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넘어서



   

“희망봉은 원래부터 그런 이름은 아니었다는 것 같아. 원래는 그곳을 ‘폭풍의 곶’ 이라고 불렀대. 그런데 나중에 인간님들이 희망봉이란 이름으로 바꾼 거지.”



“흐음…….”



파도조차 치지 않는 잔잔한 날이었다. 연한 에메랄드빛의 바다는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처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다.



바다의 고요함을 깨뜨리는 것은 요란한 엔진소리였다. 거울처럼 잔잔한 물결 위로 쌍둥이처럼 닮은 두 척의 전함이 빠른 속도로 바다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실제로 함포의 배치와 약간의 색깔의 차이만 제외한다면 두 전함 사이에 별다른 차이는 없다 해도 무방할 수준이었다. 


서로를 꼭 닮은 그들의 정체는 머메이드. 멸망 전 존재했던 거대기업, 삼안산업에서 제작한 해군 바이오로이드였다.



선두에 선 함정에 탑승하고 있던 엠피트리테는 한숨을 내쉬었다. 무전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영 시원치 않았다. 그녀는 다시금 무전기를 들어올렸다.



“시아. 방금 내 말 듣고 있긴 했던 거야?”



“으응? 아니. 방금 뭐라고 했어 언니?”



무전기에서 돌아온 것은 그녀의 동생 살라시아의 얼빠진 목소리였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지만 엠피트리테는 다시금 한숨을 내쉬고 싶은 기분을 느꼈다.



“시아 네가 나한테 희망봉에 대해 알려달라고 했잖아. 우리가 목표로 향하고 있는 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싶다고 했지. 기억 안 나?”



“응. 시아, 언니한테 그렇게 말했던 거 같아.”



살라시아의 천진난만한 대답에 엠피트리테는 두통을 느꼈다. 엠피트리테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그걸 기억하는 애가 지금…… 하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서, 대체 뭘 하고 있던 거야?”



“시아는 소리 나는 상자를 보고 있었어.”



“소리 나는 상자라면 설마 또 라디오를 만지고 있던 거야?”



“응. 여기서 지난번처럼 또 소리가 들릴지도 모르잖아. 그래서 시아가 계속 확인하고 있었어.”



엠피트리테는 지금 자신의 동생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어렵잖게 상상해낼 수 있었다. 분명 그녀는 방금 전까지도 진지한 얼굴로 라디오를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마치 그렇게 하면 고장난 라디오를 고칠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말이다.



“시아. 몇 번이나 말했지만 항해 중에는 항해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지. 고장난 라디오를 보고 있다고 해서 저절로 고쳐지진 않는단 말이야.”



“그치만 언제 여기서 또 소리가 날 지 모르는 걸. 언니랑 내가 바다에 나온 것도 상자에서 나온 소리 때문인걸. 중요한 거니까 시아가 놓치지 않고 꼭 들을 거야.”



“그리고 그 라디오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하여간 삼안녀석들. 라디오를 제대로 고치지도 않은 주제에 참치캔을 그렇게 많이 요구할 줄이야…….”



얼마 전의 일을 떠올리기만 해도 엠피트리테는 속이 쓰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며 그간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라디오로부터 정체불명의 전파가 수신된 건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쯤의 일이었다. 


시아의 단순한 변덕으로 주워왔던 고물 라디오에서 난데없이 목소리가 흘러나왔을 때는 그녀의 동생보다 엠피트리테 본인이 훨씬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다름 아닌 아시아 지역에 최후의 인간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짧은 시간 흘러나온 소리였지만 그 소식은 엠피트리테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날 밤 엠피트리테는 동생과 함께 몰타 섬에서의 탈출을 감행했다.



“과연 그게 잘 한 결정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항해를 결정한 입장이었지만 엠피트리테는 쉽사리 불안감을 지워낼 수 없었다. 비록 몰타섬에서의 생활이 천천히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는 사형수의 삶이라 할지라도 최소한 거기에는 안정감이 존재했다. 물자도, 보급도 턱없이 부족한 상태에서 오직 전함 한 척에 기대어 지구 반대편으로의 모험을 감행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안정적인 삶이었던 것이다.



