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작 설정과 다를 수 있읍니다.

* 알고 있던 캐릭터 성격이 이상해질 수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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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효과’라는 말이 있다. 아주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아주 사소한 시작이 예상치 못한 아주 커다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의미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나비효과의 개념은 수치해석에서 온 개념으로 아무도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데 있다.

 

가령, 인류 최후의 인간인 사령관 한 명 덕분에 인류재건을 꿈꾼다는 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미래관측이다. 미래는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의 모습일 뿐이다. 이에 불굴의 마리는 고뇌하다 어찌 되었든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결론을 내었다. 실제로 오르카호 내의 분위기는 마치 처음 사령관이 왔을 때처럼 다시금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흠.”

 

‘승리’라는 경례 구호가 적힌 종이가 액자에 갇혀 벽 상단에 걸려있었고, 바로 그 아래 마리가 굳은 얼굴로 작금의 사태에 대한 보고서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부하들을 퇴각시키고 희생을 각오하여 시간을 벌 요량으로 혼자 후위에 섰던 마리는 현재의 사령관에게 구해졌다. 새로운 빛을 본 마리는 그 후로도 약진을 꿈꿨으나, 마지막 인류는 어느덧 그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스틸라인의 병사가 죽었다. 사령관의 지휘로 인해서. 부하의 죽음에 사령관은 머리를 감싸 쥐고 괴로워했다. 옆에서 그것을 지켜본 마리는 그런 사령관을 안타까워했다. 이 인간은 어찌하여 바이오로이드의 죽음에 이리도 슬퍼하는가. 부하의 죽음에 마리의 가슴도 찢어질 것 같았으나 지휘관의 위치라는 것은 감정에 휘둘리면 안 되는 자리이다.

 

자신이 무너지면 도미노처럼 모든 스틸라인의 부대원들이 무너질 것이다. 부하가 무너져도 언제나 자신만은 꿋꿋이 서 있어야 한다. 그것이 ‘불굴’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의 사명이다.

 

사령관은 심적으로 무너져있었다. 그는 좋은 인간일 순 있었지만 좋은 지휘관은 아니었다. 굳은 심지, 냉철한 판단, 그리고 부하들의 목숨과 목표의 성취를 저울에 매달 줄 아는 사람이 그 자질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때로는 그 저울에 자신의 목숨이 올라가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사령관은 좋은 지휘관이 아니었다. 그는 지나치게 바이오로이드들의 안전을 중시했다.

 

“각하, 가시에 찔리지 않고서는 장미꽃을 꺾을 수 없습니다.”

“응….”

 

지휘관들의 여러 번의 권유, 여러 번의 회유가 이루어졌지만 사령관의 지휘명령은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어느 날을 기점으로 발키리가 모든 전투를 떠맡게 되었다. 그 누구도 동행하는 일이 없이, 혼자 쓸쓸히. 

 

마리는 레오나가 사령관의 심기를 거스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가혹한 사령관은 지휘관의 실수를 부하의 대리 처벌이란 형태로 대신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서야 발키리가 혼자서 고생하는 것은 말이 되질 않는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마리는 서둘러 지휘관들을 소집했다. 누군가는 움직여야 했다. 그렇기에 마리는 각 부대의 지휘관을 불러 모아 회의를 열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었다.

 

“하지만 이건 마치…….”

 

회의를 마친 다음 날, 이상하게도 출격 명령이 잦아졌다. 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이 전투에 참여했고, 수복실에 갈 필요도 없는 경상 수준에 그친 것을 제외하고는 사상자는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기에 마리의 입장이 난처하게 되었다.

 

“이거야 마치 반역의 형태가 아닌가…….”

 

사령관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던 칸과 레오나와 달리, 마리와 메이의 경우 대놓고 월권행위를 하겠다는 것을 나머지 두 지휘관 앞에 선고한 셈이었다.

