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 https://arca.live/b/supernerimk2?category=%EC%86%8C%EC%84%A4&target=title&keyword=%EC%A1%B0%EA%B8%88+%EC%9D%B4%EC%83%81%ED%95%9C


모음 : https://arca.live/b/lastorigin/207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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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입을 시작하겠다.

전 대원들은 대기 바람.”

 

“호드, 확인했다.”

 

“발할라, 확인했어.

몸 조심해.”

 

“몽구스, 확인했습니다. 사령관님.”

 

“캐노니어, 문제 없다.”

 

“호라이즌, 준비됐어요.

... 용 대장님 대신 제가 해도 되는 걸까요...”

 

 


대원들을 뒤로 밀어두고, 나는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 위에 섰다.

뒤로는 넓은 해안가가, 또 일렁이는 바다가 보였다.

햇빛에 반짝이는 파도와 모래사장, 숲 속의 어두움과는 심히 대조되는 풍경. 

침을 꿀꺽 삼키는 세이렌을 끝으로 주변이 조용해졌다.


숲으로 들어가기 직전, 나는 대원들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당분간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면 통신망은 끊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혹시 모를 전파를 로버트나, 다른 AGS가 감지하게 되면 일이 꼬여버릴 테니까.

 

 

 

‘들어가서 페더와 써니만 만나면 알프레드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테니 신경 쓸 건 없겠고…

… 팬텀, 오고 있나?”

 

 

 

치릭 거리는 작은 기계음.

바람 소리에마저 묻혀버릴 만큼 조용한 소음이 나더니, 잠시 뒤 풀숲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팬텀, 합류했습니다. 

사령관님.”

 

“좋아. 

따라와 줘서 고마워, 팬텀.”

 

“... 사령관님의 명령이라면 상관없습니다.”

 

 

 

팬텀은 작게 베시시 웃었다.

주변에 녹아 드는 망토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양 볼에는 분명 분홍빛 홍조를 띄고 있었다.

 

 

 

“정말 잘 숨었네.

지금도 주의 깊게 안 보면 있는 지도 모르겠어.”

 

“그… 사령관님은 위치 추적 장비도 가지고 계시지 않나요…?

제 위치를... ”

 

“있긴 한데, 쓰는 게 익숙하지가 않아서.”

 

“히잉… …”

 

 

 

그러면 또 금방 풀이 죽는다.

말을 이어나갈 재주가 없는 건 또 예전의 나와 비슷하니 괜한 동질감마저 느껴진다.

나중에 붙잡고 한 번 얘기 좀 해야겠네.

 

 

 

“그러니까 일단은 은신 상태를 계속 유지하면서 주변 정찰을 맡아줘.

에너지는 충분하지?”

 

“… 

그… 그게…”

 

“응?”

 

“…

… … 밥은… 많이 먹었으니까…”

 

“밥?”

 

“아… 아…!!

그… 이 광학미채는 제 생체 에너지로 움직이니까…

그, 그게 에너지 걱정은 하…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 … 그냥… 그, 그런 뜻이었어…요…”

 

 

 

망토로 자기 얼굴을 뒤집어 쓴 채, 팬텀은 우물쭈물 말을 이어갔다.

어떻게든 얼굴을 가려보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애처로울 정도다.

그러면서 맨 살 다 드러나는 다리와 아랫배는 가리지 않는 게 참 많이도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 …

믿고 맡길게, 알겠지?”

 

“네에… …”

 

 

 

그렇게 말한 팬텀은 기척도 없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잔바람에 휘날리는 풀잎만이 거기에 뭔가 있었다는 걸 보여줄 뿐이었다.

확실히 프로는 프로답다.

대원들 간의 통신기 피드를 아직 죽이진 않았지만, 저 개미 발자국 소리만큼 작은 소리를 들은 대원은 아무도 없으리라.

 

 

 

“… 팬텀은 알아서 잘 따라올 거고.

레아? 준비됐어?”

 

“얼마든지요.

다만 이런 일을 했던 건 꽤 오래 전이라 조금 불안하긴 하네요. 헤헤.”

 

“너무 걱정하지마.

네가 처리 못할 정도로 강한 애들이 오지는 않을 테니까.

일부 AGS만 조심하면 무리 없이 갔다 올 수 있어.”

