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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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기-잉!

 

“그래서 오빠. 지금 나한테 그걸 어떻게 해보라는 거야?”

 

『어...음. 응. 혹시 닥터라면 좋은 수가 있나 해서.』

 

 화창한 아침 햇살이 내리쬐는 요안나 아일랜드의 한구석, 여러 부품 생산설비가 늘어서 있는 생산시설 공장들의 어느 한 곳에 들어선 닥터는 한쪽 귀에 이어폰을 끼워 넣은 채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정말 귀찮은 문제네. 그거.”

 

기-이잉!

 

카-앙! 캉!

 

“그런 문제는 아르망 언니한테 물어보는 게 나을걸?”

 

 햇살이 들어오지 않는 생산공장의 내부에는 일찍이 그녀 자신이 설치해두었던 기계들이 시끄러운 소리를 계속해서 내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그녀가 아무도 없는 이곳에 온 이유는 간단했다.

 예전에 보고서로 짤막하게나마 올라왔던 설비의 소음 문제와 통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들린 것이었다.

 

“나는 지금부터 라붕이 오빠가 건의했던 설비 문제를 해결하러 온 참이란 말이야.”

 

『아..하하. 그게 아르망한테도 물어봤는데 남의 가정사에는 끼어들지 않는 것이 났다는 말을 들어서.』

 

“...언니도 별로 끼어들고 싶진 않은 모양이네.”

 

 자고로 남의 가정사에는 끼어들지 않는 것이 낫다. 괜히 엉킨 실타래에 바늘 하나 잘못 꽂아 넣었다가 되려 본인에게 미움이 돌아온다. 닥터는 자신의 오빠가 지금 하고 있는 짓이 딱 그러한 꼴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리제 언니도 그렇고. 여기 리제 언니도 그렇고. 도대체 리제 언니들은 성격이 왜 그럴까..”

 

『그렇게 나쁘게 말하면 못 써. 닥터.』

 

“네에~!”

 

기-이잉!

 

 오른쪽 귀로는 오빠와의 대화를, 왼쪽 귀와 양쪽 눈은 설비의 문제점을 파악하던 닥터는 잠깐 말을 멈춘 채 태블릿을 하나 들어 올렸다. 투박한 태블릿의 화면 위에는 일찍이 자신이 구상해두었던 설비 재구성도가 띄워져 있었다.

 

‘여긴 이렇게 바꾸고. 여기에 이걸 하나 추가해서..응. 이렇게만 하면 소음 문제는 해결되겠지.’

 

 이 땅에 공장을 세우고 또 항만을 설치할 때의 오르카 저항군의 사정은 그리 좋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당장에 철충들의 공격과 새로운 동료들을 영입하고 또 제조하고. 손이 갈 곳은 많은데 손이 없었던 탓에 당시의 닥터 역시 이곳에 그리 큰 신경을 쓰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오르카 저항군의 규모는 그때와 비교했을 때 배로 커졌다. 그렇기에 지금에서야 과거의 자신이 내던져 두었던 문제들을 수습하고자 닥터는 아침 댓바람부터 이곳에 들린 것이다.

 

“오빠. 괜히 잘못 끼어들었다가는 피만 더 볼 거 같은데.”

 

『형님도 꽤 말하고 후회하는 눈치였어. 그냥..음. 조금만 등을 밀어주면 좋게 해결될 것 같으니까.』

 

“그러면 그냥 시간이 해결해줘! 뭘 성급하게 구려고..”

 

『오늘은 형님이 구상했던 휴가날인데 나 하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거잖아. 책임을 느끼고 있어.』

 

“..정말. 그렇게 말하니까 나도 뭐라 하기 힘드네.”

 

타-다닥! 타닥!

 

키-이이잉!

 

 닥터의 손가락이 바삐 움직일수록 그녀의 허리춤에 달린 기계팔이 설비 내부 이곳저곳을 빠르게 휘젓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 설비의 설계도면은 모두 자신의 머릿속에 있다. 어딜 어떻게 만져야 하는지. 어디에 무엇이 설치되어 있는지 정도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체 이 습격 사건은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한단 말인가. 닥터는 눈앞의 문제보다 더 머리가 아픈 문제를 들고 온 자신의 오빠에게 부루퉁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오빠. 그러지 말고 그냥 우선은 놔두면 안 돼? 애당초 라붕이 오빠도 성급했다는 걸 느끼고 있다면 좋게좋게 풀리지 않겠어?”

 

『으으. 닥터, 너까지 그러면..오늘 당장에 여기 생산 애들한테 어떻게 상황을 설명해?』

 

“...아. 그러고 보니 오늘 합동으로 백사장을 쓴다고 했었지.”

 

『응. 지금 잠깐 밖을 보고 왔는데. 애들이 튜브 들고 다니면서 이미 수영복까지 차려입은 마당이야. 다들 웃고 있는데 정작 중요한 형님이 자리를 비운다는 걸 어떻게 알려.』

 

‘그럼 언니들이 노발대발하거나 풀이 죽겠지. 에휴..’

 

 아마 대놓고 풀이 죽지는 않을 터이다. 하지만 자고로 사람이란 가까이 있는 이에게 이끌리는 법이다. 멀리 있다 갑자기 등장한 오빠보다는 여기서 한 달이란 시간을 함께 동고동락한 라붕이 작전관이 그녀들에게는 더욱더 큰 관심이 돌아설 터.

 

‘당장에 여기 언니들 고생한다고 온갖 사건을 다 쳤던 오빤데..으으. 정작 그런 사람이 사고를 쳤어.’

 

 아마 라붕이 작전관이 백사장에 오지 않는다면 그녀들은 크게 실망할 거란 건 분명했다. 그랬다가는 지금 이 모든 책임은 누구에게 돌아설까. 바로 막무가내로 이곳에 들이닥친 자기 오빠다. 그래서 지금 사건의 책임을 가장 많이 느끼고 있는 양반이 제 발 저려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고 있는 것이었다. 

