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 아름다운 세상에 어느 남자 줄거리 - 1


종이 짤랑하는 소리가 가게의 적막을 깨었다. 그리고 메이드 복을 입은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손을 흔들었고, 여자는 간단한 목례 후 기품있게 내쪽으로 걸어와 테이블에 앉았다.

“사장이, 따로 옷은 안사줬나봐?”

“저희에겐 이게 피부같은 것인 걸요.”

대화의 시작을, 내 딴에는 유머라고 해서 던졌다가 망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콘스탄챠 S2 iFP-795는 능숙하게 받아넘겼다.

“아, 그리고 주문은 미리 해뒀어. 정종하고, 시샤모.”

아직 회사가 잘나가던 시절의 단골집, 부부 사이였을 때 자주 시키던 안주, 앞에는 전처. 과거를 자극하는 요소들로만 이 음식점 칸막이가 가득 차있다.

“먼저 드세요.”

나는 미소와 함께 젓가락을 들어 시샤모 한마리를 집어 들었다. 변함없는 맛이다.

“그래서, 용건이 뭐야? 갑자기 연락을 다 주고 말이지”

며칠전,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다급한 콘스탄챠 S2의 목소리였다. 혹시 따로 만나서 이야기가 가능하겠냐는 내용이었다. 지난번의 그 사건 이후로 싱숭생숭하던 차였기에 나는 흔쾌히 약속을 잡았었다. 

콘스탄챠 S2는 대답이 없었기에 일단 정종을 한잔 비웠다. 콘스탄챠 S2는 바로 술병을 집어들으려고 했지만 나는 손사래를 치고 내가 스스로 정종을 들었다.

“말해봐.”

“저희 회사, 다시 파산한데요.”

콘스탄챠는 황급히 근처에서 티슈를 뽑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정종이 바지를 적시고 있었다. 아니 뭐, 파산?

“아니 그게 말이 돼?”

“사실 회사 자체가 대출을 많이 끌어온 상태로 세워졌고, 그 뒤로 재정이 썩회복이 안되다보니 은행에서 차압을 걸기 시작했어요... 이대로라면, 회사 폐업은 물론이고 압류까지 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콘스탄챠의 눈에 눈물이 고이고, 말 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콘스탄챠는 그녀가 쓰던 안경을 벗어서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티슈를 다시 뽑기 시작했다.

음식점의 분위기에 취해 잊고있던 비참한 과거가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회사가 문을 닫기 위해선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필요하다. 부동산과 동산을 처분하고, 근무하던 직원들에게 마지막 인사와 퇴직금을 챙겨주고, 각종 서류를 떼어 내 회사가 망했습니다라고 세상에 공표를 해야하는 등.

젠장. 정종병을 붙잡고 바로 입으로 가져다 병나발을 부었다. 사장놈, 부모 잘만나서 회사 물려받은 주제에 똥같이 운영을 하니까 회사가 기우는건 시간문제였겠지. 하지만 문제는 사장이 아니었다. 하필이면 그 집에 있는 것이 앞에서 어쩔줄 몰라하는 전처란 말이다. 

나는 그녀와 결혼을 하고 딸 아이도 낳았지만, 어쨌든 그녀는 바이오로이드고 유지비가 들었다. 인간은 복지수당이라도 나오지만 바이오로이드는 사유재산이다. 결국 그녀와 이혼서류를 떼던 날, 우리 둘은 세상이 떠나가도록 서로를 붙잡고 울었었다.

“저...”

“조용히 해.”

한마디를 쏘아붙인 후, 나는 정종을 추가로 주문했다.

 

콘스탄챠와 내가 말없이 이 테이블에 앉은지 30분 정도가 지났다. 나는 세 번째 빈 정종병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콘스탄챠는 바이오로이드답게 조용히 하라는 명령에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훌쩍대고 있었다. 나는 내 자신에게 끝없이 되뇌이고 있었다. 그래. 결단이 필요하다. 최소한 그녀에게, 같은 좌절을 맛보게해주긴 싫었다.

“계좌번호 같은거, 있어?”

나는 분명 저렇게 말했는데, 술을 너무 많이 마셨는지 혀가 꼬여서 말이 나갔다.

“네?”

“계좌번호 같은거 있냐고.”

“어....”

나는 테이블에 주먹을 내리쳤다. 

“줘.”

콘스탄챠는 한숨을 푹 쉬더니, 본인 가방으로부터 메모지를 하나 꺼내서 건내주었다. 나는 메모지를 지갑에 대충 정리해넣으려고 지갑을 열었다. 그리고 그 지갑속 딸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생각해보니 이 이야기를 안했네. 나는 교복을 곱게 차려입은 딸아이 사진을 콘스탄챠에게 보여주었다.

“콘스탄챠. 이거, 우리 아이야.”

콘스탄챠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콘스탄챠는 내가 건내준 지갑 속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예쁘게 크고 있어. 일이 바빠서 제대로 봐주진 못하고 있지만.”

“그러네요.”

울다 지쳤는지 그녀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하였다. 나는 다시 그녀로부터 지갑을 챙겨왔다.

“힘 닫는데까지는 보내줄 테니까, 걱정말고 일단은 들어가봐. 사장한테 혼나면 어떡하려고 그래.”

카드를 계산대에 내밀면서 주방 안쪽을 쓱 쳐다봤다. 바닐라 A2가 뾰루퉁한 얼굴로 냉동팩을 북하고 뜯는 광경이 보인다. 뜯어진 팩으로부터 검지손가락정도 크기의 생선몸통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다. 변함없는 맛의 비결이 저거였나,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텐데. 

 

 

‘송금하시겠습니까?’

승인 버튼을 누르니, 마치 내가 버튼이 눌린 양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남들이 보면 푼 돈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내가 밤낮으로 대리운전을 뛰며 새로 모은 돈이었다. 그래도 이걸로라도 그녀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으면, 좀 위안이 되지 않을까. 

옛날의 누군가가 말하기를 세상 고민의 절반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 남은 고민에 또 절반은 이미 일어난 일이다. 또 그 절반은 사소한 것이다. 나머지의 고민들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것과 내가 어쩔 수 있는 것이다. 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돈을 보낸 것이다. 그리고 돈은 다시 벌면 되잖아? 

그런데 자꾸 머리에 드는 이 불안감은 뭘까. 

멍하니 서있다보니 누가 옆에서 나를 쿡쿡 찔렀다. 단발 쟝의 손에는 초콜릿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엇고, 단발 쟝은 ‘칫...’이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다는 의미에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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