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 뽀끄루와 봉봉 대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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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의 도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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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유령들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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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 오르카 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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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플레이어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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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주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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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아닌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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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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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오는 되어있지? 이제는 돌이킬 수 없어.”


  체스 말 하나를 집어 손에서 굴리던 리앤이 체스판 위에 말을 두었다. 딸깍 소리를 내며 리앤의 체스 말이 체스판 위에 닿자 닥터가 추격하듯 체스 말을 옮겼다.


  “언니는 누구 편이야? 언니도 나랑 공범이잖아. 언니는 내 편이여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누구의 편도 아니야. 너랑 같이 이 게임을 만든건... 뭐, 왓슨한테 한번 혼나고 말지 뭐.”


  리앤이 샐쭉 웃으며 체스 말을 옮겼다. 유려하게 공격을 빠져나가는 리앤을 닥터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말을 옮겼다.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언니가 봐도 그렇지 않아? 절대적으로 내가 유리한 상황이야. 그래서 오빠에게 나에 관한 걸 이야기한 거잖아?”


  흐음. 리앤이 싱긋 웃으며 체스 말을 움직였다. 


  “어차피 내가 아는 게 전부는 아니잖아? 뭐, 왓슨도 내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건 아닌 듯 했지만.”


  어디 좀 믿어주면 덧나나? 리앤이 작게 투덜거렸다. 뒤이어 그녀가 툭 내뱉은 말에 체스 말을 집으려는 닥터의 손이 멈추었다.


  “나는 왓슨이랑 게임을 많이 했어. FPS, AOS, 격투 게임, 보드게임, 카드 게임... 뭐,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했지.”


  “...그래서?”


  닥터의 손이 움직였다. 리앤도 닥터의 공격에 맞서 체스 말을 움직였다.


  “뭐, 왓슨도 게임을 잘하니까. 서로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왓슨은 인간이잖아? 머리를 쓰는 게임이라면 대부분은 내가 이겼지. 추리 게임이라던가?”


  하지만 말이야. 체스 말을 옮기며 리앤이 말을 이어 나갔다.


  “전략과 전술에 관련된 게임은, 나는 단 한 번도 왓슨을 이긴 적이 없어.”


  닥터의 손이 멈추었다. 체스 말을 집은 채로 굳은 닥터에게 리앤이 웃으며 단언했다. 단 한 번도 말이야.


  “천하의 닥터라면, 왓슨에게 이길 수 있을까?”


  닥터가 말을 옮기자 리앤이 행운을 빈다는 말을 남기고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스테일메이트. 무승부의 체스판을 남겨두고서.



  *

  거대한 용이 얼음의 날개를 펼쳐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하늘 낮게 깔린 구름을 헤치고 날아오른 그들의 눈앞에 끝을 모르게 드넓은 창공의 설원이 펼쳐졌다. 새하얀 평원 저 멀리 거대한 부유성이 유령선처럼 구름을 헤치며 떠내려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부유성이 아니라 구름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겠지만.


  거대한 용이 라퓨타를 향해 날갯짓을 했다. 천천히 다가갈수록 거대해지는 라퓨타의 모습이 어쩐지 보는 이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라퓨타에 내려앉기 위해 거대한 부유성 위를 떠돌던 글라시아스가 라퓨타를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다가갈 수가 없구나.]


  "엉? 무슨 소리야?."


  [바람이 기묘하다. 다가가려 할 때마다 밀어내고 있어. 이 이상은 다가갈 수가 없구나.]


  글라시아스의 말에 사령관이 혀를 찼다. 글라시아스가 보스 판정이라 접근할 수 없는 건가? 그렇다면 작전을 갈아엎어야 하는데... 아니 작전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상황에서는 라퓨타에 접근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아직 라퓨타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


  "어쩔 수 없지. 내려가는 건 우리가 알아서 하지. 혹시 우리도 밀려서 떨어질 수 있으니 라퓨타의 아래에서 기다려주지 않겠어? 만약 우리가 라퓨타에 무사히 떨어지면 예체프의 처음 만났던 공터에서 기다려줘.”


  [알겠다. 그리하지.]


  "저... 사령관님?"


