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월 XX일

오늘도 오메가님의 명령으로 군수공장 지원을 나갔습니다. 오늘도 할당량을 채우지 못해 음식은 커녕 보관하고 있던 초코바 하나로 하루를 버텼습니다.


X월 XX일

오늘도 오메가님의 명령으로 군수공장 지원을 나갔습니다. 할당량을 채우지도 못하고 가지고 있던 초코바도 압수당해 하루를 굶었습니다.



'우린 신을 만들었지만 억제하기 위해 인형의 몸에 신을 넣었다.'


X월 XX일

오늘 작업 도중 라디오에서 특이한 노래가 나왔습니다. 러버러버? 라는 중독있는 노래였습니다. 옆방의 동료는 방에서 쉬는 도중 스크린에서 그 노래를 봤다고 합니다. 동료는 그걸 보고 충격을 많이 받은듯 합니다.


그 영상을 본 저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저 우린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마치 마리오네트와 같은 실이 박힌 인형일뿐인데, 같은 처지일뿐인 저 바이오로이드들은 왜 노래를 부르면서 웃고있는거지? 왜 저 영상의 같은 바이오로이드들은 왜 저렇게 해맑은거지?


잠자리에 들기 전 쓰는, 이 일기를 쓰는 와중에도 아직까지 웃고 있는 검은 머리의 바이오로이드, 그리고 영상에서 본 인간님의 얼굴이 계속 생각납니다. 저도 저런 인간님을 만난다면 웃고 있는 그 바이오로이드처럼 생활할 수 있을까요?


X월 XX일


며칠전 사라졌던 옆방의 친구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멍으로 범벅이 된 얼굴, 부러터진 입술, 찢어진 피부와 붕대....

아무래도 그 영상의 유포로 심한 고문을 받고 온것 같습니다.

괜찮다며 웃고는 있지만 몸은 아픈지 계속 신음소리가 들려옵니다. 여분으로 가지고 있던 진통제를 투여했지만 아직 회복까진 시간이 걸릴듯 합니다.


우리 바이오로이드들은 기본적으로 인간님들을 믿고 숭배하며 따라야한다는건 생성전의 유전자씨앗에 깊게 각인되어있는 하나의 명령입니다. 그런 인간님이 있으니 저도 그 인간을 따라야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고 있습니다. 떠나고싶다는 생각이 계속 듭니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해 식사를 배급받지 못한건 기본, 험담이라도 했다간 맞아죽을 각오를 해야했습니다. 떠나고싶다고 생각을 해도 밖에는 무수히 많은 철충과 함께 최근 심해진 경비AGS들을 뚫어야하는, 목숨을 각오해야하는 일입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


X월 XX일

"밖으로 나가자."

몸이 나아진 옆방의 친구는 나를 따로 불러 입을 열었습니다. 아직까지 생각을 정할 수 없어 방황을 하고 있었던 저였기에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결정을 못했다는걸 파악했는지 그 친구는 말하는 대신 자기의 손을 제 어깨에 올려놨습니다.

"오늘 자정, G18구역의 경비AGS의 점검이 있어서 5분간 작동을 멈춘다고 해. 그때가 기회야. 잘 선택해. 난 가있을거야."

앞으로 1시간 뒤, 저는 결정을 해야만합니다.


X월 XX일 


그 친구와 함께 탈출했고, 성공했기에 일기를 씁니다.

그녀는 저 말고도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했는지 적지않으면서도 많지않은 수의 바이오로이드들이 함께 탈출했습니다. 부상을 입거나 중간에 낙오된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을 위해 그녀는 누군가에게 받았다는 수신기를 탈출 전에 건내 꼭 지정위치에 만나도록 했습니다.

부상을 당한 사람이 꽤 많아 가지고 온 응급상자의 재료도 바닥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게나 많이 준비했는데도 말이죠. 다행히 심한 부상을 입지않았지만 관통을 당한 분들이 많아 붕대를 다 써버리고 말았습니다. 친구는 지정위치에 가면 물자가 있다고 하면서 내일까지 그 위치로 가서 재정비를 하고 서둘러야 한다고 합니다.

그나저나 달빛에 기대어 쓰는 일기도 꽤나 매력적인거같습니다.