꼬르륵



때마침 자신의 배에서 울리는 엄청난 소리에 엠피트리테는 자신의 배를 손바닥으로 찰싹 때렸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한 게 언제인지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몰타 섬에서 챙겨온 한 줌의 보급품은 레모네이드 델타의 세력권인 지브롤터 해협을 지날 때 모두 소진해버린 지 오래였다.



만약 아프리카의 연안을 따라 형성된 바이오로이드 공동체에서 낚시대를 교환하지 않았다면 두 자매는 이미 오래 전에 전함을 분해하여 씹어 먹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엠피트리테는 짙은 피로감을 느꼈다. 단순히 이번 일 때문만이 아닌 아주 오래전부터 느껴왔던 피로감이었다. 공동체에 속하지 못한 떠돌이 바이오로이드의 삶은 칼날 위를 걷는 것만큼이나 위태로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껏 혼자서 그 모든 것을 감당해오고 있었다. 모든 것은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그녀의 동생 살라시아의 안전을 위해서. 동생을 위해서라면 엠피트리테는 무엇이든 해낼 각오가 되어 있었다.



“시아. 이쯤에서 시동을 끄고 낚시부터 하자. 지금부터 시작하면 밤까지 최소한 고기를 한 마리라도 잡을 수 있을…….”



“엄청 큰 건물이다!”



엠피트리테의 말을 끊은 것은 전함의 구동음조차 뚫을 만큼 큰 살라시아의 목소리였다. 그녀의 말에 어리둥절하던 엠피트리테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앞에 펼쳐진 광경에 그만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언니! 저기 엄청 큰 건물이 있어. 저기 들어가면 먹을게 남아있지 않을까?”



 해안가 절벽 위에 우뚝 세워진 것은 콘크리트로 지어진 거대한 구조물이었다. 구조물의 야트막한 윗면을 따라서는 다수의 포대가 바다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이상하다. 분명 저런 건 데이터에 없었는데.”



당황한 엠피트리테는 허둥지둥 데이터를 열람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몰타섬에서 떠나기 전 삼안산업의 파티마로부터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다운받은 아프리카 대륙의 지형 데이터에는 저런 정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한 번 샅샅이 확인해보았지만 역시 구조물에 관련된 정보는 없었다. 데이터 열람을 종료한 그녀는 이를 갈았다.



“삼안 녀석들…… 바가지를 씌우는 것도 모자라 감히 사기를 쳐?”



“언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시아는 저기 들어가 보고 싶어.”



“안 돼. 너무 위험해. 안에 뭐가 있을 줄 알고.”



“그치만 여기서 보기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잖아. 언니 저기서 나랑 같이 쉬면 안 될까? 응? 제발.”



평소와 달리 유난히 보채는 시아의 반응에 엠피트리테는 난처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에게도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지붕이 있는 안락한 잠자리, 만약 남아있기만 한다면 기대할 수 있는 풍족한 식사까지. 어느 하나 지금의 그녀들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은 없었다. 마침내 엠피트리테는 결정을 내렸다.



“그럼 정말로 잠깐만이다. 위험한지 아닌지 잠깐만 확인했다가 바로 나오는 거야.”



“예에 신난다! 밥이다 밥!”



“앗! 시아! 그러니까 혼자 가면 위험하다니까!”



그녀가 말릴 틈도 없었다. 허락을 받자마자 무작정 속도를 높인 살라시아를 따라잡기 위해 엠피트리테는 엔진의 출력을 높였다.

   



   

   

잔뜩 긴장한 엠피트리테는 들고 있던 소총을 강하게 그러쥐었다. 


전함 조종에 특화된 그녀의 특성상 개인화기를 다루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이렇듯 육지에 상륙할 일이 있을 때는 어쩔 수 없었다. 엠피트리테는 적어도 맨몸일 때보다는 나을 것이라 생각하며 자기위안을 했다.