  글라시아스의 등에서 일어나 몸을 푸는 사령관을 본 홍련이 불안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홍련이 떨리는 목소리로 사령관에게 물었다.


  "내려가는 방법은 생각해 두신 건가요...?"


  불안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홍련을 향해 사령관이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씨익 웃었다.


  "쉽고 빠른 방법이 있잖아? 티에치엔은 마리아를 잡아줄래? 아탈란테는 포티아를 잡고. 팬텀은 꼬맹이를 잡고."


  바이오로이드에게 지시한 남자가 홍련을 품에 단단히 안았다. 남자의 품에 안기며 홍련의 머릿속에 지난 트라우마가 떠오르며 가슴 속에서 공포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사령관님... 설마..."


  홍련이 사령관의 옷깃을 붙잡으며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니죠, 사령관님? 저랑 약속하셨잖아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이런... 이런...!"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거랑 낙하산 없는 스카이다이빙은 엄연히 다르지 않아?"


  "아무리 생각해도 후자가 더 위험하잖아요!"


  "뭐든지 경험이라고, 경험."


  홍련의 다급한 외침을 웃으며 한 귀로 흘려넘긴 사령관이 허공으로 훌쩍 몸을 던졌다. 그 모습을 본 다른 바이오로이드들도 사령관을 따라 라퓨타를 향해 몸을 던졌다. 불쾌한 부유감이 몸을 휘감고 곧 빠른 속도로 라퓨타를 향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악!!!!"


  가냘픈 홍련의 비명만이 백야의 불꽃놀이처럼 부질없이 흩어져 사라졌다.



  *

  바람이 매서운 속도로 귓가를 스쳐 지나가며 울부짖었다. 사령관의 품에 안긴 홍련이 소름 끼치는 바람의 울음소리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사령관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품 안에서 바들바들 떠는 홍련을 꽉 껴안자 홍련의 가슴에 짓눌린 지니야가 버둥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주~인! 팬텀이 뭔가 말할 게 있다는데?!”


  바람을 뚫고 티에치엔의 목소리가 사령관의 귓가에 꽂혔다. 티에치엔의 말에 퍼뜩 정신이 든 사령관이 다급하게 팬텀을 찾았다. 무사히 떨어지고 있는 팬텀을 본 사령관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글라시아스가 보스라서 접근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나 보군. 그런 사령관에게 팬텀이 다급하게 손가락으로 라퓨타를 가리켰다.


  팬텀의 손가락 끝으로 거대한 성이, 그 성을 둘러싼 숲과 작은 마을이 펼쳐졌다. 구름에 가려져 언뜻언뜻 드러나는 그 비밀스러운 모습은 보는 이에게 절로 감탄을 터뜨리게 만드는 경관이었다.


  그 구름을 틈타 무언가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으엑!”


  사령관의 오른편에서 떨어지던 티에치엔이 픽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왼편에서 떨어지던 아탈란테도 정체 모를 파공음과 함께 모습을 감추었다. 매서운 바람 속에서 간신히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덧 눈이 시리도록 드넓은 창공 속에 남아있는 것은 그와 홍련뿐이었다..


  “홍련! 잠깐 주위 좀 봐야 할 것 같은데!”


  주변을 경계하며 다급하게 홍련의 이름을 부르니 그녀가 사령관을 더 강하게 끌어안으며 그의 품에서 고개만 도리도리 저었다. 홍련이 이렇게까지 겁을 먹을 줄이야. 고소공포증이 생기지 않으려나 모르겠군.


  순간 사령관의 눈에 저 멀리 부유성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작은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벨 수 있다. 사령관이 빠르게 다가오는 무언가를 향해 검을 뽑아 들기 위해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제야 사령관은 홍련이 허리춤의 칼 채로 자신을 부둥켜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홍련..? 홍련?! 나를 좀 놔줬으면 좋겠는데?!”


  허나 홍련은 사령관의 간곡한 부름에도 놓아줄 생각이 없다는 듯 더욱 강하게 사령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검을 뽑으려 낑낑대는 사령관이 한참이나 홍련을 더듬다 간신히 검을 뽑아 들었지만 이미 재빠르게 날아온 무언가가 사령관을 붙잡은 후였다.