 

“그래도~ 주인님과의 아름다운 데이트인데,

먼지 한 톨만한 위험 요소라도 주의 깊게 살피고 조심해야죠.

그렇지 않나요?”

 

“하하… 그래, 그렇지.”

 

 

 

... 데이트라.

폭풍을 움직이고 번개를 내리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알고 있는 나도 심장이 이렇게나 뛰는데 말이야.

 

 

 

“그럼 레아가 먼저 들어가 줄래?

우선 이곳 반경 100m 정도만 순찰해줘.

혹시 철충 몇 마리가 남아있을 수도 있으니까.”

 

“흐음~ 다른 분들이 이미 몇 번이나 확인하셨겠지만,

뭐, 안전해서 나쁠 건 없겠죠.

레아가 금방 처리하고 올 테니, 주인님은 조금만 쉬고 계세요. 아셨죠?”

 

“그래, 고맙다.”

 

 

 

레아의 에메랄드 빛 날개가 파르르 움직였다.

작게 흩뿌려지는 초록빛 가루가 정말 요정들에게서나 볼 법한 판타지를 내게 주고 있다.

물론 내가 여기 온 것이 가장 큰 판타지이지만, 그렇다고 이런 작은 판타지들이 재미 없는 건 아니다. 


그리 빠르게 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사람 하나를 저렇게 가볍게 드는 건지.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렇지 않게 레아 옆을 날아다니는 저 드론은 또 어떤가?

추진 장치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대체 무슨 수로 날아다니는 거지?

미래 기술이란 건 다 이런 걸까?

 

 

 

“후우… 진짜 신기하긴 하네.

저런 비행 기술이 있으면 둠 브링어 쪽도 기술 보완이 가능할 것 같은데…

… 뭐, 닥터가 알아서 하겠지.”

 

“…”

 

“어때? 저렇게 날아다닐 수 있는 사람이 우리 편이라니,

난 설레서 잠도 못 잘 것 같은데.”

 

“…”

 

“난 저런 기술은 없는 시대에서 살았거든.

아니지, 저런 기술은 말할 것도 없지.

비행기가 없으면 사람 하나도 제대로 날지 못했는데.

끽 해봐야 커다란 드론 위에 타고 다니는 게 전부였지.”

 

“…”

 

“그러는 것도 한 몇 억 해야 겨우 할 수 있었단 말이야.

신기하지 않아?

그런 사람이 지금 여기 와 있다는 게?”

 

“…”

 

 

 

다른 대원들은 전부 해안가 밖으로 빠진 상태.

넓은 모래 사장 위에는 나와 이 아이, 둘뿐이었다.

아니지, 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한가?

 

길게 늘어뜨려 놓은 분홍빛 머리.

자연에서 흔치 않게 볼 수 있는 그 머리는 음영마저 분홍빛으로 물들였다.

조각난 치마와 그것으로는 전부 가릴 수 없는 하반신.

머리와 대치되는 파란 눈동자가 생각보다 인상적인 바이오로이드.

 

 

 

“어때? 앨리스?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

 

 

 

세라피아스 앨리스.

모든 앨리스들 중 가장 먼저 태어났으며, 최후의 하나로 살아남은 존재.

인간의 명령에 따라 모두를 죽이고, 결국 자기 자식까지 제 손으로 먹어버린 비운의 여인.

지금 그녀가 내 옆에서 고개를 좌우로 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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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작전이 시작되기 전에 용이 내게 말했던 것이 있다.

지원자들 중 좀 특이한 사람이 있었다고.


 

 

‘오베로니아 레아.

그녀가 모든 지원자들 중 최선이었지만, 의외의 후보도 있었소.’

 

‘후보? 누구?

레아보다 적합하기 쉽지 않을 텐데?’

 

‘그녀보다 적합하다는 뜻이 아니오.

그냥… 의외였을 뿐이지.

세라피아스 앨리스.

그대가 알고 있는 그녀요.’

 

‘… 앨리스?’

 

‘그렇소.

내가 말해준 그 사건의 장본인이지.’

 

‘… … 누가 강제로 시킨 건…

… 아니겠지. 그럴 만한 미친 애가 어디 있겠어.’

 

 

 

용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나도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오르카 호가 정리되고, 반군마저 내 편이 되었을 때도 나는 그녀의 옷자락 한 번 보지 못했으니까.