 

“...오빠. 근데 진짜 어쩌지? 나도 별 딱히 좋은 수가 안 떠오르는데..”

 

『...진짜? 네 머리로도 안 되면 나도 끝이야!』

 

“아니. 그렇게 말해도 나는 천재 소녀지 세인트 마리아가 아니란 말이야!”

 

키-잉! 캉!

 

‘우선 얘는 끝! 이번에는..’

 

 차라리 알바트로스의 개조를 요구해온다면 그게 더 쉬운 이야기일 터. 닥터는 점검을 끝마친 제복 생산설비의 앞에서 시선을 떼어 공장 이곳저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통풍구만 있는 자리에 에어컨이라도 달아두는 쪽이 나으려나. 후우..’

 

 휑한 천장 자리 어디에 에어컨을 설치할까, 하고 닥터는 고민하며 조금씩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또각-! 또각!

 

『어떡하지..으으..』

 

“...진짜 어떡하지.”

 

기-이잉!

 

‘리제 언니랑 라붕이 오빠 사이에서 일어난 일인데 우리가 뭘 어떻게 한다고..’

 

또각-또각!

 

 이어폰 너머에 있는 오빠의 신음보단 설비의 소음이 훨씬 듣기 낫다고 그녀가 생각하던 그때, 천장을 훑어보느라 미처 아래를 보지 못한 천재 소녀의 구두에 무언가가 턱-걸리고 말았다.

 

“-으갹!”

 

덜-걱! 쿠-당탕! 

 

와-르륵!

 

『-닥터?! 무슨 일이야?!』

 

 소녀 우렁찬 비명이 공장 안을 가득 메우자 그 소리를 들은 사령관의 음색 역시 다급한 목소리로 돌아섰다. 하지만 앞으로 고꾸라진 소녀의 머릿속에는 도대체가 어떻게 된 일인지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아야야..누가 복도에다가 물자를 내던져 둔 거야?!”

 

『넘어진 거야?』

 

“응. 아무것도 없는 줄 알고 시선을 천장에 두고 걸었더니..응?”

 

『? 닥터?』

 

 째릿한 눈으로 자신의 발을 멈춰 세운 물건에 시선을 주던 닥터가 말을 하다 말자 상황을 전혀 모르는 사령관의 목소리에 의문이 섞여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닥터의 온 정신은 조금은 큰 박스 상자와 총기 생산시설에서나 볼 법한 플라스틱 박스로 향해 있었다.

 

‘저런 게 왜 여기 모여 있지?’

 

 생각보다 많은 양의 종이박스와 플라스틱 상자가 창고 한쪽에 주르륵 배치되어 있자 닥터의 호기심이 경종을 울렸다. 딱히 뭔가 짚이는 게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넘어진 탓에 쏟아진 종이박스의 내용물이 뭔가 그녀의 흥미를 끌어당긴 것이다.

 

“이거..군복인가?”

 

『? 군복이라니? 브라우니들이 입고 다니는 거?』

 

“아니. 이거 암만 봐도 옛날 군인들 군복인데?”

 

『형님이 극기훈련 할 때 병사들에게 입히는 옷 말하는 거야?』

 

“그 괴상한 군복보다는 보기가 좀 더 나은데? 디지털 패턴이라고 했나? 이런걸?”

 

바스락-!

 

“이게 왜 한 무더기로 있는 거야? 적어도 백 여벌은 되어 보이는데..”

 

 자신에 손에 들린 남색 계통의 디지털 군복에 호기심이 동한 닥터는 곧이어 테이프로 봉합되어있는 박스에도 눈길이 돌아갔다.

 

찌-익!

 

“...이건 초록색 패턴이네? 흐응..뭐야? 이거 방탄 처리도 되어 있잖아?”

 

『방탄?』

 

“응. 언니들이 입는 전투복들보단 약하긴 하지만 최소한 권총 탄알 정도는 막을 정도의 방탄 처리는..응? 그럼 이 플라스틱 박스들은 뭐지?”

 

『??』

 

덜-걱!

 

“...오호라. 오호라.”

 

 한눈에 봐도 총기 생산시설에서 가져온 플라스틱 박스의 내부를 열어본 닥터의 입꼬리가 조금씩 뺨 위로 스물스물 올라갔다. 남색 계통의 플라스틱 박스 안을 가득히 메운 색색의 원형 총탄들, 실전에서 적을 사살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총알이 아니다. 흔히들 서바이벌 게임에서나 사용할 법한 작은 페인트탄들이었다.

 그리고 내용물들을 모두 확인한 그 순간, 잠깐 멈추어 서있던 소녀의 작은 두뇌가 빠른 속도로 빙빙 회전하기 시작했다.

 

“..최소한의 방탄 처리가 된 남색과 초록색의 전투복들. 그리고 다량의 페인트탄..히힛. 이거 설마..”

 

『닥터? 대체 지금 무슨 소리를..』

 

“오빠! 혹시 라붕이 오빠의 휴가 계획서에 무슨 이벤트 목록 같은 거 없었어?!”

 

『응? 아니. 형님은 그런 걸 안 써두셨는데. 뭔갈 발견한 거야?』

 

“...아주 재밌는 장난감을 찾은 거 같은데? 오빠. 지금 라붕이 오빠는 스틸라인 언니들이랑 같이 있댔지?”

 

『어..어. 레오나도 거기에 있을 거야. 스틸라인 애들이랑 혹서기 훈련 좀 한다고 했어. 음..메이는 잘 모르겠네.』

 

“그럼 언니들한테 혹서기 훈련은 오전 중으로 끝내라고 말해 둬! 그리고 지금 내가 있는 곳으로 사람 좀 보내주겠어?”