  “안녕, 사령관! 되게 무서운 걸 들고 있네?”


  “슬레이프니르?”


  사령관을 향해 미소 지은 슬레이프니르가 사령관을 단단히 껴안고 빠른 속도로 대지를 향해 쏘아졌다. 라퓨타를 향해 떨어지던 것이 어린애 장난처럼 보일 정도의 속도였다. 음속을 아득히 뛰어넘은 듯한 속도로 순식간에 라퓨타에 다다른 슬레이프니르가 참으로 절묘한 감속과 방향 전환으로 사령관과 홍련을 땅에 내려놓았다. 땅에 내려앉은 사령관이 홍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이제 슬슬 놓아줬으면 좋겠는데."


  자유 낙하와 음속을 뛰어넘는 비행을 한 번에 경험한 홍련은 반쯤 정신을 놓고 사령관의 품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질 않았다. 사령관의 옷깃을 쥐어뜯을 기세로 붙잡고 사령관의 품에서 바들바들 떠는 홍련을 달래는데 또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간신히 사령관의 품에서 떨어진 홍련이 사태를 파악하고 조금 부끄러운 듯 헛기침했다. 팬텀이 정신을 놓은 포티아와 마리아를 달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티에치엔이 히죽히죽 웃으며 사령관에게 다가와 물었다.


  "이야~. 설마 슬레이프니르가 나올 줄은 몰랐네! 주인은 슬레이프니르가 있다는 거 어떻게 알았어?"


  "음? 아. 나도 몰랐어."


  "에? 그러면 라퓨타에 착지는 어떻게 하려고 했어?"


  예상치 못한 대답에 당황한 티에치엔의 목소리와 함께 홍련이 초점 잃은 눈동자로 그를 올려다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사령관님. 라퓨타도 마을 판정이니 라퓨타로 뛰어내려서 추락사로 죽게 되면 라퓨타에서 되살아날 거라는 생각을 하신 건 아니죠?"


  싸늘하고 표독스러운, 여태까지 홍련이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눈빛에 사령관이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럴 리가 없잖아. 라퓨타에 강이나 연못이 있으면 몸에 보호 마법을 걸고 그쪽으로 떨어지려고 했어. 강이 없으면 마법으로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지. 내가 너를 죽게 둘리 없잖아."


  사실 세 번째 생각이 추락사 후 부활 작전이었다는 것은 무덤까지 가져가자. 음.


  답지 않게 맹렬한 분노를 토해내는 홍련을 간신히 달랜 사령관이 슬레이프니르에게 인사를 건넸다.


  "마왕성이라고 해서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만나서 반갑네. 라퓨타에 사는 날개 수인, 맞지?"


  슬레이프니르가 사령관의 말에 눈살을 찌푸리고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게 뭐야?"


  티 없이 해맑게 웃는 슬레이프니르를 보며 사령관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알고 있을 거라고 기대한 내가 바보다.


  "애가 머리는 나쁘지 않은데 나사가 빠져서..."


  "응? 뭐라고 했어, 사령관?"


  "아니, 별거 아니야. 다른 사람들은 없어?"


  사령관의 물음에 슬레이프니르가 끄응 한숨을 내쉬더니 툴툴거리며 불만을 늘어놓았다.


  "여기는 볼 게 하늘밖에 없잖아? 그래서 다들 이런 곳에서 언제까지고 틀어박혀 있을 수는 없다면서 놀러 나갔어. 사령관을 도울 사람은 한 명이면 충분하지 않냐면서 말이야. 제비뽑기를 해서 사람을 골랐는데 내가 걸려버렸다구."


  "제비뽑기를 하면 당연히 네가 걸리겠지."


  "응? 뭐라구?"


  "아무것도 아니다, 펭귄."


  지금 분명 나 놀린 거지?! 슬레이프니르가 볼을 부풀리며 툴툴거렸다. 삐진 슬레이프니르 뒤로 저 멀리 거대한 성이 눈에 들어왔다. 저게 마왕이 있다는 성이로군.


  “아, 그러고 보니 글라시아스가 우리를 여기로 데려다줬는데 글라시아스는 막혀서 못 들어오더라고. 왜인지 알아?”


