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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축하해?"


난데없이 내 아침 산책시간을 굿모닝 허그로 하이잭한 슬레이프니르의 충격적인 첫 마디에 난 실없는 축하의 말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슬레이프니르는 내 품에 안긴 채로 "헤?" 하며 잠시 어리둥절해하더니, 창문에 들러붙은 쥐가오리를 멍하니 쳐다보며 잠시 자신의 말을 곱씹어보는 듯 했다. 곧 제비의 날개깃처럼 뻗쳐나온 머리가 화들짝 흔들리고, 새하얀 얼굴이 삽시간에 발그레해졌다.


저 밖의 쥐가오리처럼 한동안 입을 뻐끔거리던 슬레이프니르는, 어쩔 줄 몰라하며 자신의 말을 머뭇머뭇 주워섬겼다.


"으, 으... 이게 아니라... 좋은 아침?"

"어, 좋은 아침..."


아침 인사도 주고받기 전에 하는 말이 "오늘 74 오케이!"인 여자아이는 뭘까? 명치로 꽂혀들어오는 핵직구는 아무리 다양한 경험을 한 나라고 해도 부드럽게 받아주기 어려웠다. 그래도 그 숱한 일을 거쳐오면서 이성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 능숙해졌다고 내심 우쭐해했었는데, 지금 이 소닉붐과도 같은 한 방으로 나의 부족함을 통감하고 말았다.


슬레이프니르의 반응으로 미루어 보아, 이 사태는 그녀가 의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원래는 자연스럽게 내게 안부를 묻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하려 했겠지. 하지만 마음이 앞선 탓에 이런 말실수를 하고 만 모양이었다. 뭐든 빨리빨리에 익숙해진 성급한 성격에서 온 조급함과, 어색하지 않게 밤 약속을 잡으려는 본 목적에 지나치게 경도되어서 쌓인 긴장감이 섞여서 일어난 격렬한 화학반응이었다. 아무리 솔직담백한 그녀라고 해도 이 정도로 솔직담백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내 가슴팍을 얼굴의 열기로 뭉근하게 달구고 있는 슬레이프니르를 내려다보며 나도 당황한 마음을 찬찬히 가라앉혔다. 뭐... 의도가 어찌 됐건, 빙빙 돌리지 않고 신속하게 핵심을 꿰뚫어 준 덕분에 그녀가 전하고자 하던 바는 가감없이 내게 전달되었다. 나는 간헐적으로 떨리는 갈색의 머릿결을 정수리부터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속삭였다.


"...밤 8시에 4층 G구역 34호실로. 옷은... 지금 입은 거 그대로."



**



"야간당직 수고했어, 그리폰."

"어, 인간... 보고는..."

"아, 간밤에 이상상황 없었지? 없었으면 보고 생략하고 빨리 가서 쉬어. 비번이잖아?"

"대충대충하기는... 인간. 그러다간, 흐아암..."


근무교대를 설렁설렁 넘기려는 내게 한 소리 하려던 그리폰의 입이 별안간 사자처럼 쩌억 벌어졌다. 선홍색 입 위로 황급하게 손이 덮였다. 원래 독수리의 머리에 사자의 몸 아니었나? 라고 놀렸다가는 그녀를 한시라도 빨리 쉬게 하려던 내 계획이 어그러질 게 뻔해서, 나는 목구멍까지 치밀어올라온 말을 도로 밀어넣었다.


"잘 알아들었어. 근데 당직근무기록 검토 이미 다 했어. 그러니까 안심하고 들어가서 푹 자."

"흥. 그래도 옛날보단 일처리가 빠릿빠릿해졌네..."


칭찬인지 뭔지 모를 말을 투덜거리며 그리폰은 내 옆을 스쳐지나갔다. 밤새 깊게 가라앉은 그리폰의 달콤한 향기가 진하게 흘러들어왔고, 못내 아쉬워하는 나직한 혼잣말이 귀를 간지럽혔다.


"간만에 얼굴이나 좀 더 보다 가려고 했는데..."


나는 반사적으로 그리폰의 손을 움켜쥐었다.


"흐! 인간?"


그리폰의 몸이 반쯤 돌아가며 날 당혹스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나는 엄지로 보드라운 손등을 간지럽히듯 문지르며 말했다.


"...그리폰. 직접 말해주지 않으면 몰라."


입술을 비쭉이며 주저하던 그리폰은, 곧 결심이 섰는지 내 손을 꽉 쥐었다. 살짝 삼킨 숨과, 조금은 들뜬 말투.


"인간, 저녁에... 예정 있어?"

"...단 둘은 아닐 수도 있는데?"

"누, 누가 그런 거 한다고 했어?"

"...그럼, 아니야?"


