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마츠시타는 창밖의 낯익은 풍경을 바라보았다. 사이타마시의 광경은 이전에 방문했을 때와 큰 차이는 없었다. 바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고작 몇주전의 일이었다. 바뀐 것이라고는 지하철내의 풍경 뿐이었다. 몇개의 광고판이 바뀌었다. 그것도 그래봐야 열차마다 있을 차이에 불과할 것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알지 못했을 상품에 관한 광고도 몇개 붙어있었다. 특히 토모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최신형 휴대전화의 홍보 광고라든가 말이다. 며칠전에 공개된 최신 모델이었다. 그 당시에 이 사실을 알았다면 가진 전 재산을 이 회사의 주식을 사는데 쓰는게 옳았겠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마츠시타가 알았지만 광고는 전혀 하지 않고 있던 행사의 광고 역시 붙어있었다. 붉은 아레나. 덴세츠 사이언스의 야심이 가득찬 이벤트의 광고였다. 얼마나 야심으로 가득찼으면 이 행사를 위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단 말인가.

 그리고 열차의 안, 이른 아침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열차를 가득메우고 있었다. 아침이면 당연히 열차 안은 사람으로 붐비는게 맞지 않냐고 할 수도 있다. 이른 아침의 정확한 시간에 따라 다른 이야기겠지. 현재 시간은 아침 6시 40분이었다. 러시아워가 오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이 시간부터 사람들로 붐빌줄 몰랐던 마츠시타와 토모는 앉을 생각도 못한채 열차문의 옆에 서서 억지로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볼 수 있었다. 토모의 경우에는 휴대전화 광고가 바로 그것이었다.

 마츠시타는 이 많은 인파가 어디로 향하는지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들중 상당수가 덴세츠 사이언스의 드라마와 영화에서 레퍼런스를 따왔다는 설명도 굳이 필요 없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물건들 중에는 응원봉도 상당히 많다는 것, 그리고 각 캐릭터마다 상징한느 응원봉의 색상이 있다는 것으로 무언가를 나타낼 필요도 없었다.

 확실한 것은 이 인파는 마츠시타와 같은 장소로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인즉슨 아쉽게도 마츠시타와 토모는 사람들이 빠져 텅 빈 열차에서 자리를 마음껏 골라앉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음은 사이타마신토신. 사이타마신토신. 내리시는 곳은 오른쪽입니다.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었다. 이 좁은 열차에서 내려 넓은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었다. 답답한 곳에서 멍하니 바깥풍경을 바라보고만 있을 일도 없겠지.

 라고 생각한 것은 마츠시타의 오산이었다. 바깥이라고 다른 것은 없었다. 역에서 나온 마츠시타가 발견한 것은 길게 늘어진 줄이었다. 그리고 그 줄 주위를 가득 메운 다른 사람들이었다. 마츠시타는 지난번 이 자리에 와 본 것을 떠올렸다. 그 쓸쓸한 실패한 지역발전정책의 산물과 같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거리에는 생기가 넘쳐나다못해 땀이라는 형태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은 이 더운 아침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줄에서 기다리거나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기도 하고 사진에 찍히기 위해 돌아다니는 코스프레 모델도 있었다.

 “이런 광경은 예상도 못했는데.”

 마츠시타는 이런 곳에 온 경험이 없었다. 그녀는 단순한 야구경기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해 표를 사고 그 옆의 매점에서 값비싼 팝콘과 콜라를 돈이 많이 아깝지만 경기에 온 기념으로 산다는 생각으로 사서 경기장에 들어가 마음껏 경기를 즐기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 닥칠 것이라고 마츠시타는 상상도 못했다. 그녀는 일단은 매표소로 가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선 사람들로 가득찬 거리를 걸어가야 했다. 이래서야 걸어야 한다는 점과 에어컨이 없다는 것을 빼고는 열차안과 다를 것이 없었다. 오히려 조금은 더 시원한 곳에서 가만히 서있으면 되는 열차에 있는 것이 나을 것이었다.

 “마츠시타, 이럴 거면 표를 예매하는게 낫지 않았을까? 설마 이 사람들이 다 표를 사려고 대기하는 줄이야?”

 토모의 말이었다. 그녀의 말에 마츠시타는 주위를 둘러보며 대답했다.

 “설마. 저기 뒤에 보이잖아. 입장대기줄 최후미라는 팻말. 이건 표를 예매하거나 표를 가진 람들이 입장하려고 대기하는 줄이야. 아직 경기는 몇시간 남았고 입장시작을 안해서 그렇지 입장을 시작하면 금방 들어갈 거야.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이 사람들은 다 자리에 들어가야 하니까.”

