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설정과 다를 수 있음

*단맛 짧은 단편

*그동안 쓴 창작 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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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대부분의 인원이 잠에 빠져있는 새벽 05시 30분.

오르카 호의 사령관은 이른 시간부터 업무를 시작한다.


그의 아침이 빠른 만큼 그를 보좌하는 참모들의 기상도 빨라졌지만 

그런 사령관의 모습을 바라보면 오히려 뿌듯한 마음과 걱정이 들었다.


"폐하 금일 일정입니다."


"고마워 아르망. 그런데 벌써 출근했어? 조금 더 쉬어도 좋은데."


밝은 기색으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와 다르게 그의 표정은 피곤함에 젖어있었다.

고고한 왕의 자리는 왕관의 무게를 견디는 자에게 어울린다 하지 않던가.


그는 그런 의미에서 타고난 왕의 자질이 보였다. 


다만...


"폐하, 폐하의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쾌활한 어조에도 숨기지 못한 피로가 묻어 나왔다. 능력이 출중하고 덕이 있는 그의

성품은 분명 그의 장점이지만, 자신의 건강을 가벼이 여기는 태도는 좋지 못했다.


"괜찮아. 커피를 좀 마시면..."


자연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타려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오늘은 독하게

마음을 먹어야겠다고 각오했다.


저런 상태라면 분명 지난번처럼 그가 쓰러지는 일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주군을 모시는 신하로써, 사령관을 보좌하는 참모로써 좋지 못한 일이다.


'물론 사랑하는 남자를 바라보는 여성으로써도..'


하지만 사심은 접어야 한다. 지금 당장에 최전선에서는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중이다.

전시 상황에 내 욕망을 충족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 행위다.


"폐하 또 커피에 의존하려는 것입니까? 옥체를 생각하시어 오늘의 업무를 줄이고

휴식을 취하시지요. 일정은 조절해 놓겠습니다."


"그래도 지금 계획이 너무 중요해서 어쩔 수 없어. 아메리카 대륙에서 진행될 작전들의

중요성은 아르망이 말했었지? 오늘은 좀 봐주라~"


"폐, 폐하...!"


그의 손길이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가 이렇게 나오면 나는 그저 그의

따스한 손길에 마음이 녹아, 그의 뜻에 져버리고는 했다. 


오늘도 그 공식은 지켜지고 있었다.


"그, 그래도.."


"미안해 아르망.. 그래도 내 곁에 이렇게 귀엽고 유능한 참모가 있으니 괜찮겠지?"


"하아~ 알겠습니다 폐하. 그래도 도저히 힘들면 꼭 휴식을 취하시는 겁니다.

이것 만은 꼭 약속해 주세요... 저도 그 이상은 양보하지 못합니다."


완곡한 내 부탁이 그의 마음을 흔든 것일까. 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알았어~ 아르망이 걱정하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볼게."


"노력이라니.. 하.. 알겠습니다."


그의 말에 일단 수긍하기는 했지만 내 예지 능력은 계속해서 그의 상태를 우려하는

결과를 도출하고 있었다. 


그래도 먼저 반한 사람이 항상 지는 법이다. 지난번처럼 좋지 못한 예지가 적중할 것이란

법은 없으니 불안한 마음을 품고 업무에 복귀했다.


"그럼 오늘도 잘 부탁해 아르망!"


"네, 맡겨주세요 폐하."


그 후로 그는 커피를 마시며 업무를 보고 나는 내 방식대로 폐하를 보조 하며

시간을 보냈다. 여전히 피곤해 보이는 그의 안색이 걱정되었지만 그는 나와 한 약속을

어기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걱정을 마음 한구석에 접어 놓았다.


"음.. 이런 역시 놓고 출근했네..."


한참을 서로 업무를 보며 바쁜 시간을 보내던 중 난처한 기색이 섞인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중요한 결재 서류를 놓고 출근한 모양이었다.


"폐하, 혹시 다음 지역의 정찰 결과 보고서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역시 아르망! 고마워, 신세 좀 져야겠어.. 내 침실에 들어가면 책상 위에 있을 거야. 부탁할게!"


그의 배웅을 받으며 사령실 밖으로 나와 그의 침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몇 분 정도 걸었을까

그의 개인실이 보였지만 그 문이 개방되어 있었다. 안에서는 부산한 소음이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콘스탄챠 님. 청소하시는 중이었나요?"


"어머, 아르망 씨. 무슨 일이신가요?"


"폐하께서 중요한 서류를 놓고 오셨다고 하셔서 가지러 왔습니다. 잠시 실례해도.."


