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오르카에서는 중상자가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만 지금껏 수많은 부상자들이 수복실에서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다시 자신의 업무에 임하고는 했다. 이 이야기는 과거부터 쌓여온 그 기록들의 편린이다. 



우우...하치코는 이번에도 실패해버렸어요...


하치코 양, 너무 낙담하지 마세요.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답니다.


 

하지만 하치코는 모두를 지키는 방패인데...이렇게 쓰러지면 다음에는 아무도 하치코를 믿지 않을 거에요...


그럴리가요. 하치코 양에게 보호받는 분들은 모두 하치코 양의 활약에 감사하고 있어요.


 

정말요...? 거짓말 하시는 거 아니죠?


그럼요. 이번에도 하치코 양께 도움을 받으셨던 용 님께서 감사의 뜻을 전해달라고 하셨는걸요.


하치코 양. 하치코 양이 전장에서 보여주는 용기와 헌신은 정말 대단한 거에요.


그러니 자신을 너무 낮춰서 보지 말아주세요. 오르카의 모두들은 하치코 양의 실력을 인정하고, 하치코 양에게 도움받고 싶어하니까요.


에헤헤...갑자기 잔뜩 칭찬받으니 부끄러워요. 다프네 언니의 말을 들으니 조금쯤 용기가 나는 것 같네요.


하치코 양이 지금까지 열심히 한 일에 대한 정당한 평가인걸요. 하치코 양은 정말 잘 해주고 있어요. 그러니 다른 분들이 하치코 양을 믿지 못할 것 같다는 걱정은 전혀 하실 필요가 없답니다. 아시겠죠?


네! 고마워요! 다프네 언니! 하치코, 부상이 다 낫고 나면 다시 열심히 해볼게요!


후후훗. 하치코 양이 기운을 차린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그러면 잠시만 쉬고 계세요. 저녁을 가져다 드릴게요.






'휴우...저도 아직 멀었군요. 조금 더 집중했다면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을텐데. 퇴원 후에는 훈련양을 조금 더 늘리는 편이 좋겠네요.'


발키리 양? 회복의 경과는 순조로운데 혹시 불편하신 부분은 없으신가요?


아. 네. 괜찮습니다. 당장 내일이라도 훈련에 임할 수 있을 것 같군요.


발키리 양? 무리하시면 안 돼요. 퇴원하시고 또 전처럼 오버워크를 하실 생각은 아니시죠?


어...음...그...훈련양이 조금 부족한 것 같아서 늘릴 계획이었습니다만...


그러면 안 돼요! 닥터 양과 확인해봤을 때 발키리 양이 이번에 부상당하신 이유는 훈련 부족이 아니라 피로 누적이에요. 좀 더 휴식시간을 늘리고 훈련양을 줄여주세요.


하...하지만 그러면...전보다 성과를 올리기가 힘들어집니다...각하를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발키리 양? 주제넘은 참견일지도 모르겠지만...주인님의 성격은 잘 알고 계시죠?


아...네. 각하께서는 모두를 소중히 여기시고 늘 챙겨주고 싶어하시죠. 정말 상냥한 분이라는 것을 실감하곤 합니다.


맞아요. 발키리 양이 성과를 올리면 기뻐하실 분이지만, 동시에 발키리 양이 부상을 입으시면 굉장히 슬퍼하실 분이랍니다. 발키리 양도 기쁨과 슬픔 중에 어느 쪽이 더 클지는......아시죠?


제 생각이 짧았군요. 죄송합니다. 다프네 양.


아...아니에요. 제가 주제넘게 참견한 건데...들어주셔서 감사하죠.


대신...다 나으신 뒤에도 너무 무리하지 않도록 조금 더 신경써주세요? 이 정도 부탁은 괜찮죠?


네. 알겠습니다. 제 몸이 각하의 소유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후후훗. 저도 발키리 양이 수복실에 계신 동안 최선을 다해서 간호할게요. 수복실을 나가실 때 100% 이상의 컨디션을 찾으실 수 있게요.


감사합니다. 다프네 양. 절 깨우쳐주신 부분도...저를 열심히 간호해주시는 부분도 모두...정말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환자가 최선을 다해서 회복에 집중하시면 그게 저에게는 최고의 보답이랍니다~ 후후훗. 그리고 이게 제 일이니까 너무 부담갖지 않으셔도 돼요. 부탁하실 게 있다면 얼마든지 말씀해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으으...부상은 거의 나아가지만...내가 다시 전장터에 설 수 있을까? 다시 나가자마자 철충의 공격에 죽어버리는 건 아닐까?'


'부함장님도...바보 네리도...꼬맹이 테티스도...모두 내가 지켜줘야 하는데...무서워...내가 곧장 죽어버리고 모두가 잘못될까봐......'


