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는 핑계였다. 스틸라인 분대가 탐색 도중 인간 남성을 발견했다고 했을 땐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는 생각이었다. 내심 복귀 중 철충의 습격으로 사망해주진 않을까란 기대를 갖고, 자기들 부대가 호위로 나서겠다던 지휘관급들의 의견에도 지원병력도 편성하지 않았지만 불행히도 그는 무사히 오르카 호로 오게 되었다.


"어떠냐고 물어보면 진짜 평범한 인간 그 자체야. 보철물도, 철충의 흔적이나 오리진 더스트, 환경오염의 영향 조차 아무것도 없는 100% 순수한 인간. 지적능력은 당시 평균치보단 살짝 높고, 신체연령은 30대 정도였어. 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다 영양상태까지 좋았고. 인간으로선 진짜 표준 그 자체야. 게다가 오빠처럼 기억 상실이라는데. 거짓말 같진 않았어. 바이오로이드란 단어 조차도 모르고 있더라고."


검사를 마친 닥터는 고글 너머 내 눈을 보고 싶어하는 듯 했지만 시선을 주진 않았다. 그가 발견 되었다던 폐건물 현장사진만 유심히 바라보는 척 할 뿐.


인간은 나쁜 존재다. 막연하게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이제 와서 예외적인 사례로 키무라 셜록 처럼 착한 인간도 있었을거라 생각해보려하지만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가슴으로 느끼는 인간의 존재는 서로 다르게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차이에서 스스로가 인지부조화를 느끼고 있다는 것까지 잘 알고 있었다.


"끝났어 왓... 아니 사령관."


닥터 다음은 취조 겸 심리파악을 위한 리앤이었다. 그녀의 입에서 듣고 싶은 말은 '저 남자는 없애버려야 할 악인이야.' 라는 대답이 듣고 싶어 그제서야 고개를 돌리고 얼굴을 마주본다. 살짝 놀란 듯 눈썹이 순간 움찔거리는 리앤이었지만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기억 상실이란건 틀림없는 것 같아.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하고 있지 않았어. 상식은 2000년대 초반에 멈춰있는 것 같은 것이 특이사항이겠네. 간단한 총기류는 알지만 레이져 병기가 상용화된 시대라고 하니까 엄청 놀라더라고. 본인도 왜 놀란 건지 당황스러워했지만. 그게 기억을 찾는 실마리가 될 지도 모르겠어. 철충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고. 정말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온 걸까 싶다니까."


자신의 발견 당시와 유사한 것도. 내면 어딘가에서 불쾌감이 기어오른다. 기억을 잃은 남자. 게다가 외부 개입이 없는 순수한 인간. 입을 열기 전 잠깐 눈을 감고. 표정관리를 해야만 했다.


"그래. 알겠어. 성격은 좀 어때보여? 우리에게 문제가 될 성격이야?"


그렇다고 해줬으면 좋겠다. 라는 내면의 감정은 이 분야의 전문가인 리앤 앞에서 숨기기란 어려웠겠지.


"어떻냐고 하면... 대체론 착한 사람이야. 바이오로이드에게 최대한 정중하게 대하려는 모습이나, 사고 방식이 구 인류스럽진 않았고. 마찰은 최대한 회피하고 싶어하는 성격이었어. 거기에 자신의 처지를 포함한 상황을 잘 이해할 통찰력도 있고,  감사를 표하는 것엔 거리낌도 없어. 유머감각도 제법 있는 편이라 누군가와도 잘 어울릴 타입의 인간이야."


내 기대를 부수는 말 뒤엔 리앤은 살짝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말을 이었다.


"하지만 살짝 우려가 되는 부분이 있어. 저 사람. 적어도 지금은 철충에 대한 공포가 많이 엹더라고. 지금 이걸 두번째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어. 죽으면 아쉽기야 하겠지만 잃을 것도 없는데 그뿐일 거라고 말이지. 그리고 그 만큼 재미라는 부분을 중요시 여기는 반응도 있었고."


인상이 조금 일그러지는 것을 스스로도 느꼈다. 재미를 위해 인간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는 눈으로 봐왔었다. 앞으로도 그런 기록들은 수두룩하게 나올테고.


"재미? 취조 당하는 걸 재밌다고 할 수도 있나?"


"미소녀 형사가 눈 앞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는데 내가 어쩌겠어. 탐구열이 강한 편이라 이것저것 알아가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는 모양이야. 무언가를 자기 방식대로 정의하고 싶어하는 타입이지만 다른 의견을 무시하진 않는 타입. 나 한테도 끊임없이 질문을 하더라고. 녹취록은 파일에 첨부해뒀어. 그리고..."


리앤은 내게 녹취록과 신상정보가 담긴 데이터 칩을 건내며 얼굴을 가까이 했다. 진지한 얼굴을.