 

‘레오나 소장은 이런 일을 미리 예견이라도 한 것인가. 자신의 부관이 가장 많이 다쳤을 텐데도 그런 판단을 할 수가 있다고? 그렇다면, 발키리 부관 이후 다음 표적은 스틸라인 부대가 될지도 모른다….’

 

마리는 ‘철혈’ 지휘관의 식견에 혀를 내두르며 서둘러 보고서를 챙겼다. 시간이 지나면 되돌릴 시간도 없을지도 모른다. 무조건 가서 무릎 꿇고 고해성사를 하는 수밖에는.

 

*

 

“죄송합니다, 각하. 부디 자비를.”

“왜, 왜그래. 어서 일어나.”

“안됩니다! 지당한 벌을 내려 주십시오!”

 

나는 오해를 풀기 위해 페로를 불렀고, 페로는 오늘의 경호와 부관의 역할을 겸하고 있었다. 오늘 부터는 많이 바빠질 것이었기에, 컴패니언 중에서는 페로가 그나마 꼼꼼하고 일처리를 잘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공략을 보고 외웠던 부대 편성으로 여태껏 두려움에 가지 못했던 지역의 개척을 위해 출격 명령을 내리고 있을 때, 마리가 찾아와 보고서를 전달하고는 맨바닥에 절을 했다.

 

페로는 내게 전투 결과 보고서를 전달하면서도 한 부대의 지휘관이 바닥에 넙죽 엎드리는 것을 보고 공중에서 종이를 든 채로 손이 굳어버렸다. 나 또한 바닐라가 갖다 준 커피를 마시다가도 뱉을 뻔 했으니 말이다.

 

“대체 왜 그래, 네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벌을! 벌을 내려주십시오!”

 

계속해서 벌을 내려달라는 마리. 내가 커뮤니티에서 본 마리의 이미지는 어린 남자아이 취향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늠름한 군인의 모습이었는데, 어째서인지 내게 징벌을 원하고 있다. 마리가 마조히스트였던 건가, 내가 알기론 리리스가 그랬던 것 같은데. 어쨌든 작금의 사태에 대한 해결이 필요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레오나가 회의 어쩌고 했던 것 같은데, 그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사실 의도도 불온하지 않고, 가만히 있던 내가 잘못한 것이기에 별 생각 없었는데, 그녀는 어떠한 형태로도 처벌을 원하고 나는 없는 죄를 만들어내서 처벌하고 싶진 않았다.

 

“역시, 무늬만 지휘관은 아닌 것 같네. 간단한 시험이었어. 의문이 들었거든, 갑자기 총사령관의 자리에 앉게 된 나를 너희들이 인정할 수 있을까 해서 말이야. 레오나에게 지휘관들에 대해 조사해 달라고 지시를 내렸지만, 이렇게 보기 좋게 걸려들 줄이야.”

“…죄송합니다.”

“하지만 곧바로 의중을 알아채고 이렇게 직접 찾아왔으니, 간신히 합격점을 주겠다. 시험은 통과야, 마리. 이제 난, 너를 진실로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일어나도 좋다.”

 

내 말에 마리는 감명한 듯 연신 감사하다며 일어나서도 고개를 숙였다. 솔직히 말해서 현재 오르카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모르겠다. 어째서인지 게임 스토리와는 조금 다른 캐릭터성을 보여주는 녀석들이 있다. 

 

생각보다 금방 친해진 레오나가 그랬고, 현재의 불안정한 마리가 그랬으며, 온순한 리제가 그랬다. 누가 리제더러 하드 얀데레라고 했던 것 같은데, 페어리에 찾아갔더니 내게 발키리의 병문안 꽃을 준비해준 것도 리제였다. 조금의 편집적인 기질도 보이지 않았고 눈웃음을 지으며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솔직히 첫 눈에 반해버릴 만큼.

 

“보고서는 따로 읽어 볼게. 나가봐도 좋아.”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각하.”

