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작 설정과 다를 수 있읍니다.

* 알고 있던 캐릭터 성격이 이상해질 수 있읍니다.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37576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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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땅속의 씨앗으로부터 생명이 움트고, 피어 있는 동안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다가 다시 양분으로 돌아간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생명이 죽으면 또 다른 생명으로 환생한다는 불교의 윤회사상은 모든 것은 순환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모든 것이 멈춘 이 잔혹한 세상에 인간은 새로 피어나지 않는 것인가. 오직 한 명의 인간만을 사랑하게 된 한 소녀의 죽은 마음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발키리 언니 어서와!”

 

발할라의 숙소, 적갈색 머리의 소녀가 등장하자마자 새하얀 소녀가 달려와 그녀의 가슴팍에 안겼다. 갑작스러운 환대에 놀란 그녀는 짙은 금발에 목에 두른 목도리가 인상적인 소녀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에, 괜찮다는 무언의 표현이라도 하듯 머리 하나는 아래에 있는 하얀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지냈니, 알비스?”

“응! 이거 받아!”

 

알비스라고 불린 소녀가 발키리에게 내민 것은 초코바였다. 보급으로 나오는 흔한 초코바였지만, 여느 초코바와는 달리 한 쪽이 녹아있었다. 오랫동안 손에 꼭 쥐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했다.

 

“알비스 언니가 발키리 언니 줄 거라고 먹지도 않고 쭉 가지고 있었어요. 어차피 보급인데, 제가 챙겨드리면 될 걸.”

 

품에 안긴 소녀만큼이나 어린 흑청색 머리의 소녀가 녹아버린 초코바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발키리는 자기 손에 쥐어진 초코바를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무엇보다도 초코바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소녀가 타인을 위해 가장 좋아하는 것을 나누어 주었다.

 

“응, 고마워. 알비스.”

 

발키리는 손에 받아든 한 쪽이 녹아버린 초코바를 보고 마치 사랑의 형태와 같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한 쪽 보다 더 뜨겁다면, 자연히 녹는 것은 자기 자신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가 없다. 사랑이란 이토록 달콤하고도, 쌉싸래한 맛을 내는 것이다.

 

“몸은 괜찮나, 부관?”

 

레오나가 발키리에게 심심한 퇴원 축하 인사를 건넸다. 좀 더 다정하게 얘기하고 싶었지만 지휘관이란 위치와 ‘철혈’이란 수식어를 달고 있는 그녀의 입장 상 그러지는 못했다. 그런 레오나의 속정을 잘 알고 있을 평소의 발키리였지만, 사랑에 눈이 가려진 소녀에겐 그 뜻이 전해지지 않는 것 같았다.

 

“덕분에요.”

 

그저 겉치레뿐인 인사와 화답. 발키리의 ‘덕분에’라는 말엔, ‘자신이 없는 틈을 타 사령관의 시야에서 자신을 없애고 둘이서 붙어먹은 덕분에 쉴 수밖에 없었다’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평소와 같은 공간, 평소와 같은 사람들, 그리고 평소와도 같을 대화에서 유독 과민한 베라만이 심상치 않은 기류를 느끼고 자신의 목에 걸친 목도리를 동여매었다.

 

*

 

‘이야, 여기가 노다지구만.’

 

사령관은 스마트폰으로 철충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고 있었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듯, 앞으로 다가올 적들에 대한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정보를 찾기 전까지는 기억에 의존해 발키리를 혹사시켰지만, 이제는 사령관이 지휘관으로서 유능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는 의미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사령관은 스포일러를 싫어했다. 아니,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미래를 미리 아는 것이 중요했다. 어찌되었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장 속에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었다.

 

“주인님.”

“응, 왜 그러니 하치코?”

 

가만히 경호를 서던 하치코가 사령관을 불렀다. 평소 같았으면 늘 밝은 표정으로 늠름하게 옆에 서있었을 테지만, 꼬리와 귀가 축 처진 것이 심상치가 않았다.

 

“주인님은 페로를 싫어해요?”

“응? 그게 무슨 소리니?”

“있잖아요. 어제 페로가 많이 울었어요. 주인님이 자길 필요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고요. 진짜에요 주인님?”

“엥?”

 

사령관은 눈이 휘둥그레 해진 채 하치코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같은 자매들이기 때문일까, 진심으로 페로를 걱정하는 것 같았다. 사령관은 오히려 페로를 좋아했다. 다재다능하며, 한 치 흐트러짐 없이 꼿꼿하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몇 시간이고 경호를 서는 모습은 경외심이 들기까지 했다. 실제로 외모도 취향저격이기도 하고. 사근사근한 목소리도 예뻤다. 그런데 페로가 대체 왜?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난 그 누구도 싫어하지 않아. 날 싫어하는 친구들이 있을지는 몰라도.”

“아니에요! 저는 주인님을 좋아해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페로를 불러서 얘기나 해봐야겠네. 알려줘서 고마워.”

