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도착했습니다.”

안전벨트를 풀며 뒤에서 코를 골고있는 청년을 말로 깨워본다. 하지만 말로는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이미 만취해있는 상태였다. 나는 한숨을 푹 쉬고는, 조수석에서 내렸다.

운전석에 앉아 ‘IYD-08881’이라고 적힌 명패가 살짝 흔들린다. 빵모자를 푹 눌러쓴 단발머리의 소녀가 나를 흘끗 돌아봤다. 정확히는 여자아이는 아니다, 바이오로이드니까. 제품명은 ‘단발 쟝’. ‘무적의 용’이라는, 다소 부끄러운 이름도 생산품에 붙이는 것이 바이오로이드 시장이니까 놀랍지는 않지만, 악의가 느껴질만한 이름이라고 늘 생각한다. 나는 그녀에게 그냥 앉아있으라는 제스쳐를 보냈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한 다음 센터페시아 여기저기를 신기한 듯이 만졌다. 

뒷문을 열자 여자 향수 냄새가 코를 맴돈다. 출발지가 단란주점이었으니 당연한건가. 바이오로이드는 서민들이나 상대하고, 있으신 분들은 텐프로 같은 여자들하고 술잔 부딫히고 몸도 부대끼고 하는 것이지. 암.

나는 청년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사장님? 도착했습니다.”

“응?”

“도착했습니다, 사장님.”

청년은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쫙 폈다. 입에서 나오는 숨을 따라 술냄새가 동행을 한다. 얼굴이 찌푸려지는 것을 가까쓰로 참아내었다.

“고생했어, 이 과장.”

‘씹쌔...’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 대리운전 회사의 일개 인원일 뿐이고, 앞에 있는 청년은 회사 사장이었다.

 

나도 조그만 스타트업 회사의 사장일 때가 있었다. 자율주행 차량의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였다. ‘내가 덜 먹고 더 팔자’는 신념이 있어서 벌이는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직원들의 충성도도 높고 콘스탄챠 S2를 아내 겸 비서로 데리고 있을 정도로는 성공했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자율주행 차량들이 오작동을 일으키는 사고가 다발하게 되었다. 근처에서 이따금씩 우락부락한 여자가 있었다는 증언이 있었지만, 바이오로이드 회사들이 로비를 어찌나 해댔는지 ‘증거불충분’으로 결국 모든 책임은 자율주행이 지게 되었다. 웃기지 않은가? AGS가 적극적으로 보급된지 꽤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 그것들은 믿어도 되고, 사람이 타고 있으면 AI에게 책임을 주지 말아야한다고? 나랏님들이 늘상 그랬듯이 별다른 고민 없이 내놓은 대책으로 인해 우리회사는 그 존재 이유를 잃었다.

’운전석에는 반드시 사람이 탑승할 것‘

당연히 그동안 자율주행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이 법을 반대하였고, 법은 이렇게 개정되었다.

’운전석에는 반드시 바이오로이드 또는 사람이 탑승할 것‘

이렇게 되자 이번엔 과거 이슬람 국가에서나 볼법한 순혈주의자들이 어딜 감히 바이오로이드가 운전석에 앉냐는 식으로 들고 일어났다. 그들의 표 또한 소중했기에, 법은 결과적으로 이렇게 개정되었다.

’운전석에는 반드시 사람이 탑승할 것. 단, 바이오로이드가 탑승할 경우 인간이 조수석에서 지도할 것‘

이걸 악용해서 도련님 아가씨들이 바이오로이드에게 험악한 운전을 시키는 사례가 빗발쳤지만, 이번에는 돈으로 나랏님들의 입을 틀어막아버렸는지 그 뒤로 개정된 것은 없었다.

어쨌거나 이 법률로 인해서 자율주행 차량 부품을 만들던 회사들은 줄도산을 했고, 몇 년 뒤에 나도 회사를 정리할 수 밖에 없었다. 일을 하던 직원들에게 일단 퇴직금을 제법 두둑히 쥐어보냈고, 콘스탄챠 S2와도 파혼을 했다. 딸아이는 일단 마리아의 집에 맡겼다.

국가에서 지급하는 기본수당으론 마리아의 집에 양육비를 보내면 적자가 나서 일을 반드시 해야했다. 하지만 이 나이먹고, 쓸데도 없는 자율주행 기술을 가진 사람을 채용해줄 곳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율운전이 망한 뒤로 구시대의 산물이라고 여겨졌던 대리운전이나 할 수 밖에. 

앞에 있는 이 청년은, 내 친구의 아들이다. 아니, 정확히는 ’전‘ 친구지. 부모가 반 바이오로이드 단체의 테러에 휘말리는 바람에 대리운전 회사를 빠르게 이어받았다. 하지만 도대체 회사가 어떤 구조로 굴러가는지 알기는 할까 싶을 정도였다. 사무실을 나오는 적이 잘 없고, 대리운전 기사만 채용한 뒤 나머지 일들은 부모가 사둔 회계 바이오로이드에게 일임할 뿐이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친구녀석이 오냐오냐하면서 키웠던지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글러먹은 놈이다. 오늘도 본인 술먹었다고, 지금 근처에 있는 사람 바로 보내라고 윽박지르는 통에 내가 운나쁘게 걸렸다. 원래 있던 손님 돈도 돌려드리고, 손님으로부터 욕 한바가지 먹은 뒤에 기껏 데리러왔더니 뭐 몇분이 늦었느니 사장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냐는 둥 개소리를 쏟아낸 뒤에 취기를 못이겨서 쳐자기 시작했었다. 이런 놈이라는 것은 다른 직원들한테 익히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당하니 더 열이 받는다. 그런데도 시대를 잘 만나서 돈이 술술 벌리고 있으니, 참 불공평한 세상 아닌가.

