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설정과 다를 수 있음

*조금 매움 새드 엔딩

*그동안 쓴 창작 글 모음



부산하게 쏟아지는 비와 그 속에서 홀로 난간에 기대어 있는 내게 그녀가 다가왔다.

쏟아지는 빗소리가 그녀의 발소리를 숨긴 것일까. 그녀는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또 비 맞으면서 혼자 분위기 잡는 거야?'


언제 들어도 쾌활한 그녀의 목소리에 물고 있던 담배를 뽑아내고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슬레이프니르.."


'그래도 전~혀 멋있지 않거든?'


나는 슬레이프니르의 대답에 피식 웃어주며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다. 언제나 바다를 바라보며 태우는

담배 한 까치는 많은 것들을 잊게 만들어주는 최고의 친구였으니 이 여유를 잃고 싶지 않았다.


"누가 멋져 보이려고 담배 피우는 줄 알아? 이 바보야~"


내 놀림에 슬레이프니르는 발끈한 표정으로 팔을 마구 휘저으며 담배의 연기를 털어내는 제스처를 보였다.

언제나 그녀는 담배를 싫어했지, 냄새가 싫다는 이유로.


"그래도 오늘은 용서해줘.. 오늘은 비가 와서 그런가.. 유독 담배가 그리워서.."


'또 또 그 핑계지! 안돼! 나 담배 냄새 싫어하는 거 잘 알면서...'


얇았던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며 쓸쓸한 밤의 어두운 바다를 더욱 거세게 때리기 시작했다.

슬레이프니르는 살며시 내 곁으로 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함께 바다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사실 담배 냄새는 아무 상관 없어. 그냥... 그냥 사령관이,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아플까..

그래서 담배가 싫은 거야..'


그것을 왜 모르겠니. 언제나 너는 내 곁에서 나 만을 바라보며, 나 만을 걱정했으니까.

그래, 이 세상에 나 홀로 남겨 놓고 떠나가던 그 순간까지.


"알아... 그래도... 이 연기가 사라지면... 너도 사라질 거니까... 이 사진 속의 모습 만으로...

또 돌아갈 거니까..."


언제나 너를 떠나보낸 이 장소에선, 너를 이렇게 만날 수 있으니까.

사진 한 장으로, 그리움으로, 추억으로만 남은 네 모습을 다시 바라볼 수 있으니까.


"오늘만 조금 더 피울게."


'....그래, 이 바보야.. 오늘.. 오늘 만이야..'


폐 속에 들어차는 탁한 담배의 연기가 슬픔으로 상처 입은 가슴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마치 뾰족한 바늘처럼, 내 가슴을 찔러 쓰라린 감정이 느껴졌다.


"넌... 사진으로만 남아, 이럴 때만 볼 수 있으니까... 네가 잘못한 거야..."


'미안해...'


슬레이프니르가 슬픈 표정으로 나를 끌어안았다. 그러나 그녀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젠 그리운 추억으로만, 쓸쓸한 기억으로만 남아버린 나를 홀로 남겨 놓고 떠나버린 그녀의 온기가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네가 밉다."


'다행이다.'


원망하는 말을 전해도 그녀는 화내지 않았다. 그저 슬픈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어 보일 뿐. 그녀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차라리 미워해서 다행이다.. 나를 잊지 못해서 슬퍼하는 것 보다.. 네가 더 상처 받지 않아서 다행이다..'


바보같이 그녀는 쓸쓸히 웃으며 나를 위로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내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정말 바보 같은 여자.. 내가 널 잊을 리 없잖아.. 내가 너를 떨쳐낼 수 있을 리 없잖아..

어느덧 잔잔히 쏟아지던 빗방울이 얇아지고, 먹구름 사이로 달이 떠올랐다.


"비가 많이 오네.."


'비..? 비는 이제 그쳤잖아...'


눈치 없는 것은 여전하구나. 예전의 넌 여전히 바뀌지 않았구나. 내가 사랑했던 모습 그대로,

너는 전혀 변함이 없구나.


달빛에 은은하게 비춰지는 그녀의 모습은 넋이 나갈 정도로 아름다웠다.

내가 사랑했던 그녀의 모습 그대로, 그녀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아니, 빗방울이 계속 얼굴에 떨어져."


'...사령관.'


도저히 멈출 수 없는 눈물을 빗방울을 핑계로 삼아 숨기며, 나는 그녀에게서 등을 돌렸다. 

어느새 꺼져 버린 담배도 바다에 던지고 나는 정복의 모자를 더욱 눌러 내렸다.


"이제 들어갈게. 잔소리는 충분히 했지?"


'그래... 비가 많이 온다... 이제 들어가...'


먼저 돌아가라 할 때는 언제고, 그녀의 목소리가 슬픔에 가라앉았다. 역시 나는 그녀에게

너무 무르고 너무 약했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 더 잊을 수 없잖아..


"비 많이 오니까 너도 돌아가..."


'그래...'


"사랑해."


내 말에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웃어주었다. 언제나 나를 바라보고 언제나 나를 사랑해준

그녀의 모습이 비가 오는 밤에 홀로 남은 내 가슴에 남겨졌다.



비가 오는 밤에 홀로 남아서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