"난 언제나 왓슨의 편이야. 나도 저 남자가 100% 안전하다고 하다고 생각하진 않아. 만약 사령관이 추방하자고 한다면 언제든 그럴 수도 있고, 그 외의 결정에도 모두가 따르겠지. 그러니 너무 저 남자에게 집착하진 않았으면 하는 것이 내 생각이야."


마음 속을 읽힌 기분이지만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다. 그저 그런 위안이 필요했을 뿐. 리앤은 이런 쪽으로 섬세했다. 어쩌면 자신의 감정 상태를 고려해 하지 않았을 말도 있을지도 모를테고. 그가 있을 취조실 문까지 가는 발걸음이 평생처럼 느껴졌지만 힘을 주어 문고리를 돌렸다. 오르카의 사령관은 나니까.


"젊은 인상일거라고 생각했었네. 닥터라는 아이가 자네를 종종 오빠라고 부르더군. 아저씨가 아닌게 어딘가? 하하. 만나게 되어 영광일세 사령관."


밝은 조명 하나와 책상 하나. 벽면엔 안을 보기 위한 매직미러가 있는 고전적인 취조실. 그는 마치 오랜 친구 같은 인상으로 웃으며 나를 반겼다. 몸수색과 강도 높은 신체검사, 6시간이 넘는 취조를 빙자한 상담을 받고도 평범한 사람이 그럴 수 있나? 의자를 빼내어 마주 앉고는 서로 통성명을 나눴다. 오랜만에 입에 올려보는 자신의 이름과 바이오로이드가 아닌 사람의 이름을 직접 듣는 건 낯선 기분이었다.


"검사가 불편하진 않으셨습니까?


"자넨 내 생명의 은인아닌가. 이 정도는 사령관으로서 당연한 절차겠지. 게다가 여기가 어딘지, 난 어떤 상태인지, 세상은 어떤지 알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네. 그 정도로 투덜거린다면 염치를 모르는 인간이겠지."


능글맞은 구렁이. 하르페이아가 빌려줬던 소설책에서 나온 표현이 꼭 들어맞는 인간 같았다.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원하는 바는 따로 있고, 목적을 위해 감정을 이용하는 사람.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의 눈은 내 얼굴을 똑바로 살피고 있었다. 죽음에 초연한 사람의 눈빛은 아니었다. 오히려 생존욕구가 가득하다면 모를까.


"인도적인 차원으로서의 구조였습니다. 인류는 정말로 멸망했으니까요. 솔직히 말해, 전 당신이 반갑지 않습니다."


그가 그저 평범한 인간이라면 자신이 주먹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뼈를 쉽게 부러뜨리고 머리를 터뜨릴 수 있다. 그 누구도 자신을 말리지 않을 것이다. 


"이런, 벌써부터 밉보였다니 큰일인데. 혹시 내 말투때문인가?"


"그건 상관없습니다. 특이한 말버릇을 가진 대원들은 많거든요."


"다행이군. 그렇다면 어째서인지 이유를 물어봐도 괜찮겠나 사령관?"


영화에서 '질문은 내가 해! 넌 대답만 하라고!' 라고 소리치던 경찰의 심리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주도권을 빼앗기고 숨기고 싶었던 의도를 내놓으면 상대가 대비할 방법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 평범한 대화라면 생각하지 않을 것들. 난 이미 그를 착한 사람이 아닐거라고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구 시대의 인간들은 모두가 끔찍한 인간들이었습니다. 바이오로이드를 도구 취급하고, 사리사욕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심지어는 이미 죽었음에도 그 유산들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하는 이기적인 족속들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위협은 제게 현실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고요. 당신도 그렇게 되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앙헬, 펙스의 회장들, 로크, 레모네이드, 장화. 좁게 생각한다면 오르카 밖의 모든 존재가 자신의 잠재적인 적대대상이고 거기엔 인간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군. 혹시 자네 신을 믿나? 왜 있잖나. 보통 종교속에서 전지전능하다는 그런 초월적인 존재 말야."


코헤이의 천사들이 곧장 생각났지만 그 종교의 실체 역시 인간의 탐욕이었고 지금의 천사들이 믿는 것은 신앙심보단 믿음에 가까운 형태다. 구원자라고 불리는 호칭은 늘 낯간지러웠다.


"아마겟돈 같은 이야기라면 지루할 정도군요. 인간이 죽을만 해서 죽었고, 그래서 신의 대리인으로 철충이 나타났다면 그게 어떻게 신입니까. 그저 시기가 나쁠 때 일어난 외계의 침략일 뿐입니다."


"그래. 철충이 진짜 신의 사자 같은 것이라면 좀 더 일찍 찾아와도 됐겠지. 그렇지만 조금 다른 쪽 이야기를 하고 싶었네. 예를 들면 자네와 나의 이야기 말일세."


