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작 설정과 다를 수 있읍니다.
* 알고 있던 캐릭터 성격이 이상해질 수 있읍니다.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37576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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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늘어나는 바이오로이드의 수 때문일지, 조용한 해저와 대비되어 사뭇 이질적인 활기를 띠고 있는 오르카호의 복도. 벽에 난 창문으로 지상이 아닌 푸른색의 바다와 물고기가 보이는 광경은 일반인이 수족관을 굳이 시간 내어 찾아가지 않는 이상은 쉽게 볼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사령관 역시 게임 속으로 끌려오기 전 일반인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지금은 어쩌다보니 최후의 인류이면서 저항군 총사령관이라는 가장 높은 위치에 올라가게 되었지만. 이 비범한 일이 일상이 되어버린 것과 자신의 현재 위치,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혼란함을 느끼면서도 목적지 하나는 확실하게 알고 있다는 듯 힘없는 구둣발 소리가 아무도 없는 복도를 울렸다.

 

“아…….”

 

이윽고 그의 발걸음은 수복실이라 적힌 팻말 앞에 멈추었다. 잔뜩 움츠러든 어깨, 한 손에는 꽃다발. 커다란 철문을 눈앞에 두고 사령관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후로 가만히 서서 문과 눈싸움을 하더니 사령관은 문을 열고 들어가 자신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다프네를 손짓으로 저지한 후 한 침상으로 다가갔다.

 

“아, 각하.”

 

짙은 적갈색의 긴 머리와, 그녀의 머리색과 같은 한 쪽 눈동자, 보면 빠져들 것 같은 신비로운 인상을 주는 반대쪽 흰색의 눈동자. 표정의 변화 없이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무뚝뚝하게 자신을 마주하는 발키리의 모습에 사령관은 몸을 흠칫 떨었다.

 

“…몸은 좀 괜찮아?”

“예. 다프네 씨의 수복 실력이 좋아서요.”

 

목을 옥죄는 것만 같은 침묵이 이어졌고, 사령관은 그 이후에 이어나갈 말을 찾으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할 말이 없음에도 굳이 자신을 바라보는 적갈색과 흰색의 눈동자는 뭐라고 말을 해보라는 듯 사령관의 얼굴을 이리저리 찔러대었다.

 

“이, 이거. 병문안 오는데 염치없이 빈손으로 올 순 없어서…. 페어리 애들한테 가서 받아왔어. 네게 간다고 말하니 이걸 주더라. 환자한텐 기분을 밝게 만들어주는 강렬한 색이 좋을 거라며…….”

“…평소 주시던 꽃과는 다르군요. 감사히 받겠습니다.”

 

사령관은 노란색 국화로 이루어진 꽃다발을 내밀었고, 발키리는 표정 변화 없이 받아들였다. 사령관은 ‘평소 주시던’이라는 발키리의 말을 통해, 착각일수도 있겠지만 자신에 대한 발키리의 원망이 느껴지는 듯했다. 

 

게임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눈으로만 훑었던 커뮤니티에서 유저들은 ‘일단 발키리를 던져보라’라고 했기에 사령관은 아무런 의심 없이 그들의 혜안을 따랐을 뿐이다.

 

“미안해. 혼자만 희생을 치르게 해서. 전적으로 발키리를 믿었기에, 내겐 너밖에 없었기에… 아니, 그냥 내 실수야. 고의는 없었어.”

“…각하도 고충이 있으시겠지요. 각하 덕분에 오르카호는 나날이 번창하고 있습니다. 자원, 바이오로이드들의 목숨. 저울질이 쉽지 않겠지요. 모두 이해합니다. 제가 더 열심히 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령관은 발키리가 이토록 말을 길게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긍정의 의미였지만, 무표정에서 오는 그녀의 말에 가시가 돋은 듯 귓가에 흘러들어 이리저리 할퀴어대는 것만 같았다.

 

“…미안해. 금방 나았으면 좋겠어. 불편하지? 푹 쉬어. 내가 방법을 어떻게든 마련해 볼게.”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각하.”

