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설정과 다를 수 있음

*단 맛 단편

*그 외 그동안 쓴 문학 총 정리


--------------------------------------------


풍족한 먹을 것, 새로 받은 옷. LRL의 일상에 큰 변화가 찾아온 것은 불과 몇 년 전.

마지막 인간에게 발견되어 구조 받고 지금은 오르카라고 이름 붙은 잠수함에서

수많은 친구들과 함께하는 이 생활이 그녀의 가장 큰 변화일 것이다.


"하하핫! 권속이여! 오늘도 짐에게 책을 읽어주는 영광을 내리겠노라!"


"이거 영광입니다. 진조의 공주시여, 부디 제 무릎에."


그녀를 발견한 인간은 그녀를 아끼고 사랑해 주었다. 사실 그녀는 홀로 지내온 100년의 

세월보다 더욱 무서운 것이 있었다. 


그것은 홀로 남겨지는 것. 사랑하는 친구들과 다시는 만날 수 없고, 그녀를 아껴주는

수많은 동료들과 헤어지는 것. 그리고 그녀를 아끼고 보살펴주는 이 인간과 헤어지는 것이다.


"권속! 먹을 것은 없느냐?"


"응, 잠시만.."


능숙한 손길로 참치와 과자를 꺼내 LRL의 손에 쥐어주는 인간. 그는 LRL을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읽어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런 행복한 일상이 계속되는 한

LRL이 다시는 공포에 시달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헉..!"


또 그 꿈이다. 최근 들어 LRL이 자주 꾸는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꿈. 또래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고, 자신을 아껴주는 이들에게 사랑 받으며 보살핌을 받는 소소한 일상.

그 꿈에 LRL의 눈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아... 괜찮으니라.. 짐은.. 짐은 괜찮으니라.."


행복했던 일상이 꿈이었다니. 하지만 LRL은 자신의 곰 인형을 꼭 끌어안으며 중얼거렸다.

시무룩해져 고개를 숙인 LRL의 시선에 낡아 빠진 구멍 난 양말이 눈에 들어왔다.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바깥에 큰 일이 생겨서 그런 거겠지.."


바깥 세상에 떨어진 정체 불명의 괴물들, 그 괴물들이 나타나고 난 다음부터 LRL이 있는

등대로 보급선이 오지 않았다. 아무리 어리다 하지만 그녀도 눈치가 있었다.


"짐은... 포기한 것이겠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인간들은 바이오로이드를 소모품 정도로만 생각했다.

애초에 그녀의 작은 체구는 최소한의 보급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위해 설계된 것.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적은 비용으로 오래 버티라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그래도... 이제는 정말 큰일인데..."


끝없이 쌓여있던 식량 창고가 드디어 바닥을 보였다. 홀로 방치된 기간을 세보는 것은

오래전에 그만 두었다. 족히 100년 정도 지났다는 것 외에는 기억하지 못했다.


"역시.. 밖에 나가야 하는 것이더냐.."


등대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장소에 외부 창고가 있다. 그곳이라면 아직 식량이

많이 남았을 것이지만 문제가 있었다.


"밖에는 괴물들이 많은데... 무서워..."


LRL은 전투 모듈이 없는 평범한 등대지기 바이오로이드. 전투 모듈도 없었고 하물며

신체 능력은 인간 어린이와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그 괴물들과 마주치면 꼼짝 없이

죽어야 하는 것이다.


"윽..! 비, 비웃지 말거라! 짐은 진조의 프린세스! 그런 괴물은 두렵지 않노라!"


LRL이 곰 인형을 향해 기합을 넣듯 말했다. 홀로 동떨어진 곳에서 쓸쓸하지 않을까

아주 먼 옛날 이 곳에 그녀를 데려다 준 인간이 쥐어 준 인형. 지금은 너무 소중한

동료가 되어 그녀의 외로움을 덜어주는 친구가 되었다.


"거, 걱정 말거라.. 지, 짐이 너 하나도 못 지키겠느냐?"


LRL이 곰 인형을 한쪽에 조심스레 내려놓고 벽에 걸려있는 소방 도끼를 향해 손을 뻗었다.

키가 작아 닿지 않았기에 책들을 여러 겹 쌓아 놓고 발판으로 삼아 올라가야 했다.


"이제부터 이것을 '드래곤 슬레이어'라고 부르겠노라!"


LRL이 도끼를 품에 끌어 안으며 말했다. 딱 보아도 도끼는 그녀의 체구에 비해 너무 길었다.

무엇보다 무게가 묵직해서 힘이 약한 그녀는 이것을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할 것이 뻔했다.


"으.. 여, 역시 조금 무겁노라..."


하지만 이것이라도 없으면 저항조차 못해보고 죽을 것이다. LRL은 도끼를 품에 끌어안고

곰 인형을 등에 등에 업듯이 묶어 고정했다.


"지, 짐만 믿거라.. 그럼 가자.."




"오오... 생각보다 멋지다..."


아주 긴 세월을 등대에만 박혀 지내다가 나온 LRL은 다시 우거진 자연의 경관에 넋을 잃었다.

식량 창고로 향하며 숲이 우거진 길을 걷자 그녀의 마음이 치유되는 듯 느껴졌다.


"어디 보자... 좋아, 많이 녹슬었구나. 이 정도라면 짐이 해결할 수 있노라."