기분이 좋은 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청소를 하던 콘스탄챠 님은 자신의 근처에 있던

서류 뭉치를 집어 내게 건네주었다. 


의외로 눈치가 빠른 그녀 답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무슨 서류인지 알아보고 

단번에 집어 내게 전달해 주었다. 과연 과거 폐하의 비서를 했었던 경력은 여전히 유효했다.


"이거 맞죠?"


"네, 감사합니다. 그럼..."


"괜찮아요. 그럼 다음에 뵈요."


그 후 사령관 님이 부탁한 서류를 받아 들고 사령실에 돌아왔지만 사령관 님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급하게 나가신 듯 먼저 검토하던 자료들이 그대로 놓여있었다.


"무슨 일이지..?"


불현듯 치밀어 오르는 불길한 예감, 급하게 빠져나간 것 같은 현장의 모습.

모든 것들이 내 예지가 맞아 돌아가는 듯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을 때, 밖에서 아까 전

헤어졌던 콘스탄챠 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르망 씨! 큰일이에요! 주인님이!"


"...네?"


얽혀있던 실타래가 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불길한 예지는 오늘도 틀리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풀려 서류 뭉치들이 모조리 바닥에 쏟아졌지만 지금 그것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주군이.. 아니, 사랑하는 사람이 쓰러졌다. 불길한 내 예지가 맞아 떨어졌다.

아침에 본 그의 피곤하게 보이던 안색이 떠올랐다.


"폐, 폐하..!! 폐하는 어떻게..!!"


나는 콘스탄챠 님의 옷자락을 강하게 쥐고 폐하의 상태를 물어보려다 이내 그것을 포기하고

최대한 빠르게 수복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폐하! 폐하!"


단순한 빈혈이나 피로감으로 인한 탈진이면 좋겠지만, 그를 사랑하는 내 마음은 냉정한

생각과 예지를 방해하고 있었다. 오로지 사랑하는 남자의 용태만이 떠오르고 있었다.


턱 끝까지 숨이 차오르고,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수복실을 향해 허둥지둥 달려가는 내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인원들도 있었지만

지금 그것은 내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폐하!"


"아르망 님. 늦는 것 같아 불러올까 했는데 마침 오셨군요. 들어가세요."


"네...?"


"주인님께서 기다리십니다."


수복실의 앞에 도착하자 문을 틀어 막고 경계하던 리리스 님이 부드럽게 웃으며

문을 열어주었다. 


'폐하께서.. 기다리셔..?'


리리스 님이 한쪽으로 비켜 서며 나를 수복실의 안에 살며시 밀어 넣었다.

그녀는 찡긋 윙크하며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


"아, 아르망.. 많이 놀랬지?"


"폐하.. 이, 이건..."


수복실의 안에 들어오자 침대에 누워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는 말끔한 정복 차림으로

꽃다발을 손에 든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멀쩡한 모습에 안도감이 드는 한편, 그가 왜 저런 차림으로 내 앞에 서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절박했던 내 심정이 연산 회로에 무리를 준 모양이었다.


"너에게 내 진심을 담은 선물을 주려고 했는데... 아르망의 예상을 피하려면 이 방법이

제일 좋을 것 같았어... 미안해, 많이 걱정했지?"


"폐하..."


그가 내 앞에 다가와 정중히 꽃다발을 안겨주며 내 왼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이, 이건..."


"속여서 미안해. 그래도, 이것으로 용서해 주겠니?"


어느새 내 왼손 약지에 부드럽게 끼워지는 반지를 바라보며 드디어 그가 하는 말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는 내게 잔뜩 굳어 긴장한 모습으로 미리 준비해 놓은 것 같은 대사들을 시작하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토록 긴장한 그의 모습은 아주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이 반지의 뜻... 받아주겠니?"


"흥!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십니까? 폐하께선 정말..!"


"미, 미안해.. 역시 너무했지..."


잔뜩 풀이 죽어 움츠러드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눈물을 훔쳐내고 그를 끌어안았다.

언제나 그의 곁에서 충성을 다 하겠다는 맹세에서, 어느새 목숨보다 소중한 사랑이 되어버린

그를 끌어 안으며 나는 그에게 속삭였다.


"저를 놀리셨으니, 앞으로도 저를 아껴주지 않으면 정말 화낼 거에요."


"고마워, 사랑해.."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포옹을 받아주며 입을 맞추었다.

그의 선물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갑작스레 내게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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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하지 못한 선물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