그와 동등하게 묶이는 것이 불편했다. 인간혐오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것만으로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었지만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은 중요했다. 최후의 인류. 그것이 오르카 호의 원동력이니. 내가 대답하지 않자 그는 내 표정을 살피고는 입을 열었다.


"자네의 이야기를 들었네. 최후의 인류이자 상냥한 남자. 그리고 유능한 사령관이란 것까지 말야. 호위해주던 브라우니들이 자네의 이야기를 아주 좋아하더군. 예전이었다면 꿈도 못 꿀 시대라고. 천재적인 세심한 지휘로 여태 사망자가 없었다라는 것도.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 않나? 자네는 멸망했다던 인류에서 기억상실 상태로 콘스탄챠에게 발견되었고, 어째서인지 대 철충에 대한 전술을 알고 있었네. 확률적으로 봤을때 보통 이건 우연이라고 보기 힘들지."


애써 잊고 있던 의구심을 끄집어낸다. 철충의 언어와 별의 아이, 에바. 당장 눈 앞의 위기를 처리하기 바쁜 나날에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미뤄둔 채였지만 그의 입에서 듣고 싶진 않았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신이 절 보냈다는 겁니까?"


"그래. 철충을 상대하라고 지나치게 완벽한 초인인 자네를 보낸거야. 신은 아니고, 있다면 외부 세력에서 말일세. 아마 나도 같은 놈들이 보냈겠지."


그는 아주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치 숨겨져왔던 음모를 목숨걸고 말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이는 결연한 태도로. 분노를 넘어 허탈함이 느껴진다. 이런 바보 같은 이야기를 진지한 얼굴로 하고 있다니 지나치게 경계했던 자신이 우스워질 정도였다.


"하. 그렇군요. 좋습니다. 그렇다고 칩시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제 부대원들만 안전할 수 있다면 다른 건 모두 후순위입니다. 신이나 그 비슷한 것이 있어 제가 놀아나고 있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전 제 할 일을 열심히 할테니까요. 그렇지만 당신은 어떻습니까? 우리 둘 다 목적을 띄고 나타난 것이라면 나름 짐작 가는 것은 있어 보이는군요. 당신에게도 무슨 특별한 능력이라도 있으십니까?"


빈정거리는 것을 참지 않았다. 언제는지 끝장낼 수 있는 상대. 살기 위해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모습이 우습기도 했고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해서 비웃음에 입꼬리가 느슨해진다. 


"내가 그들이라면 지금 같은 모습을 기대했을걸세. 모든 것을 다 가진 자네의 권력을 빼앗을 찬탈자와 그걸 지키고 싶어하는 권력투쟁. 솔직히 모든 남자라면 질투할 삶을 보내고 있지 않나? 미녀들 사이에서 유능한 남성이라니."


책상을 집어치우고 그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호출기 너머로 리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대기하라고 답신을 보냈다.


"진정하게. 난 그런 것에 관심은 없어. 내가 바라는 건 이 세계를 구경하는 것 뿐이니까."


"오래 살고 싶으시다면 입 조심하는 것이 좋을겁니다."


의자위로 내던지듯 앉혀주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잠깐 동안 하얗게 질리던 모습은 그가 강인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고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폭력적인 행위에도 저항할 생각은 없이 비굴함을 보이는 전형적인 인간의 모습. 그는 반쯤 찢겨진 상의를 매만지다 고개를 들었다.


"자네의 권위에 도전할 생각은 조금도 없네. 난 그저 이 잠수함에서 지낼 수만 있으면 더 바라는 것은 없어. 필요하다면 일도 하면서 평범한 승객으로 말야."


여태 늘어놓던 그럴싸한 말들의 본심은 이것이었다. 보신주의라는 건 바이오로이드 사이엔 없었다.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쥐 죽은 듯 살겠다는 한심해보이는 이 모습은 오히려 신선하게 보였다. 바이오로이드 중에선 이런 성격은 없었기에 그럴까.


"알겠습니다. 그래도 인간분이니 나름의 편의는 봐드릴테지만 스스로 했던 말은 잘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혹여나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무례한 언행이라도 했다간 그 즉시 내쫓아버릴테니."


"명심하지."


아무 문제 없다. 여전히 자신은 모두에게 사랑받는 유능한 사령관이고 이자는 의미 없는 평병한 인간일 뿐이다. 문제가 생기면 그 때 처리해버리면 된다. 이렇게 간단한 일인데 초조해하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뒷정리는 콘스탄챠에게 맡겼다. 숙소로 안내해주었다는 보고와 함께 그의 감시를 맡은 인원에게서도 확인했다는 메시지가 들어온다.


처음보는 낯선 인간에게 멋대로 다뤄질 존재가 아닌 모두가 나의 소중한 바이오로이드들이다. 어디선가 은근한 만족감이 솟아오른다. 이겼다는 성취감일까. 


"아르망. 오늘 밤은 리앤과 함께 보낼거야. 스케줄 조정해줘."







NTR은 없을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