'너무 불안해...흑...나 어떻게 해...난 다른 누구보다도 우수한 대원이어야 하는데...점점 자신이 없어져...흑흑......'


..........


히익?! 다프네?! 뭐......뭐야...갑자기 왜 사람을 끌어안고 그래?! 지금까지 내 모습 다 본 거 아냐?! 당장 잊어버려!


운디네 양. 가끔 힘들 때는...우는 것도 도움이 돼요.


우...울긴 누가 울었다고 그래...흑......아으...왜 갑자기...흑흑..........

'뭐...뭐야...왜 눈물이 안 멈춰...남 앞에서 약한 모습 보이기 싫은데 왜...!'


운디네 양. 운디네 양은 지금 환자고, 저는 간호사랍니다. 아픈 사람은 가끔씩 약해지기도 하는 법이에요. 그냥...스스로를 억제하지 말고 편하게 놔주세요.


으윽....흑....뭐야.....다프네......아는 척이나 하고....흑....바보....흑흑......으아아......


괜찮아요. 운디네 양. 제가 곁에 있어요. 괜찮아요.


으아아아아앙~!!!!!!


(잠시 후)


흑...훌쩍...흡...후우......


운디네 양? 조금 진정되셨나요? 여기 손수건이요.


아으...고...고마워...나...나도 참...괜히 밤이 되니까 감수성이 예민해져서...


운디네 양?


어...? 응...? 왜...?


원래 처음으로 중상을 입으신 분들 중에는 정신적으로도 충격을 크게 받는 경우가 많답니다. 전과는 달리 적이 극도로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고, 다시 전장에 복귀하더라도 제대로 싸울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죠.


뭐......뭐야...다 알고 있었어...?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저는 제가 무력하다는 것을 느끼고는 해요. 몸의 치료는 도와드릴 수 있지만 마음은...어떻게 치료해드려야 할지 모르겠는걸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힘들어 하시는 분들의 곁에서 혼자가 아니라고 위로해드리는 것 뿐이랍니다. 모두들 용기를 내서 자신을 덮쳐오는 두려움을 이겨내려고 애쓰시는데...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별로 도움도 안 되면서 제가 너무 건방지다고 생각하셔도 좋아요. 운디네 양. 운디네 양의 곁에는 제가 있어요. 부디...함께 두려움을 이겨냈으면 좋겠어요...


...........


............


흥! 두렵기는 누가 두렵다고 그래? 꼬맹이 테티스에게 듣고 다프네를 조금 놀리고 싶어서 연기한 것 뿐이거든!


운디네 양...


나는 운디네야! 뭐, 멸망 전에는 아주 조오오오~금 인기가 없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호라이즌 최고의 수비대원이거든! 그런 내가 철충 따위가 무서워서 겁먹는다니 그런 일이 있을리가 없지! 이번에는 실수했지만 다음에는 내 진짜 실력을 보여줄 생각에 벌써부터 몸이 떨린다고!


죄송해요. 제가 운디네 양의 진짜 생각도 모르고 괜히 과민반응 했네요. 다만...제가 혼자서 잘 못 자는 성격이라...운디네 양의 침대 옆에서 자도 될까요...?


후후훗~ 다프네는 아직도 어린애 같은 면이 있구나? 마음대로 해. 나는 그 정도 포용력은 있는 숙녀니까.


고마워요. 운디네 양.


(운디네를 안고 있던 몸을 일으켜 운디네의 침대 옆에 의자를 가져와 앉아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다프네. 그렇게 한창 시간이 흐르고...)


저기...다프네...?


네? 운디네 양? 뭔가 부탁하실 게 있나요?


아냐...그냥.....아까는.....고마웠어.....다프네의 품 속......따뜻하더라......


후후훗. 아니에요. 운디네 양이 기운을 차리신 것 같아서 제가 더 기쁜걸요.


으응...몰라! 나 이제 잘게! 다프네도 잘 자!


네. 안녕히 주무세요. 운디네 양.





으응...언니...? 제가...왜 침대에...?


다프네 이 바보. 바이오로이드가 과로로 쓰러진다는게 말이 돼? 너 대체 얼마나 무리한 거야?


아...그...다른 분들을 돌보는게 기뻐서.....저도 모르게 무리했나봐요...


앞으로 3일간 절대 안정. 닥터의 말이니까 얌전히 누워있어. 마침 어제부로 다들 퇴원했으니까 수복실은 걱정하지 말고.


아...그...죄송해요. 언니...괜히 폐를 끼쳐서...


그런 말 하지마. 


나도 네 언니고, 메인은 아니지만 수복실의 간호사기도 하니까. 이럴 때는 좀 의지해도 돼. 알았어?


고마워요...리제 언니...


