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저번에도 말했지만 나는 바이오로이드들의 대빵이 될 생각이 요만큼도 없었어. 


저항군의 사령관? 내 이름은 존 코너가 아니에요 시발. 


믿거나 말거나 난 한군두를 해본 사람이야. 


썅 한군세가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최후의 인간이자 인간의 마지막 희망? 


나 같이 비뚤어진 놈이 최후의 인간인 시점에서 이미 인간의 종족은 끝난거야. 장사 끝났다고! 


하지만 내가 누구야? 비록 딥 다크하지만 슈퍼 히어로의 감성을 가지고 있잖아? 


결국 내 도움을 청하는 저 어린 양들을 어떻게 거절하겠어... 그래서 yes라고 했지.


시발 갈곳이 없어서 하기로 한거 아니라고! 


그렇게 나 데드풀은 존 코너가 되어 버렸어. 


아 물론 이 말도 안될정도로 부담되고 책임이 따르는 직책을 공짜로 맡은건 아니야. 


내가 말이야... 다른건 다 그렇다 치더라도 이 빌어먹을 유사 군생활은 절대로 다시 못해먹겠거든? 


다시 말했듯이 한군세는 내 사전에 없어. 네버! 


그래서 이 으리으리한 잠수함 왕국의 왕인 내가 하는 일은... 없어ㅋㅋㅋㅋㅋㅋㅋ


내 옆에 있는 이 중2병 제대로 걸린 꼬맹이한테 앵벌이를 시키... 아니 놀아주는거 외엔 말이야. 


어? 우좌야 이로치 피카츄를 잡아왔다고? 잘했는데 특기가 잘못됐다. 다시 잡아와. 


물론 애엄마는 따로 있지만 이 꼬마를 보면 자꾸 나를 보는거 같아서 외면할 수가 없더라.


저 오글거리고 철지난 진조 컨셉을 보면 거울을 보는거 같거든. 


그래도 쟨 컨셉에 잡아먹힌 수준은 아니니까 나처럼 글러먹진 않았지. 











저는 21스쿼드의 콘스탄챠S2, 주인님의 하우스 키퍼이자 전속 비서입니다. 


주인님이 저희 저항군에 합류하신지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주인님과 만났던 그 때 그 날... 저는 절대로 잊을 수 없습니다. 


저에게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주인님이 생긴 날이었으니까요. 


저 콘스탄챠는 오직 주인님께 봉사하기만을 위해 만들어진 메이드


주인님 덕분에 텅 비었던 제 삶은 드디어 그 목적을 찾았죠. 


라비아타 언니는 저에게 인간 주인님이 살아 계셨을때 얻었던 행복함을


항상 말해줬고 저는 언니의 말을 들으며 제 나름 꿈을 키워나갔죠.


제 마음속에 항상 그려온 젠틀하고 댄디한 주인님과 함께하는 소박한 꿈이었죠. 


주인님의 방을 청소하고, 그분의 옷을 세탁하고, 그 분의 식사를 챙겨드리며 


그분의 잠자리를 챙겨드리는, 제 본분을 다하면서도 주인님과 함께하는 행복을 누리는 그런 삶이었죠. 


그리고 그 속에서 생기는 주인과 메이드 간의 금단의 애틋한 사랑까지 후훗... 


하지만 물론 현실은 그렇게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법이랍니다. 


저기 앞에 누워계신 댄디하지 않은 빨간색 주인님은 모든 서류 작업을 저한테 맡기셨죠...


전속 비서라는 거창한 명함과 함께 말이에요. 


그만큼 일개 메이드인 저를 신용하시고 계신다는 증거겠죠? 


지금 제 옆에서 열심히 방을 치우고 있는 사랑스런 동생 바닐라는 


자기 편하게 살려고 저한테 모든 업무를 짬때리는거라고, 정신차리라 그러지만


상냥하신 주인님이 설마 그러실리가 있나요 후훗.


근데 이게 시간이 지나니까 저는 이렇게 눈앞이 침침하고 머릿결이 푸석해질정도로 일하는데


주인님은 저 소파에 대자로 들어누워서 게임만 하는 모습을 보면 솔직히 좀 꼴받더라고요...


어머 세상에 콘스탄챠! 정신차려! 주인님이 너를 그만큼 믿고 계신건데 


이런 불경한 생각을 하다니 나쁜 콘스탄챠! 나쁜 콘스탄챠! 


덕분에 저는 제가 꿈꿔온 메이드의 삶이 아닌 바이오 타자기...으흠 으흠!!! 


전속 비서의 삶을 살게 되었죠. 











포츈 기술관님의 오르카 호 기지시설 현황 보고서까지 요약해서 주말 보고서에 기입한 저는 


결제서류를 방금 바닐라가 치워서 깨끗해진 주인님의 탁자에 내려놨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서류결제 만큼은 꼭 주인님이 하셔야 하는 것이 이곳 오르카 호의 철칙. 


주인님은 제 서류엔 눈길조차 주지않고 시선을 만화책에서 떼지 않은채


모모양의 얼굴이 그려진 참 잘했어요 도장을 무성의하게 찍어 주셨어요. 