늘 방에 틀어박혀 있었고, 간간히 바닐라나 콘스탄챠가 가져다 주는 음식을 겨우 삼킬 뿐이었다.

 

어쩌겠냐는 용의 질문에 나는 별 수 없이 데려오기를 선택했다.

당장 철충과의 대전투가 일어날 것도 아니고, 뭐하면 도중에 언제든지 오르카 호로 돌려 보낼 수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늘 방에만 박혀 사는 그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후우… 본인이 하고 싶다고 해서 데려오긴 했는데,

이걸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솔직히 앞길이 막막하긴 하다.

게임 속 설정이야 앨리스는 레아와 함께 상호확증파괴 수준으로 강력하다곤 하지만, 여기서는 얘기가 다르다.

단순한 PTSD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고,

그래서 몇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자기 방 안에 틀어 박혀 지내기만 했다.

그것도 잠수함에서.

 

오르카 호가 꽤 오랜 시간 잠수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잠수함 안은 좁고, 습하고,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땅 위를 걸어 다니는 나도 그러한데, 하물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앨리스에게야 오죽할까?

많은 걸 바라지는 않았다.

그저 이번 기회에 바람이나 좀 같이 쐬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뿐이다.

 

 

 

“어때? 주변은 마음에 들어?

지금은 해군 기지가 있어서 모르겠지만, 옛날에는 괌이 여행 장소로 최고였거든.”

 

“…”

 

 

 

앨리스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햇빛이 반사되는 파도가 앨리스의 커다란 눈동자 안에 선명하게 맺혔다.

마음에 든다는 뜻인가? 그나마 다행이네.

 

 

 

“그래도 괜찮은 것 같으니 다행이네.

일단 레아가 올 때까지 조금만 쉬고 있자.

앨리스도 땅을 밟는 건 오랜만이잖아.”

 

“…”

 

“어때? 우리 신발도 벗을까?

책에서 봤는데, 맨발로 이런 모래 사장 걷는 게 심리 치료에 좋데.”

 

“…”

 

 

 

이번에도 말은 없고, 끄덕임만 있을 뿐이다.


내가 먼저 신고 있던 운동화를 벗었고, 그 다음 앨리스의 다리 밑에 편하게 자리를 잡았다.

 

 

 

“먼저 앉을까?앨리스?

서 있으면 내가 신발 벗겨주기가 힘들 것 같아서 말이야.”

 

“… …”

 



앨리스는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며 발을 굴렀다.

잠깐 손으로 발을 잡았을 땐, 뭔가 불편하다는 듯이 발목을 돌렸지만, 이내 다시 모래 사장 위에 풀썩 주져 앉았다.

그 반동으로 작은 모래 알갱이 몇 개가 앨리스의 치맛자락에 묻었다.

내가 그걸 손으로 툭툭 털어내주면, 앨리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래, 옳지.

이런 굽 있는 신발 신고 다니면 발바닥만 아파.

다음부터는 편한 운동화로 신고 와.”

 

“…”

 

“옛날에 내가 아빠랑 같이 해수욕장에 간 적이 있는데,

그 때 내가 아빠 구두를 신고 다녀서 혼난 적이 있었거든.

앨리스가 신고 있는 이런 구두는 모르겠는데, 그 때 내가 신었던 건 가죽 구두라서 모래가 잘 닦이지도 않았단 말이야.

그래서 한 소리 들었었어. 하하… …”

 

“… …”

 

 

 

앨리스는 자신에게 편한 자세로 다시 한 번 모래 사장 위에 자리를 잡았다.

잔잔하게 주변을 바라보는 지금은 게임 속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파란 눈동자에 비치는 파란 해변.

그리고 그만큼 파란 하늘.

파도는 홍채의 선을 따라 스며들고, 흘러가는 구름 역시 하얀 흰자 위로 사라진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눈과 바다, 그 경계선이 어디인지 도통 알 수가 없게 된다.

 

앨리스는 땅을 손으로 짚고는, 다리 하나를 슬쩍 들어 올렸다.

길고 늘씬한 다리 선을 따라 하얀 스타킹을 입고 있었고, 그 끝에는 검은 구두가 매달려 있었다.

길고 검은 하이힐. 내가 알고 있는 앨리스에게 딱 어울릴 법한 그런 구두였다.