가까이에서 확인한 구조물의 크기는 그녀의 예상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높게 솟은 새하얀 콘트리트의 담벼락은 고개를 끝까지 꺾어야 겨우 그 끝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다행히 입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엠피트리테는 이 시설에 대한 의문점을 좀처럼 지울 수 없었다. 이렇게나 거대한 구조물의 정보가 누락됐다는 건 분명 비정상적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언니! 저 쪽에 문이 있어. 안으로 들어가는 길일까?”



“쉿! 조금만 목소리를 낮추자. 주변에 뭐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녀의 말에 살라시아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엠피트리테는 경계태세를 유지하며 조심스럽게 구조물의 문을 열었다.



내부로 진입한 엠피트리테는 날카로운 눈으로 방의 구조를 살폈다. 곧 그녀는 이곳의 구조가 대단히 익숙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력이 공급되지 않아 어두컴컴한 모습이었지만 전체적인 구조는 그녀들도 익히 잘 알고 있는 모습이었다.



“꼭 섬에 있을 때 우리가 살던 곳 같아.”



엠피트리테는 시아의 솔직한 감상에 동의했다. 분명 이곳은 해안요새로 사용되던 구조물이었을 것이다. 하긴 상층부에 다수의 포대가 설치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녀 역시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던 사실이었다.



전체적인 수색을 마쳤지만 특별한 점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오랫동안 전혀 관리되지 않았던 듯 곳곳에 수북이 쌓인 먼지를 제외하면 손상되거나 파괴된 부분조차 없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전기를 연결하고, 먼지를 걷어낸다면 그대로 이곳을 다시 사용해도 무방해 보일 정도의 보존 상태였다.



‘이런 곳이 어째서 지금까지 그대로였던 걸까. 숨어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멸망해버린 세계에서 거대한 세력에 소속되지 않은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물자의 중요성은 그 무엇보다도 크다. 하물며 손상되지 않은 금속과 기계장치가 가득한 요새다. 이런 곳이 지금까지 수탈당하지 않고 남아있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탐색을 계속하며 어느덧 지하에 도착한 엠피트리테는 닫혀 있던 방의 문을 열었다. 곧장 그녀의 코에 오래 쌓인 퀴퀴한 먼지의 냄새가 훅 끼얹어졌지만 몸에 해로운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엠피트리테는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방 안 구석구석을 살폈다.



엠피트리테는 놀라움에 잠시 숨을 멈췄다. 그곳에 있는 것은 막대한 양의 무기들이었다. 모든 총기에 대응 될 법한 다양한 종류의 구경이 적힌 탄약 상자들, 폭약과 수류탄이 들어있는 상자들까지.



벽면에 걸린 총기들은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아 작동을 보증하기 어려운 상태였지만 적어도 폭약과 탄약들만은 아직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이 분명해보였다. 



방 안에 가득 쌓인 탄약들은 만약 터지기라도 한다면 이 요새는 물론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도 남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엠피트리테는 점차 이 요새에 대한 가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곳은 분명 멸망 전 인류가 최후의 보루로 삼기 위해 설계되었던 요새일 것이 분명해보였다. 해안가에, 그것도 좁고 긴 절벽 끄트머리에 자리 잡은 요새의 위치가 그 가설을 더 그럴듯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아마도 이곳에서 인류는 안락한 생활을 꿈꿨을 것이다. 비록 어째서인지 알 수 없는 이유로 막대한 물자를 남겨둔 채 사라지고 말았지만 말이다.



탄약과 폭약들을 둘러보던 엠피트리테는 문득 지하에 이 곳 말고도 다른 곳으로 연결되는 문이 많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곳에 이렇게 많은 물자가 있는 거라면 다른 곳에서도 기대해볼 가치는 충분해보였다. 엠피트리테는 서둘러 다른 방으로 향하는 문고리를 잡았다.



“언니 잠깐 이쪽으로 와봐! 시아가 좋은 걸 찾아냈어!”



엠피트리테의 생각을 멈춘 것은 살라시아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그제야 살라시아가 그녀의 곁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살라시아의 목소리는 저 멀리 위층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분명 자신을 따라와야 한다고 단단히 일러뒀을 텐데! 엠피트리테는 서둘러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달려갔다.