 

“난 좀 더 잘래.”

“아닙니다. 어서 일어나셔야죠.”

뭐라고 꿍시렁대는거 같지만 취할대로 취한 몸이라, 억지로 몸을 잡아 빼는데 성공했다. 만져보니 이미 배가 나온 나와는 대비되는 다부진 몸이다. 가끔 사무실에 얼굴을 비출때도 일 돌아가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본인이 3대 몇을 쳤느니 하는 소리만 하는 놈이었는데 허언은 아니었나보다. 어쨌든 그를 부축하며 현관으로 데리고 갔다.

“발쟝아, 일단 차 주차시키고 다시 와.”

단발 쟝은 고개를 끄덕이고 빈 주차공간을 향해 차를 몰고 갔다. 그와 동시에 등 뒤로부터 LED 불빛이 확하고 켜졌다.

“주인님?”

여자의 목소리긴 하지만 바이오로이드다. 하늘거리는 메이드복을 입고 공동현관까지 나오는 인간 여자가 세상에 어디있겠는가. 그리고 그 목소리는 익숙했다. 콘스탄챠 S2 모델이다. 꿈엔들 잊힐래야, 한때는 같이 동고동락도 했었는데.

콘스탄챠 S2 모델은 주인을 인수받기 위하여 내 쪽으로 다가오다가, 순간적으로 멈췄다. 그녀는 적잖이 놀란 기색이었다.

“주인...님?”

“아 예. 사장님이 술을 많이 드셔서...”

“아니, 저에요, 콘스탄챠 S2 iFP-795.”

그녀는 자신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어디선가 들어본 시리얼 번호, 그리고 떠오른 기억.

“응. 잘 지내?”

“네...”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그때, 파혼한 뒤에 다시 삼안 인증 중고시장에 갔다가, 가사 메이드 자격으로 재분양되어서...”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나. 전처가, 사장집 가사 메이드로 들어와있다니. 물론 전처가 바이오로이드라고는 하지만 참 신기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그래. 잘 지내지?”

“야이씨 이 과장. 내가 더 잔다고 안그랬어?”

갑자기 정신이 든 청년은, 내 명치를 때렸다. 억 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온다. 콘스탄챠도 황급히 다시 자신의 본분으로 돌아갔다. 나에게서 사장을 떼내서, 이제 본인이 부축하였다.

“일단 돌아가세요. 차 키는?”

어느새 옆에는 단발 쟝이 와있어서, 콘스탄챠에게 차 키를 건냈다. 나는 복부의 고통 때문에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했다. 딸 아이 소식도 전해야하고, 그간 근황도 듣고 싶었고 또 들려주고 싶었는데... 현관문이 열고 닫기는 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계단에 주저앉았다. 단발 쟝도 따라 앉아 등을 두드려주었다.

 

회로가 망가진 것 같은 멜로디와 함께 우리는 편의점을 나왔다. 나는 전자담배를 물었다. 배터리가 약해졌는지 뜨거워지는데 한참 걸린다. 그 사이 단발 쟝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본다.

“먹어도 돼.”

콜이 중간에 붕 뜰 때마다 편의점을 같이 들리곤 했는데, 오늘도 그녀는 이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단발 쟝은 옅은 미소를 띄고 아이스크림 포장지를 벗겼다. 이렇게 보면, 말만 못한다 뿐이지 일반 소녀나 다를바 없다. 초코맛 소프트 아이스크림 콘. 

한참 먹는 것을 보고있자니 또 딸아이 생각이 난다. 단발 쟝과 비슷한 나이대... 아니 얘는 바이오로이드지, 이제 중학교 들어가기 직전의 체형. 비록 몸은 떨어져있고 주말에만 보는 신세지만. 그래도 내가 고생해야 딸아이가 마리아의 집에서 구박 안받고 지낼 수 있기 때문에 오늘도 힘을 낸다. 그렇게 생각하고 담배 한 모금을 깊이 빨아들이려는 찰나, 단발 쟝의 단말기가 울렸다. 

 

현장에 서있는 것은 빨간 고급 내연기관 승용차였다. 다들 한번 쯤은 타보고 싶다던 그 차. 화려한 드레스를 몸에 두른 아가씨가 앞바퀴 근처에 널부러진 채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저~씨, 여기에요~”

혀가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

“어디로 가시는데요?”

“개자식...”

여자는 그러더니 갑자기 펑펑 울어제낀다. 하 씨발, 오늘 일진 대체 왜이러는거야. 단발 쟝은 내게 대리운전 단말기를 보여준 뒤 여자를 조수석에 앉혔다. 다행히 정신이 있을 때 콜 직원한테 이야기했었나보다. 거리는 꽤 멀다. 도시 끝에서 끝으로 이동해야하는 비교적 장거리. 하지만 차라리 더 좋다. 

“발쟝아, 오늘 그냥 들어가라.”

운전석에 앉아있던 단발 쟝은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는 차에서 내렸다. 그녀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지금 일하기 싫다. 사장에게 굽신대야하는 지금의 내 자신이 싫었다. 잊고있었던 과거의 영광이 사무친다. 콘스탄챠를 보고난 뒤로 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마침 재료는 있다. 좋은 차, 화려한 아가씨, 장시간 방해 안받을 명분. 이런 찬스를 놓칠 수 없지. 

내연기관의 진동, 배기음 그리고 바람을 느끼며 도시를 갈라 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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