 “그래도 예매를 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예매는 무슨. 이렇게 이른 시간에 온 이유가 뭔데. 일찍 와서 현장에서 표를 구매하고 주위를 둘러보기 위해서잖아. 만일 예매를 했다면 입장시간에 맞춰서 왔겠고 그러면 이보다 더 사람이 많을 시간에 도착할 거잖아. 그럴 바에는 일찍 와서 현장구매를 하는게 낫겠지.”

 마츠시타는 나름 논리적인 말을 하며 사람들을 헤집고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로 향했다. 그곳으로 가는 사이, 토모는 누군가가 자신을 보는 듯한 시선을 느꼈다.

 “마츠시타, 누가 우리를 보고 있어. 덴세츠 사이언스일지도.”

 토모는 불길한 예감을 귓속말로 마츠시타에게 말했다.

 “설마. 그냥 이곳에 온 바이오로이드를 보는 거야. 아니면 바이오로이드 코스프레를 한 미녀를. 게다가 이 인파야. 그건 단순한 편집증이야. 자연스럽게 행동해. 우리는 그저 이곳에 경기를 보러온 평범한 두 사람이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보여야지. 너무 경계할 필요 없을 거야. 최소한 바깥에서는 말야.”

 마츠시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남자가 마츠시타와 토모 앞에 튀어나왔다. 가벼운 밝은색상의 체크무늬 남방을 입은 남자는 목에 카메라를 걸고 있었다. 딱 봐도 고가의 카메라였다. 마츠시타가 가지고 싶을 정도의 모델이었으니까.

 “죄송한데 저거 히나 코스프레죠? 사진 찍을 수 있을까요? 고퀄리티네요! 진짜 TV에서 봤던 히나의 모습 그대로에요!”

 남자가 카메라를 들어올리려 하자 마츠시타는 손으로 남자의 카메라 렌즈를 가리며 말했다.

 “그냥 경기를 보러 온 거에요. 그냥 닮았을 뿐이지 히나 코스프레가 아니에요. 사진은 찍지 말아주세요!”

 어째서 사람들마다 토모를 보고 히나라 착각하는 것일까. ‘히나아님’이라는 팻말이라도 토모에게 들려야 하는 것인가. 토모는 자위대에서 운용중인 육전형 바이오로이드가 아니었다. 우연히 같은 얼굴 모델이라도 쓴 것이겠지. 마츠시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설명을 수도 없이 많이 해야 할 것이었다.

 “저거봐! 히나 코스프레야!”

 다른 곳에서 토모를 보고 들려온 소리에 마츠시타는 한숨을 쉬었다. 오늘 하루종일은 이 이야기를 하다 끝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그렇게 걸어가던 마츠시타의 눈에 방송국에서 온 듯, 촬영하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츠시타는 본능적으로 그들과 거리를 두고 걸어가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토모는 블랙리버에게 쫓기고 있었다. TV에 자신이 토모를 데리고 있다는 것이 노출되어 좋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츠시타는 애써 먼길을 돌아 취재진과 거리를 두려 했다. 그때 달려나간 것은 토모였다.

 “마츠시타! 저거봐! 쿠노이치야! 진짜 쿠노이치 제로와 카엔을 데리고 있는 사람이 있어! 코스프레가 아니라 진짜라고!”

 토모는 한 바이오로이드를 보더니 반사적으로 달려갔다.

 “토모, 기다려! 쿠노이치는 지난번에 실컷 본 거잖아! 그렇게 흥분할 필요도...”

 “하지만 그거랑 이건 다른 걸! 진짜로 발매된 제로와 카엔을 더플로 데리고 있는 사람은 처음본다고! 제작 광계좌? 하여간 그런 거 아냐? 하여간 쉽게 볼 수 있는게 아니라고!”

 마츠시타는 토모를 말릴 능력이 없었다. 언제나 그런 능력이 있기를 바라며 토모를 말릴 뿐이었고 이번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 그런게 중요한 게 아니야! 가서 표를 사는 게...”

 마츠시타는 달려가는 토모를 붙잡았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어느 장소에 서있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그녀는 취재진의 근처에 서있었고 마침 마이크를 든 리포터의 시야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리포터와 눈이 마주치자 바로 고개를 돌렸지만 리포터는 빠른 걸음으로 마츠시타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아사시치지의 혼네입니다! 바이오로이드를 데리고 오신 것 같네요? 아니면 육자의 히나를 코스프레한 건가요? 일반인 코스프레를 한 히나 코스프레! 좀 깊네요!”

 “아뇨, 그게 아니라...”

 이곳에서 벗어나야해. 그런 얼굴을 지었지만 카메라맨은 당황하며 이것은 생방송이니 긴장하지 말고 평소대로 행동해주세요. 방송사고는 제발 내지 말아주시고요. 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본 마츠시타는 이곳에서 차마 도망칠 수 없었다. 어째서 자신은 남들의 기사 소재가 되곤 하는 것일까. 그녀는 잊고 지내던 별명을 떠올렸다.