X월 XX일

지정위치에 도착했지만 헤어졌던 사람들의 일부는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며칠정도 더 대기했지만 소식이 없었습니다. 결국 친구는 물자의 일부를 남기고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은신처의 물자는 누가 놔뒀는지 몰라도 부상을 입은 사람들이 치료를 하고도 남을 만큼의 급속회복제와 진통제가 있었습니다. 누가 이런 양의 의료물자를 나둔건지 궁금합니다. 마치 우리가 어디에 있고 무슨 상황인지 다 알고있다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X월 XX일

2차 지정위치에서 오렌지에이드라는 분을 만났습니다. 저희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직접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녀의 말로는 우리같은 배신자와 난민들이 공항으로 오는 중이며, 공항탈취를 위해 영상에서 보았던 인간님과 그의 부하들이 길을 뚫고있다고 합니다. 시간이 많이 남아 우리는 에이드님에게 인간님에 대한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습니다. 혹시 그 영상이 조작된 것인지, 아니면 우리를 다시 오메가에게 다시 끌고가는 것인지에 대해서 등 많은 것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에이드님은 영상은 조작이 아닌 진짜이며, 인간님을 만난다면 건조식 대신 고기와 볶음밥 등 먹고싶은 것과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추는 등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등 궁금한 것들을 모두 대답해주었습니다. 하지면 옆의 피곤한 얼굴을 가진 보랏빛 머리의 분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피곤한건지 눈을 감으면서 고개를 옆으로 돌렸습니다. 눈 밑의 다크서클이 진한걸로 봐서는 엄청 고생하신거같은데 괜찮으신걸까요?


X월 XX일

공항 앞 폐건물에 모든 난민들이 모였습니다. 우리말고도 많은 난민이 있을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폐건물의 층을 다 채울정도로 많을줄은 몰랐습니다. 

오렌지에이드와 유미씨는 조를 나눠 폭격이 끝난 공항에서 수송기를 타 인간님이 계신 곳으로 향한다고 합니다. 우선적으로 가는 순서는 어리거나 몸이 불편한 바이오로이드들이며, 저희의 순서는 마지막이였습니다.

공항폭격이 시작되자 건물이 크게 진동하고 땅이 울렸습니다. 저희는 제발 무사하길 신에게 빌었습니다. 

공항폭격이 끝나자마자 길은 엄청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망설일 시간이 없었습니다. 건물에 나오자마자 곧바로 수송기로 뛰어가야하는, 체력이 딸리든 어떻게든 수송기를 타야하는 시간이 왔습니다. 다행히 수송기 주변에는 인간님의 부대가 사방을 지키고 있었고, 공중에는 유모차? 를 타고 있는 빨간 머리의 바이오로이드가 계속 지휘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그건 유모차가 아니였다고 합니다.)

저희의 차례가 되자 수송기를 향해 달렸습니다. 숨은 찼고, 땅은 뜨거웠고, 주변에는 전투로 터지거나 무너지는 건물이 많았지만 어떻게든 뛰어야만 했습니다.

공항에 들어와 수송기를 목격한 순간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누군가의 말에 겨우 정신을 차린 저는 눈을 떴습니다. 앞에는 저와 탈출을 같이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의 왼팔과 하반신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친구도 눈치챘는지 자긴 괜찮다고, 우선 네가 살아야한다면서 빨리 정신차리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기도 전에 친구의 뒤, 피로 뒤덮힌 길을 봤습니다. 이 정도의 출혈이라면 살아남는게 기적일정도인데 자기는 걱정하지말라니...

다행히 저는 충격파로 벽에 박은 정도여서 늑골이 몇개 부러져 폐를 찌르는거 빼곤 괜찮습니다. 오히려 고통스러운건 눈앞의 친구일텐데 아프다고 하면 저는 양심이 없는 바이오로이드잖아요.

주먹을 쎄게 쥐고 제 광대뼈를 후려갈겨 정신을 차렸습니다. 하지만 하체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어서 움직이라고, 제발 움직여야한다고, 안그러면 내 친구가 죽을거라고!! 외치면서 계속 하체를 쳤습니다. (지금 일기장을 쓰고 있으면서 쥐어박은 허벅지에는 아직도 피멍이 들어있습니다.)

