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설정과 많이 다를 수 있음

*새드 엔딩

*이전 글 지난날의 추억을 품고 당신을 그리우며 세이렌

*그 외 그동안 쓴 문학 총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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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금 늦었군요. 죄송합니다 각하."


흰 눈이 내리는 겨울의 밤, 잔뜩 눈이 쌓인 야트막한 언덕에 마련된 소박한

기념비에 발키리가 걸어왔다. 그녀는 어깨에 쌓인 눈들을 가볍게 털어내며

그의 기념비를 바라보았다.


"벌써 각하께서 떠나시고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이젠 세상도 평화를 되찾아

저희들이 나설 차례가 오지 않더군요."


이제는 평화를 되찾은 세상. 그 세상에 그녀들과 같은 싸우는 이들은 크게 필요가 없었다.

그녀들은 어디 까지나 전쟁을 위해 탄생 되었기에 방황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너무 걱정 마십시오. 나름 이 세상에서 저희들이 할 일이 남아있습니다."


새롭게 이 세상을 살아갈 후손들을 지키는 것. 그것이 아직도 이 세상에 그녀들이

남아있는 이유일 것이다. 적어도 발키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령관은 수명이 다 해 죽는 그 순간까지 세상을 복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

가장 오랫동안 그의 곁을 지켜온 발키리는 그런 그의 뜻을 지키기 위해서

아직도 자신이 살아있는 것이라 여겼다.


"참, 오늘은 이것들도 가져왔습니다."


발키리가 자신의 코트 주머니에서 작은 과자 봉투를 꺼냈다. 앙증맞은 포장지에

정성스럽게 포장된 과자를 풀며 발키리가 기념비 앞에 차분히 앉았다.


"알비스가 직접 만든 것들입니다. 각하께 드리고 싶다 하기에..."


발키리가 슬픈 표정으로 기념비에 쌓인 눈들을 털어냈다. 하지만 그는 불귀의 객이 되어

더 이상 그녀가 건넨 과자들을 받아주지 못한다. 먼저 명예의 전당으로 떠나간 그를,

아무리 그리워 해도 아직 이승에 남아있는 그녀는 그의 손을 붙잡지 못한다.


발키리는 슬픈 표정으로 밤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바라보았다. 흰 눈이 내리는 밤 하늘

사이로 고고하게 떠올라 환한 빛을 뿌리는 달과 같이, 사령관은 언제나 그녀의 빛이 되어주었다.


"제 눈은 단 한번도 표적을 놓친 적이 없었는데... 왜 각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것일까요?"


밤 하늘 너머 있을 사령관을 생각하자 발키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무리 예리한 시력을 갖고 있어도, 더 이상 그는 그녀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각하... 아니, 당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목소리를 듣고 싶어도 이제는 들리지 않아요..."


그는 이승을 떠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이승에 남겨졌다. 그 사이의 거리감이 지독하게

시리고 아프게 느껴졌다. 그저 그리워하고, 그저 슬퍼하며 밤 하늘을 바라볼 뿐.


"저는 당신을 위해 그 무엇도 할 수 없었어요..."


발키리의 얼굴에 흰 눈들이 떨어져 녹아내렸다. 눈이 녹아 흐르는 물줄기가 그녀의

눈물과 합쳐지며 더욱 큰 줄기를 이루었다.


"아무리 불러도 당신이 대답하지 않아요.. 아무리 보려 해도 당신이 보이지 않아요.."


그녀가 결국 사령관이 잠든 기념비를 끌어안으며 오열 하기 시작했다. 그 무엇으로도

씻기지 않는 그리움이 마음을 좀먹고 그 무엇으로도 떨쳐지지 않는 상실감이 그녀의

마음을 찢어 놓았다.


"왜...! 어째서...! 당신은 내 곁을 먼저 떠난 건가요..."


하지만 그녀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그는 신의 섭리에 따라 탄생 된 인간.

그녀는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 둘의 태생이 다른 만큼,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처음부터 달랐다.


한참을 사령관의 기념비를 끌어안고 눈물 흘리던 발키리가 차분히 일어서며

눈물을 닦아냈다. 이렇게 슬퍼하며 있을 수는 없었다. 아직 그녀에겐 지켜야 할 것들이 남아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흐트러졌군요.. 크흠.. 걱정 마십시오. 저는 명예로운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발키리, 그리고 전장의 하얀 사신.. 각하가 남긴 뜻을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눈보라 속에서 명예를 찾아 떠나간 전우들을 대신해서, 반드시... 지켜봐 주십시오 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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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눈이 내리는 밤, 당신을 그리우며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