 

『사람? 누구 말이야?』

 

 자기가 뭘 찾았는지 그리고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일도 모르는 사령관의 되물음에 닥터는 음흉한 미소를 머금으며 제 턱을 매만졌다.

 

“히히히. 오빠들의 문제도 해결하고. 여기서 재밌는 일도 즐기고! 일석이조가 될지도.”

 

『닥터? 아까부터 대체 무슨 이야기를..』

 

“여기로 스프린건 언니랑...이 동네의 안드바리! 그리고 익스프레스 언니들을 불러다 줘! 오빠!”

 

『...너 또 이상한 계략을 꾸미는 거 아니지? 응?』

 

“설마! 이건 모두..우리 오빠들을 위한 동생의 깜짝 이벤트라고! 헤헤헷!”

 

『너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왜 소름이 돋을까..후우.』

 

‘마침 라붕이 오빠한테 실험해 볼 것도 있었는데. 잘됐네. 이걸로 실험해보면 실전 데이터까지 만사 오케이!’

 

 문득 건네준다는 걸 깜박하고 있었던 물건이 머리 한 켠에서 스쳐 지나가자 닥터의 입술 사이가 더욱더 벌어져 갔다. 과학은 자고로 실험을 통해 완성되는 법. 그 실험의 배경이 내용과 딱 맞물려 준다면 이만한 실전 데이터도 없을 터였다.

 

“히히힛. 이건 모두 우리 저항군의 친목 도모를 위한..아! 맞다! 오빠!”

 

『응? 이번엔 또 뭐니?』

 

 머릿속에서 차곡차곡 계획을 정립해나가던 닥터는 잠깐 자신이 분실했던 물건의 존재를 떠올렸다. 한번 실수로 자신이 분실했다가 얼마나 곤욕을 치렀는지. 당시의 상황을 떠올린 소녀는 아까까지의 흥분을 얼굴 위에서 지워버리곤 사뭇 진지한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반지. 잘 가지고 있지!?”

 

『반지? 아아. 응. 행여 서랍에 넣어뒀다가 누가 볼까 봐 뒷주머니에 항상...어?』

 

“? 왜 말을 하다가 말아? 불안한 상상 들게.”

 

『...그. 닥터?』

 

“...오빠 알아서 해. 난 몰라. 이제.”

 

『...』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한 어투로 대답하는 닥터의 목소리에는 질리다 못해 어이가 없다는 듯한 음색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런 여동생의 대답에 건너편의 오빠 역시 묵묵히 침묵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뭐. 나중에 드론으로 섬 내를 찾아보면 나오겠지. 하아..’

 

 귀찮은 문제는 조금 뒤로 미뤄도 문제없겠지. 닥터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는 골치가 아픈 자기 오빠의 문제를 머릿속에서 빠르게 지워버렸다. 당장에 누가 주워간다고 해서 큰일이 생길 물건은 아니다.

 아이들이 주워갔다면 호기롭게 사령관에게 돌려줄 터. 아니면 성숙한 어른이 주웠다면 조금 얼굴을 붉히는 정도로 돌려줄 터이다. 이미 지휘관들도 무덤덤하게 넘긴 마당에 별문제가 생기랴.

 

 하지만 세상 일이란 것이 그렇게 마음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라고, 닥터는 훗날 지금의 생각을 조금 아주 조금 후회하고 말았다.

 

135)

 

짹-짹! 짹!

 

“...평화롭네. 정말.”

 

 쨍쨍한 햇볕이 내리쬐는 어느 한적한 뒤뜰, 나는 그 누구의 간섭도 참견도 받지 않는 이 평화로운 공간 속에서 눈을 게슴츠레 뜬 채 정면을 빤히 응시하고 앉아 있었다.

 

“...나가고 싶다. 씨바아..”

 

 잡초만이 무성한 풀숲을 따라 시선을 올리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은빛의 울타리들과 그 뒤로는 기다란 아스팔트 도로가 펼쳐져 있었다. 분명 저 울타리만 넘어가면 자유라는 두 단어가 내 온정신을 감쌀 터인데 어째서 나는 지금..

 

“-냐아앙.”

 

“...뭐. 뭐 더 달라고. 얌마.”

 

“냐-옹!”

 

“...”

 

 나는 지금 취사장 뒤편에 쪼그리고 앉아 내 허벅지 아래에 누워있는 고양이와 장난을 치는 신세란 말인가.

 

‘...전역까지 며칠 남았더라.’

 

“-냐앙! 냥!”

 

“에비, 에비-”

 

휙-! 휙!

 

 계속해서 뭔갈 해달라는 듯 칭얼대는 검둥이 고양이를 향해 나는 대충 눈앞에서 뜯어 재낀 강아지풀 하나를 좌우로 휙휙 휘둘러대었다. 그러자 내 손짓에 반응한 검둥이는 연노랏빛 눈동자를 반짝이며 푸들푸들 흔들리는 강아지풀의 머리 쪽을 따라 고개를 좌우로 휙휙 움직여대었다.

 

“...냥!”

 

휙-!

 

“-웁쓰!”

 

 사냥감을 포착했다는 듯 홱-하고 왼 앞발을 공중에 휘두르는 녀석의 패턴에 따라 나는 빙글빙글 돌리던 손목의 움직임을 더욱더 격하게 움직여대었다. 그렇게 한참 시동이 걸린 녀석과 아옹다옹하고 있을 때, 누군가 내 옆에 있는 철문을 열어 재끼며 뒤뜰로 들어섰다.

 

덜-컹!

 

“아, 고노마 자슥. 또 여서 이카고 있나?”

 

“...취사장 일은 다 끝났냐?”

 

“내 짬이 얼만데 뒷정리까지 할까? 고마 새로 들어온 아한테 시킸다.”

 

“...”

 

타-닥!