 

사령관은 비틀거리며 수복실을 떠났다. 둘 사이의 심상치 않은 기류를 지켜보던 다프네가 일어나 인사를 건네려는 시도도,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힘없는 손짓에 저지당했다.

 

“발키리를 잘 부탁해. 다프네.”

“네? 네. 알겠습니다.”

 

사령관이 힘없이 수복실을 빠져나간 후,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발키리와 다프네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원체 조용한 둘이었기에 다프네가 다시 업무로 돌아가려는 찰나 발키리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다프네 씨.”

“네?”

“각하께서 평소와 다른 꽃을 들고오셨습니다.”

“아, 네. 국화가 참 예쁘네요.”

 

발키리는 사령관이 들고 온 국화 다발의 꽃잎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만졌다. 그리고는 꽃에 시선을 거두지 않으며 자신이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혹시, 노란색 국화의 꽃말이 무엇인지 여쭤도 될까요. 이런 화려한 색의 꽃은, 각하께 처음 받아봐서요.”

“…짝사랑이라는 꽃말이 있어요. 고백하기 전에 확신이 없을 때 선물하곤 하죠.”

“짝사랑입니까.”

 

발키리의 입가가 드물게 아름다운 곡선을 그렸다. 다프네는 냉소적인 발키리의 표정에서 처음으로 온화함을 느끼고 흐뭇하게 미소 짓다가도, 이내 생각난 불안한 생각을 떠올리고는 표정이 잠시 굳었다. 찰나의 순간 다시 미소를 띠고 표정관리에 성공했다고 생각한 다프네였다.

 

“다프네 씨.”

“네, 넷?!”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데 이 꽃에 다른 꽃말이 있습니까?”

 

진짜 감정이 드러나는 미세 표정의 시간은 0.2초. 순간의 판단이 생사를 가르는 곳에서 살아남은, 하얀 사신의 눈을 속이는 것은 다프네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

 

“거기, 잠깐. 멈춰봐.”

 

목소리에 온도가 있다면 순식간에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 차가운 목소리가 사령관의 발을 얼렸다. 그가 뒤돌아본 곳엔 방금 마주했던 차가운 인상과 역시나 같은 소속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차가운 인상을 한 여성이 팔짱을 낀 채 노려보고 있었다.

 

백금발의 긴 머리카락, 눈이 내려 덮은 것만 같은 흐트러짐 없는 하얀 제복. 완벽을 추구하는 그녀의 성격답게 철혈이란 수식어를 달고 있는 그녀의 이름은 ‘레오나’로 그녀의 부관, 발키리의 대장이며 그녀가 속한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를 이끄는 지휘관이었다. 그 말인즉슨, 고의는 아니지만 그녀의 부관을 제멋대로 굴린 사령관이 만나기 껄끄러운 상대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무슨 일로……?”

 

얼빠진 사령관의 대답에 레오나는 기가 차다는 듯 ‘허’하고 바람 빠진 소리를 내더니 사령관의 어깨를 붙잡고 벽으로 몰았다.

 

“무슨 일? 사령관, 네가 가장 잘 알 텐데?”

 

기분이 좋을 때를 제외하고 평소엔 접근도 못 하게했던 그녀였지만, 그녀의 기분이 아무리 좋았어도 이토록 가까이 얼굴을 마주한 적은 없었다. 매섭게 노려보고 있는 그녀의 눈을 보자니 마냥 좋아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사령관은 벽에 등을 붙인 채 사자 앞의 초식 동물처럼 벌벌 떠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미안, 전부 미안해.”

“이유나 물어보자, 내 부관이 네게 무슨 실수라도 저질렀어? 왜 다른 녀석들은 놔두고, 굳이 발키리만 보내서 죽기 전 까지 굴리는 거지? 만약 정말 괴롭히려는 의도라면 당장 그만두는 것이 좋을 거야.”