“시아! 혼자서 돌아다니면 안 된다고 말했을…….”



“언니! 이것 봐. 이 방에 이런 게 있었어!”



살라시아를 혼내려던 엠피트리테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위 층에 닫혀 있던 문들 중 하나. 살라시아가 들어가 있는 방에는 상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보존 식품들이 한가득 쌓여있었다.



“이게 대체…… 여기 다 있던 거야?”



“응! 문이 닫혀 있길래 궁금해서 열어봤는데 이런 게 있었어. 오늘 저녁엔 이걸 먹으면 안 배고플 거야.”



이걸 먹는다고 지금 여기서? 강렬한 유혹이 엠피트리테를 덮쳤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고인 침을 삼켰다.



“…… 하지만 안 되는데. 아직 더 주변을 살펴봐야 하는데.”



엠피트리테는 어떻게든 참아보려 했다. 탐사 중간에 일을 내버리고 식사를 한다는 건 언어도단에 가까운 일이었다. 평소 그녀가 지켜왔던 엄격한 원칙에 따르면 결코 허락되지 않을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원칙을 지키기에는 음식에 대한 그녀의 욕망이 너무나도 컸다.



꼬르륵



때 마침 그녀의 배가 다시 한 번 텅 비어있음을 어필했다. 이제는 더 이상 참기 힘들었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엠피트리테와 살라시아는 열성적인 태도로 음식을 향해 달려들었다. 실로 전투적이라고 할 만한 모습이었다.



   

   

   

“사아 배불러 앞으로 아무것도 못 먹을 것 같아.”



“그럼 내일 아침 정도는 굶어도 되겠네? 그렇게나 많이 먹었으니까 말이야.”



“음.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아. 시아는 계속 먹을 거야. 내일도 모레도 이렇게 많이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엠피트리테와 살라시아는 느긋한 걸음으로 보급품이 가득한 수레를 끌며 해안의 모래사장 위를 걸었다. 



만족스러운 식사가 끝난 직후였기에 두 자매의 표정은 한층 더 평온하게 변해 있었다. 평소 예민하던 엠피트리테조차 느슨하게 긴장을 푼 채 소총을 늘어뜨리고 있을 정도였다.



만족스럽게 배를 채웠으니 이제 따스한 요새 내부에서 편하게 쉬어도 될 법 했지만 자매에게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었다. 해안가 동굴에 임시로 정박해둔 전함을 조금 더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보급품도 채워놔야만 했다.



하지만 해안가를 걷는 엠피트리테의 마음속에는 조금 다른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는 본능처럼 되어버린 신중한 태도로 자신의 생각을 면밀히 검토해보았다.



“도착했다! 다행이다. 아무 일도 없었구나.”



“당연히 아무런 일도 없었지. 이런 곳에서 누가 우리 배를 훔쳐갔겠어.”



“그래도 걱정했단 말이야. 배가 없으면 시아는 아무 곳도 갈 수 없어. 더 이상 바다에 나갈 수도, 높은 인간님을 만나러 갈 수도 없잖아?”



살라시아는 그렇게 말하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던 엠피트리테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녀의 동생 살라시아가 바다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그녀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유명무실해졌다 해도 그녀들 자매는 바다에서 싸우기 위해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인 것이다. 바다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은 본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것은 엠피트리테 역시 마찬가지였다. 동생 살라시아와 마찬가지로 본능에 따라, 원하는 만큼 한없이 바다 위를 항해하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욕심이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현실적인 문제나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녀들에게 남겨진 것들은 너무나도 적었고, 바다는 지나치게 광활했다. 이제는 선택을 내려야 할 때였다.



“시아. 그 이야기 말인데. 잠깐 할 이야기가 있어.”



“응? 무슨 말인데 언니?”



“시아가 생각하기에 여기 요새는 어땠던 것 같아? 그러니까 방금 전에 우리가 있었던 곳 말이야.”