 

 머리에 퍼런 고깔모자를 쓰고 몸 전체에 은빛 앞치마를 걸친 동기놈의 등장에 내 앞에서 데굴데굴 구르던 짬 타이거는 화들짝 놀라 내 오른발 옆으로 후다닥 몸을 숨겼다. 그런 녀석의 반응에 동기놈은 눈살을 찌푸리며 앞치마 아래서 담뱃갑을 꺼내어 내 옆에 풀썩 쪼그려 앉았다.

 

“아 가는 은제쯤 내한테 꼬리 함 살랑살랑 흔드노?”

 

“밥이나 좀 잘 챙겨주던가.”

 

“마! 니는 가가 을마나 승질머리 드르븐지 모르제?”

 

“?”

 

 갑자기 엉뚱한 소리를 하기 시작하는 동기 놈의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렇게 장난치는 거 좋아하는 놈이 몇이나 더 있다고. 그런 내 의중을 알아챈 것인지 동기는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들며 말을 이어갔다.

 

칙-!

 

“후-우. 가가 여서 니 없으면 꼬빼기도 안 비는 아 안 카나.”

 

“...?”

 

“니 요 며칠 새에 밖에 나갔다 왔다 안 카나?”

 

“어. 선임이랑 좀 나갔다 왔지.”

 

“그래. 그때 야가 니 읍다고 요 주변으로는 을씬도 안 케가 우리 아들이 가 읍다고 궁시렁궁시렁 댔다니까?”

 

“...호오.”

 

“-냐아앙.”

 

“저저. 봐라. 니 관심 뺏었다고 곧장 식빵 굽고 내 째리 보는 거. 아니. 밥 주는 새낀 낸데 와 저 괭이는 니만 찾노?”

 

 어느새 내 발치 아래서 양발을 다소곳이 모은 채 꼬리를 좌우로 탁탁-휘둘러대는 짬 타이거의 모양새에 나와 동기는 끅끅 서로 웃어대었다. 녀석의 말마따나 자기의 휴식시간을 방해했다고 화를 내는 모양새처럼 보였던 탓이었다.

 

‘짜식이. 그래도 사람은 구분하는가 보네.’

 

“다른 짬 타이거들은 잘 있냐? 요샌 내 근처에 안 보이던데.”

 

“마. 이 괭이들도 다~각자 나와바리라는 게 있는 법이다 안 카나. 야 나와바리는 니제. 니.”

 

“얼씨구. 이 녀석이 날 독점해? 거 참. 귀엽네. 크크.”

 

“사람 븨는 눈이 읍는 아제. 하필 골라도 니고. 크크.”

 

 생각해보면 이 녀석이랑 알게 된 지도 어언 1년이 다 되어가던가. 나는 검은 짬 타이거의 미간 위를 몇 번 어루만졌다. 그러자 녀석의 꼬리가 한층 더 빠른 속도로 흙바닥을 쓸기 시작했고 그걸 본 동기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이카믄 이제 니도 못 도망치긋네.”

 

“어? 내가 누구한테서 도망을 쳐?”

 

“누구한테서긴. 야한테서 도망 못 친다는 기제.”

 

“뭐? 내가 왜?”

 

 뜬금없는 동기의 말에 내 언성이 살짝 올라갔다. 누가 누굴 구속한단 말인가. 날 구속하는 건 이 동네의 철창 정도면 충분하다. 하지만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동기 놈은 낄낄-웃으며 뒷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마. 정주고 정받고 하몬 야는 이제 니 아제. 안 글나?”

 

“...너는 우선 그 사투리나 좀 어떻게 해라. 말 한번 알아먹기 힘드네. 진짜.”

 

“새끼. 알아 들었으믄서 못 알아먹은 척하기는. 후우-!”

 

 입 밖으로 뭉게뭉게 담배 구름을 내뱉는 동기의 희희낙락한 자태에 나는 눈살을 찌푸리는 한편 동시에 내 곁에서 여전히 식빵을 굽고 앉아 있는 짬 타이거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내가 이 녀석한테서 도망을 못 친다고?

 

“가가 그르케 니를 마 쫓아다니는데 가를 내비 두고 전역할 끼가?”

 

“그럼 얘를 데리고 전역하리?”

 

“와. 안 될게 뭐 있노. 전에 전역하는 양반 함 보니 아예 그..뭐시냐. 이동장인가? 어. 그치. 그거 들고 와 갓고 여 있는 한 마리 데리 가드라.”

 

“...”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의 형제들이 한 둘 보이지 않는다 싶었더니. 다 하나같이 짬 타이거가 아니라 집냥이로 전직했었구나. 정말이지. 세상 팔자 살기 좋은 녀석들이다.

 

“우리 집은 고양이 별로 안 좋아해.”

 

“마 기냥 전역 기념이라 카고 데리간다 캐라. 그카믄 부모님도 뭐라 말 할라다가 니보다 더 정준다 안 카나.”

 

“...그래도 싫다.”

 

“어? 이 새끼 보소. 정주고 밥 주고 다 했으믄서 와 정작 살 집은 안 주노.”

 

“여기서 밥 주고 정 주는 거야 내 책임의 반의반도 없으니까.”

 

 자고로 무언갈 한 녀석 챙긴다는 것에는 지금의 배 이상의 책임이 따라온다. 예방접종, 집, 가구, 식비, 화장실. 무엇 하나 쉬운 문제가 없고 또 지금의 배로 손이 많이 간다. 고양이 특유의 쉰내와 다가와 달라붙을 때마다 덤으로 딸려오는 털 한 움큼은 덤이다.

 

‘...무턱대고 아무 생각도 없이 도 맡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냐앙.”

 

“말은 그렇게 하믄서 와 손은 가한테 가 있노. 쯧쯧. 야는 몰것제. 니가 이케 야박한 놈이란 걸.”

 

“시꺼.”

 

 동기의 말마따나 이 녀석이 우리들의 대화를 듣고 있다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니. 애당초 이 녀석한테는 나란 존재는 뭘까? 엄마? 아니면 아빠? 그것도 아니면 친구일까.