 

사령관은 무어라 말하고 싶어 입을 옴짝달싹 움직였으나 차마 그 입에서 소리가 나오는 일은 없었다. 당장 그에게 분노를 쏟아내는 그녀에게 ‘이곳은 게임 세계이고, 게임이지만 현실 같은 너희가 죽는 건 싫은데, 스테이지가 슬슬 버거워져서 라할배들이 일단 발키리를 던져보라고 했던 게 기억났다’라고 말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말을 하기 직전엔 절대로 놔 주지 않을 것만 같은 그녀의 기세에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다, 그럴듯한 답변을 찾기로 했다. 적어도 그녀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납득할 수 있는 무언가를.

 

“…믿음직해서, 믿음직해서 그랬어.”

“그게 변명이 될 거라고 생각해? 애초에 마지막 인간이랍시고 주제에 맞지 않게 갑자기 높은 자리에 앉았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전략이 나오지. 차라리 토모가 직접 지휘하는 것이 나을 정도야. 자신이 어떤 위치인지 자각이나 있긴 해? 최후의 인간이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뭐야, 울어?”

 

레오나는 갑자기 벽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아 흐느끼는 사령관의 모습에 적잖게 당황한 듯하였다. 사령관의 어깨를 붙잡고 있던 레오나의 두 손이 갈 곳을 잃고 공중을 이리저리 떠도는 것이 그 증거였다.

 

“맞는 말 좀 했다고 울 일은 아니지 않아? 애들도 아니고, 보기 싫으니까 연기는 그만하지? …뭐야, 진짜 울어? 보는 눈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일어나, 빨리.”

 

전투 지휘엔 천부적인 그녀라고 할지라도, 사람을 다루는 것은 서툴렀기에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발할라의 아이들을 혼내고 우는 것을 달래는 것에 경험이 있다 하더라도, 다 큰 성인 남성을 달래는 방법 따위는 그녀는 잘 몰랐다.

 

이대로 지나가던 브라우니에게라도 들킨다면 ‘레오나가 독설을 내뱉어 사령관을 울렸다’라는 소문이 오르카 함 내에 퍼질 것이 자명했다. 소문은 쉽게 와전되는 법이기에, 특히나 그 소문이 누구를 통해 퍼지냐에 따라 어떤 오명을 뒤집어쓸지 몰라 레오나는 할 수 없이 자신이 발할라의 아이들을 달래는 것처럼 사령관을 꼭 끌어안고 한참을 등을 쓸어주었다.

 

“…진정됐어?”

 

그녀의 노력 덕에 떨림이 멎은 사령관은 고개를 힘없이 끄덕였다. 일단 한 숨 돌린 레오나는 다시 이어서 추궁한다면 그가 또 목 놓아 울지도 모르기에 그가 진정될 때 까지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미안. 내 잘못이야. 인류 최후가 나라는 사실이 나도 못미더운데, 레오나 너도 싫을 것 아냐.”

“아니, 뭐. 그렇게 까지는 그냥 나는 이해가 가질 않아서……. 말이나 해 봐, 갑자기 왜 울었어?”

 

두 사람은 나란히 벽에 기대 주저앉았다. 새하얀 옷에 먼지가 묻는 것을 싫어하는 레오나였지만 배틀 메이드들이 깔끔하게 관리하느라 괜찮다며 스스로 되뇌고는 사령관의 옆에 자리했다.

 

“…처음엔 다 괜찮았어. 최후의 인간이라 사명감도 있었고, 내 지휘에 운 좋게 승리가 이어졌으니까.”

“응.”

“승리가 반복되고, 오르카호에 바이오로이드들이 합류하고, 나를 구원자라고 하는 녀석들도 있었고…. 그러다 첫 사망자가 발생했어. 나에 대한 기대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레오나는 담담하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 사령관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승리에 심취한 오르카호. 첫 사망자. 전투를 위해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와 달리 평범한 인간으로서 겪는 심리적 불안정. 그가 내뱉는 것들 모두가 그녀가 한 때 겪었지만 전부 털어버린 묵은 감정들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바이오로이드이기에, 그마저도 철혈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냉철한 그녀였기에, 나약한 사령관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저 사령관의 경험에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레오나는 그의 이야기에 경청하며 그가 느꼈던 것들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꿈에 죽은 아이들이 나타나. 왜 그랬냐고, 왜 하필 자신들이었냐고. 가장 안전한 곳에서 내 손짓 한 번이 불러온 참사가 내내 나를 괴롭혔어. 부끄럽지만 난 죽음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으니…. 그러다 우연히 발키리가 눈에 띄었고, 엄청 믿음직했어. 발키리라면, 발할라라면 살아 올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싹트기 시작했어. 늘어난 바이오로이드 탓에 자원 수급 문제도 있었고, 그래서 리스크를 조절하다 보니 그만…….”