 “바이오로이드인가요? 어떤 코스프레죠!”

 바이오로이드였지만 코스프레는 아니었다. 마츠시타는 이런저런 변명을 대려 했지만 토모는 카메라에 격한 반응을 보였다.

 “이거 TV야? 나 TV 나오는 거야? TV 데뷔야! 코스프레 아냐! 마츠시타랑 붉은 아레나에 대해... 읍읍!”

 마츠시타를 뿌리치고 카메라로 다가가려는 토모의 입을 막은 마츠시타는 카메라에 대고 아무말이나 날렸다.

 “이거 생방송인가요? 안녕하세요! 붉은 아레나 엄청 기대하고 있어요! 너무 슥고이해요! 일본 최고!”

 그리고는 토모를 끌고 카메라에서 먼 곳으로 부리나케 도망갔다. 취재진이 안보이는 광장의 구석에 온 마츠시타는 숨을 고르며 토모를 노려보았다.

 “왜? 마츠시타도 TV 데뷔하고 좋잖아? 아니면 나 모르는 사이에 TV 데뷔 했던 거야? 마츠시타 능력있네!”

 “그게 아니잖아. 너는 쫓기는 몸이야. 잊었어? TV에 나와서 네 위치가 드러나면 어떡하자는 거야. 만일 뉴스를 보고 이곳에 블랙리버가 오면 어떡할 거야.”

 “그러면 블랙리버와 덴세츠가 여기서 대격돌을 하는 거야? 그것도 재밌을 거 같은데.”

 “그럴 리가 없잖아... 하여간 이곳에서는 너무 눈에 띄는 일은 하지 말아줘. 토모는 서있는 것 자체로도 시선을 끌어모으니까. 알겠어?”

 “알겠어. 이 미모의 내가 마츠시타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누가 마츠시타의 말을 들어주겠어?”

 토모는 어깨와 가슴을 으쓱이며 말했다. 토모가 마츠시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한 것인가 걱정이 들었다.

 “알았으면 표를 사러 가자고. 표를 사는 것부터 이렇게 피곤할 줄이야.”

 “그러니까 예매를 했어야지.”

 토모의 말을 들은 마츠시타는 더욱 기운이 빠졌다. 경기장으로 향하는 순간, 한 남자가 마츠시타에게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낯익은 얼굴의 그는 사치스케였다. 공무원을 하고 있는 마츠시타의 정보원중 하나였다.

 “마츠시타씨! 여기서 이렇게 뵐 줄은 몰랐네요!”

 사치스케는 반갑다는 듯 마츠시타에게 인사했다. 마츠시타 역시 조금은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그의 말따마나 이곳에서 아는 사람을 볼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마츠시타씨는 이곳에 왠일임까? 붉은 아레나에는 관심이 없으신 줄 알았는데요.”

 그렇게 말하는 사치스케의 목에는 카메라가 걸려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패션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걸고 있었다. 마츠시타도 집에 있는 카메라를 가져와야 했을까. 그래야 더 남들 사이에 녹아들 수 있는 것이었을까.

 “취재.”

 “아직도 덴세츠 취재중인 검까? 그러고보니 그 때 그 남자는 만나셨나요? 아카바네였던가요?”

 아카바네. D 엔터테인먼트에서 일하던 전 기획자인자 덴세츠 사이언스에게 암살당한 남자였다.

 “아카바네! 기억나! 제로와 카엔의 싸움 엄청났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갑자기 대전란이 나오는 거죠? 제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토모의 말에 사치스케는 놀래며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토모는 긴 이야기를 너무 함축해버렸으니까.

 “이런 저런 일이 있었어. 뭐, 사치스케가 왜 왔는지는 물을 필요는 없겠네. 경기 관람이지? 표는 예매한 거야?”

 “당연히 예매죠. 전량 예매로 팔았고 30분만에 완판되었는걸요?”

 전량 예매. 완판. 그 이야기를 들은 마츠시타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에?”

 “마츠시타, 일 저질렀네.”

 토모는 마츠시타를 비웃었지만 마츠시타는 그에 대꾸할 여유가 없었다.

 “무슨 일임까? 마츠시타씨, 설마 현장에서 표를 살 생각이었던 거에요? 설마 여기서 팔 리가 없잖아요.”

 이 무슨 청천벽력같은 소리인가. 이곳에 왔지만 표를 살 수 없어 경기장에 들어갈 수 없다니. 사치스케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사치스케는 그녀의 정보원이었다. 그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한단 말인가. 마츠시타는 허탈한 표정으로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