(환자가 다프네 하나인 만큼 꼼꼼히 챙겨주는 리제)


후훗. 언니에게 잔뜩 보살핌받으니까...이렇게 계속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드는데요?


흥, 3일 지나도 못 일어나면 그 후로는 국물도 없을 줄 알아. 대신 그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돌봐줄게.


고마워요. 언니. 정말 기뻐요.


얘는...바보처럼 고맙다는 말 밖에 못 하니? 다른 부탁 할 게 있으면 얼마든지 해. 너도 환자들 돌볼 때 그렇게 하잖아. 나도 간호사니까. 편하게 의지해.


(똑똑똑)


어...누구세...주인님?! 안녕하세요? 수복실에는 어쩐 일로?


아...오랜만에 시찰 돌다가 다프네가 앓아누웠다길래 병문안 겸 와봤어. 다프네는 안에 있니?


네. 안에 있어요. 제가 잘 돌보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후후후. 리제도 역시 훌륭한 간호사구나. 착하네.

(손을 올려서 리제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하우우...주인님의 손...따뜻해요......


(그렇게 리제를 쓰다듬으며 다프네의 침대로 향하는 두 사람)


다프네. 몸은 괜찮니?


주...주인님?! 여기는 어쩐 일로...?


응. 시찰 겸 돌아보다가 다프네 이야기를 듣고 잠깐 들렀어. 너무 무리했다며? 조심해야지.


아으...제가 컨디션 관리를 제대로 못한 탓인걸요...부끄러워요...


그래도 주인님이 오셨는데 앉아서 맞이하는게 좋겠지? 내가 앉을 수 있게 도와줄게. 읏차.


아...언니...고마워요...


다프네, 오늘은 아프니까 특별 서비스야. 주인님과 단 둘이 있을 수 있게 잠깐 자리를 비워줄게.


주인님. 다프네가 갈아입을 옷을 가지러 숙소에 잠깐 다녀와도 될까요? 10분 안에는 올게요.


어. 그래 마침 잘 됐네. 다프네는 내가 봐주고 있을게.


아...그...

'언니...고마워요...'


다프네. 어디 불편한 곳은 없어?


지금은 그냥 몸에 힘이 없을 뿐이에요. 아픈 곳도 없고 괜찮답니다.


 

닥터에게는 조금 자세히 들어뒀는데...환자들 생기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간호했다며?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니?


그게......가끔씩......몸 뿐만 아니라 마음을 다치시는 환자들도 계셔서...그런 분들은 밤에 많이 힘들어 하시거든요...조금이라도 힘이 되어드리고 싶어서...


그리고...저는 전투에 나가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까...목숨 걸고 열심히 해주시는 분들께 최선을 다해서 봉사하고 싶어서 무리했나봐요...


 

음...다프네의 입장도 이해는 가네. 하지만...다프네. 예전에 네가 발키리에게 했던 이야기 기억해?


네? 발키리 양이요...? 그 때...무리하지 말라고...


 

그래. 이번에 내가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똑같아. 전투원들이 크게 다쳐도 슬프지만, 나는 너희같은 비전투원도 똑같이 사랑해. 다프네가 앞으로도 과로로 힘들어하면 나는 똑같이 슬퍼할거야.


죄송해요. 주인님...괜히 저 때문에 걱정하시게 만들어서...


 

다프네? 내 눈을 봐줄래?


아...네...이렇게요...?


 

나는 오르카의 모두를 가능하면 똑같이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하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게 딱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잖아? 다프네의 착한 마음과 상냥한 성격, 자매들에게 헌신적인 봉사를 하는 모습을 느낄 때마다 다프네를 향한 내 사랑이 점점 커져가.


주...주인님...


다프네. 나는 너의 아름다운 외모도, 외모보다도 더욱 아름다운 마음씨도 모두 사랑해. 그리고...앞으로는 내 사랑하는 사람이 무리해서 힘들어하는 걸 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 다프네는 어떻게 생각해?


그...그런 방식은...치사해요...주인님의 말씀을.....거부할 수가 없는걸요...


 

싫어?


아니요...너무 기뻐요...그리고 감사해요. 주인님. 사랑해요. 제 목숨보다도...세상 그 무엇보다도...


고마워. 다프네. 나도 사랑해. 다른 누구보다 사랑한다고는 말할 수는 없어서 미안하지만...난 틀림없이 다프네를 사랑해. 


그걸로 충분해요...그냥...주인님의 마음 속 아주 작은 공간이라도...제가 들어갈 곳이 있다면...저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답니다.


 

다프네...


주인님...


(두 사람은 누가 먼저인지 모르게 서로를 끌어 안고 리제가 올 때까지 말 없이 서로의 온기와 마음을 교환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