지금의 앨리스에게는 그렇지 않지만.

 

 

 

“벗겨줄까?”

 

“… 응.”

 

“그래, 대답해줘서 고마워.

이런 구두를 신고 있으면 모래 사장에서 균형 잡기가 힘들 거야.”

 

“… …”

 

“그래도 걱정할 건 없어.

어차피 숲 속은 이렇게 푹푹 빠지지도 않을 거고,

뭐 하면 앨리스는 날아다닐 수도 있잖아.”

 

“…”

 

 

 

앨리스의 왼발에 있던 구두를 벗겼다.

발가락은 5개.

멀쩡하게 왼발에 잘 붙어있었다.

내 걱정에 대답이라도 해주는 것처럼 모래가 조금 붙은 엄지 발가락이 꿈틀거렸다.

 

 

 

‘레아가 돌아오려면 시간 좀 걸리겠지?

뭐, 빨리 돌아와도 좀 양해해달라고 해야지, 어쩌겠어.’

 

 

 

나야 몇 번이나 본 해변이지만, 앨리스에게는 몇 년만의 처음으로 나온 풍경이다.

조금씩이라도 이렇게 주변을 볼 수 있게 해줘야 치료가 된다고 하니, 나도 별 수 없다.

 

닥터에게 말을 걸어도 그런 건 자기 분야가 아니라면서 나한테 맡기고,

다프네들도 차마 건들일 수 없다니 결국 앨리스의 치료는 내가 맡아야 할 일이 되버렸다.

번거롭다거나, 뭐 그런 건 아니지만 난 알고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데 이게 맞나 싶다.

 

 

 

“어때? 좋지 않아?

탁 트인 해변에, 고운 모래 사장까지.

할 일만 따로 없었어도 정말 최고였을 거야.”

 

“… … …”

 

“근데 여기는 밤에 오면 더 멋있거든?

나중에 같이 올까?

밥도 싸가지고 오면 좋겠네. 그지?

같이 먹으면서, 주변 구경도 하고.”

 

“밥… …

… …”

 

 

 

나는 옆에서 천천히 앨리스의 손을 향해 손가락을 뻗고 있었다.

그 때였다.

 

 

 

“… 밥…

…!...!!!

아냐…!!! 아냐..!!!!”

 



귓가를 찢을 듯한 숨소리.

앨리스의 목구멍이 곧 죽을 사람처럼 숨을 갈구하기 시작했다.




“애, 앨리스? 갑자기 왜…!!”

 

“야냐!! 내가…!! 내가 한 게 아니라고!!!

먹으려고 했던 게 아니란 말이야!!!

나… 난 아니라고!!!!”

 

“다프네? 닥터?

아무나 좀…!!

… 아씨, 하필 이럴 때…!!”

 

 

 

갑자기 앨리스가 내 팔을 부여잡으며 경련하기 시작했다!

도움을 요청하려고 했지만 이미 통신 피드를 죽여놓은 상태.

다른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내버려두라고!!!

내가…!!! 내가 먹으려던 게…!!!!”

 

“앨리스! 진정해!!

지금 그 새끼는 없다고!!”

 

“내가 어떻게 내 자식을 먹어!!!

내가 왜!!! 내가 왜 그러겠냔 말이야!!!!

난 안 그럴 거야!!

난 안 그랬을 거라고!!!

다 거짓말이지!!

이거… 이거 다!!! 다 거짓말이라고!!!”

 

 

 

파르르 떠는 상체, 거의 보이지 않는 눈동자.

눈에 보이는 건 전부 씹어 삼키려는 듯한 앨리스의 입이 내 목덜미를 물어 뜯었다.

그리 큰 상처는 아니지만, 피를 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경련하는 앨리스를 겨우 팔로 진정시키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버티는 게 전부.

전투를 위해 태어난 바이오로이드를 힘으로 누르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몸을 바꾸지 않았으면 내가 먼저 압사당했을 것이다.

 

 

 

‘이럴 때 나보고 어떻게 하란…

… 후우… 미치겠네.’

 

 

 

앨리스를 보살펴 주던 바닐라가 내게 알려준 팁이 몇 개 있었다.

큰 소리 치지 말 것, 먹을 것 남겨도 뭐라 하지 말 것, 흥분하면 천천히 안아서 달래줄 것… …

 

 

 

‘천천히 안아주라고?