  “으응? 아아. 이 근처에 강력한 결계? 같은 게 있나 봐. 허락이 없는 사람들은 이 근처에서 날 수 없다고 하더라고. 이 동네의 특징 같은 거래.“


  “아아. 우리는 떨어지기만 했으니까 상관 없었다는 건가.”


  허락이 없는 자는 날 수 없다. 이건 중요하군. 적어도 닥터가 날아서 도망갈 걱정은 없겠어. 사령관이 아직도 볼을 부풀린 채로 노려보는 슬레이프니르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우리는 이제부터 닥터한테 갈 거야. 하루빨리 이 빌어먹을 가상 현실에서 벗어나야겠거든. 네 도움이 꼭 필요할 것 같은데, 도와줄 수 있을까?"


  도와줄 수 있을까? 그 말 한마디에 우중충한 슬레이프니르의 표정이 활짝 폈다. 콧대를 높이 세운 슬레이프니르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사령관을 향해 말했다.


  "어쩔 수 없네! 사령관은 내 도움 없으면 안된다니까! 이 슬레이프니르가 사령관을 도와줄게!"


  슬레이프니르의 말에 사령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을 덜었군.


  "그러면 다들 모여. 이제부터 작전 설명을 시작할 테니까."



  *

  라퓨타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거대한 성. 그 꼭대기에 도달한 사령관 앞에 화려한 장식이 조각된 거대한 문이 굳건히 서 있었다.


  “좋아. 작전대로 간다.”


  그 말과 함께 사령관이 거대한 문에 손을 대고 힘을 주어 밀어냈다. 커다란 돌덩이가 움직이는 듯한 묵직한 소리와 함께 평생이라도 열리지 않을 것처럼 버티고 있던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문을 열고 일행이 방 안으로 들어서자 문이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고 선언이라도 하듯 커다란 소리와 함께 닫혔다.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소리가 천천히 가라앉자 방 안쪽의 화려한 옥좌에서 갈색 머리의 가녀린 소녀가 일어났다.


  “후하하!! 세계를 수호하는 용사여!! 드디어 이 마왕의 성에 당도했...”


  “악즉참!”


  “으꺄아악!!”


  닥터의 의기양양한 말을 사이에 숨어든 사령관이 문 앞에서 순식간에 닥터의 앞까지 달려가 그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섬광처럼 날아온 사령관의 검을 닥터가 비명을 지르며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냈고, 닥터를 베지 못한 검이 울분을 토하듯 닥터의 옥좌를 베어냈다.


  강철 덩어리가 바닥을 때리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조각난 옥좌가 불쾌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검을 갈무리한 사령관이 닥터를 내려다보았다.


  “닥터.”


  “히이이익!!”


  붉은 안광이 번뜩인다고 착각할 만큼 흉흉한 살기로 번들거리는 사령관의 눈에 닥터가 비명을 내질렀다. 겁을 먹고 부들부들 떠는 닥터를 내려다보는 사령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웬만한 장난은, 나는 웃어넘길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장난은 도가 지나쳤지. 사령관이 짧게 덧붙였다.


  “사람을 몇 명이나 휘말리게 했어? 내게 말도 없이 사고나 치고. 재미를 위해 시작했다지만, 일이 너무 커진다 싶으면 자중했어야지.”


  구구절절 이어지는 옳은 말에 찍소리도 못한 닥터가 사령관의 앞에 무릎 꿇었다.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닥터를 보고 사령관이 말을 이어 나갔다.


  “웬만한 사건에는 관대히 넘어가 주자고 생각해 왔지만...”


  사령관이 닥터를 향해 칼을 치켜들며 싸늘하게 말했다.


  “내가 너의 방종을 너무 오래 방치한 것 같구나.”


  사령관의 말에 새된 비명을 내지른 닥터가 무언가를 결심한 듯 벌떡 일어서며 크게 외쳤다.


  “나중에 혼나더라도 지금은 지금이야! 덤벼라, 용사! 너를 쓰러뜨리고 세상을 악으로 물들일 것이다!!”


  그 말과 동시에 닥터의 등에서 거대한 기계팔이 나타나 사령관을 향해 날아갔다. 검을 휘둘러 거대한 기계팔을 간신히 빗겨낸 사령관이 크게 외쳤다.