“응! 너무 좋았어. 지붕이 있고 따듯한 것도 좋았고, 먹을 게 많은 것도 좋았어. 그리고 언니가 오랜만에 웃는 걸 볼 수 있어서 제일 좋았어.”



콧노래를 부르며 전함에 짐을 싣던 살라시아는 엠피트리테를 돌아보았다. 그 웃음을 보며 잠시 머뭇대던 엠피트리테는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다행이네. 그런데 말이야. 이건 정말로 만약의 말인데. 시아는 우리가 계속 저기서 산다고 하면 어떨 것 같아?”



“계속 산다고? 저기에서?”



“응. 대신 더 이상 바다로 나갈 일은 많이 없어질 거야. 물론 전함을 처분할 순 없으니 원한다면 가끔씩 바다로 나갈 순 있겠지만 지금처럼 계속 항해를 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



“그럼 높은 인간님을 찾으러 가는 건? 언니랑 나랑 희망봉을 지나서 거기로 가기로 했잖아.”



“물론 그 계획도 취소하게 되겠지. 지금부터 계속 여기에 사는 거야. 어떨 겉 같아?”



갑작스러운 엠피트리테의 말에 살라시아는 혼란을 느낀 것 같았다. 멍한 얼굴로 엠피트리테의 말에 대해 생각하던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싫어. 시아는 안 좋다고 생각해.”



평소의 살라시아답지 않게 단호한 태도였다. 엠피트리테는 차분히 그녀를 설득했다.



“잘 생각해봐 시아. 우리는 먹을 것도, 연료도 부족한 상황이야. 당장 방금 전 일을 생각해봐. 우리가 제대로 된 식사를 한 지 얼마나 됐었지? 시아도 또 그러고 싶진 않을 것 아니야.”



“물론 굶는 건 싫어. 하지만 그렇다고 바다에 나가지 못하는 건 더 싫단 말이야. 언니. 그냥 우리 여기서 조금만 더 쉬다가 다시 바다로 가면 안 돼? 앞으로 시아가 더 잘 할게. 언니 말도 잘 듣고 먹을 것도 조금만 먹을 테니까. 응?”



살라시아는 울상이 된 채 엠피트리테에게 매달렸다. 항해를 포기하고 이곳에 정착한다는 말이 어지같이 충격으로 느껴졌던 것 같았다.



엠피트리테는 어떻게든 그녀에게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하려 했다. 시아는 이해력이 조금 부족한 바이오로이드다. 어떻게 말하면 그녀를 잘 설득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엠피트리테는 문득 짜증을 느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오랜 시간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칠 때마다 조금씩 쌓여왔던 감정이었다.



“시아 부탁이니까 이럴 때만큼은 생각을 좀 해 주면 안 될까?”



“언니?”



엠피트리테의 말에 살라시아의 몸이 잔뜩 움츠러들었다. 그녀 자신조차도 깜짝 놀랄 만큼 착 가라앉은 차가운 목소리였다. 실언을 깨달은 엠피트리테는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아. 우리는 장난을 치고 있는 게 아니야. 먹을 게 부족한 것도, 연료가 부족한 것도. 전부 다 감당하기 힘든 문제들이야.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았다고 해도 다음에는 정말로 어떻게 될지 모른단 말이야. 대체 왜 이 간단한 걸 이해하지 못하는 거니?”



하지만 막상 입을 열었을 때 나온 것은 그녀의 생각과는 정 반대되는 내용의 말뿐이었다. 그리고 한 번 고삐가 풀린 말은 더 이상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언니 미안해…… 하지만 시아는 그런 생각이 아니었는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 고물 라디오를 어떻게든 고쳤을 때부터 그랬어. 그걸 고치기 않았다면 식량을 얼마나 더 교환할 수 있었는지 알아? 항상 깊게 생각도 안하고, 먼저 행동한 다음에 수습할 생각조차 안하고. 정말이지 너는…….”



엠피트리테는 말을 멈추었다. 머릿 속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뜨거웠다. 지금 그녀가 처한상황이, 그녀가 살라시아에게 말했던 내용들이, 그녀의 앞에서 울상이 된 살라시아까지도. 이대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 짐을 마저 실어둬.”