 그렇다면 조금 피곤하다. 우리는 그저 소세지와 휴식을 주고받는 관계다. 이 녀석이 나를 가족이라고 생각한다면..

 

“..책임도 못 질 건 안 하는 게 상책이야.”

 

“말은 그카믄서 맨날 후임 아들 조지는 게 니 아이가. 니 맘편도 안 무습나? 요샌 훅 간데이?”

 

“그건 씨발 걔들이 일을..”

 

타-다다!

 

 떠올리면 화부터 먼저 나오는 주제를 동기가 무심코 내던지자 내 입에서 거친 말투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렇게 대화를 이어가려던 중에 우리가 숨어 있던 취사장의 뒤편으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 때문에 내 손길에 턱을 맡기던 짬 타이거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곤 황급히 수풀 사이로 몸을 숨겼다.

 

“-냐옹!”

 

“...아.”

 

“므고. 뉘고?”

 

“-허억! 허억! 상병님! 여..허억. 허억. 여기 계셨습니까?”

 

“...어.”

 

 헐떡이는 목소리와 함께 코너에서 모습을 드러낸 녀석은 다름 아닌 내 후임 중 하나였다. 군대에 온 지 꽤 되었음에도 이 동네에 적응하니 마니 하는 놈이라 내 요 주의대상 중 하나였기에 나는 녀석의 등장에 반사적으로 눈살을 좁혔다. 절대로 짬 타이거가 도망쳐서가 아니다. 절대로.

 

“허억..허억. 그..그게 말입니다.”

 

“마! 마! 숨은 쉬라! 아-새끼. 아를 을마나 갈궜으면 야가 니 앞에서 숨도 못 쉬노?!”

 

“...”

 

 내가 뭐 얼마나 밑에 애들을 갈궜다면 갈궜다고. 나는 폭력을 행사한 적이 결단코 단 한 번도 없는 놈인데. 대체 왜 내가 악마라는 것처럼 말하는 걸까. 그리고 왜 후임 녀석은 괜히 나한테 이런 프레임을 씌울 만한 얼굴로 온 건가.

 

“야. 봐라. 아가 급하믄 을마나 급해가꼬 깔깔이 신고 니 찾으러 오노.”

 

“..너 운동화는 어디 두고 왔냐?”

 

“아..그게. 갑자기 소대장님이 상병님을 찾아오라고 하셔서..”

 

‘..소대장님? 갑자기 그 양반이 날 왜?’

 

 무슨 별일인가 싶었더니 후임 녀석의 입 밖에서 튀어나온 호출에 내 눈살이 더욱더 안으로 좁혀졌다. 진짜 이 동기 녀석이 말한 대로 무슨 일이 터진 건 아닌가.

 순간 요사이에 내가 벌였던 일들이 순서대로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대체 어떤 껀수가 있었지?

 

‘전번에 작업 때 애들 존나 갈군 걸로 뭐 책잡혔나? 아니면 애새끼 하나가 불침번 때 졸던걸 눈치 존나게 줘서? 아니. 씨발. 그건 욕도 안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별다른 껀수라고 할만한 게 없다. 전부 다른 녀석들도 하는 거고, 나는 심지어 가라도 적당히 치는 놈이다. 그런데 뭔 호출인가.

 

“야. 뭐 때문에 날 부르는지 듣기는 했냐?”

 

“아..그거까지는..”

 

“...후. 씨발.”

 

 딱히 후임에게 던지는 욕이 아니다. 그냥 머리가 아파서 그렇다. 보통 소대장이 날 호출할 일은 적다. 그냥 생활관에 와서 뭐해라 뭐 작업해라 뭐 할 거냐 하고 묻거나 아니면 분대장을 통해서 말을 전달한다던가, 딱 이 정도가 다다.

 

‘...아씨. 뭔가 껀수가 잡히긴 잡힌 모양인데.’

 

“와 아한테 욕 해쌌노.”

 

“...쟤한테 한 거 아니거든. 뭐. 뭐가 되었든 가야지. 에휴..”

 

 동기 놈의 핀잔을 한 귀로 흘리며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어차피 짬 타이거 녀석도 도망친 마당에 내가 여기에 남아 있을 이유는 딱히 없었다.

 

“야. 가자.”

 

“예. 상병님.”

 

“-야! 마!”

 

“...뭐 또?”

 

 그렇게 자리를 뜨려던 중, 갑자기 가만히 있던 동기 녀석의 고함에 나는 다시 고개를 그 녀석이 있는 방향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동기 놈이 왠지 능글맞기 그지없는 미소를 입가에 띄운 채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하모 축하한다?”

 

“? 뭔 축하?”

 

“아이다. 고마 가라. 키킥.”

 

“?”

 

 도무지 영문을 알기 힘든 소리만 계속하는 동기 놈에게 중지를 척-하고 한 번 올리곤 나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뭐지. 저 녀석 뭔갈 아는 눈친데.

 

“...흐음. 뭐. 별일은 아닌가 보지. 아, 맞다.”

 

 영문모를 불안감에 조금 다급한 걸음으로 소대장실로 향하던 찰나, 나는 문득 내 바지 주머니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감각에 그 안으로 손을 쏙 집어넣었다. 그러고 보니 이걸 여태껏 켜둔 상태였지.

 

‘손난로가 따로 없네. 배터리는 좀 달았겠지.’

 

 검은 화면에 잠금 마크만 떠올라 있는 휴대폰을 내려다보던 나는 그걸 손 안에서 한 바퀴 빙글 돌린 후 곁을 따라오던 후임에게 내밀었다.

 

“야. 너 생활관으로 복귀하지?”

 

“예? 예.”

 

“그럼 내 휴대폰 충전 좀 해둬. 화면은 건들지 말고. 알겠냐?”

 

“예!”