 

하치코는 그제야 미소를 되찾았다. 그리고 다시금 씩씩하게 경호를 하기 시작했다. 경호라고 해도, 가만히 옆에서 서있는 것뿐이지만. 페로 말대로 진짜 경호가 필요 없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령관이었다. 차라리 다른 일을 하거나, 휴식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령관이었다.

 

*

 

‘요정’이라는 아름다운 이미지의 걸맞게 페어리 시리즈의 자매들은 모두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오르카호 내 인공 정원을 관리하고 있었다. 수복실에 있던 다프네도 급한 환자가 없다면 정원사로서 다른 자매들과 함께 정원을 관리한다.

 

“후후후후, 히히히힛…!”

 

다프네의 최근 고민거리는 발키리의 상태였다. 사령관의 명령으로 전투에 나간 발키리가 매번 다쳐서 돌아오는 것이었다. 다프네는 사령관을 두려워했다. 발키리가 사령관에게 큰 잘못을 저질러 매번 전투에 끌려 나가 죽기 전까지 싸우고 오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마치 그녀의 1인실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수복실에서 넌지시 발키리에게 무언가 잘못한 것이 있는지 물어 본 적이 있었다.

 

“제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그녀는 늘 이런 식이었다. 사령관은 그렇게 발키리가 다쳐옴에도, 매번 병문안을 왔다. 참 고약한 괴롭힘이라 생각했다. 자기가 다치게 해놓고 일부러 정원에 찾아와 병문안용 꽃을 준비해달라는 것도. 물론 다프네는 궁금한 것을 입 밖에 절대 꺼내지 않았다. 말을 잘 못 꺼내다가는, 수복실에 누워있는 것은 자신이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최근 발키리의 상태가 심상치 않은 것과 별개로, 다프네가 자리를 비웠을 때 사령관이 페어리에게 요청해 준비한 꽃은, 여태껏 가져가던 꽃과는 달랐다. 다프네는 발키리가 직접 보여줘서 잘 알고 있었다. ‘실망’이라는 꽃말 까지도. 사령관의 괴롭힘이라면 ‘짝사랑’이라는 꽃말은 아닐 테고, ‘실망’이라는 꽃말로 선물한 것이 맞을 것이다.

 

실제로 발키리가 꽃을 받고 의미를 알자마자 발작 비슷한 것을 일으키기도 했고, 수액 걸이도 내던진 채 핏방울이 묻은 더러운 환자복을 입고 흐느끼며 수복실로 돌아온 발키리의 모습을 다프네는 기억한다.

 

‘주인님이 알고 그러셨을까? 도대체 왜?’

 

다프네의 의문은 도저히 풀리지 않았다. 괴롭힘이 끝났는지 최근 오르카호는 조용하다. 발키리의 출격 명령은 없어졌고 수복실엔 아무도 오지 않는다. 다시 정원사의 업무로 돌아와 꽃에 물을 주며 생각에 잠겨있던 다프네는 문제의 노란 국화 앞에서 서성이는 여성을 발견했다.

 

“히힛, 히히히힛!”

“…리제 언니?”

 

마치 자신과 똑 닮은 갈색 머리, 길쭉하게 뻗어있는 늘씬한 체형, 미인이란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생글생글 짓는 눈웃음, 그리고 나긋나긋한 목소리. 그녀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좋아했다. 가끔 저런 소리죽여 웃는 목소리를 제외하면.

 

최근 상태가 이상하여, 리제는 발키리에 이은 다프네의 새로운 걱정거리로 떠올랐다. 정원을 관리하면서 조용히 자기 할 일만 하는 그녀는 어느 날을 기점으로 저런 웃음소리를 내곤 하는데, 이따금 페어리 시리즈의 막내인 아쿠아가 공포에 질려 다프네에게 하소연을 하는 것이었다. 실로 조금 무섭긴 했다. 허밍도 아니고, 마치 정말 웃긴 것을 생각이라도 한다는 듯.

 

싹둑-

 

문제의 노란 국화에 앉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을 작은 벌레가 순식간에 거대한 가위에 잘려나갔다. 놀랍게도, 꽃에 앉은 벌레만 잘려나가고 꽃은 멀쩡한 모습이었다.

 

“예쁜 꽃에는 해충이 많이 몰려들어.”

“으응?”

 

다프네는 리제의 독백에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그녀가 말을 꺼낸 이유도, 가위를 분리해 눈을 시퍼렇게 뜨고 난도질을 하는 이유도, 그리고 왠지 모르게 희열에 찬듯한 상기된 볼을 보는 것도 다프네는 그 연유를 알지 못했다.

 

“해충은 전부 죽어야 해, 꽃을 해치니깐 말이야.”

“으, 응.”

“다프네, 주인님이 날더러 해충이라고 하셨어. 이게 무슨 뜻일까, 응? 응?”