결국 엠피트리테는 몸을 돌려 살라시아에게서 멀어졌다. 그녀의 등 뒤로 살라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애써 무시했다. 지금 그녀에게는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엠피트리테는 빠른 속도로 걸음을 옮겼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 어둑어둑해진 시간에 얼굴에 내내 해안가의 시원한 바람이 부딪혔다.


 

그러나 상쾌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머릿속에 끈적끈적한 윤활유가 잔뜩 끼어있는 것만 같았다.



살라이아에게 처음으로 화를 냈다. 그것도 진지하게 못 할 말을 쏟아내 버렸다. 어째서 그런 짓을 저지른 걸까. 따지고 보면 그런 제안을 했던 것도, 모두 다 살라시아를 위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이 이상 동생이 배를 곯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혹시 지금껏 알게 모르게 시아에게 불만이 쌓여왔던 건 아닐까? 물론 그랬을 것이다. 엠피트리테는 순순히 그 사실을 인정했다.



살라시아는, 객관적인 기준에서 결코 평범하지만은 않은 바이오로이드였으니까. 그녀를 뒷바라지 하는 과정이 순탄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생활이 싫은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만약 혼자였다면 그녀는 지금까지 살아있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삶을 지금껏 지탱해온 것은 누가 뭐라 해도 동생에 대한 헌신이었다.



“……역시 사과는 해야 하겠지?”



문득 자신의 모습이 대단히 우습다고 생각한 엠피트리테는 쓴웃음을 지었다. 시아에게는 어떤 식으로 사과하는 게 제일 좋을까. 어떤 식으로 하던 지금 당장 하기 보다는 조금 시간을 둔 다음에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한참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엠피트리테는 그녀의 근처에서 들려오는 사각거리는 소리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그 소리를 알아챘을 때 소리의 근원은 어느덧 그녀에게 바짝 다가온 상황이었다. 엠피트리테는 어둠 속에서 소리소문없이 나타난 철충을 맞이했다.



‘처, 철충이라고? 대체 어디서?’



드론을 숙주로 삼은 것처럼 보이는 개체였다. 온 몸에 붉은 힘줄이 툭툭 불거진 철충은 얼어붙은 엠피트리테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철충의 총기 발사 속도가 어떻게 되더라? 


그녀의 머릿속에 그녀가 경험했던 철충들의 모습이 떠올랐지만 그 중에서 희망으로 여겨질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철충들은 하나같이 신출귀몰하게 나타나 바이오로이드 희생자들을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분쇄해버리기만 했다.



확실한 죽음 앞에서 엠피트리테는 눈을 감았다. 하물며 살라시아에게 경고라도 해줬어야 하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의 머리를 가득 채운 것은 그런 생각뿐이었다.



콰쾅!



엄청난 열기와 후폭풍이 그녀를 덮쳤다. 폭발에 휘말린 엠피트리테는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그녀는 곧 자신의 몸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야…… 살아있…… 어?”



엠피트리테는 멍한 얼굴로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폭발에 휘말리며 이곳저곳 긁힌 곳은 많았지만 이렇다 할 큰 부상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폭발이라니?



엠피트리테는 서둘러 자신을 겨누고 있던 철충을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제 그곳은 ‘철충이 있었던 곳’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았다. 그녀가 걷고 있던 모래사장에는 그녀를 노리던 철충 대신 산산이 부서진 기계파편과 오목하게 파인 구덩이만이 보일 뿐이었다.



“언니! 괜찮아? 다치진 않았어?”



정신없이 숨을 헐떡이던 엠피트리테는 그녀의 품에서 들리는 동생의 목소리에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평소 그녀가 살라시아와의 통신을 위해 지니고 있던 무전기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저 멀리 수평선 쪽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너무나도 익숙한 한 척의 전함의 모습이 보였다. 밀려드는 반가움에 엠피트리테는 왈칵 눈물을 터뜨릴 뻔했다.