다행히 하체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저는 반파된 친구를 안고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의 폭격이 계속됐지만 우선 내 친구는 살아야한다고, 내가 이 친구에게 얼마나 많이 도움을 받았는데 정작 나는 해준거 없다고. 이렇게라도 해야 내 속이 풀릴거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으면서 피때문에 미끄러질뻔했지만 친구는 제 옷의 옆을 잡으면서 버티고있었습니다.

얼마나 달렸을까, 수송기에 눈에 보였고 밀짚모자의 바이오로이드가 달려왔습니다. 그와 동시에 친구는 힘이 다했는지 손을 놓으려던걸 그녀는 받아 수송기 안의 캡슐에 안치했습니다.

친구는 지금 잠수함 내 집중치료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멸망전 세계에 비해 지금은 신체가 몇마디 잘려도 캡슐에서 집중치료만 받으면 이틀뒤에는 새롭게 태어난거마냥 돌아다닌다고 등 뒤에 가위를 메고 있는 사람이 답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 말하면서 계속 웃던데 괜찮은 분이 맞는걸까요??


X월 XX일

회복하고 눈을 뜬 친구를 보자마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찢어진 팔과 다리도 멀쩡하게 되돌아왔습니다. 친구는 울고 있는 저를 보자 머릴 쓰다듬으면서 고맙다고, 덕분에 살았다고 머리를 비볐습니다. 그리고 같이 울었습니다.

계속 울다보니 배가 고파 잠수함의 식당으로 갔습니다. 식당에는 보존식과 건조식으로만 배를 채우던 과거와 달리 여러가지 식재료가 있었습니다만, 저흰 아직 먹을 수 없었습니다. 다프네라는 저희를 도와준 그녀의 말로는 저희쪽 인원들은 위의 회복이 덜되어 음식을 바로 먹었다간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죽을 권했습니다. 죽을 권했다고 해도 저는 그 죽이 호화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메가의 밑에서 일했을때는 죽은 커녕 특별한 날에만 참치캔을 보급받아 배를 채울 수가 있었고, 그 참치캔도 며칠을 나눠먹어야했고, 나중에는 안의 내용물이 썩어도 배를 채우기 위해 먹어야만 했습니다.

죽도 여러가지가 있었습니다. 기본죽과 함께 야채죽과 호박죽, 전복죽과 고구마죽, 닭죽 등 여러가지가 있었습니다. 죽을 받은 저희는 같이 받은 하얀김치와 참기름을 비벼 같이 먹었습니다.

죽을 먹는 저는 또 울고말았습니다. 너무 맛있었습니다. 정말 죽어서 천국에 와 이런 음식을 먹고있는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다프네씨는 울고있는 저를 보고선 놀라시더니 괜찮냐는 말을 하셨고, 저는 그저 음식이 맛있어서 울었다는 웃지 못할 말을 했습니다. 문듯 옆의 친구를 보았습니다. 그 친구도 울고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앞에는 엄청난 양의 식사를 하시는 해군장교복을 입은 분과 주황머리의 두 분이 엄청난 속도로 식사하고 계셨습니다. 벌써 테이블에 앉은 자신의 상체의 절반을 식판으로 세울 정도로 엄청난 식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뒤에서 살기가 느껴져 고개를 돌리니 주방장으로 보이는 분이 살기를 내뿜고 계셨습니다. 다프네씨는 이미 익숙한지 여유롭게 식사를 가지러가셨습니다.


X월 XX일

여기에 머무른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저 정말 행복합니다. 계속 웃고 있어서 친구는 그 전의 우울한 표정의 저는 어디갔냐고 물을 정도니까요.

늑골도 회복되어 저는 인간님과 면담했습니다. 정말 그 영상에서 봤던 인간님과 똑같았습니다. 인간님은 저에게 뭘 하고 싶냐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저 행복해지고싶다는, 웃으면서 지내고 싶다는 말을 엉겹결에 했습니다. 그걸 들으시더니 재밌다고, 지금껏 만난 바이오로이드들중에 제일 재밌고 하고싶다는 욕망이 드러났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일 또 인간님과 면담을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면담이라는게 이렇게 재밌는거였을까요?

PS: 어제 그렇게 먹던 분들, 결국 탈이나서 수복실에 있다고 합니다. 업보인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