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작 설정과 다를 수 있읍니다.

* 알고 있던 캐릭터 성격이 이상해질 수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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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이 해를 집어삼킨 망망대해 위, 강철의 범고래 한 마리가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밤하늘엔 별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 자신의 자태를 뽐내고 있고, 범고래의 위장 속에서도 별들이 자신의 자리라는 양 위치를 지키고 있었다.

 

“난 그 인간, 맘에 안 들어.”

 

강렬한 붉은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소녀가 앙칼진 목소리로 자신의 불만을 표했다. 자신감으로 가득한 눈매와 오만하게 꼰 다리의 소유자인 그녀는, 마치 허공에 핵무기 발사 버튼이라도 있는 듯이 신경질적으로 회의실 책상을 손가락으로 툭툭 눌러대고 있었다.

 

성인 여성치곤 아이 같은 140cm라는 작은 키에 귀여운 외형과는 다르게, 호전적이면서도 냉철한 성격은 그녀가 지휘관이라는 사실을 보는 이로 하여금 다시 상기시키곤 했다.

 

둠 브링어, ‘파멸을 가져오는 자’라는 무시무시한 뜻을 가진 부대명은 그녀가 속한 부대를, 그녀의 수식어 ‘멸망’이란 단어는 그녀의 존재에 대한 명제를 확고히 굳혔다.

 

“메이 소장. 그쯤 하도록 하지. 능력을 떠나서, 현재 그가 우리의 총사령관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네.”

“쳇.”

그런 그녀의 불평을 저지한 것은 스틸라인의 총지휘관, 마리 소장이었다. 오르카 호 한 곳에 마련된 회의실에서는 현재 메이와 마리를 제외하고도 각 부대의 지휘관들, 장군급의 바이오로이드가 모여 별자리를 이루었다. 그들이 모인 이유인 회의의 안건은, 저항군 내 가장 커다란 이슈인 ‘인간 남성’에 관한 것이었다.

 

“다들 알다시피 각하의 취임 후,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자원 탐색을 제외하고는 저항군의 활동이 일시적으로 멈춘 상태라네. 실종된 대원들의 생사도 불명확한 지금, 각하의 행보에 대한 뜬소문이 각 부대에서 시시각각 나오는 상황이고.”

“그래, 우리 둠 브링어만 해도 이만한 전력이 있는데 왜 망설이는지 모르겠는데? 이대로 바다 위에 좌초되어 죽자는 거야?”

“…우린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없으니, 지휘관을 통한 각 부대의 지휘만이라도 각하께 승인을 받는다면 저항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네. 다행히 전력으로 쓸 수 있을 만큼 각 부대의 부하들이 오르카호에 많이 합류했으니 말일세. 이에 대해 그대들의 의견을 묻고 싶네만.”

 

마리는 메이를 제외한 나머지 둘, 앵거 오브 호드,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지휘관들을 바라보았다. 사령관에 대한 적대감을 숨길 생각이 없는 메이를 제외한 나머지 두 지휘관은 역시 각 부대의 지휘관이라는 것인지, 표정으로 판단이 어려웠다. 각자의 방식으로 고민하던 둘은 이윽고 입장을 명확히 하는듯했다.

 

“호드의 지휘관 칸, 반대다. 나는 조금 더 그를 믿고 지켜봤으면 한다.”

“둠 브링어는 찬성이야.”

“찬성 둘에 반대가 하나… 레오나, 그대는?”

“발할라의 레오나, 나는…….”

 

*

 

레오나는 회의가 끝난 후 발할라의 숙소로 발걸음을 옮기다 지휘관들의 인적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사령관의 방으로 향했다.

 

안건에 관한 회의의 결과는 불발로 끝났다. 단 한 명뿐이라 해도 가장 큰 피해를 받은 것은 발할라였기에, 레오나의 결정에 마리 소장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덕분에 메이가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이해가 안 된다며 따지는 것을, 레오나는 특유의 싸늘한 표정과 침묵으로 일관했다.

 

대화 중에 레오나가 침묵하는 경우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대화 중 무언가가 레오나의 심기를 건드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두 번째는 멍청한 상대와 대화해야 할 때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메이는 잡아먹을 듯이 레오나를 노려보고는 신경질적으로 발을 굴리며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각 부대의 지휘관이 합류하지 못한 부대도 있었기에, 그리고 명백한 사령관의 권한에 대한 월권행위의 초석으로도 삼을 수도 있는 건이었기에 레오나는 반대표를 던졌다. 당장 칸이 반대표를 던진 의도는 명석한 그녀조차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멸망 전 생존 개체라는 타이틀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회의 종료 전, 모든 것이 확실해지기 전까지 지휘관들은 불발된 안건에 대한 것을 각 부대에 새어나가지 않도록 침묵하기로 했다. 그러나 레오나는 그 길로 사령관실로 향했다. 당사자에게 개선의 의지와 능력만 있다면 충분히 여론을 잠재울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사령관, 레오나야.”

