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설정과 다를 수 있음

*단맛 짧은 단편

*그 외 그동안 쓴 문학 총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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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카 호의 사령관, 마지막으로 남은 인간, 모두가 선망하는 우리들의 왕,

그리고 신의 대리자까지, 그를 지칭하는 호칭들은 다양했다.


그리고 그것들이 뜻하는 것은 모두 내가 그를 바라보며 느낀 그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별님..."


"네? 뭐라고요?"


"아, 아니에요."


내 앞에 마주 앉은 유미 씨가 의아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사령관 님에 대한 이야기들이 

지금 술자리의 안주였기에 나도 모르게 사령관 님을 생각하고 있었다.


"헤에~ 그렘린 씨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는데... 혹시?"


유미 씨가 나를 바라보며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필사적으로 숨기고 다녔지만

아마도 내가 사령관 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알 사람은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겠지.


"그, 그런게 아니에요!"


하지만 내 입은 자연스럽게 그 사실을 부정하는 말을 뱉어낸다. 사실 무의식적으로,

나 스스로가 알고 있었다. 그는 마치 저 하늘에 떠있는 별과 같은 사람이다.


모두의 위에서 고고하게 떠 있는 별, 모두가 별을 독차지하길 바라지만 그 별은

소수의 한정된 인원만이 접근이 가능한 별이다.


'나같이 흔한 전투 공병 따위가...'


그래, 나같이 흔해 빠지고, 나같이 하찮은 말단 병사가 감히 접근할 수 없는 별.


"그렘린 씨?"


"아... 네? 뭐라고 하셨죠?"


유미 씨의 표정이 걱정으로 물들었다. 그녀가 계속 뭐라고 말을 걸었던 모양이지만 나는

술에 취한 것일까. 아니면 현실의 벽에 체념한 것일까. 유미 씨의 말을 전혀 듣지 못하였다.


"그, 아까부터 계속 멍하니 있던데.. 오늘은 이만 쫑낼까요?"


"괘, 괜찮아요..! 괜히 저 때문에.."


"아니에요! 마침 저도 내일은 아침 일찍 업무가 있으니까요. 다음에 또 어울려주세요."


"미안해요..."


유미 씨가 나를 배려해주며 자리에서 일어나 정리를 하고 내게 인사를 건네며 내 방을 나섰다.

괜히 나 때문에 그녀와의 술자리를 망친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들었다.


"에이~ 괜찮아요. 사실 내일은 정말 바쁘거든요~ 아무튼 다음에 봐요!"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녀의 만류에 사과는 그만두었다. 이럴 때는 솔직히 배려를 받는 편이 좋겠지.

그 후 나는 홀로 자리에 앉아 탑돌이를 쓰다듬으며 맥주에 손을 뻗었다.


"미안해~ 탑돌아... 이거 한 캔만 더 마실게."


괜히 울적해지는 마음. 오늘은 유독 사령관 님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높은 분...

나 같은 말단 병사가 보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마음대로 찾아뵐 인물이 아니었다.


"하아..."


그 후로 탑돌이를 벗으로 삼아 홀로 술을 마셨다. 얼큰하게 취기가 올라오고 눈 앞에 펼쳐진

공간이 마구 흔들렸다.


"아... 씻어야지..."


정신이 없는 와중에 씻어야 한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복도를 거쳐 세면실에 비틀거리는 몸짓으로

걸어가 거울을 바라보자 수수한 인상의 여자가 있었다.


두꺼운 뿔태 안경, 부스스하고 푸석해 보이는 머리, 기름에 찌든 자국을 대충 씻어낸 흔적...

역시 사령관 님의 품에 안겨 사랑을 속삭이는 것은 불가능한 꿈이겠지.


"풋.. 이런 기름에 찌든 기계 오타쿠는 아무리 사령관 님이라도 싫겠지..."


"응? 내가 너를 왜 싫어해?"


"아...."


어느새 내 곁에서 손을 씻으며 반갑게 웃어주는 남자. 오르카 호 안에서 남자라 하면 

단 한 사람 뿐이다. 저 하늘의 별과 같은...


"사, 사령관 님...?"


"뭐야? 얼굴이 빨갛네? 혹시 열이라도 나는 거니?"


"아... 그..."


어느새 사령관 님의 손이 내 얼굴을 부드럽게 만지며 그의 이마가 내 이마에 맞닿았다.

가슴이 미친 듯 뛰기 시작하고 얼굴에 핏기가 쏠려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음, 열이 좀 나네."


"그... 그게..."


사령관 님의 얼굴이 걱정으로 물들었다. 그가 나 같은 말단 병력들의 상태까지 직접

체크하고 걱정해주는 모습에 더욱 세차게 가슴이 뛰었다.


"역시 안되겠어... 수복실에 가자."