주인님은 이 서류에 무슨 내용이 써있는지는 아시긴 할까요...


"잘했어 예쁜이."


그래도 주인님의 칭찬을 들으니 서운한 감정이 사르르 녹았어요. 


주인님은 탁자 밑에 놓인 밀크 쉐이크를 집어 드시더니 


마스크의 밑부분을 아주 슬쩍 올린 다음 쪼옥 내용물을 빨아드셨어요. 


제가 주인님을 보면서 가장 신기했던건, 주인님 특유의 LRL 같은 말버릇도, 빨간색 쫄쫄이도 아닌 저 마스크였어요. 


주인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저 마스크만큼은 절대로 벗지 않으셨어요. 


식사를 하실때도 벗지 않으셨고, 주무실때도 벗지 않으셨고, 심지어 식사할때도 벗지 않으셨어요. 


한 번은 바닐라가 빨래를 해야한다면서 주인님의 마스크를 벗기려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저희는 주인님이 정색하는걸 처음 봤어요. 


그 후로 저희는 더 이상 마스크에 관심 가지지 않기로 했고... 이윽고 이 오르카 호의 불문율이 되었죠.


아! 주인님이 밀크 쉐이크를 던지셨는데 쓰레기 통이 아니라 옆에 있던 바닐라의 머리에 명중해버렸네요! 


"오~ 쏘리~"


주인님... 그런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는 사과는 오히려 역효과를 부릅니다... 


바닐라의 저 눈빛은... 맙소사 스위치가 켜진 모양이에요. 


제가 전속비서로 빠지자 하우스 키퍼는 사실상 바닐라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멸망 전 세계에는 저희 말고도 다양한 배틀 메이드 자매들이 존재했다 그럽니다만...


라비아타 언니도 안 계신 지금 오르카 호에 메이드는 저와 바닐라 단 둘 뿐입니다. 


둘이서 해야할 일은 혼자서 해야하다 보니까 그만큼 바닐라도 예민해졌죠. 


주인님 앞에 바닐라가 성큼 다가가자, 불쌍한 LRL이 얼른 옆으로 비켰네요. 


바닐라는 들고 있던 먼지떨이를 높이 들더니, 주인님을 사정없이 내려치기 시작했어요. 


"아야! 미안하다고 했잖아!"


"당신 같은 완전 폐품 개백수에겐 더 이상 매도조차 통하지 않는다는걸 깨달았습니다!


일부러 그런거 제가 모를줄 압니까?? 방해라도 하지 말던가 이게 대체 몇 번째입니다!!"


"다섯번째... 아야!!!"


아이고... 오히려 바닐라를 더 화나게 만든거 같습니다.


바닐라의 구타는 더 거세졌지만... 저는 말리지 않고 지켜봤습니다. 


이게 오늘로써 5번째 다툼인가요? 어제도 오늘만큼 싸웠을거고 그저께도 그랬을겁니다. 


처음 며칠은 제가 얼른 끼어들어 말렸지만... 이제는 더 이상 소용 없다는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주인님은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시는거 같구요. 


주인님... 설마 취향이 그쪽이셨나?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제풀에 지친 바닐라는 씩씩 거리면서 다시 방을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LRL도 이미 익숙해져서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주인님 옆으로 돌아왔네요. 


그나저나 바닐라... 벌써 주인님과 이렇게 가깝게 지내다니... 제 동생의 행동력이 부러울때가 있어요.  


하지만 옛날엔 이런 우리 바닐라의 성향을 좋아하지 않던 인간님들이 많으셨고, 


그래서 많은 바닐라 모델들이 버림받았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렇기에, 저는 지금의 주인님에 만족하며 좋아합니다. 


비록 제가 꿈꿔온 백마탄 왕자님과는 많이 다르지만, 우리 바닐라의 난폭한 투정도 받아주실 정도로 상냥하시니까요. 








아 시발 심심해...


저 욕데레랑 같이 노는 것도 끝나니까 참을 수 없는 무료함이 내 몸을 엄습했다. 


만화책 보는 것도 질렸고 포켓몬도 질렸다... 


너무 심심했던 나는 콘스탄챠가 가져온 서류를 힐끗 봤지만 얼른 눈을 돌렸다. 


글자라는 것을 보니까 갑자기 머리가 골이 땡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텅 빈 염병할 잠수함은 도저히 사람이 즐길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할 수 없지... 포츈이나 놀리러 가볼까하고 몸을 일으켰을때, 옆에 있는 무전기에서 신호가 들어왔다. 


"여기는 레프리콘 755! 불굴의 마리 장군님을 찾았습니다만... 철충에 포위되서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후의 무전 내용은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스트레칭을 쭉 하면서 내 늘어진 근육에 데프콘을 발령했다. 


여기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날백수로 사는게 내 모토지만... 


나는 데드풀이다. 


그리고 데드풀은 파티를 절대로 놓치지 않지. 







내일 백신을 맞으러 가서 내일도 올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