 

 목소리 하나는 우렁차다. 그렇게 생활관 건물로 들어선 나는 재빠르게 후임을 돌려보내곤 소대장실을 방문했다. 그리고..

 

“-제가 분..분대장 말입니까?”

 

“그래. 너 아님 누가 하냐?”

 

“그..그 왜. 다른 녀석들도 있잖습니까? 생활관에 저만 있는 것도 아니고..”

 

“금마들이 니 추천하드라. 니처럼 작업에 열심인 놈이 따로 없다고. 솔선수범 그 자체라 카든데?”

 

“그..그래도 있잖습니까? 소대장님. 아직 제 선임 전역날도 멀었는데 갑자기..”

 

“요새 전역 대기실인가 뭔가 하라고 위에서 지랄 캐갓고 꼴초 가도 걸로 간다. 그카니 인수인계해야지. 암.”

 

“...허. 허허..”

 

“고마 군말 말고 달으라이? 알긋제?”

 

“...예.”

 

“아. 분대장 훈련도 수료해야 하니께. 조만간 알려주꾸마이.”

 

“...예.”

 

“말이 짧데이?”

 

“-예! 알겠습니다!”

 

탁-!

 

 그리고 소대장실을 나올 즈음에 내 어깨 견장 위에는 녹색 딱지가 달라붙었다.


"허..허허.."


뚜벅-뚜벅


 소대장실을 벗어나 생활관까지 몇 걸음을 남겨두지 않았을 때, 나는 결국 두 눈을 질끈 감고선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던 속내를 작은 목소리로 읊기 시작했다.

 

“씨...발. 군생활 ㅈ같다...씨발. 일 잘해서 분대장이라니.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어! 차라리 잘 갈궈서 분대장이라고 하던가!”

 

 인생이란 게 정말 길고 얇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꿈만 같은 일인지를 깨달은 날이었다. 인생사. 뭐하나 제 뜻대로 흘러가는 것이 없다.


135)

 

자박-자박

 

“..언니. 우리 진짜로 오늘 같은 날에..”

 

“시끄러워. 노움. 나도 울고 싶은 심정이라고.”

 

“...히잉.”

 

자박-자박!

 

 푸르른 하늘 아래서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이 무색해지는 어느 산속 깊숙한 비포장도로 위, 그 위를 힘없이 걸어가는 두 여성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한 채 누가 무어라 할 것도 없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래도 빨리빨리 하면 일찍 끝나지 않을까?”

 

“보..본대 분들이니까. 그냥 저희는 보조만 하면 되겠죠?”

 

“임펫 중사님이나 레드후드 연대장님..거기에 우리 불굴의 마리 대장님까지 계시는데 우리가 나설 자리도 없을지 모르지.”

 

“그..그쵸?! 헤헤..”

 

‘..그렇게만 되어준다면 별문제 없을 텐데.’

 

 굳이 뒷말까지 내뱉어서 이 안타까운 후임의 희망을 뺏을 필요가 있을까. 곁에서 조금 희망찬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헤실헤실거리는 순진한 후임을 보고 있으니 그녀와 함께 발을 맞추어 걸어가던 이프리트의 입술을 달싹였다.

 

맴-! 맴! 맴!

 

 녹음이 우거진 산세 사이로 시끄럽기 그지없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자 이프리트는 눈썹을 한껏 구기고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제 속도 모른 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쨍쨍하기 그지없는 햇빛에 이프리트의 입에서는 또 한 번 한숨이 새어 나왔다. 

 

“에휴...”

 

‘나도 해수욕 정도는 하고 싶은데..내 바이오로이드 팔자야.’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런 시끄러운 곤충의 울음소리가 아닌 푸르른 바다의 청량한 파도소리를 듣고 있어야 했을 텐데. 도무지 자신의 앞날에는 언제쯤 장밋빛 레드카펫이라는 게 펼쳐질 터인가.

 

“...전역하고 싶다아.”

 

“그 소리 듣는 것도 오랜만이네요. 언니.”

 

“진짜 두 번 다시 하기 싫은 소리였는데..에휴.”

 

“그래도 이제는 저희가 구르는 입장이 아니잖아요. 그것만으로도 다행 아닐까요?”

 

“굴리기도 싫고. 구르고 싶지도 않-”

 

부우우웅!

 

“...이크.”

 

 노움의 걱정 하나 없는 말에 뾰로통해진 이프리트가 뒷말을 이으려 들 때, 그녀들이 걸어가던 비포장도로의 위로 작은 떨림과 시끄러운 엔진 소리가 그녀들의 뒤에서 다가왔다.

 

“언니. 이 소리는..”

 

“마리 대장님인가? 노움.”

 

“네. 언니.”

 

 갑작스러운 차 소리에 앞으로 걸어가던 이프리트와 노움은 서로를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곤 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갓길로 잠깐 물러섰다. 이제는 정신을 똑바로 잡을 때다. 이프리트와 노움은 아까까지의 한탄은 제쳐두고 한껏 긴장한 눈치로 능선 아래서부터 가까워지는 바퀴 소리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구-르릉!

 

“...지프찬가?”

 

“저희 동네는 세련된 세단 같은 건 없으니까요.”

 

“어울리지도 않지. 대장님 취향이네.”

 

그-르륵! 부웅!

 

 저마다 긴장을 풀기 위해 한 마디씩 주고받던 이프리트와 노움의 시야로 이내 비포장도로 위에서 먼지를 풀풀 휘날리며 다가오는 지프차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필승이라고 해야 하나. 충성이라고 해야 하나.”

 

“헤헤..”

 

 생긴 것이 딱 자신들의 상관이 타고 다니는 차량이라고 그녀들이 생각하고 있자니 점차 가까이 다가오는 지프차의 창문 유리가 그녀들과 가까워졌다가 그녀들의 앞에서 멈추어섰다.

 

부-웅! 끼이익!

 

“...”

 

“...”

 

지-이잉!