 

노크하고 기다린 레오나를 반긴 것은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남성이 아닌 마치 눈처럼 하얀 머리에, 프릴 드레스를 갖춰 입은 여성이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머리 위에 붙은 고양이 귀인데, 코스프레용 가짜가 아닌 실시간으로 쫑긋거리는 진짜 그녀의 귀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했다.

 

“페로, 누구야?”

“레오나 지휘관입니다. 주인님.”

“들여 보내줘.”

 

페로는 레오나를 들여보낸 후 신경을 곤두세워 문밖의 복도를 이리저리 확인하고는 문을 닫았다. 그리고 원래 자신이 자리할 곳이라는 양, 사령관 옆에 새초롬하게 두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무슨 일이야? 레오나.”

“…둘이서만 얘기하고 싶은데, 경호를 물려줄 수 있을까?”

 

레오나의 말에 눈을 감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페로는 마치 발키리처럼 양쪽의 색이 다른 눈을 가늘게 뜨고는 레오나의 요청에 반발했다.

 

“안됩니다. 경호 임무를 맡은바, 주인님의 안전을 위해 대기해야만 합니다.”

“…둘이서만 얘기해야 하는 일이야?”

“주인님?”

 

페로는 사령관의 말에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경호 임무를 맡는 컴패니언이 경호를 안 하면 무엇을 한다는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스스로 불안감을 느끼고 있을 때, 사령관은 페로에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레오나도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페로. 오늘은 더는 경호가 필요 없을 것 같아. 내일 보자. 아, 내일은 하치코 차례던가?”

“주인님 하지만…!”

“경호 대장이 합류했으면 몰라, 지휘관 회의에서 나온 안건이라 다른 누가 들으면 곤란해. 이해해주길 바랄게.”

“중요한 얘기 같으니, 오늘만이야. 오늘은 레오나가 대신 네 역할을 할 거야. 괜찮아.”

 

페로는 무언가를 더 말하려다가도 ‘경호 대장’이라는 말에서 할 말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그리고 맏언니가 아닌 자신은 사령관 옆에 있을 수 없다는 자신의 위치에 자존심이 상해 말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그토록 보고 싶은 맏언니의 실종, 그리고 그 자리를 대행해야 하는 둘째가 된 페로. 똑 부러진 그녀였지만 리리스의 부재에 컴패니언을 대표하여 맏언니 역할을 대행하게 된 페로 또한 예전처럼 심적으로 의지할 대상이 필요했고, 그의 언니의 모습을 사령관에게 투영했었다.

 

그런 사령관이 페로에게 경호가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설사 그럴 의도가 없었더라도 마치 자기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만 같아, 자신의 맏언니가 자신을 버리는 것만 같아 가슴을 옥죄어오는 것만 같았다.

 

“…….”

 

페로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조용히 방을 나갔다. 그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페로의 눈가에 맺힌 물방울을 보지 못했다. 그녀에게는 유독 다정한 언니가 사무치게 그리운 밤이었다. 

 

“사령관, 오늘 있었던 지휘관급 회의에서 나온 안건이야.”

 

자신의 우유부단함이 불러온 오르카호 내 불길한 기류를 느끼지 못했던 사령관은 레오나가 전해준 진실로 인해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현재 사령관의 행보에 불만을 표하며 독자적으로 행동하려는 불온한 움직임이 보인다는 것, 어떻게든 상황이 무마되었지만 애매하게 회의가 끝난 만큼 앞으로의 여론은 어찌 될지 모른다는 것, 그리고 이는 곧 사령관을 버리지는 않겠지만 치마폭에 둘러싸인 힘 없는 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레오나는 빠짐없이 사령관에게 전했다.

 

레오나의 냉철한 판단에 사령관은 적잖이 당황한 듯하였다. 당장 움직이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고, 가만히 있자니 민심이 아찔한 바닷속으로 침몰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권이 자신의 손에 달렸다는 것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아직 지휘가 무서워, 사령관? …휴, 널 위한 교본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공략 같은 거.”

 

침묵으로 일관하는 사령관의 모습에 답답했는지, 무심하게 내뱉은 레오나의 말은 사령관의 귀에 정확히 꽂혀 들어갔다. 갑자기 확신에 가까운 생각이 사령관의 뇌리를 스쳤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레오나의 시선에 확신은 더욱 분명해졌다. 사령관은 자신의 주머니에 있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게임 세계로 온 것은 사령관만이 아니었다. 그가 지니고 있던 스마트폰, 게임 실행은 비록 실패했지만 유미가 힘써주는 만큼 인터넷이 연결된다면 그녀가 말한 ‘공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에이, 설마…….”

 

사령관은 떨리는 손으로 인터넷을 열었다. 몇 번 바쁘게 손을 움직이던 그는 이윽고 헛웃음을 지었다. 그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 화면에서는 ‘스테이지 공략’이라는 배너가 보였다.

 

“…! 고마워, 레오나!”

“자, 잠깐! 왜 이래! 너무 가까워!”