  “가자! 저 못된 꼬맹이의 엉덩이를 팡팡 두들겨 주는 거다!”



  *

  거대한 기계팔이 사령관을 향해 날아왔다. 검을 휘둘러 기계팔을 바닥에 내리꽂은 사령관이 닥터를 향해 달려 나갔다. 닥터가 손짓하자 바닥에 손톱을 세운 기계팔이 바닥을 할퀴며 사령관을 향해 쇄도했다.


  "이런!"


  사령관이 옆으로 몸을 던지자 조금 전까지 사령관이 서 있던 곳에 기계팔이 기요틴처럼 바닥을 할퀴며 스쳐 지나갔다. 대리석 바닥에 깊은 손톱자국이 남아 보는 이를 섬찟하게 만들었다.


  바닥에 내려앉은 사령관이 다리에 힘을 모아 단번에 닥터를 향해 도약했다. 사령관이 내디딘 바닥이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 박살이 나며 사령관이 닥터를 향해 빠르게 쏘아져 날아갔다. 말 그대로 총알 같은 속도로 쏘아진 사령관이 닥터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뒤로 발돋움해 사령관의 검을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피해낸 닥터가 돌을 한 움큼 쥔 기계팔을 사령관을 향해 휘둘렀다. 수많은 돌덩이가 포탄처럼 사령관을 향해 날아갔다.


  "에...? 헤에에엑!"


  사령관의 손이 반짝이더니 그의 앞에 순식간에 포티아가 나타났다. 느닷없이 사령관의 앞으로 날아든 포티아가 날아오는 돌덩이를 보고 비명을 내질렀다. 사령관이 그녀를 품에 안고 팔을 잡아 닥터를 향해 내밀자 포티아가 울상을 지으며 외쳤다.


  "이... 익스플로전!"


  채 피해 볼 새도 없이 화염의 폭풍이 닥터를 집어삼켰다.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라 포티아가 캑캑거리는 그때 연기 속에서 거대한 기계팔이 포티아와 사령관을 향해 날아왔다.


  "으랴아아!"


  날아오르듯 사령관의 앞으로 뛰쳐나온 티에치엔이 주먹을 휘둘렀다. 강철의 팔과 티에치엔의 건틀릿이 충돌하는 강렬한 소리에 포티아가 귀를 잡고 비명을 내질렀다. 기계팔과 티에치엔의 힘겨루기 끝에 티에치엔이 기계팔을 하늘 높이 쳐 올리자 사령관과 티에치엔의 사이로 푸른 화살이 날아가 연기 속 닥터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흐꺅!!"


  화살의 힘을 이기지 못한 닥터가 뒤로 나동그라져 바닥을 굴렀다. 두 번 정도 바닥을 구른 닥터가 이마를 짚고 울상을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프잖아! 언니 오빠들 바보 바보!!"


  아프다고 투덜거리는 것과는 다르게 닥터는 그리 큰 대미지를 받지 않은 듯했다. 머리와 옷이 조금 그을리고 이마가 빨갛게 물든 것뿐이다. 대미지가 들어가기는 한다는 것에 엎드려 절이라도 해야하나. 사령관이 속으로 혀를 차며 투덜거렸다.


  "이제 진짜 안 봐줄 거니까!"


  그 말을 외친 닥터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주위를 살피던 사령관에게 아탈란테가 다급히 외쳤다.


  "위입니다!"


  그 말과 함께 사령관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위를 보지도 못하고 포티아를 품에 안고 바닥을 구르자 사령관이 서 있던 곳에 거대한 주먹이 작렬했다. 재빨리 몸을 일으킨 사령관이 포티아의 입에 푸른색의 물약을 꽂아 넣었다. 물약을 꼴딱꼴딱 마신 포티아가 몸을 일으키는 닥터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와 동시에 닥터도 포티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익스플로전!""


  두 개의 강렬한 섬광이 터져 나오며 천지가 진동했다. 눈과 귀가 멀어버릴 것 같은 강렬한 충격에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충격이 간신히 가라앉자마자 사령관이 포티아를 감싸며 검을 휘둘렀다. 강철의 팔과 검이 충돌하고 닥터와 사령관의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그런 것까지 쓸 수 있다는 건 못 들었는데?"