“…….”

 

레오나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그 어떤 부대보다 발할라를 믿고 있다는 것 같은 사령관의 말에서 오는 묘한 자부심과, 그래도 가혹하다 생각되는 자신의 부관의 단독 임무 사이에서 갈등했다.

 

“어떻게든 방법을 마련해 볼게. 네게 발키리가 소중한 것처럼 나에겐 모두가 소중해. 난 그 누구도 죽게 하긴 싫어. 레오나, 너도 마찬가지고.”

“사령관…….”

“발키리는 당분간 임무에서 제외하도록 할게. 조금만, 아주 조금만 시간을 줘.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낼 거니까…….”

 

사령관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이 곧 꺼질 촛불처럼 위태로워 보였기에, 레오나는 무의식적으로 사령관의 손을 잡았다.

 

“잠깐.”

“…?”

 

갑자기 그의 손을 잡은 레오나였지만, 막상 잡아놓고 할 말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무작정 공감해주는 것이 좋을지, 다시 꾸짖어 사령관이 제정신을 차리는 것이 좋을지 그녀는 고민했다.

 

아무런 결론을 짓지 못한 레오나는 불러놓고 답이 없는 그녀에게 의아한 표정을 짓는 사령관에게, 그저 눈을 꾹 감고 자신의 본심만을 전하기로 했다. 승리를 위해 치밀한 전략으로 최적의 결과만을 이끌어내는 그녀답지 않은 방식이었지만, 가장 무식하고도 확실히 진심을 전하는 것이기도 했다.

 

“난 사령관의 말에 공감은 하지만, 지지는 못 해. 인간이 아닌 바이오로이드니까. 우린 명령에 따라 명예롭게 싸울 거야. 그렇게 만들어졌으니까.”

 

레오나는 사령관의 몸을 돌려세워 보석을 빼다 박은 듯한 그녀의 두 눈을 맞추어왔다. 사령관은 부담스러움에 눈을 피했지만 레오나는 집요하게 눈을 맞추어왔다.

 

“바이오로이드는 바이오로이드의 일을 할 테니까. 사령관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해.”

“…응.”

“약해도 돼. 인간이니까. 전선에 나가 싸울 필요 없어. 인간이니까. 인간과 바이오로이드는 달라. 우리는 네 손발이 되어 줄 수 있는 도구야. 지휘를 모르겠으면 언제든지 찾아와. 기꺼이 네 머리가 되어 줄 테니까. 같이 고민하자. 난 사령관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해줄 순 없을지도 몰라도, 힘들 때 기댈 품은 언제든 내어 줄 수 있어.”

“…….”

“그리고 스스로 사령관으로서의 면모를 보일 때까지, 언제든지 기다려 줄 수 있어. 우리가 소중하다고 했지? 우리도 마찬가지야. 사령관이 우리를 이끌만한, 믿고 따를만한 사령관이 되는 것을 나는 원할 뿐이지, 잘못을 탓할 생각은 없어.”

 

사령관은 그 말을 끝으로 자기를 끌어안은 여성의 품 안에서 그녀의 다정함을 엿볼 수 있었다. 발을 얼렸던 차가운 말과 외관과는 다르게, 그녀의 다정한 품에서는 온기가 났다.

 

“크흠. 그, 그럼. 난 내 부관에게 가봐야겠네.”

“레오나.”

“응?”

“고마워.”