“최고야 레오나! 역시 너밖에 없어!”

 

사령관은 레오나를 끌어안고 쾌재를 불렀다. 레오나는 놀라면서도 아이처럼 기뻐하는 사령관의 모습에, 가만히 안겨 어색한 자신의 두 팔을 놀리지 않고 사령관을 안아주었다. 레오나의 품에 안겨 사령관은 생각했다. 이거, 내가 최강 지휘관이 될 수도 있겠다.

 

*

 

“발키리 씨. 화장실 금방 다녀올 테니까, 아까처럼 무리하게 움직이시면 안 돼요?”

“아까 일은 죄송합니다…….”

 

다프네는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비웠다. 발키리는 그녀에게 안심시키려는 듯이 침상에 누워 마치 잠을 청할 것처럼 눈을 감았다가, 그녀의 발소리가 멀어지자마자 몸을 일으켜 수액 걸이를 끌고 뛰쳐나갔다.

 

부상당한 다리가 비명을 질러대며 발키리를 가지 말라며 잡아끌었다. 밀려오는 격통에도 이를 악물고 열심히 발을 움직였다. 격렬한 달음박질에 수액 걸이와 함께 쿠당탕 소리를 내며 넘어진 그녀는 자신의 손에 꽂힌 바늘을 거칠게 뽑아내었다. 뽑아낸 바늘로부터 핏방울이 그녀의 환자복에 튀었다.

 

“크흑.”

 

이 정도 고통쯤, 그의 얼굴을 한 번만 보면 나을 수 있다. 흘린 피만큼 그가 사랑으로 채워주면 된다. 속으로 눈물 흘린 시간 만큼 그가 다정하게 안아주기만 하면, 오해가 있었다며 발키리가 최고라는 따뜻한 목소리로 여느 때처럼 한 번만 다시 말해준다면 이 정도 고통쯤은 그녀는 감내할 수 있었다.

 

“각하, 각하…!”

 

눈앞에 사령관의 방이 보였다. 고통을 참느라 흐르는 식은땀과 눈물로 앞이 흐릿했지만, 그에 방에 닿기만 하면 직접 그의 커다란 손으로 눈물을 닦아 줄 것이다.

 

“최고야 레오나! 역시 너밖에 없어!”

“…각하?”

 

문에 다다른 순간, 그녀가 연모하던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밖에 없다며 애정을 표현하던, 수줍게 꽃을 들고 진심을 전하던 그 사람이, 자기가 아닌 다른 여자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발키리의 성대에서 간신히 움트던 목소리가 떨려왔다. 누군가 맨손으로 심장을 꽉 부여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만 같았다. 꺽꺽거리는 반쯤 죽어버린 숨이 간신히 발키리의 호흡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손으로 발키리는 소리가 나지 않게 사령관의 방의 문을 살짝 젖혔다. 아주 좁은 틈으로 겨우 들여다본 방의 안쪽엔 자신의 상관이, 자신이 연모하는 남자와 함께 다정히 눈을 맞추고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이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윽…….”

 

발키리는 혹여 소리가 새어나갈까 자신의 입을 두 손으로 겨우 막고 소리죽여 울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째서 대장이 저기 있는지, 왜 자기가 아닌 대장이, 왜 그렇게 애달픈 표정인지.

 

발키리는 그제야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신발도 깜빡하고 맨발로 뛰어온 것, 정리하지 못한 머리카락, 이리 넘어지고 저리 넘어져 더러워 보이는 환자복, 문을 경계로 느껴지는 온도 차와 그 외에도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문 안쪽이 사랑이 피어나는 봄이라면, 발키리 자신이 위치한 문밖은 마음이 죽는 겨울이었다.

 

발키리는 자신을 감싸듯이 스스로를 끌어안았다. 하지만 그녀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차디찬 마음을 따스하게 녹이는 데는 딱 한 명분의 팔 길이가 부족하다는 것을. 팔이 아무리 길어도 스스로는 자기 자신을 끌어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어째서? 대장님은 각하를 싫어하던 게…? 결단력 없는 남자라며, 부관을 혹사시킨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모두, 모두 거짓…?’

 

무릎을 감싸 안고 바닥에 주저앉아 흐느끼던 발키리의 몸의 떨림이 일순간 멎었다. 팔에 파묻었던 고개를 들어 올린 발키리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그것은 마치 철충을 사냥하는 포식자의 눈이었다.

 

“망할 암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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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 시키고 싶은 캐릭터가 있는데, 작중 등장 시기가 언젠지 모르는 애들이 너무 많슴.
스토리 연표 정독하는데 언급 없던 애들이 갑자기 아는 척하면서 튀어 나옴.
고인물들 입장에서는 시간 축 이해 안 될듯. 글싸개가 스토리 스킵충이라 그럼.
중간에 게임 잠시 쉰 시기도 있었고, 독립된 다른 세계관이라고 생각하고 뇌 비우고 봐줬음 좋겠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