 

 먼지구름을 대동하지 않고 자기들과 거리를 두어 멈추어 준 것은 운전자의 배려인가 하고 두 여성이 한껏 목에 힘을 주고 차렷 자세를 취하려던 그때, 지프차의 운전석 유리가 천천히 내려가며 그 사이로  어떤 이가 목을 쭉 내밀었다.

 

“...야! 얌마!”

 

“추웅!...어라?”

 

“추-웅! 어?”

 

 창문 사이로 예상했던 은발의 전 상관이 아닌 익숙한 얼굴의 남성이 선글라스를 쓴 채 얼굴을 내밀자 이프리트와 노움은 한껏 힘을 주던 목을 풀고선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생긴 것이 여자는 아니다. 음색도 외형도 전부 남성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긴 것이 흉악한 것이 그녀들이 아는 사령관은 더욱더 아니다. 그렇다면 이 섬에 남은 남성은 단 하나, 그녀들의 상관임이 틀림없었다. 

 

“대장? 대장 거기서 뭐 해?”

 

“충성은 더워 죽을. 너희들. 설마 이 흙길을 걸어가고 있었냐?”

 

“예? 에..예! 저희는 그..”

 

“말 안 해도 알아! 어제 대충 들었어. 너희들 본대 혹서기 훈련 보조로 간다며.”

 

“...응. 그래서? 혹시..”

 

“그 혹시가 혹시다. 타라. 목적지는 같으니까.”

 

“-앗싸!”

 

“앗싸는 뭔 아싸. 에라이.”

 

 한껏 불평을 토로하며 다시 창문 너머로 고개를 집어넣는 상관의 언행에 아까까지 죽상으로 서 있던 이프리트와 노움의 입꼬리가 스물스물 위로 올라갔다.

 자신들을 지옥의 구렁텅이에 떨궈 넣은 장본인도 함께 지옥으로 간다니. 꼬시다라는 말을 이럴 때 써야 하는가. 이프리트와 노움은 아까보다 한층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연신 덜컹덜컹 움직여대는 지프차의 근처로 다가갔다.

 

자박-! 자박!

 

“그치. 그치. 우리만 지옥에 가면 섭섭하지.”

 

“대장님이 오셨으니까 저희한테 오는 관심도 적겠네요.”

 

“대-충 대장 옆에서 무게만 잡으면 끝나지 않을까? 히히.”

 

“헤헷. 다른 언니들도 왔으면 한결 수월했겠지만요.”

 

“언니는 무슨. 야! 우리가 걔들보다 나이를 배로 더 먹었는데.”

 

 뒷좌석에 앉으려는 노움과 달리 비어있을 조수석 쪽 문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올린 이프리트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조수석 문을 벌컥-열어 재꼈다.

 

달-칵!

 

“이른 아침부터 수고가 많아. 대장! 그래서 아르망 언니는 어쩌고 대장이 운전댈..”

 

“..여기는 내 자리야. 꺼져. 해충.”

 

“...에?”

 

 이제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대장을 어떻게 골려 주지-하고 그녀가 고민하던 그때,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조수석을 먼저 선점한 이의 희번덕한 연보랏빛 눈동자가 이프리트의 간담을 서늘케 만들었다.

 

‘이..이 언니가 여기 왜?’

 

“...”

 

 첫 마디를 내뱉은 후 팔짱을 낀 채 자신을 홱 노려보는 리제의 무언의 압박에 이프리트가 어버버 거리고 있자니 그 광경을 바라보던 운전석의 남성이 힘 빠진 목소리로 그녀를 일깨웠다.

 

“...하아. 뒷좌석에 타라. 이프리트.”

 

“어..엇. 응. 응응!”

 

“어..언니. 얼른 오세요.”

 

‘씨잉! 내가 나이로 보면 내가 언닌데! 갓 제조된 애한테 포스로 밀릴 게 뭐야!’

 

 리제는 아르망처럼 어른스럽지도 않고 소완이나 리리스처럼 연장자처럼 굴지도 않는다. 하지만 리제 개체 특유의 동공이 옅은 보랏빛 눈동자의 앞에 설 때마다 살짝 겁이 나는 것은 노장 이프리트조차도 어쩔 수 없었다.

 

“...에휴.”

 

“다 탔냐. 안전벨트 매라. 꽤 흔들리니까.”

 

“네에..”

 

부-우웅!

 

 거친 엔진음이 들리는 동시에 다시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산 비탈길을 타고 오르기 시작하는 지프차. 아직 콘크리트 작업을 하지 않은 비포장도로여서 그런 것인지 차의 동체는 덜컹-덜컹거리다 못해 마치 놀이기구처럼 출렁대기 바빴다. 하지만 이 정도의 수고쯤은 그녀들에게 별 것도 아니었다.

 

“대장님. 그런데 대장님이 왜 갑자기 오신 거예요?”

 

“...너희 둘한테만 맡겨놨다가는 어떻게 될지 몰라서 왔다. 왜?”

 

“헤헤. 저흰 대장님이 시치미 뚝 뗄 줄 알았는데. 조금은 감동이에요.”

 

“...뭐라냐. 내가 그렇게 부하들 내버려 두는 녀석처럼 보였냐?”

 

“안 그랬으면 우리한테 본대 행군을 맡기고 튀진 않았겠지! 덕분에 나랑 노움이 얼마나 긴장한 줄 알아!?”

 

“..난 사령관님이랑 다녔어. 이 맹랑한 것아.”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이야긴데? 헤헷.”

 

끼-릭! 끼릭!

 

 지프차에 달린 수동 기어를 연신 매만지며 정면을 빤히 응시하는 남성의 뒷모습을 빤히 응시하던 이프리트는 문득 떠오른 궁금증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여태껏 그가 직접 무언갈 운전하는 걸 본 적이 있었던가?

 

“대장? 그러고 보니까 대장 운전도 할 줄 알았어?”