그리폰의 홍조가 짙어졌다. 그렇게 그리폰은 몸을 홱 돌렸다. 레몬 색 머리칼 사이로 새빨간 귀가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내 손 안에 있던 조막만한 손가락이 스르르 빠져나갔다.


"...자러 갈 거야."

"밤에 대비해서 체력 비축해야 하니까?"

"시끄러워!"

"아이돌 복장 입어 줄 거지?"

"안 다물어? 나 아직 간다고 안 했거든?!"


함장실 바닥을 부서져라 쿵쿵 울리며 성큼성큼 걸어가던 그리폰의 아담한 몸은, 문을 앞에 두고 잠시 멈췄다. 깊은 들숨과 함께 그리폰의 어깨가 한껏 치켜올라갔고, 다시 긴 날숨과 함께 내려앉았다. 고개만 살짝 돌아간 그리폰의 옆얼굴이 날 쏘아보았다. 여전히 노기가 걷히지 않은 눈빛이었다.


"...그거 없어도 돼. ...오늘은."

"음, 좋은 정보 고마워."

"애초에 안 갈거니까 준비하지 말라는 뜻이었거든!"


쾅! 함장실의 바깥쪽 덧문이 신경질적으로 닫혔다.



**



회의가 예상치 못하게 길어져서 간부식당에 홀로 앉아 늦은 점심을 뱃속으로 넘기고 있는 내 앞에 식판 하나가 내려앉았다.


"흐흥~ 늦으셨네요? 하지만, 덕분에 최고로 귀여운 린티와 식사를 할 수 있다니! 오히려 행운이겠죠?"


하이톤의 발랄한 목소리와 함께 난입한 린트블룸은 으레 하는 멘트와 함께 자연스럽게 내 앞자리를 차지했다. 대단하구만, 다들 서로 견제하느라 눈치만 보고 있던데... 눈앞에서 절호의 기회를 놓친 리제가 들으라는 듯이 뿌득! 하고 이를 가는 소리를 내며 린티의 뒤를 지나갔고, 린티는 섬뜩한 그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흠칫 굳었다.


"어, 린티. 너도 점심이 꽤 늦었네? 무슨 일 있었어?"

"으음... 아, 그, 그냥 오늘은 특히 린티가 너~무 귀여워서 오전 감상시간이 길어졌거든요... 그렇게 되어서 방금 왔답니다?"


내가 말을 건네자 새파랗게 질렸던 린티의 얼굴에 다시 화색이 돌았다. ...그런데, 방금 왔다는 거 치고는 시저 샐러드의 숨이 조금 죽어있는데?


"자~ 오늘 최고조로 귀여운 린티를 만난 행운의 사령관님께 특별 서비스! 이렇게 귀여운 린티를, 무려 또 볼 찬스가 있다구요? 사령관님이... 저녁에... 시간만 있으시면..."


어딘가 시선을 피하면서 붉게 달아오르는 얼굴. 그러면서도 은근하게 슬쩍슬쩍 쳐다보는 눈빛과 서로 빙글빙글 꼬이는 두 검지손가락. 나는 강렬한 기시감을 느끼고 있었다.


"무, 물론 시간이 있으시겠죠?! 이 귀~여운 린티를 밀착감상 할 수 있는 기회인데, 시간은 없어도 내야죠!"


그래, 마치 오늘 아침의 슬레이프니르와 같은...


"오늘은 린티의 귀여움을 한 꺼풀 더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날이니ㄲ..."

"노콘으로 해달라고?"

"붓...!"


내 식판 위로 전혀 귀엽지 않은 얼굴을 한 린티의 빈말로도 귀엽다고 해주기 힘든 타액이 온통 튀었다. 린티의 린티맛 시즈닝이 내 점심식사 위로 끼얹어지는 광경은, 식당 안 모든 사람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나는 사레가 들려서 콜록거리다가 급하게 물을 들이키는 린티를 서글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침 범벅으로 엉망이 된 내 밥을 내려다보았다.


에이, 드럽네. 내 쏘야볶음...



**



점심시간이 끝나고 처리하는 업무는 항상 고역이다. 노곤함이 밀려들어와서 활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부른 배는 정신을 늘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닥터가 올린 「자극응답성 콜로이드를 활용한 금속구조체의 광특성 조절과 그를 이용한 FAN파 차폐 대책」이라는 끔찍한 제목의 논문을 첫 문장만 다섯 번째 되읽고 있던 나는 밀어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Figure 위주로 조금 훑어보고 그냥 실험실 찾아가서 직접 요약해주는 거 들어야지... 그렇게 미래의 자신에게 떠넘기고 한 잔의 커피를 찾아 나섰다.


똑똑.