“시아! 난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그런데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미안해 언니, 시아 사실 언니가 간 다음에 상자를 안 옮기고 몰래 배를 타고 언니를 따라가고 있었어.”



아마도 살라시아는 홀로 떠나버린 엠피트리테가 걱정되었을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엠피트리테는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언니가 가버린 다음에 갑자기 철충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했어. 저기 우리가 방금 밥 먹었던 곳에서 말이야.”



“요새에서 철충이 나왔다고?”



엠피트리테는 그제야 모든 것을 깨달았다. 요새가 수탈당하지 않았던 것, 그리고 파티마가 제공한 데이터에 해안요새가 포함되지 않았던 것은 전부 그곳이 철충들이 동면중인 소굴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분명 그녀가 들어가지 않았던 요새 지하의 방에 철충들이 득시글거리고 있었겠지. 그런 생각을 떠올린 엠피트리테는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엠피트리테는 서둘러 수영을 하여 살라시아를 향해 나아갔다. 천만 다행으로 살라시아는 엠피트리테의 전함까지 몰고 온 참이었다.



“언니!”



엠피트리테를 발견한 살라시아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엠피트리테는 즉시 그 미소에 답해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한 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엠피트리테는 서둘러 전투태세에 임했다.



“시아, 상황 보고해. 연료와 탄약 상황은 얼마나 남아있어?”



“응. 펑펑 터지는 탄이랑 모두 뚫은 탄 전부 가득 남아있어. 기름도 가득 차 있고. 언니가 말한 대로 그거부터 다 채워놨거든. 시아 잘했지?”



“정말 잘했어 시아. 그러면 남은 건 적들의 수인데…….”



엠피트리테는 즉시 막막한 기분을 느꼈다. 굳이 레이더를 확인해볼 필요조차 없었다. 요새 근처에 맴돌고 있는 철충들은 어느덧 새까만 구름처럼 보일 정도로 빠르게 불어나 있었다.



이대로 철충들을 무시하고 바다로 나가야 할까? 엠피트리테는 즉시 그 가능성을 접어두었다. 물론 그렇게 한다면 잠시동안 철충들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곳에서 깨어난 철충들 중에 비행이 가능한 개체가 없다는 가능성은 적었다. 만약 비행 가능한 개체가 자매를 추적한다면 연안에서의 항해가 특화된 자매로서는 추적을 뿌리치기 대단히 힘들 것이다.



어느 쪽이던 결정을 내리기 힘든 상황이었다. 밀려드는 난감함에 엠피트리테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대체 이 위기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언니! 아직 철충들이 잘 안 움직이는 것 같아. 시아가 다 쏴서 맞출 수 있지 않을까?”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시아. 우리가 가진 탄을 다 쏟아 붓더라도 저렇게 많은 수를 제거할 순 없을…….”



바로 그 때 어떠한 개념이 엠피트리테의 뇌리를 스쳐 지났다. 철충들이 깨어나고 있는 지하창고, 그리고 그 옆에 보관된 막대한 폭약들.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시아! 내가 말해주는 곳으로 포를 쏠 수 있겠어?”



“응! 시아 할 수 있어.”



살라시아는 즉시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목소리에 엠피트리테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분명 앞으로도 어려운 일은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그 때마다 지금처럼 다 포기해버리고 싶은 일도, 때로는 서로의 잘못을 탓하며 싸울 일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확실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두 사람, 자매가 함께라면 그 어떤 일도 얼마든지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지붕 있는 곳에서 잠들지 못하는 건 아쉽게 됐지만…… 어쩔 수 없겠지.”



그렇게 말한 엠피트리테는 자조 섞인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굶주림은 당분간 자매가 피하기 힘든 운명인 것 같았다. 엠피트리테는 즉시 살라시아를 향해 좌표값을 전송했다.



“시아, 바로 저 부분이야. 모두 뚫는 탄을 발사한 다음 펑펑 터지는 탄을 쏘는 거야. 알고 있지?”



“응! 시아는 준비 됐어.”



확인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오직 자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감각을 통해 살라시아와 엠피트리테의 함포가 동시에 불을 뿜었다.

