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설정과 다를 수 있음

*첫 대사와 마지막 대사 ◀ 이거 보고 쓰는 3차 창작

*좀 맵다. 해?피 엔딩

*그 외 그동안 쓴 문학 총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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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각오하면 많은 것들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동안 무엇을 위해 살아왔고, 가장 소중했던 것들은 무엇일까.


푸른 하늘을 보며 나는 과거를 회상했다.

가장 소중한, 가장 사랑하는 그의 얼굴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이것이 주마등 이라는 녀석일까.





"뭐야? 그 표정은? 이 몸이 왔는데 환영 파티는 준비되어 있겠지?"


나는 앞에 있는 인간 남자에게 나는 최대한 도도한 표정을 유지하며 말했었다.

이미 멸망해버린 세상, 그 세상에 홀로 남은 눈 앞의 이 남자. 그는 내게 악수를

청하며 첫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아... 그, 미안.. 지금 우리들 처지가 좋지 못해서.. 파, 파티는..."


악수를 무시하고 심판의 옥좌에 앉아 그를 노려보자 그는 멋쩍은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차라리 내 무례에 화를 내며 돌아갔으면 그를 더 신뢰했었을까.


"정말 미안해 메이.. 다음에 환영 파티를 준비해둘게."


"흥! 괜찮아. 딱 봐도 그럴 것 같았으니."


이제와 생각해 보면 참 유쾌하다 말할 수 없는 첫 만남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이후로도

내게 신뢰를 얻지 못했었다.


병사들의 식사를 개선하겠다고 모든 지휘관을 소집해 삽질을 한 것부터

그 후 진행된 괴상한 대회들, 그리고 기본적인 지휘도 잘 하지 못해 삽질을 하는 등.


"하아.. 저게 사령관인가."


정말이지 한심한 남자. 그저 유일하게 남은 인간 이라는 것 말고는 좋은 점이란 보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메이! 혹시 오늘 시간 괜찮니?"


"무슨 일이야?"


"그.. 너에게 배우고 싶은 것들이 있어서.. 부탁해!"


"뭐?"


그는 모자란 것들을 솔직히 수용하고 배우려 노력하는 남자였다. 멸망 전 인간들과

겪었던 개체들의 데이터들을 살펴보면 인간이란 자신의 실패를 감추고, 자신의 실수를

다른 이에게 떠넘기는 족속들이 많이 있었다고 했다.


"내가 가르쳐 달라고? 진심이야?"


"응! 꼭 메이에게 부탁하고 싶어서.."


"도대체 왜? 마리나 레오나에게 부탁해도 되잖아. 아니면 칸한테 부탁하던가.."


그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다른 이들에게 배움을 청하는 마음이 넓은 남자였다.

그리고, 유약하게 보였던 그의 태도는 모두를 품는 아량으로 느껴졌다.


"단순히 배우는 것만 생각하면 그래도 되겠지만.. 난 메이랑 친해지고 싶어."


그는 사령관의 권위를 무시하던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권위는 강압과 명령이 아닌,

사랑과 아량으로 세워진 것이었다.


"흥! 좋아. 대신 나는 꽤 빡센 교육 방식을 선호한다고, 각오해!"


"네! 메이 선생님!"


나는 그의 장난기 섞인 말과 미소에 내 마음의 벽이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그의 미소가, 그의 행동이.. 나를 매료 시켰다.





'참... 한결같은 남자야...'


그 후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리운 과거의 추억, 행복했던 그와 함께했던 순간들.

지난 여름에는 그의 곁에서 서로 오일을 발라 달라고 동료들과 싸운 적이 있었고,


겨울에는 1년 동안 고생한 우리들을 위해 깜짝 파티를 해주겠다며 직접 선물을

나르다 병석에 앓아 누운 적도 있었다.


'참... 미워할 수 없는 남자야...'


그가 쓰러졌다는 소식에 나도 덩달아 쓰러졌었지. 지금에야 돌이켜 생각해 보면

참 웃긴 추억이 되어버렸다.


"하아... 예쁘다..."


나는 손을 들어 올리며 내 손에 끼워진 앙증맞고 아름다운 반지를 바라보았다.

사방팔방에서 들려오는 총탄 소리와 폭발 소리가 아니었다면 계속해서 바라보고 싶을 정도다.


"....대장! 메이 대장!!"


"듣고 있어 부관. 나 귀 멀쩡해 소리 지르지 마."


내 과거 회상을 깨버리는 다급한 외침. 나이트앤젤이 전선의 다급함을 보여주듯 온 몸에

자잘한 상처를 입은 상태로 빠르게 다가왔다.


"방어선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어요! 아직 오르카 호는!"


"보다시피, 시간이 더 필요해. 아니면 오르카 호... 그리고 사령관이 무사하지 못하겠지."


