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왜 그래? 어제까지만 해도 쌈닭마냥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더니?"


둠 브링어의 지휘관 멸망의 메이는 의심스럽다는 눈길로 자신의 부관을 쳐다보았다. 어디서 주워듣고 온 건지, 사실 숙맥인 그녀가 요새 치킨이 사령관과의 야쓰보다 좋다는 주장을 내세우기 시작한 바람에 부관 나이트 앤젤이 환상통인지 뭔진 몰라도 있지도 않은 가슴을 썩이다 어제 한 푸닥거리 한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나온 말이었다.


"아...아뇨, 그게 제가 다시 잘 생각해 보니까, 가끔은 치킨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지 뭐에요. 솔직히 닭고기에 죄가 있는 건 아니잖아요. 맛있기도 하고. 기분 나쁘시다면 죄송하게 생각해요, 하하."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사실 말과는 달리 끝없는 실패에 지친 나이트 앤젤은 노선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구인류의 속담도 있지 않는가. 이놈의 고집불통 대장은 아무리 직접적으로 닦달해봤자 어차피 제 발로 비밀의 방에 들어갈 용기가 추호도 없는 것 같으니, 차라리 맞장구를 쳐 주면서 차근차근 판을 깔아줘 버리는 작전이었다. 


"흥, 이제야 내 말뜻을 이해하는구나. 지금이라도 알아들었으니 됐네요, 부관."


이, 이놈의 기지배가...


마음 같아선 저 건방지게 부풀린 볼따귀를 상하좌우 전후좌우로 사정없이 잡아당기고 싶었지만, 나이트엔젤은 대의를 위해 모든 분노를 가슴 속에 꾹꾹 눌러담았다. 어라, 너무 담았나 나 왠지 지금 가슴이 좀 답답한 것 같아. 내 여기에도 리앤 씨처럼 큼지막한 자비 주머니가 있었다면 분명 이렇지 않았을 텐데...


"너도 그렇게 생각한다니 얘기가 편하네. 이렇게 된거 소완한테 주류 불출 신청서 넣어서 오늘 우리 둠 브링어 다 같이 야쓰 회식 한번 어때?"


이런 씨...옆집 스카이 나이츠는 진짜 단체 야쓰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오는데 누구는 닭 가지고...그나저나 이 양반은 왜 사령관 앞에선 이 붙임성의 반의 반도 발휘를 못하는 거지? 나이트 앤젤은 속도 모르고 옆에서 호탕하게 웃는 자신의 대장을 아주 잠깐동안 좀 깬다는 눈으로 바라봤지만, 이내 거두고 이리저리 생각을 굴리기 시작했다. 


"아이, 저희도 좋지만 사령관님이 요새 밤생활 하느라 몸이 좀 허하신 모양인데, 이참에 대장이 사령관님 몸보신도 해줄 겸, 진짜 야쓰가 뭔지 한번 딱 보여드리는 게 좋지 않겠어요? 다이카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사실...저도...대령님 말씀처럼...치킨도...나쁘지..."


"이거봐, 다이카도 그렇다는데요 대장?"


폭포수처럼 쏟아진 나이트 앤젤의 달변에 메이의 고개가 갸우뚱 돌아갔다. 어어, 나는 둠 브링어끼리 먹자는 얘기였는데 갑자기 사령관이 왜 나오지? 그치만 치킨은 분명 맛있으니 사령관도 좋아할 것 같고, 이제는 타이밍을 놓쳐 먼저 운을 띄워보는 것조차 겁나는 직접적인 유혹보다야 그게 나은 것 같아 조금 마음이 동하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사령관의 식사는 보통 소완이 담당하고 있을 텐데, 오늘 갑자기 먹자고 그래도 곤란해하지 않을까?"


"오늘 20시부터 22시까지 저희 부대 개인상담 스케줄이 잡혀 있는데, 신청자가 아무도 없어서 사령관님이 많이 아쉬워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식사시간을 조금만 조절하면 되지 않을까요?"


사실 지지난 주부터 스틸라인 및 시오발 당직사령 팬티 끈을 붙잡고 늘어져 쟁취해낸 명목상의 상담 스케줄이었지만, 지금 자못 싱그러운 미소마저 머금은 나이트 앤젤의 표정에는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내색이 요만큼도 없었다. 덴세츠제 배우 바이오로이드들이 봤어도 무릎을 탁 칠 연기력이었다. 


"그...그래? 흥, 뭐 사령관은 아직 못미더우니까 아무도 신청을 안하는 것도 이해는 가지. 어쩔수 없네, 우리 둠 브링어가 최고 사령관을 문전박대했다는 소문이 나면 안 되지. 소완한테는 내가 말하고 올게!" 메이는 신나서 옥좌에 올라탄 채로 둠 브링어 숙소를 빠져나갔다.


드디어! 드디어 이 답답이가 자기 스스로 움직이는구나! 북풍과 태양은 정말 맞는 동화였어! 하지만 나앤은 용케 끝까지 조커 포즈를 참고 존만이 대장을 배웅하는 데 성공했다. "네 대장, 그럼 저희는 격납고에서 장비 수입이나 하고 있을게요."


"좋아, 처음에는 그냥 치킨이지만 끝까지 그러리라는 법은 없지,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죠 다이카?"


 ".........저도...회식...좋아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한다니 참 기쁩니다."나이트 앤젤은 친근감을 담아 다이카의 어깨를 툭 쳤다. 그녀들은 지금까지 너무 오랜 시간동안 참아 왔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아직 모른다. 단숨에 무드가 좋아져서 잘 되는게 최상이지만 설령 하(下)가 나와 그냥 식사만 하게 되더라도 사령관한테 얼굴도장은 찍은 셈이니 자기 혼자 처먹는 것에 비해 손해볼 게 없다는 심산이었다.


다만 이렇게나 치밀한 계획을 세운 둠 브링어의 범증 나앤도 미래는 알 도리가 없었기 때문에, 곧 사령관이 괜히 들뜬 메이가 하필 골라잡은 레아 치킨의 신메뉴 '티타니아 아이스 멜론맛 치킨'의 파괴력에 거품을 물고 졸도해 블랙 리리스와 컴패니언이 긴급 출동하고, 인생의 선택지에는 상중하 외에도 없느니만 못한 흉(凶)이라는 것이 있다는 쓰디쓴 교훈만을 얻게 된다는 사실은 아직 오르카의 그 누구도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