 

나는 마리의 배웅을 하며 그녀가 보내준 보고서를 읽으려는 찰나,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경호원 겸 일일 부관인 페로였다.

 

“주인님…. 죄송, 히끅, 합니다.”

 

넌 또 뭐가 문제야.

 

*

 

페로는 하치코의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치코가 경호를 서며 페로에 관한 얘기를 했다는 것이었다. 부끄럽게도 하치코는 페로가 몰래 숨죽여 우는 것도 사령관에게 다 일러바친 것 같았다.

 

“페로, 주인님이 내일 보자고 하셨어.”

“어, 하지만 내일은 내가 아니라….”

“페로가 보고 싶다 하셨어!”

 

페로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 사령관이 자신을 필요 없다 여긴 줄 알았더니 갑자기 또 찾는다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몰랐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녀의 언니가 돌아왔을 때 경호대장의 대리라는 위치만큼은 확실히 하고 있어야 했다. 그렇기에 페로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했다.

 

다음 날, 페로는 사령관과 독대했다. 사령관은 페로와 대화를 하면서도 절대 그녀의 부끄러운 기억을 들춰내지 않았다. 페로는 자신의 주인님이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페로를 의지를 많이 한다며 꼭 덧붙였다. 이런 분위기에선 페로의 맏언니는 꼭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했다. 하지만 언니의 모습을 투영한 사령관은 페로에게 전혀 접촉하지 않았다.

 

“오늘부터 바빠질 거야. 경호 임무에 부관의 역할까지 해야 하는데 괜찮겠어?”

“네 주인님, 맡겨주세요.”

 

간단한 면담 후 하루 일과가 시작되었다. 사령관은 평소와 달리 전투 결과 보고서를 이리저리 뒤적이면서 바쁘게 지휘하기 시작했다. 페로는 편성된 부대들의 탐색 시간과 자원의 시간 대비 효율표를 작성하고, 동시에 틈틈이 몰려오는 부대의 복귀와 출격 명령을 하달해야 했다.

 

‘평소와는 다르셔.’

 

페로의 눈에는 마치 유능한 맏언니가 저 자리에 앉아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녀가 실종된 상태로 아직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에 잠시 울적해졌다. 하지만 감상에 젖어들 시간 따윈 없었다. 바쁘게 손을 움직여야 했으니까. 그때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각하, 스틸라인의 마리입니다.”

 

마리는 다짜고짜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처벌을 원했다. 전후사정을 모르는 페로는 한 부대의 지휘관이 달려와 무릎을 꿇을 정도의 큰 잘못을 그녀가 저질렀다는 사실에 눈이 커다래졌다. 그리고 사령관이 마리를 일부러 시험에 들게 했다는 것을 듣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혹시 나도 뭔가 시험에 든 건 아닐까. 필요 없다고 하셨다가 갑자기 업무량이 늘고 굳이 나를 투입시키셨다는 것이.’

 

불안감이 페로의 가슴속에 뿌리를 내렸다. 사령관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페로는 몰랐다. 사실 사령관이 그녀에게 원한 것은 빠른 일처리 뿐이었지만, 그런 것은 유감스럽게도 페로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저 자신이 뭔가 잘못을 했고, 사령관이 그런 페로를 시험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뭐지, 언니 보고 싶다고 울었다고? 발할라의 대장을 원망했던 것? 아니면 업무량을 버티는 것을 보려고 하시는 건가? 표정관리라도 제대로 못하면 컴패니언은 끝이다….’

 

페로는 불안감에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 페로에게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아주 사소한 사령관의 행동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는 것이 단점이었다.

 

“주인님…. 죄송, 히끅, 합니다.”

 

이 날 페로의 눈물로 모든 업무가 잠시 멈추고, 사령관의 위로는 페로에겐 또 다른 시험이라 인식되었다. 이 날 사령관은 페로의 눈물을 그치는데 온 정신을 쏟아야 했다.

 

*

 

“휴.”