옥좌에 앉아 하늘에 떠 있는 내 아래에 보이는 오르카 호. 구석에서 불길과 연기가 치솟아

오르고 있어서 긴급하게 수리에 들어갔다. 휴양지에 정박하려는 찰나에 기습 공격을

감행한 철충 덕분에 모처럼의 휴가는 박살이 났다.


'그리고... 이대로 가면 사령관이 정말 위험해.'


오르카 호의 수리가 끝날 때 까지, 오르카 호는 이 현장을 벗어나지 못한다.

무적의 용 함대가 도착할 때 까지 남은 시간은 2시간 가량, 이 속도라면 그녀의 함대가

구원하러 오기 이전에 철충들에게 오르카 호가 당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육군 병력들의 손실은?"


"지금 마리 대장이 최선을 다 하는 중이지만.. 길어봤자 30분이 한계라고..."


갑자기 들이닥친 철충들, 그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지금까지 상대해본 모든 네스트 개체

중에서 가장 거대한 네스트. 육상 병력이 아직도 궤멸 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마리, 그녀의 지휘가 뛰어나기 때문이겠지.


치직- 치지직-


"..메이! 메이! 잘 들려?"


사령관에게서 온 무전, 나는 그의 다급한 무전에 응답했다.


"무슨 일이야?"


"육상 병력을 철수 시켜! 이 이상의 희생은 무의미해!"


"또 헛소리 할래?"


나는 그의 무전을 받으며 미간을 문질렀다. 역시... 그는 스스로를 희생할 생각이겠지.

스스로가 미끼가 되어 모두를 안전하게 돌려 보내겠다는 그의 생각은 이제 뻔하다.


"그래도!"


"입 닥쳐! 알겠어? 잘 들어 사령관! 넌 사령관이야! 모두의 지휘관이자 대장이라고!

싸움에서 대장이 죽으면 그게 무슨 의미인지 내가 너에게 가르쳤잖아!"


"....메이."


"조용히 하고 내 말 잘 들어, 지금부터 특공대를 조직해서 저 네스트의 유인을 실행해.

내가 부르는 좌표로 한치 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돼!"


나는 무전기에 강하게 소리쳤다. 육상 병력의 약한 화력으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네스트의 강대한 외부 장갑. 그렇다면 내부에서 타격을 주면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무슨 생각인데? 일단.. 알겠어! 해볼게!"


"그래..."


'문제는... 이제 사령관, 너의 얼굴을 보면서 행복을 누리던 시간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거겠지.'


내 계획을 사령관에게 전달하고 무전을 끊자 옆에 서있던 나이트앤젤이 굳은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그녀의 싸가지 없는 표정은 자주 보았지만 역시 화난 표정은 언제 보아도 무섭네.


"대장.. 혹시 옥좌를 자폭이라도 시킬 작정입니까?"


"그럼, 다른 방법 있어?"


"꼭 자폭이 아니어도..!"


"그럼 말해봐. 그것 말고 확실한 방법."


"크윽..."


역시 그녀는 내 부관 답게 눈치가 아주 좋았다. 하지만 그녀도 내심 이해하고 있겠지.

도저히 흠집이 나지 않는 강력한 외부 장갑, 그리고 튼튼한 외골격들.


그것들을 직접 타격하기 위해선 내부에서 핵 정도는 터트려야 확실하다.

문제는... 내가 생각한 그 탈출 방법이 잘 먹히겠냐는 것이지만... 해봐야 확실하겠지.


"엄호 준비나 하도록 부관. 이건 명령이야."


".....네."


"너무 걱정 마. 탈출 방법 정도는 생각해 뒀으니까."


'그것이 잘 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지만..'


굳은 얼굴로 내 곁에서 엄호를 시작하는 부관과 그녀의 지시를 따르는 둠 브링어 편대.

그리고 저 멀리 육상 병력들 중 소수가 네스트를 오르카 호에서 최대한 먼 거리로

유인하기 시작했다.


"후우.... 시작하지."


내 말에 모두 나를 엄호하며 네스트에게 빠른 속도로 접근했다. 이윽고 벌어지는

격렬한 공중전, 사방팔방에서 빗발치는 총탄 사이로 둠 브링어의 편대는 나를 밀어 넣었다.


지지직- 지직-


"...이! ..메... 메이!"


"또 무슨 일이야! 바쁘니까 끊어!"


갑자기 들려온 사령관의 무전, 나는 괜히 마음이 약해질까 더욱 차갑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는 울부짖는 목소리로 계속 무전을 보냈다.


"나이트앤젤에게 들었어! 너 무슨 생각이야! 멈춰!!"


"젠장! 입이 너무 가벼운거 아니야?"


"명령이야! 명령이라고 메이! 멈춰!!"


".....미안해, 사령관.. 거부할게."


내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무섭다. 죽기 싫다. 그를 남겨 놓고 떠나기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 방법 뿐이다. 성공만 한다면.. 성공 한다면 그를 살리고 나도 살아날 수 있다.