대체 이런 애를 상대로 어떻게…

… 아야!’

 

 

 

앨리스가 피를 보더니, 이젠 다른 곳을 깨물었다.

어깨에 뼈가 있는 부분. 

딱딱한 앨리스의 이가 뼈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앨리스도 잘못 씹었던 것인지, 무는 힘이 약해졌다.

 

그 때를 놓치지 않고 나는 앨리스의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집어 넣었다.

바닐라가 말해준 대로 천천히, 대신 헛손질 하지 않으며.

조심스럽게 앨리스의 등을 쓰다듬었다.

 

눈 앞이 아찔해질 만큼의 분홍빛 머리카락을 보며, 천천히 등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앨리스도 점점 정신을 되찾는 듯했다.

 

 

 

“괜찮아. 괜찮아.

이제 걱정 안 해도 괜찮아.”

 

“… 하아… 하아… …

밥… 밥에… … 손이... ...”

 

“괜찮아. 괜찬아.”


"하아... ... 하아...

... 괜... 찮아... ...?"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괜찮다는 말뿐이었다.

빠르게 뛰고 있던 심장도 서서히 제 템포를 찾아갔다.

바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볼 때쯤, 앨리스는 내 등 위로 손은 얹었다.

 

 

 

“주… 주ㅇ… …”

 

“아무 짓도 안 했으니 걱정하지 마.”

 

“… …

…”

 

“괜찮아. 괜찮아.”

 

 

 

앨리스는 팔에 서서히 힘을 풀었다.

모래 사장 위로 툭, 떨어진 손 사이로 모래가 흘러 들어온다.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작게 귓가에 스친다.

 

 

 

“모래 예쁘지?

난 이렇게 반짝거리는 게 좋더라.”

 

“…

… 임무가… …

... 임무... ... 임... ...”

 

“괜찮아. 내가 그것도 생각 못했을 까봐?

어차피 여기 있는 적군은 레아 혼자면 충분해.

그냥 같이 데이트나 한 번 하자고 부른 거니까.”

 

“… …”

 

“아, 앨리스는 엄청 긴장하고 왔는데 나만 긴장 안 하면 안 되는 거겠지?

솔직히 떨리긴 한데, 그래도 엄청 불안할 정도는 아니니까 걱정하지마.

여기에서 뭐가 일어날 지는 내가 다 알고 있으니까.”

 

“… …”

 

 

 

앨리스는 다시 말이 없어졌다.

이따금씩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아직도 실어증에 빠져있는 것 같진 않은데.

레오나처럼 휠체어가 필요한 수준도 아니고.

다른 문제가 있는 걸까?

… 아니지. 애초에 문제가 없는 게 이상할 일이다.

자기 자식을 자기 입으로 먹었는데 그게 시간 조금 흐른다고 해결될 문제인가?

 

 

 

“난 괜찮으니까 앨리스가 하고 싶은 데로 하렴.

같이 갈래?

아니면 오르카 호에 남아서 쉴래?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봐.”

 

“… …”

 

“가기 싫어?”

 

“…”

 

“갈래?”

 

“…”

 

 

 

앨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슬슬 일어나자.

레아도 곧 돌아올 거야.”

 

“…”

 

“여기 안에 끝내주게 이상한데 예쁜 마을이 하나 있거든?

식물도 엄청 많고 나무 사이에 집도 지어 놓는데.

꼭 요정들이 사는 마을처럼 말이야.

엄청 예쁠 것 같지 않니?”

 

“… …”

 

“내가 고른 이런 해변가보다 열 배는 더 예쁠 거야.

같이 들어가자.”

 

 

 

앨리스는 늘 그랬듯 고개를 움직였다.

나에게 먼저 뻗은 그 손을 놓치지 않고 잡았다.

내 팔에 이끌려 앨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는 숲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넓다란 치마와, 검은 구두.

금발은 아니지만 그만큼 예쁘고 화려한 분홍빛 머리카락.

화창한 날씨를 뒤로하고 어두컴컴한 나무 속으로.

앨리스는 내 손을 잡고 꼭 그렇게 이상한 나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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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 마을과 앨리스.

욕심 부리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


요즘 점점 떨어지는 추천, 댓글 수를 보니 마음이 아프다...



아무튼

절대 애 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