 

레오나가 멋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둘러 발을 옮겼다.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그녀의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다. 그 자리에 계속 있으면 기분이 이상해질 것만 같았기에, 마치 그녀란 존재가 그녀가 아니게 되어버릴 것만 같았기에, 도망치듯이 그곳에서 벗어났다.

 

사령관은 그런 레오나의 뒷모습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자신의 품을 가득 채웠던, 부드러운 그녀의 감촉을 생각하며 한참을.

 

*

 

“알려주세요. 나머지 꽃말이, 뭔가요?”

 

발키리는 그대로 굳어버린 다프네에게 대답을 종용했다. 무뚝뚝하지만 친절한 발키리라고 바이오로이드 사이에서는 소문이 자자하지만, 다프네는 자신을 꿰뚫어보는 하얀 색과 적갈색의 두 눈이 두려워졌다. 환자인 발키리가 다프네를 해할 일은 없겠지만, ‘하얀 사신’이 내뿜는 기백이 그녀의 폐를 짓누르는 듯 했다.

 

“다프네 씨?”

“…짝사랑 말고도, ‘실망’이라는 꽃말이 있어요…….”

 

다프네의 대답에 발키리의 사고가 멈추었다. 처음 만난 날부터 사령관은 지속적으로 발키리에게 관심을 표해왔을 터였다. 임무에 성공했을 때도 찾아와 격려해주며 다친 곳은 없는지, 생활에 불편함은 없는지, 임무에 실패하고 온 몸 성한 곳 없이 다쳤을 때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병문안을 왔던 그였다.

 

믿을 것이 발키리 자신 밖에 없다며 애지중지하며 말하는 사령관의 모습에서 많은 바이오로이드 중에서도 그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 것만 같았기에, 실로 그 눈과 목소리는 그 누구보다도 자신만을 원하고 필요로 하였기에, 발키리는 그런 사령관에게 점점 호감을 품어가고 있었다.

 

기껏해야 바이오로이드에게, 그것도 인간님이 자신을 마치 연인 혹은 가족에게 대하듯이 옆에서 울고 웃던 모습과 진심이 차가운 그녀의 마음을 점점 녹여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다프네에게 짝사랑이라는 꽃말을 듣자마자 마음이 서로 통하고 있다고, 그것이 가슴 뛸 듯이 기뻐서 차마 표정을 감추지 못해 미소를 띠었다는 사실은 그녀만이 알고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숨겨진 다른 꽃말은 그녀에게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실망? 각하께서 내게? 내가 임무에 자꾸 실패하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나는 각하께 특별한 존재가 아닌 건가? 오해, 뭔가 오해가…….’

 

발키리는 당장 침상을 벗어나 뛰쳐나가려 했다. 수복 담당인 다프네는 안정을 취해야한다고 소리치며 그녀를 만류하였지만 발키리의 귀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저는 괜찮습니다. 늦기 전에 각하께 가야만…!”

“발키리? 이게 무슨…….”

“레오나님! 도와주세요!”

 

마침 레오나가 수복실에 들어와 다프네와 함께 발키리를 침상에 눕혔다. 저항하던 그녀였지만 환자의 몸으로 두 명을 이길 수는 없었기에,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는 다시 침상에 드러누울 수밖에 없었다.

 

“하아…하아….”

“…못난 모습을 보여 죄송합니다. 대장. 하지만 저는 가야만 할 곳이…….”

“넌 환자야. 갈 곳이 있으면 다 낫고 가란 말야. 방금 사령관 만났는데, 당분간 발키리 너는 임무에서 제외한대. 회복하는 데만 집중하도록 해. 명령이야.”

 

‘임무…제외…?’

 

레오나의 말에 발키리를 이루고 있던 무엇인가가 빠져나간 듯, 그녀는 그 자리에서 마치 몸이 무너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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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러가는 레후. 일단 구상하는 건 큼지막한 메인스토리 조금 + 이벤트 내용 조금 + 그 사이에서 생기는 캐릭터들의 흑화(?) 및 캣파이트를 생각하고 있는레후.

라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