 손에 묻은 그녀들의 피가. 내 영혼에 달라 붙은 그녀들의 원혼이. 어째서 나 혼자 행복해지려고 하느냐고, 나에게 그런 자격이 있냐고 물어.”


나는 고개를 들었다. 홍련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녀들의 의견에 동의해. 나는 행복해질 자격이 없어.”


“아니에요. 누구나 행복해지는 데에는 자격이 필요하지 않아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 행복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죄책감이 존재해. 동전에서 한 면만 가질 수 없는 것처럼 행복만 선택할 수는 없어. 이 죄책감을 같이 안고 가야 해. 이런 게 행복일까?”


“어떻게 해야……어떻게 해야 행복해지실 수 있나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몰라. 하지만 모른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잖아.”


홍련은 나를 어떻게든 붙잡으려고 말을 내뱉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제대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나는 뭔가 충족감을 느꼈다.


홍련의 무조건적인 헌신을 받으며 나는 처음으로 그녀가 내 가족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그 호칭을 입에 올렸다.


“언니.”


홍련이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나를 보내줘. 나는 행복해지기 싫어서 떠나는 게 아니야, 행복해지고 싶어서 떠나는 거야.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나는 웃었다.


“그래서 그 방법을 찾으면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다시 언니의 곁으로 돌아올게.”


나는 내 어깨에 얹은 홍련의 손을 붙잡았다.


“나를 믿어줘.”


홍련의 눈가가 떨렸다. 그녀의 눈가가 붉어졌다. 그리고 기어코 한 방울의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눈물은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홍련은 내 어깨에서 손을 떼고 한 방울 흐른 눈물을 닦았다.


그녀가 눈물을 닦고 난 후의 표정에는 미소가 있었다.


“꼭 다시 돌아와야 해요.”


“응.”


“힘들면 돌아와요.”


“응.”


“몸 조심해야 해요.”


“응.”


“행복해져야 해요.”


“……응.”


홍련은 새끼손가락을 앞으로 내밀었다.


“약속해요.”


“됐어.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약속해요.”


홍련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그 의지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강고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홍련의 새끼손가락을 바라보다가 내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꼭 다시 돌아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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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벤 스토리 마지막에서 장화가 자기 손에 피가 많이 묻어서 행복해질 자격이 없으니 떠난다고 한 장면 보고 삘 받아서 써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