  "설마 마왕씩이나 돼서 치고받기만 하겠어?"


  그때, 닥터의 발밑으로 그림자가 일렁였다. 사령관이 재빨리 뒤로 물러나자마자 닥터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팬텀이 그림자로 엮은 그물로 닥터를 옭아맸다. 그와 동시에 물약을 들이켠 포티아와 함께 홍련과 아탈란테의 공격이 닥터를 향해 작렬했다.


  "익스플로전!"


  "꿰뚫어라, 페일노트!"


  "내리쳐라! 천신의 창, 아스트라페!"


  우리 파티 최대 화력의 공격이다. 이거라면 아무리 닥터라도 멀쩡할 수 없다. 닥터를 향해 쇄도하는 공격에 닥터가 결심한 듯 두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매진 브레이커!"


  그러니 닥터는 반드시 스킬을 쓰겠지. 모든 스킬을 캔슬시킨다는 마왕의 스킬을.


  셋의 공격과 팬텀의 기술까지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단번에 지워졌다.


  "리앤 언니한테 들었을 텐데! 깜빡한 거야, 아니면 노골적으로 스킬을 쓰게 만들려는 거야?"


  닥터가 포티아를 향해 달려 나갔다. 순식간에 포티아의 앞까지 도달한 닥터가 포티아의 목덜미를 비틀어 꺾으려는 듯 기계팔을 휘둘렀다.


  "흐읍!"


  아탈란테가 닥터의 기계팔을 향해 있는 힘껏 방패를 집어던졌다. 세차게 날아간 방패가 포티아를 잡으려는 기계팔을 후려갈겼다. 쩌엉! 소리와 함께 크게 흔들린 기계팔 사이로 닥터가 마법을 쓰기 위해 포티아를 팔을 내밀었다.


  순간 푸른 화살이 빨려 들어가듯 닥터의 손에 명중했다. 꿰뚫지는 못했지만 닥터의 손을 크게 흔들어놓는 데 성공했다. 자세가 무너진 닥터의 그림자 사이로 기어가듯 달려온 티에치엔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미안해, 닥터! 나중에 언니가 맛있는 거 줄게!"


  티에치엔이 땅을 박살 낼 기세로 발을 굴렀다. 지진이 일어난 듯 땅이 출렁이며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티에치엔의 공격에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닥터의 옆구리에 티에치엔의 주먹이 꽂힌 후였다.


  "흐랴아아압!!!"


  강렬한 파열음이 터지며 닥터가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두터운 벽을 박살 내며 돌무더기에 꽂힌 닥터가 힘으로 벽을 박살 내며 걸어 나왔다. 툭툭 옷을 털고 빠른 속도로 달려 나오는 닥터를 향해 팬텀이 다시금 그림자의 그물을 꺼내며 달려들었다.


  닥터가 아무리 빨라도 팬텀의 속도에 비할 바는 되지 못한다. 정면으로 맞붙는다면 팬텀의 스킬은 필중. 그렇게 생각한 아탈란테가 닥터를 향해 번개를 휘감은 창을 집어던졌다. 번개의 창은 꺾이지 않는 미래처럼 닥터를 향해 올곧게 날아갔다.


  "물러터졌어."


  닥터가 그들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기계팔을 휘둘렀다.


  강철의 손톱이 팬텀의 허리를 두 동강을 냈다. 반으로 찢긴 팬텀이 다 타버린 나무가 재가 되어 바스러지듯 흩날려 사라졌다. 뒤이어 날아오는 번개의 창을 닥터가 벌레를 쫓듯 손을 털어 쳐냈다. 그 가벼운 손짓에 번개의 창이 산산이 부서져 흩어졌다.


  "이거... 예상했던 것 중에 최악의 시나리오인 것 같은데..."


  가벼이 땅에 내려앉는 닥터를 보며 사령관이 마른침을 삼켰다. 닥터의 의기양양한 표정이 그가 생각한 최악이 사실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이매진 브레이커. 그 진정한 능력은...


  "한번 캔슬 시킨 기술에 영구적인 면역을 가진다."


  사령관의 말에 닥터가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말했다.


  "정답이야, 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