   





   

   

“시아. 또 참치캔을 한 번에 반이나 먹은 거야? 그러면 안 된다고 했잖아. 참치캔은 항상 네 등분으로 나눠서 먹어야 한다고 했지.”



“그치만 참치 덩어리가 그렇게 생겼는걸. 시아는 한 조각만 집었는데 그렇게 된 거란 말이야.”



파도조차 치지 않는 잔잔한 날이었다. 연한 에메랄드빛의 바다는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처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다.



바다의 고요함을 깨뜨리는 것은 요란한 엔진소리였다. 거울처럼 잔잔한 물결 위로 쌍둥이처럼 닮은 두 척의 전함이 빠른 속도로 바다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정말이지…… 어쨌든 오늘은 조금 일찍 낚시를 해보자. 그러면 먹을 걸 좀 더 많이 낚을 수도 있잖아.”



선두를 달리는 전함에 탄 엠피트리테는 보급품 목록이 적힌 데이터를 검색하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즉각 무전기 너머로 살라시아의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에에? 시아 낚시는 재미없어서 하기 싫은데…….”



“어쩔 수 없잖아? 식량이 다 떨어져가는 걸. 그 요새에서 먹을 걸 더 많이 챙겼으면 모를까 지금 상황에서는 낚시라도 해서 식사를 해결해야 돼.”



살라시아는 여전히 툴툴대긴 했지만 그녀의 말에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보급품으로 가득한 요새를 지나온 참이었지만 자매의 식량사정은 여전히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평소 지침대로 식량이 아닌 탄환과 연료를 최우선으로 보급한 결과였다. 결국 자매가 싣지 못한 식량들은 철충들과 함께 화려하게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역시 조금은 식량을 더 챙겨둘 걸 그랬나.’



다시금 배에서 울리는 꼬르륵 소리에 엠피트리테는 손바닥으로 자신의 배를 찰싹 때렸다. 이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배고픔을 잊을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건강에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자, 우리 힘내서 조금만 더 가자. 그러고 보니 시아. 희망봉을 꼭 보고 싶다고 했었지?”



“응! 시아 희망봉이란 걸 보고 싶었어. 거길 넘어가면 그 다음부턴 높은 인간님이 있는 곳이랑 가까워지는 거잖아?”


살라시아는 방금 전까지 툴툴대던 것도 잊어버린 채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확히 말하지만 희망봉을 넘어간다고 해서 극적으로 거리가 짧아지는 건 아니지만.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엠피트리테는 미소를 지었다. 사실이 그렇다고 해도 그것을 곧이곧대로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일부로 기운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희망봉을 넘어서기만 하면 최후의 인간님이 있는 곳에 훨씬 가까워질 거야. 아, 저기다. 시아, 저기 보여? 저기 보이는 저게 바로 희망봉이야.”



“우와 진짜? 시아 저기서 잠깐 멈출래. 구경하고 싶어!”



시아의 말에 엠피트리테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래도 살라시아는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희망봉이라는 것에 단단히 꽂혀 있던 모양이었다.



조금 이르긴 했지만 이곳에서 낚시대를 던져도 좋지 않을까? 엠피트리테는 그런 생각을 하며 희망봉을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자매는 전함의 시동을 멈춘 채 희망봉을 바라보았다.



시동마저 멈추자 바람 한 점 없는 바다는 곧 고요한 정적에 빠져들었다. 저 멀리서 갈매가 우는 소리만이 자매의 귓가에 잔잔히 들려올 뿐이었다.



그랬기에 두 자매는 누구보다도 명확하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살라시아가 애지중지 여기고 다니던 라디오에서부터 지지직 거리는 낯선 전자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전자음은 곧 어떠한 인물의 음성으로 변해갔다.



“……항군에 ……류 하십시오. ……카는 ……의 인간님과 함께…… 여러분을…… 기다리…….”





-후기-

너무 늦게 올리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이번 소설은 가족대회라는 주제를 보고, 그리고 거지자매 설정을 보고 어떻게든 작성하고 싶었던 소설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