“어, 그게….”

 

다프네는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그녀의 언니가 뭐라고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보다 사령관이 리제더러 해충이라 한 이유조차 모르겠다. 모든 것이 의문스럽다. 집요할 정도로 한 명을 괴롭히고, 한 명의 정원사에겐 해충이라는 멸칭을 붙였다. 도대체 왜, 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지만 그녀에게 명확한 답을 내려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후후후후, 주인님. 저는 해충이 아니라 익충이에요. 하지만 그것도 귀엽지 않아요. 아무도 예상 못하는 저희만의 애칭인가요? 그런가요? 그렇겠죠? 후후, 주인님이 그렇게 나를 특별히 생각할 줄이야…. 주인님은 제겐 꽃이고 저는 그런 주인님을 맴도는, 나는 사랑스런 꿀벌. 꿀벌이 좋겠네요. 주인님. 아아, 사랑스런 나의 주인님. 제가 해충들을 없애드릴게요….”

“어, 언니. 혹시 그 해충이란게….”

 

다프네의 말에 리제의 난무가 멈췄다. 벌레들이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우아하게 움직이는 다프네의 날개와 달리, 리제의 날개는 한시도 쉬지 않고 맹렬히 날갯짓하고 있었다. 마치 말벌처럼.

 

숨 막히는 정적 속에 맹렬한 날갯짓소리만이 났다. 리제는 고개를 살짝 돌려 새빨간 눈으로 다프네를 바라보았다. 다프네는 흠칫 놀랐으나 내색하지 않으며 물었다.

 

“언니, 혹시 주인님이 해충이라 한 건….”

“아아, 그거 말이지. 주인님이 날 보시면서 ‘네가 그 해충이구나?’라고 하셨어. 후후. 그게 무슨 의미일까. 다른 해충과 착각한 모양이야. 나는 해충이 아닌데 말이지. 응, 그래. 주인님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해충이 있는 게 분명해. 해충은 모두, 모두 없어져야만 해.”

 

리제는 다시 눈웃음을 지으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다프네의 살짝 흐트러진 밀짚모자를 제대로 씌워주었다.

 

“걱정 마. 우리 자매 중에는 ‘해충’이 아무도 없으니까. 아직까지는.”

“…아직?”

 

리제는 다프네의 짧은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말하는 해충, 그것은 말 그대로 해충이 아닌 사령관 주위의 여성들을 의미했다. 그리고 ‘아직’이란 단어는 무엇인지, 다프네는 몰랐으며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사령관과는 더 이상 연관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음, 여기는 대충 다 된 것 같네.”

 

리제는 그렇게 말하고는 특유의 빠른 날갯짓으로 다음 관리구역으로 넘어갔다. 그때 리제의 옷에서 수첩이 떨어지는 것을 발견한 다프네는 흙이 묻지 않게 공중에서 낚아채기에 성공했다.

 

개인적인 물건을 훔쳐보는 것은 실례지만 펼쳐진 것을 보지 않는 것은 불가능 했고, 빽빽이 적힌 글을 보자니 리제가 무엇을 적었는지도 궁금해졌기에 다프네는 수첩의 안을 엿보게 되었다.

 

[레오나 - 싫다는 주인님을 품에 안김 6초]

[발키리 - 두려워하는 주인님과 눈 맞춤 2초]

[미호 - 방심한 주인님을 뒤에서 기습해 끌어안고는 싫어하는 초콜릿을 줌]

 

수첩에는 오르카호 안의 인원들이 사령관과 접촉이 있었던 내역들을 모두 적혀있었다. 특히 사령관의 동선은 초단위로 적혀 있는 페이지도 있었고, 이름이 적힌 여성들의 옆엔 의미 모를 숫자가 적혀 있었다. 그 와중에도 접촉 시간에 따라 줄을 그어 지우고 새로운 숫자가 매겨지곤 했다.

 

‘뭐, 뭐야 이게.’

 

다프네는 등에 식은땀이 나는 것을 느끼면서 수첩을 덮었다. 보면 안 되는 것을 본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보면 안 되는 것은 수첩 말고도 다프네의 눈앞에 와있었다.

 

“봤어?”

 

눈웃음을 짓고 있는 붉은 눈의 귀신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하얀 장갑을 낀 가느다란 검지가 귀신의 입술에 올라왔다. 다프네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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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뉴비가 라오 세계에 떨어지면 어떨까~ 하고 썼다가,
스토리 스킵충인데 스토리 정독하고 와도 캐릭터 등장시기가 존나 헷갈림.
스토리에 안 등장하는 애들이 스킨 팔던 이벤시즌만 되면 원래 있었다면서 귀신같이 튀어나오거나...
그냥 무시하기로 했음.
맨 상단에 박아넣은 무적의 문장.
원작 설정과 다를 수 있읍니다 ㄹㅇㅋㅋ

좋은 주말 보내는 레후. 피드백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