"아앗.. 괘, 괜찮아요! 저, 정말이에요!"


사령관 님이 내 손을 붙잡고 이끌기 시작했다. 나는 괜히 그에게 걱정을 시킨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어 필사적으로 그를 만류했다.


"그, 그냥.. 제, 제 방으로..."


"아... 응 알겠어."


'으아아~ 이거 말 실수 한 것 같은데..! 오, 오해하시면 어떻게 해!'


괜히 천박하게 유혹하는 것 같은 말을 해버린 것 같았지만 다행히 사령관 님은

별다른 말 없이 내 손을 붙잡고 조용히 내 방으로 향하실 뿐이었다.


"그... 여, 여기서 왼쪽..."


"괜찮아. 다 알고 있으니까."


"......"


당연히 사령관 님이 내 방의 위치를 모르실까 싶어 알려주려 했지만 그는 부드럽게

웃어주며 막힘없이 내 방을 향해 걸어가셨다. 마주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이렇게 함께 걷는 것.


지금의 이 광경조차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별이 잘 안되었다. 너무나 황홀하고

꿈에서도 그리던 상황이 실현되어 정신이 없었다.


"자, 도착! 이야~ 생각보다 깔끔하네?"


"사, 사령관 님!"


사령관 님은 망설임 없이 내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앉으며 미소 지으셨다.

당연히 돌아갈 줄 알았던 그의 행동에 잔뜩 당황한 내게 그가 부드럽게 내 손을 잡아

침대로 이끌었다.


"꺄앗..!"


"그렘린."


"아... 으..."


"괜찮아 진정해..."


그가 나를 침대에 눕히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듬직한 그의 손이 내 뺨을 어루만지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 마음을 녹여버렸다.


이것은 꿈이 아닐까? 그의 품에 안겨 그에게 어루만져 지는 것, 이 사실이 현실일 리 없다.

아까 술을 많이 마셨으니... 이것은 필시 꿈일 것이다.


"그... 사, 사령관 님... 저... 처, 처음... 으읍! 음...!"


그가 내 말을 농밀한 키스로 끊어버렸다. 내 의식은 그것으로 완벽히 무너졌다.

그래, 이것이 꿈이라면 이 달콤한 꿈을 즐기자. 그와 사랑을 나누는 달콤한 꿈을...


"생각보다 귀엽네 그렘린..."


"사령관 님..."


그의 손길이 내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의 손길에 몸을 맡기고 그의 옷을

떨리는 손으로 벗기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의 달콤한 꿈을 만끽하기 위해서.




"아.... 꿈인가...?"


눈을 뜨고 부스스 일어나자 언제나 반가운 탑돌이가 보였다. 어제의 기억이 흐릿하게

남아서 무언가 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으... 속 쓰려..."


밀려 드는 숙취와 깨질 것 같은 머리. 어제 과음을 한 탓일까 목이 마르고 유독

피곤하게 느껴졌다. 물을 마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자 사타구니에서 끈적한

액체가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게 뭐지...?"


질척이고 무언가 야릇한 냄새가 나는 회색의 액체를 손으로 만져보았다.


"어...?"


'정액... 도대체 이게 왜...? 서, 설마!'


화들짝 놀래 옆을 바라보자 사령관 님이 알몸으로 잠들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발가벗은 몸이었다. 그럼 어제 밤 그게 꿈이 아니었다고?


"꺄아악!!!"


"뭐, 뭐야?"


나는 너무 놀래 가슴을 가리며 소리 질렀다. 사령관 님 역시 내 비명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깨 나를 바라보았다.


"뭐야.. 일어났어? 그래도 너무하네... 어제 우리들 그렇게 뜨거웠잖아."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으로 다가와 나를 끌어안았다. 그의 듬직한 팔이 내 허리를

감싸고, 그의 듬직한 가슴팍에 내 얼굴이 맞닿았다.


"아앗..!"


"어제 네가 내게 사랑한다고 말해서 난 기뻤는데... 그렘린 넌 아니었어?"


"그, 그게..!"


그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내 입에 입을 가볍게 맞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맑은 눈동자에 흔들리는 내 눈동자가 비춰졌다.


"그럼 이번엔 내가 너에게 말할게 사랑해 그렘린."


"......!"


"대답 해주지 않을 거야? 이런... 난 고백하자마자 차인 건가?"


그의 미소,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내 가슴에 울려 퍼졌다. 


"그... 저, 저도... 저도 사랑해요!"


"고마워."


용기를 쥐어 짜내듯 그의 고백에 대답을 주었다. 그는 내 대답에 만족한 듯

나를 끌어안은 손에 힘을 더 주어 강하게 안아주었다.


언제나 멀게 보였던 별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 별은 내게 사랑을 속삭이며, 내 가슴속에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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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멀게 보였던 별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