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설정과 다를 수 있음

*단맛 짧은 단편

*그 외 그동안 쓴 창작 글 총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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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은은한 향이 코를 자극한다. 


이미 일과 시간은 끝나고 한참 지났지만, 하루를 마무리 하며 마시는 

커피 한잔의 유혹은 참기 어려운 것이지.


"사령관 님, 아직 계시나요?"


"응 들어와."


차분한 분위기를 즐기며 홀로 여유를 즐기는 것 역시 좋은 휴식이지만

말 벗이 하나 늘어나는 것 정도는 상관없다.


사령실의 문을 살며시 열고, 종종 걸음으로 들어오는 세이렌.

그녀는 서류 뭉치를 가슴에 안고 내게 다가왔다.


"음, 일과 시간은 끝난 것 같았는데.. 세이렌은 열심히 하는구나."


"앗..! 죄, 죄송합니다.. 사령관 님을 배려하지 못했어요..."


"아니, 괜찮아. 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평소의 딱딱한 내 표정을 좀 교정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진지한 고민이 들었다.

열심히 하는 것이 보기 좋은 마음에 칭찬을 건넸지만 세이렌은 잔뜩 얼어붙어 버렸다.


'으... 이럴 때 분위기를 전환하려면 역시 업무 뿐인가...'


저 나이의 소녀들의 감성을 내가 잘 알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여심을

후려 잡느냐 묻는다면, 애석하기 짝이 없지만 그것 역시 아니었다.


"그래서, 이 서류는 뭐니?"


일단 세이렌이 내민 서류를 냉큼 건네받고 그녀에게 최대한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건넸다. 다행히 세이렌의 표정이 다시 온화하게 풀려있었다.


"지난번에 사령관 님이 부탁하신 초계 작전을 계획해서 정리해 봤어요."


"아! 내가 부탁했었지! 이것 참... 정신이 없어서 그런가 잊고 있었어."


내 말에 세이렌의 얼굴에 살며시 미소가 떠올랐다. 내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었다.


'정말, 귀여운 녀석.'


묵묵히 자신의 업무에 최선을 다 하면서도, 절대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 않는다.

흔히 말하자면 의젓한 성격이겠지.


나는 내심 세이렌이 대견하게 느껴져 그녀에게 내 앞의 자리를 권했다.

이왕 커피를 마시고 있던 차에 말 벗이 하나 늘어나는 것 정도는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참이니까.


"어차피 찾아온 거, 잠깐 쉬다가 가는 것 어때?"


"네..? 저.. 그, 그게.."


마침 커피 포트에 끓여둔 물이 남아 있으니 그녀의 몫으로 하나 더 차를 내오는 것

정도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세이렌은 내 권유에 망설이는 듯 보였다.


"그, 그래도... 사령관 님을 번거롭게 만들 수는.."


"걱정 마 끓는 물도 남았고, 오히려 말 벗을 부탁하고 싶었으니까."


손을 꼼지락 거리면서 망설이던 세이렌은 이내 조심스럽게 내 앞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나는 능숙한 손길로 그녀에게 과자를 건네주며 그녀에게 할 말들을 생각했다.


'음, 역시 처음에는 무엇을 마실지 묻는 게 정답이겠지. 그리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면..'


사실 세이렌과 진솔한 대화를 해보고 싶었던 참이다. 그녀의 언제나 굳어있는 모습이

보기에 안쓰러웠다. 좀 더 웃고, 좀 더 자신을 표현해도 괜찮을 나이 아니던가.


"뭐 마시고 싶은 것 있니? 달달 한 것을 좋아한다면 초코라떼를 추천해."


"그, 그럼 초코라떼로.."


이미 초코라떼를 집어 들었던 참이지만 별다른 말 없이 초코라떼를 만들어 

세이렌에게 건네주었다. 