 

사령관은 빈 복도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간만에 유능한 모습을 보이려 했더니, 페로를 울렸다. 사령관은 라스트 오리진 세계관으로 오고 나서 많은 일을 겪었다. 누군가의 죽음도 목격하고, 누구보다 차가워 보이는 여성에게 따뜻한 위로를 받기도 하고, 누군가의 미움을 사기도, 누군가를 울리기도 하였다. 그런 그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분명히 내게 호감이 조금씩 있어야 하는데.”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사령관은 오르카호 내에서 공포의 대상이 되어있었다. 불굴의 마리를 무릎 꿇린 남자. 페로를 울린 남자. 그리고 발키리의 중노동. 레오나는 오해를 풀고 사령관을 이해해 줬다지만, 소문이라는 것이 으레 퍼질수록 내용이 변질되곤 한다. 마치 나비의 날갯짓이 토네이도를 일으킨 것처럼.

 

사령관은 마리의 보고서를 읽던 중 그 자리에서 우뚝 서고 말았다. 보고서의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자신이 처한 상황이 이상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바이오로이드들의 이상한 캐릭터성, 그리고 사령관에 대한 호감도. 게임이 아닌 현실이 되어버린 것은 어쩌면 게임 스토리에, 바이오로이드들의 성격 형성에 심각한 변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 사령관의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잡념을 떨쳐버리고 본 마리의 보고서는 역시 한 부대의 지휘관이 보낸 형식으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마치 현생에 있을 때 군대에서 많이 본, 아찔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보고서였다.

 

“연구소, 프레데터라…. 음? 아, 다프네!”

“아…주인님….”

“여기서 다 만나네. 복장을 보니 수복실에서 대기 한 거야? 오늘 환자는 없었지?”

“아, 예….”

“앞으로는 점점 좋아질 거야. 다프네 덕분에 발키리도 일찍 나았고.”

 

다프네는 사령관이 말하는 도중에 이리저리 눈을 굴려 무언가를 찾는 것 같았다. 사령관은 다프네가 대화를 불편해하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지만, 게임의 설정처럼 모두가 자신을 좋아할 거란 기대에 애써 다프네의 불안감을 무시했다. 그리고 사령관의 대화가 길어지자, 다프네는 끝내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가 볼 데가 있어서요!”

“아, 응, 그래. 그, 붙잡아 둬서 미안하네….”

“…….”

 

사령관은 다프네의 큰 목소리에 조금 놀란듯하였다. 그리고는 살짝 의기소침해진 채 잡아둬서 미안하다며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다프네는 축 처진 사령관의 어깨가 안쓰러웠지만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 생각하고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때 다프네의 뒤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일과시간이 지난 취침시간, 소등한 오르카호의 복도. 화장실을 가는 사람이나, 야간 경비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잠든 시각. 어둠속에서 새빨간 안광이 그녀의 뒤에서 흉흉하게 빛나고 있었다.

 

“30초.”

“어, 언니, 그게 아니라.”

 

리제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다프네의 어깨를 뒤에서 감싸 쥐었다. 다프네는 리제의 손에 어깨를 잡힌 채 떨고만 있었다. 인간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의 리제는 상냥한 언니였는데, 인간이 나타나고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모든 건 주인님과의 극적인 만남을 위해서야, 다프네. 부탁인데, 해충이 되지 말아줘. 알겠지?”

 

다프네는 고개를 격렬히 끄덕였다. 리제는 웃으면서 다프네의 머릿결을 쓸어 넘겼다.

 

“착하다, 내 동생. 계속 착한채로 남아있으렴.

머리 부터 아주 천천히.
 
주인님은 착한 리제를 더 좋아할 거기 때문이야.”

볼을 지나 목으로.

그렇지?”

다프네의 목에서 리제의 손이 멈췄다. 멈춘 손가락은 그곳에서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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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거 어렵다. 평소처럼 리앤 섹섹보 거리면서 걍 가만히 주는거 받아 먹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