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설정과 다를 수 있음

*새드 엔딩

*그동안 쓴 창작 글 모음


전쟁이란 살육이 동반된다. 그것이 누구든, 모두가 평등하게 전쟁의 화마는 그들을 집어 삼키는 법이다.

그동안 이어진 전쟁에서 수많은 소중한 부하들이 이름 모를 전장에서 쓸쓸히 잠들었다.


"그대의 영혼을 빛의 품으로 돌려보내고, 그대의 육체를 땅에 안장 하니..."


오르카 호의 모든 인원들이 모여 주관하는 장례식. 싸늘한 대지에서, 혹한의 설산에서, 차가운 바다에서

자신의 사명을 지키기 위해 순직한 모든 전우들을 기리며, 수습한 전우들의 유해를 땅에 묻는다.


"흙이 흙으로 돌아가는 것 같이, 재는 재로 돌아가고, 먼지는 먼지로 돌아가니..

떠나가는 그대들의 영혼을 하늘의 빛이 영원토록 품어주리라..."


아자젤의 기도를 끝으로 수많은 인원들이 고개를 숙여 순직한 동료들에 대한 예를 올렸다. 미처 수습하지 못한 

인원들은 그녀들의 유품으로 대신하여, 빛의 곁으로 다가서는 길이 외롭지 않도록 함께 안장 하였다.


"이것으로 기도를 끝냅니다.. 반려.. 하실 말씀은.."


"고마워, 수고했어 아자젤."


나는 아자젤의 권유를 받아 단상에 나서 자리에 모인 인원들을 바라보았다. 무거운 슬픔이 그녀들의

어깨를 짓누르듯, 모두들 침통한 표정으로 슬픔을 참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을 길게 말하랴. 사랑하는 전우를 잃고,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감내하며 그저 눈물을 감추는

그녀들에게, 나는 어떤 위로의 말도,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었다.


"모두 내 책임입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사죄를 먼저 올렸다. 모든 책임은 사령관에게 있는 법, 나는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다.

남겨진 이로써 고통을 감내하는 것은 나중의 일이었고 우선 사죄를 해야 했다.


"하지만 슬픔에 잠겨 모든 것들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이것 만은 분명히 약속 드립니다.

전 좌절하지 않고, 앞으로의 전장에서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


그것이 내가 짊어지고 나갈 책임이다. 오로지 그것만이 떠나간 그녀들을 위한 사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떠나가고, 누군가 남겨진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떠나간 이의 염원은 남겨진 이가 이루어야 한다.


"그럼 모두... 해산해도 좋습니다."


내 말에 하나 둘 해산하기 시작한 군중들을 바라보며, 나는 뒤를 돌아 쓸쓸하게 서있는 위령비 앞에 섰다.

오로지 나를 믿고 목숨을 건 그녀들을 생각하며 나는 위령비를 쓰다듬었다.


차라리 나를 원망했으면, 나를 욕했으면 이 죄책감이 조금은 덜어질까.

하지만 그 누구도 나를 원망하지도, 욕하지도 않았다.


그것이 내 마음을 더욱 상처 입혔다.


"주인님..."


필사적으로 감정을 참아왔지만 걱정에 물든 레아의 음성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아이들을 지금까지 많이 잃었다. 희생 없는 전장은 없다는 말이 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내 마음을 갉아먹는 죄책감은 지울 수 없었다.


"미안.. 레아.. 미안해.. 오지 마.."


나는 위령비에 이마를 붙이고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았다. 아직 떠나지 않고 있는 인원들이 있었기에

그녀들에게 내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녀들이 기댈 기둥 역할을 해야 할 내가, 그녀들에게 기댈 수 없었다.


"그냥... 오래 서있어서... 그래서 그래, 걱정 마."


말도 안되는 변명. 하지만 그것 말고 할 말이 없었다. 감정하나 조절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이 어찌

모두의 위에서 군림하는 사령관이 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레아는 묵묵히 내 곁에 서있을 뿐, 오직 걱정에 물든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많은 자매들을 잃었다.


"넌.. 내가 밉지 않니?"


"미워요."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레아.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슬픔으로 물들어있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나를 응시하며 계속해서 원망의 말을 쏟아냈다.


"자매들을 잃고 제 손으로 수습했어요. 제 손으로 그 아이들을 묻어주었고, 떠나보냈어요."


하지만 계속해서 말하는 레아의 눈에 어느새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점점 굵어지며 그녀의 감정을 대변해 주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주인님이 미운 건 아니에요. 지금처럼 흔들리는 주인님의 곁에 제가 있지만,

저에게 기대주지 않는 주인님이 미워요."


레아는 그 말을 끝내고 내게 다가와 나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품에 안기자 참아왔던 감정들이

폭발하듯 터져 나와 참을 수 없었다. 작게 흐느끼던 내 입은 어느새 오열을 하고 있었다.


"비.. 비가 내리고 있어.."


"주인님.. 날씨는.."


내 말과 다르게 오늘 날씨는 아주 청명하고 맑은 날이었다. 하지만 내 눈에서, 내 마음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상처를 씻겨주는 비가 아니라, 상처를 내는 날카로운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아니야.. 비야.. 내 마음에서, 내 눈에서 비가 내려.."


"네.. 비가 내리네요.. 하늘에도.. 제 마음에도.."


레아가 나를 품에 안고 함께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향해 손짓했다. 자신의 손으로 먼저 떠나보낸

많은 자매들을 그리워하는 심정으로,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레아의 손짓에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었던

모든 인원들 역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레아가 만들어낸 비가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고, 마음의 상처를 씻어주었다.

땅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흐느끼는 소리를, 얼굴을 적시는 빗방울은 눈물을 씻어주었다.



재는 재로, 먼지는 먼지로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