LRL이 심하게 녹슨 자물쇠를 바라보며 도끼를 들어 올렸다. 고요한 숲 속에 강하게

울려 퍼지는 금속과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LRL은 손에 강한 충격이 느껴져 포기하고 싶었지만

이 창고를 열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었기에 이를 악물었다.


"으으..! 역시 힘들어.. 그래도 해내야 해..!"


결국 자물쇠가 파손되고 LRL이 창고에 들어갔다. 잔뜩 먼지가 쌓여 숨이 턱 막힐 정도였지만

서둘러서 옆에 있는 포대를 챙겨 최대한 많은 식량을 챙기기 시작했다.


"끄응..! 무, 무거워!"


하지만 그녀의 약한 힘으로는 너무 많은 식량을 들고 갈 수 없었다. 결국 적당한 양을 덜어내

포기하고 스스로 들 수 있을 정도의 식량을 챙겨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하아... 하아... 벌써 어두워 졌노라..."


창고의 문을 개방할 때 시간을 많이 잡아먹은 것이 화근 이었다. 최근 부쩍 짧아진 해는

벌써 달에게 그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콰앙-!


"꺄아악!"


갑자기 어두운 숲 속에서 섬광이 날아오고 LRL의 뒤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놀란 LRL이

고개를 돌려 확인하자 괴상한 무장을 탑제한 괴물이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도, 도망가자..!"


LRL은 식량 주머니를 포기하고 근처에 널부러진 곰 인형을 집어 든 채 필사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괴물은 LRL을 향해 계속해서 총탄을 쏘아 대고 있었다.


"다, 다 왔다..!!"


LRL이 등대에 들어와 문을 걸어 잠그고 필사적으로 도끼와 나무 막대기를 이용해

등대의 문을 틀어 막았다.


"헉...! 허억..!"


LRL의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온 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하마터면 죽을뻔 했지만

결국 살아남았다.


"그래도... 이젠 정말 큰일이야..."


도망쳐오는 길에 식량을 포기했다. 그 덕분에 살았지만 이젠 꼼짝 없이 굶어 죽을 위기에 빠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되어준 곰 인형이 크게 훼손되었다.


"미안하노라... 짐이 미안해..."


LRL은 곰 인형을 품에 끌어안고 구석에 움츠려 앉아 울기 시작했다. 아까 전 폭발에 휘말릴 때는

몰랐지만 곰 인형의 머리가 크게 뜯어져 버렸다. 지키겠다 약속했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다.


"흑... 흐윽!"


쾅! 


"히끅..!"


콰앙!


그녀가 울고 있을 때 아까 전 그 괴물이 따라온 모양이었다. 그 괴물은 강철로 된 문을 강하게 두드리며

그녀를 찾고 있었다. LRL의 머릿속이 패닉에 잠겨버렸다.


"어, 어쩌면 좋지... 흑..! 무서워! 너무 무서워... 히끅! 흑!"


아무리 오랜 시간을 살아와도 그녀는 근본적으로 어린 아이였다. 극한의 상황을 받아들이기에

그녀는 너무 어렸다. 죽음의 공포, 소중한 친구를 잃었다는 무력감. 모든 것들이 그녀를 괴롭혔다.


"미안하노라... 짐이 미안하노라..."


투투투투! 콰앙!


"히익!"


바깥에서 총 소리와 함께 폭음이 들리고 등대가 무너질 듯 흔들렸다. 그 충격에 천장에서

먼지가 우수수 떨어지고 LRL은 곰 인형을 온 몸으로 덮으며 감싸 안았다.


"이, 이번에는 꼭 짐이 지켜 주겠노라!"


하지만 바깥의 소음과 진동이 끝나고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어이! 안에 살아있어? 아직 생체 신호가 감지되는데 우리도 바이오로이드 거든?

살아있으면 문 열어! 인간이 어떻게 해서든 너를 구하라고 했다고!"


성질이 날카로울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오고 LRL은 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나

조심스럽게 문을 살며시 열었다.


"누, 누구..."


"뭐야? 살아 있었으면서 왜 그렇게 늦게 문을 연 거야? 아무튼 인사해.

마지막 인간이야. 우리들의 주인이고 이 인간이 너를 구하라고 했어."


LRL의 눈 앞에 있는 단발의 금발 머리를 지닌 바이오로이드가 살며시 자리를 비켜서며

어느 인간 남자를 소개했다. 


'아, 나는 구원 받은 것인가?'


"만나서 반가워. 너 이름이 뭐니?"


인간이 손을 내밀며 LRL에게 인사를 건넸다. LRL은 구해졌다는 기쁨과 드디어 다른

동료들이 생겼다는 기쁨에 눈물을 흘리며 홀로 긴 시간 동안 연습해온 인사를 건넸다.


"나.. 나는.. 지,진조의.. 히끅! 프린세스.. 나는.. 깊은 심연에서.. 흑! 어둠의 어비스에서

태어난 자.. 흐윽! 흑! 태고의 깊은 어둠 속에서.. 고독과 싸우며... 그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LRL의 눈물 섞인 우스꽝스러운 인사에 인간은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살포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크크큭! 진조의 프린세스시여! 당신의 권속이 드디어 주군을 뵙나이다!"


홀로 긴 세월을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살아온 LRL에게

드디어 그녀를 사랑하고 아껴줄 동료들이 생겼다.


꿈 속에서 그리던, 따스한 동료들과 친구들이 LRL의 곁에 다가왔다.


 --------------------------------------------


지독한 악몽도 언제나 그 끝이 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