노크 소리를 들은 내 몸이 우뚝 멈췄다. 함장실 문은 무작정 노크한다고 열어주는 게 아니라, 호출 버튼을 누르면 내가 신원을 확인하고 들여보내주는 방식일 텐데도 가끔씩 그걸 망각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내가 문 앞에 다가서서 패널을 조작하자, 슬라이드 도어가 스르르 밀려나며 기체가 빠지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도도도도 황급하게 멀어지는 뜀박질 소리가 났다.


"뭐지?"


비밀번호가 걸린 두 번째 도어락을 해제하고 문을 밀어젖히며 나는 작은 의문을 표했다. 또 애들이 장난치고 도망가는 건가? 리리스에게 걸리고 호되게 혼난 적이 있으니 감히 그럴 수 없을 텐데...


그런 내 눈에, 코너를 돌며 사라지는 금발의 끄트머리가 언뜻 보인 것만 같았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작은 쪽지를 주워 들었다. 반듯하고 예쁜 글씨였다.


사령관, 오늘 밤에 시간 있어? 저번에 빌려준 책 말인데... 오늘 꼭 돌려주러 오면 좋겠어. 재밌었던 장면 같이 재독하면서 감상 나누자.


P.S. 책갈피는 끼우지 말자. 행간에 담긴 의미를 곡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르페이아가 추천해 준 책 치고는 꽤나 표현이 노골적이면서도 성적인 묘사가 많이 들어가 있던데, 다 이걸 위한 발판이었나?


나름대로 치밀하게 계획했을 하르페이아의 노력이 가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어설픔이 묻어나왔다. 수수께끼처럼 위장해 직설적이지 않은 척 하면서도 꽤 직설적인 저 추신과,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이름도 안 써놓고... 내가 다른 아이랑 착각했으면 어쩔 뻔 했어?"


물론, 내가 착각할 리는 없었다.


그래도 그런 점도 귀여우니까 넘어가주도록 하자고 나는 쪽지를 주워 넣으며 생각했다.



**



"사령관님, 주간 초계 임무 보고서랑 방공망 제압 훈련 예정 타임라인입니다."

"어, 그래. 고마워. 거기 두고 가."

"...네."


나는 태블릿에서 눈을 떼지 않고 턱짓으로 책상 구석을 가리켰다. 초점 밖이라 흐릿한 인영이 가깝게 다가왔고, 이어서 서류철이 폭 하고 책상을 내리누르며 일으킨 바람이 내 콧등을 간지럽혔다. 순간 집중력이 흐트러진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흐레스벨그를 쳐다보았다. 업무에 온 신경을 쏟느라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였다.


"아, 죄송합니다."

"어... 아니야."


나는 한 손을 들어 흐레스벨그를 안심시키며 콧등을 주물러 풀었다. 몇 시지? 이제 4시쯤 된 거 같았다. 리프레시할 시간이긴 했다.


"흐레스벨그."

"네, 넷?"

"바쁜 일 없으면, 차 들고 갈래?"


흐레스벨그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흥미를 보였다. 마침 오늘의 내겐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있었다. 같이 지내는 동료들이 관련된 주제니까, 그녀도 분명히 관심을 보이겠지. ...주인공들과 가까운 흐레스벨그가 아니면 꺼내기 어려운 화제이기도 하고.


잔잔한 미소와 함께 청량한 목소리로 흐레스벨그는 답했다. 본인은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목소리 톤이 방금 전보다 올라가 있었다.


"음... 괜찮겠죠. 마침 저도 사령관님께 말씀드릴 게 있구요."


어... 설마?


"그... 제가 저번에 UOU 학원을 거점으로 삼았을 때 주변을 탐색하다가 찾은 게 있는데..."


이건, 뭔가...


"역시, 매지컬 모모의 본고장인 나라답게 소실된 줄로만 알았던 외전이 잘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뭔가, 또 익숙한...


"제 동료들은 아무도 같이 봐주지 않아서... 저야 이미 그날 이후로 17회차까지 달렸지만, 괜찮으시다면 사령관님도 이 기념비적인 18회차를 같이 감상하시지 않으시겠어요?"


너네들 설마...


"...과자랑 음료는 다 제가 준비해 놓을테니... 사령관님은 아무것도 없이 '맨몸'만 오셔도..."

"짰냐?"

"네?"

"아... 아니야. 아님 말고."



**



"블랙 하운드."

"네, 사령관님?"

"혹시 나한테 할 말 없니?"

"...네?"


계속 당하고만 있자니 답답해서 선수칠 겸 한번 떠봤는데, 블랙 하운드의 어리둥절한 얼굴만이 돌아왔다. 알맞게도 우연히 마주친 복도에는 블랙 하운드와 나뿐이었다. 집게손가락을 턱에 대고 눈동자만 대각선 위를 응시하며 곰곰이 생각에 빠져있던 블랙 하운드는, 이내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배시시 웃었다.


