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설정과 다를 수 있음

*단 맛, 짧은 단편

*단 맛 이전 글 상처 입은 나비가 머무는 정원 다프네

*그 외 그동안 쓴 문학 총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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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의 한 걸음 뒤, 가깝지만 먼 거리.

나와 주인님의 그 거리감은 언제나 좁혀지지 않았다.

그의 곁에 다가서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동시에 두려운 일이었다.


"음..."


업무를 보는 주인님을 바라보며 그의 기척에 온 신경을 쏟는다.

비록 눈을 감고 있을지언정 주인님의 모습, 상태, 기분까지

주인님의 의중을 파악하고 그에 맞추는 것. 이것이 내가 맡은 임무니까.


"여기 있습니다."


"아, 고마워 금란."


주인님께 수정 펜을 건네고 다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주인님의 바로 곁을 머무르며

검을 소지한 채 있을 수 있다는 것. 이것 하나로도 주인님이 내게 보내는 신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금란."


"네 주인님."


"오늘 일과가 금방 끝날 것 같아서 말이야. 잠깐 바닷바람을 쐬러 나가지 않을래?"


 모처럼 주인님이 내게 나들이를 권유하셨다. 오랜 시간 주인님의 곁을 지키며 주인님과

나들이를 나선 적이 자주 있었다. 길어봐야 한 두 시간 정도인 짧은 나들이지만,

주인님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언제나 행복했다.


"네.. 감사합니다 주인님."


"감사는 무슨.. 오늘은 너에게 꼭 하고 싶었던 말도 있었고... 아무튼 괜찮지?"


"그럼 시간은..."


"이것만 끝나면 일과가 끝나니까 바로 나가자."


"네.. 알겠습니다."


평소와는 다른 주인님의 기척. 주인님의 심장 소리가 유독 빠르게, 강하게 느껴졌다.

긴장을 하고 계신 걸까. 평소와는 다른 주인님의 기척을 느끼며 의아함을 느꼈지만

주인님은 기분이 좋아 보이셨다.


'기쁘신 걸까...'


일개 호위 무사인 내게 이토록 큰 애정을 주시는 주인님. 주인님과 함께하는 나들이는

언제나 내게 큰 기쁨 이었지만 주인님도 기뻐 하시니 내 기분이 덩달아 좋아졌다.


"금란도 기분 좋아 보이네?"


"아.. 예, 모처럼 권유해 주셨기에.."


주인님도 내 마음을 금방 눈치 채셨다. 가까이서 모셔왔기 때문일까?

주인님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내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붉어졌다.


주인님이 마지막 문서에 서명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서 몸을 푸셨다.

나는 언제나 그러하듯 주인님의 겉옷을 옷걸이에서 챙겨 건네주려 했다.


"괜찮아. 내가 할게."


"아... 네, 알겠습니다."


나는 겉옷으로 향하던 내 손길을 접었다. 주인님의 곁을 모시며 늘 겉옷을 챙겨 드리고는

했지만 주인님이 직접 하신 것은 처음이었다.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일까.


"그럼 가자."


"앗.."


주인님이 내 손을 부드럽게 잡고 이끌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이란 참 따뜻하고

마음을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나 곁에서 한 걸음 정도 떨어져 걸었지만,

오늘 만큼은 주인님의 바로 곁에서 함께 걷고 있었다.


"하아~ 항상 수면 위로 부상하면 이렇게 바깥 바람을 느끼고 싶다니까... 그렇지 않니?"


"소첩은... 그저 주인님의 곁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래? 하하핫! 이거 쑥스럽네.."


주인님이 밝게 웃으며 난간에 몸을 기대고 바다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런 주인님의

곁으로 다가가 차갑게 느껴지는 바닷바람을 마주 보았다.


"역시.. 예민한 너에게는 좀 괴롭게 느껴지려나?"


"아니오.. 괜찮습니다. 주인님의 곁에 있으면.. 어쩐지 안심이 되기에.."


사실 예민한 감각으로 느끼는 바닷바람은 유독 차갑고 거세게 느껴진다. 하지만 괴롭지 않았다.

주인님의 곁에 있기에, 주인님이 함께 계시기에 오히려 마음은 평온하게 가라앉았다.


"금란."


"네."


주인님의 진지한 음성, 하지만 그의 기색은 강한 긴장감이 느껴지고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느끼지 못할 아주 미세한 영역의 기척이지만, 나에게는 강하게 느껴졌다.


"잠깐 눈을 떠 보겠니?"


"...소첩의 눈 말씀이십니까?"


"응. 부탁이야."


"네..."


흔치 않은 주인님의 부탁. 주인님의 부탁이 아니어도 그것이 주인님이 바라는 것 이라면

눈을 뜨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아....!"


눈을 뜨자 눈 앞에 보이는 아름다운 광경, 청명하고 푸른 바다 너머로 보이는 아름다운 섬.

푸른 하늘에 떠 있는 고고한 흰 구름들과 그 사이로 내려오는 찬란한 햇빛.


모든 것들이 보석처럼 어우러져 환상적인 경관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주인님의 손 위에

들려있는 작은 반지가 아름답게 빛나는 상자.


"주, 주인님..."


"제일 먼저 반지를 준다면 그건 항상 너라고 생각해 뒀어. 사실 겉옷 주머니에 계속

넣어 두었는데.. 역시 네가 겉옷을 챙겨주면 바로 눈치를 챌 것 같아서.."


"아... 소첩에게... 이것을...?"


"응. 받아주겠니? 항상 내 곁에 있어준 너에게,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어."


주인님의 담담한 고백. 내 눈을 똑바로 마주 보는 그의 눈동자는 강한 확신에 차 있었다.

거짓이 담기지 않은, 순수한 그의 본심. 그의 본심을 듣자 그동안 품어왔던 내 연심이 전해진 듯 느껴졌다.


"그. 그게.. 소첩도.. 항상 주인님께 소첩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얼굴이 잔뜩 붉어지고 호흡이 가빠졌다. 미치도록 떨리는 심장 소리가 내 귓가를 넘어

주인님의 귓가에 들어가진 않을까 염려될 정도였다.


"하오나 주인님의 호위인 몸... 차마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항상 소첩의 마음을 삭혔습니다..."


그때 주인님이 나를 부드럽게 안아주셨다. 주인님의 손이 내 허리에 감기고 주인님의 가슴팍에

내 얼굴이 맞닿았다.


두근두근 강하게 느껴지는 주인님의 심장 소리. 그 소리를 듣자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주인님... 소첩, 아니... 신첩이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곳은 오로지 주인님의 곁 뿐입니다...

이 보잘것없는 목숨이 다 하는 그 날까지... 부디 주인님의 곁을.. 읏!"


주인님이 나의 대답을 다 듣기 전에 내 입에 주인님의 입을 맞추셨다.

찰나의 시간 이었지만 그 감촉은 영겁과 같이 남았다.


"당연하지. 약속할게 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는 그 날까지, 난 널 사랑할 거야."


주인님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더욱 강하게 날 끌어 안으셨다.

주인님과 나의 거리감이 줄어 들었다. 서로의 영원을 약속하는 행복한 마음이

서로 뒤엉켜, 우리들의 거리를 좁혀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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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거리, 한 걸음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