"메이! 제발 멈춰! 부탁이야!"


"....미안해."


나는 인이어를 뽑아내고 무전기를 던져버렸다. 내게 인간의 명령을 거부할 권한을 쥐어준

옛 멸망 전 인간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처음으로 들었다.


사랑하는 그의 명령을 거부하고, 그의 절규를 무시하고 이 계획을 진행 시킬 수 있도록,

내게 거부권을 쥐어준 그들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리고 이미 네스트의 입 속으로 들어온 상황, 이제 어떤 결말이 찾아오던 끝을 봐야 한다.

나는 심판의 옥좌를 자폭 모드로 바꾸고 재빠르게 옥좌에서 내렸다.


"영차! 그리고 정찰 용 드론을... 크헉!"


갑자기 등 뒤에서 날아온 촉수가 내 등을 관통해서 배를 뚫고 나왔다.

그리고 또 다른 촉수가 다시 한번 내 오른쪽 어깨를 관통했다.


"쿨럭! 커흑..!"


입에서 피가 한가득 쏟아져 나왔다. 아찔한 고통이 온 몸을 덮쳤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사랑하는 그의 얼굴을 다시 한번...


"크윽...! 작동해라..!!"


나는 정찰 용 드론의 스위치를 켜고 드론에 매달렸다. 드론의 추진기가 점화되기

시작하고 그것이 끌어당기는 힘에 내 몸을 관통한 촉수들이 뽑혀져 나왔다.


"꺄하아아악!"


너무 강렬한 고통에 드론에 매달린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의식이 흐려지고

호흡이 빨라졌다. 그러는 와중에도 드론이 어느새 네스트의 입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 순간.


번쩍이는 섬광이 네스트의 입 안에서 뿜어져 나오고 엄청난 폭압이 내 몸을 휘감았다.

나는 그대로 의식을 잃고 드론과 함께 섬의 구석으로 처박혔다.





"....아."


눈을 뜨자 보이는 생소한 광경. 우거진 풀 숲. 곁에 완전히 박살 난 정찰 용 드론.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 팔다리.


"살아... 남았나..."


슬며시 고개를 내려 다리를 보자 있어야 할 자리에 다리가 보이지 않았다.

폭발에 휘말려 절단된 것으로 보였다.


"아... 심각하네..."


왼쪽 팔 역시 돌아가면 안될 곳으로 돌아가 있었다. 배에는 구멍이 나 있고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부상이었다.


"이거... 죽겠는데..."


그래도 시끄럽게 울려 퍼지던 총탄 소리와 폭음이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작전이 성공하고 오르카 호가 무사히 철수한 모양이다.


"다행...이다..."


그러나 이제 내 시간은 끝난 것 같았다. 움직이지 않는 왼쪽 팔, 둘 다 날아간 다리.

배에는 구멍이 뚫렸다. 너무 아프면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그랬었지.


"지금이 딱 그 모양이네... 쿨럭! 쿨럭!"


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그나마 움직이는 오른팔로 피를 닦아냈다. 언제 그랬냐는 듯

평화로운 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내 죽음을 축하하듯 노래하는 새들의 모습이 웃기게 느껴졌다.


"하... 거 죽기 딱 좋은 날씨..."


"죽긴 누가 죽습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나...앤...?"


"그럼 제가 뭐 사신이라도 된 것 같습니까? 자 따끔합니다. 진통제 놔드릴게요."


어느새 풀숲을 해치고 나이트앤젤과 수많은 인원들이 나를 구조하러 다가왔다.

나이트앤젤이 목 언저리에 놔준 주사 덕분에 의식이 흐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의식을 붙잡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사령관... 사령관은... 무사해...?"


"글쎄요... 일단 몸은 괜찮으신데... 울고 불고 난리도 아닙니다."


"푸훗... 쿨럭! 쿨럭!"


그의 얼빵한 모습이 떠올랐다. 이거 미안하네... 걱정 많이 했으려나...

나는 그것을 끝으로 잠시 의식을 놓았다.




"아..."


익숙한 천장, 익숙한 의약품 냄새. 어느새 내 몸에 덕지덕지 감겨있는 붕대 들.

곁에 느껴지는 인기척에 옆을 살며시 돌아보니 사령관이 엎드려 자고 있었다.


"수복실... 이구나..."


아무래도 확실히 살아남은 모양이다. 내가 한 소리에 사령관이 깨어난 듯

부스스 일어났다.


"메이..! 깨어났구나!"


그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입은 웃고 있었다.

괴상하고 재밌는 표정... 나는 그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뭐야...? 그 표정은...? 이 몸이... 돌아왔잖아..."


내 말에 그의 울면서 웃는 괴상한 표정이 더욱 심해졌다.

나는 그의 저런 모습을 사랑한다.


모두에게 따뜻하고, 모두에게 자상한 남자.

그래서 그의 곁을 떠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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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과 마지막 인사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