"아, 있었는데... 그냥 다음에요."

"응, 뭔데?"

"...오늘, 전대장이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서 신경도 안 쓰던 와이셔츠를 급하게 다리더라구요... 오랫동안 안 하던 마스크팩도 빌려갔구요."


블랙 하운드는 묘하게 떳떳지 못한 말투로 기어들어가듯 말했다. 씁쓸한 미소가 입가에 걸린 채였다.


"사실 저도... 오늘이 딱 좋을 것 같아서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사령관님은 바쁘신 분이니까요... 제 사정에만 맞출 순 없겠죠. 리더도 그렇고요."


나는 블랙 하운드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내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블랙 하운드는 풀 죽어 숙였던 머리를 슬쩍 들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너는 어쩌고 싶어?"

"..."

"오늘은... 싫어? 단 둘이 아니라서?"

"...아니요... 그렇지만..."

"그렇지만?"


푸른 눈동자에 설핏 죄책감이 스쳤다. 하지만, 이내 기쁘게 반짝였다. 블랙 하운드는 와락 달려들어 내 몸을 꼭 껴안아왔다.


"...변명은... 사령관님이 생각해주셔야 해요?"

"애초에 내가 먼저 권유한 걸."

"헤헤... 정말 좋아요."


너 말고도 끼어든 애들이 넷은 더 있다고 알려주면 블랙 하운드의 떨떠름한 마음에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까 생각했지만, 분위기를 망칠 것 같아서 그만두기로 했다.


한껏 내 냄새와 온기를 만끽하던 블랙 하운드는 슬슬 인기척이 느껴지자 떨어졌다. 그리고 내게 작별의 인사로 환히 웃어주고는 복도 저편으로 사라져가려는 차였다.


"블랙 하운드!"

"네?"

"왜 오늘이 딱 좋은 거야?"

"..."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블랙 하운드는, 어물어물거리다가 내게 힘차게 경례를 붙이는 브라우니의 눈치를 보고는 작게 손짓했다. 나는 블랙 하운드의 손을 따라 귓속말이 닿기 좋도록 윗몸을 조금 숙여주었다.


블랙 하운드의 머리카락이 내 볼을 간지럽히고, 짙은 블루베리의 향기가 물씬 풍겨왔다.


"오늘은... 생으로... 하셔도... 괜찮은 날이니까요..."


만족스럽도록 조곤조곤한 울림을 남기고 블랙 하운드는 잰걸음으로 도망치듯 사라져갔다.



**



대망의 8시.


솔직히 말하자면, 여기까지 오면 오히려 안 짰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부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정말 모르는 것처럼 내게 수줍어하면서 권유해오는 스카이나이츠 애들을 보니 지금까지도 긴가민가했다. 진짜로 흐레스벨그와 블랙 하운드가 모르는 티를 그렇게까지 내는 게 연기였을까? 이 문을 열면 모두가 환하게 웃으며 서프라이즈를 외치는 걸까? 아직까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알 수 있었다. 서로 눈도 못 마주치고 어색해하는 몸짓, 혼란스럽게 오고가는 시선, 불편한 분위기와 기색들...


얘네, 진짜로 안 짰구나.


같이 부대끼고 지내면서 볼 꼴 못 볼 꼴 다 보고, 더 나아가서 평소에 절대 보여주지 않을 얼굴이나 성적 기호까지 다 터놓게 되었을 애들이 이러는 것도 꽤 진풍경이었다.


그래도 얼마만에 이렇게 7명이서 모이는 건데 계속 이렇게 침울하게 있기는 아쉬웠다. 한 명은 자리에 없지만... 나는 무거운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환기시키기 위해 가볍게 농담을 던졌다.


"이럴 거면... 그냥 생활관으로 나 부르지 그랬어?"

""""""...""""""


자기들 나름대로 충격이 컸는지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한가운데에서 덜덜거리던 흐레스벨그가 힘겹게 먼저 입을 뗐다.


"불찰이었습니다..."

"뭐가?"

"...저희들, 같은 숙소에서 같이 살다 보니까... 식습관이랑 수면 사이클 같은 것도 비슷해지고... 생활리듬까지 맞춰져서..."

"아."


마무리는 하르페이아의 몫이었다.


"...주기도 똑같아졌다고?"


하르페이아의 입을 빌려 이 한 편의 시트콤 같은 6중 추돌 사건의 전말이 밝혀졌다.


"와우."


모두가 낭패감과 수치심에 얼굴을 감싸쥐고 있는 와중에도, 나는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 꼴리네.


"아예 뮤즈도 부를까?"

"인간, 닥쳐..."

"네..."


결국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