얌전히 초코라떼를 받아 들고 신기한 듯 바라보다 한 입 마시는 그녀의 모습이 

마치 도토리를 볼에 머금은 작은 다람쥐를 보는 것 같아 귀여운 마음이 들었다.


"어때 맛있지? 달콤한 녀석이 먹고 싶으면 나도 자주 애용하거든."


"네.. 정말 맛있어요. 감사합니다 사령관 님."


그 후 나는 차분히 커피를 즐기며 세이렌에게 이것저것 일상적인 질문들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질문을 내가 그녀에게 하고, 그녀는 대답하는 정도로 대화가 단답형 이었지만

이내 그녀도 소파에 몸을 기대고 내게 먼저 자신의 일상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후훗, 그때 운디네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하핫! 그걸 직접 보지 못하다니 아쉽네."


어느새 서로 마실 것들은 다 마시고 빈 컵을 들고 있었지만, 서로 간의 격의 없는 대화를

하느라 그것들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일상을 듣고, 내 일상도 말해주며 그녀의 상황에 공감해주니 그동안 어색했던

분위기는 진작 사라지고 화기애애한 대화가 오고 갈 뿐이었다.


"그런데 세이렌은 멸망 전 개체라고 했었지?"


"앗.. 네.. 멸망 전 개체에요."


문득 생각난 그녀의 프로필에 적혀있던 멸망 전 개체라는 사실을 세이렌에게 물어보자

그녀의 표정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다소 침울한 어조로 내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때 부하들을 모두 잃고.. 존경하던 상관도 함께 잃었어요.."


'그게 말을 잘 하지 않게 된 계기로군.'


소중한 이들을 잃는 것. 그것이 세이렌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겼겠지. 극심한 전쟁 속에

홀로 살아남은 자가 죄책감을 갖고 다른 이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겉보기에 세이렌은 아직 어려 보이는 소녀의 모습이지만, 내면은 닳고 닳아서

많은 슬픔을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안타까웠다.


"그래도 지금은 새로운 전우들이 생기고, 존경하는 상관을 열심히 모시잖아."


"그, 그건..."


빈 컵을 양손으로 움켜쥐고 고개를 숙이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슬며시 운을 띄었다.

예전에 있었던 보물 탐사에서 별로 욕심도 없는 보물을 탐색하겠다고 그녀를 보낸 이유 역시,

그녀의 마음을 열고 싶었기 때문이다.


"보물 탐사도 했었고, 그 후로도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이제 네 곁에 다른 친구들이 생겼고."


"사령관 님..."


"과거를 잊으란 말 따위는 하지 않을게. 어차피 네가 잊고 싶다고 잊혀질 일도 아니고,

먼저 떠나간 이들은 남겨진 사람의 기억 속에 살아가는 것이니까."


나는 커피 포트에 물을 더 올리며 말을 계속했다.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가혹하게 짓누르는

그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짊어지고 싶었다.


"그래도, 이제 네 곁에 언제나 널 믿어주는 듬직한 상관이 있고, 언제나 시끄럽지만

마음은 따뜻한 아이들이 곁에 있으니까. 그렇지?"


커피 포트에 올려둔 물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고, 세이렌이 그 커피 포트를 바라보며

내 대답에 대답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마음의 가책이 아닌, 미소가 걸려있었다.


"네... 이젠 슬프지 않아요. 용 님이.. 부하, 아니.. 친구들이.. 그리고 사령관 님이 계시니까."


"이런, 직접 들으니 낯간지럽네... 그래서 한잔 더할래?"


"그럼녀! 부탁 드려요 사령관 님. 오늘은 늦은 밤이 되겠네요."


"이런 귀여운 부하의 말 상대를 해줄 수 있다면 그 정도야."


내 능청맞은 대답에 세이렌이 킥킥 웃기 시작했다. 

나도 그녀의 웃음에 미소가 지어졌다.


우리들의 소소한 대화는 소소한 행복이 되어 우리들의 기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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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대화 소소한 행복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