 

“응? 어어.”

 

“아르망씨한테서 배운 거야? 대장이 운전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데.”

 

“아니. 예전부터 할 줄 알았는데 아르망이 자기보다 운전 잘 할 자신 없으면 핸들 만지지도 마라더라.”

 

“헤헤. 그거 정말 아르망씨 다운 대사네요.”

 

“아니. 애당초 앞에 뭐가 나올지 다 계산하고 핸들을 꺾는 애한테서 어떻게 핸들을 빼앗아?”

 

 뭔가 불만족스럽다는 듯 투덜대는 라붕이 작전관의 언행에 뒷좌석에 앉은 노움은 그저 헤실헤실 웃을 뿐이었으나 이프리트는 조금 눈썹을 찌푸리며 다시 한번 그에게 질문을 내던졌다.

 

“근데 대장은 기억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사람이 이렇게 운전을 잘 해?”

 

“...”

 

“생각해보니 그것도 참 신기한 일이네요. 언니.”

 

“...”

 

 자신의 질문에 상관과 그 곁에 앉아 있는 아가씨의 어깨가 들썩인 것처럼 보인 것은 자신의 착각일까. 아마도 차체가 들썩대는 탓이겠지.

 

“어...그게 어. 그 뭐냐! 몸이 기억을 한달까..”

 

“해..햇츙. 주인님이 운전하는 게 뭐가 이상해? 주인님도 하려면 하실 수 있어!”

 

“그렇게 말하니까 할 말이 없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둘 다 왜 그래?”

 

 괜한 주제를 던진 걸까. 이프리트는 어째서인지 언성이 올라간 리제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다 어깨를 으쓱였다.

 

‘하긴. 어디 대장 주변에 과보호하는 아가씨들이 어디 한 둘이어야지.’

 

 내심 이 남성도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있구나 싶어 이프리트는 조금은 안쓰러운 눈치로 선글라스를 낀 제 상관을 빤히 바라보았다. 잘 생기지는 않았다. 사령관에 비교하면 평범하다면 평범한 얼굴. 하지만 그것이 도리어 그녀에겐 호감상이었다.

 

‘다가가기 부담스럽지 않아서 좋네. 힛.’

 

덜-컹! 덜컹!

 

“대장? 근데 가서 뭐할 거야? 이번에 훈련을 받으러 오는 애들은 본대 정예라고.”

 

“그러게요. 저도 그게 제일 걱정이었는데. 저희가 준비한 세트장만으로 다른 부대 대장님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요?”

 

“...안 그래도 나도 그게 걱정이긴 한데.”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 건데 그 지휘봉은 금지야. 아무리 그래도 본대라고? 조만간 전투에 나가야하는 애들인데 멋대로 전투 불능으로 만들 순 없잖아.”

 

“..난이도가 올랐네. 쯧.”

 

 기어 위에서 오른손을 땐 채 턱을 매만지는 라붕이 작전관의 옆모습에 이프리트는 한결 편해진 얼굴로 머리 뒤에 손깍지를 꼈다. 애당초 기존의 극기 훈련 메뉴도 이 양반의 머릿속에서 튀어나온 거다.

 

‘대장이라면 뭐. 또 이상한 거 생각해내겠지.’

 

 뭔갈 또 재밌는 걸 구상하고 있지 않을까하고 이프리트가 콧노래를 부르려 들 때, 정면에서 눈을 떼고 있지 않던 라붕이 작전관이 갑자기 핑거스냅을 휘갈겼다.

 

딱-!

 

“-좋은 게 떠올랐다.”

 

“응? 벌써?”

 

“무슨 꿍꿍이인가요? 대장님.”

 

 대놓고 꿍꿍이라고 말하는 노움의 물음에 라붕이 작전관은 여전히 고개를 정면에 고정한 채로 입꼬리를 씨익-올렸다. 그런 그의 미소를 본 이프리트는 속으로만 한 마디 감상평을 내놓았다.

 

‘악마스러운 미소네. 진짜.’

 

“본대 애들이라고 해서..체력이 무한정은 아니잖아?”

 

“뭐..아무래도 살아 있는 생물이니까. 폐에 한계라는 건 있지만. 우리는 바이오로이드야. 대장. 일반인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음..저희도 현역 때는 하루 내내 달려도 문제없었으니까요.”

 

 자신들의 조언이 먹히기는 한 걸까. 여전히 사악한 미소를 입가에서 거두지 않는 라붕이 작전관의 작태에 이프리트의 눈썹 끝이 점차 이마 쪽으로 올라갔다.

 

“전투 모듈이 있는 만큼 몸을 제어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어.”

 

“...폐활량에 문제가 없으면. 폐활량에 부담을 주는 방식을 채택하면 그만이지. 크크.”

 

“? 그게 뭔 소리야?”

 

“이프리트. 지금 우리 애들 말고 파견 인원 애들한테 전보 하나씩 쳐라.”

 

“갑자기 걔들은 왜?”

 

 갑자기 예상치도 못한 이들을 부르라는 라붕이 작전관의 명령에 이프리트의 눈썹 끝이 점차 미간의 안쪽으로 휘어져 들어갔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라붕이 작전관은 계속해서 자기 할 말만 이어갔다.

 

“어차피 파견 애들은 우리 애들이랑 별도로 백사장을 쓸 계획이잖냐. 그러니까 걔들한테 비축 창고에서 생수와 마스크를 대량으로 가져오라고 해.”

 

“어...우선..음. 어. 알겠어.”

 

“그리고 선글라스랑 선크림도 바르고 오라고 하고. 크크.”

 

“? 그건 또 왜?”

 

 여전히 의미불명인 상관의 명령에 이프리트는 계속해서 되물음을 내던졌다. 보통 때라면 신경도 안 쓸법한 일이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귀찮게 흘러가는 중이었기에 그녀는 상관의 의도를 파악하고자 들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바람을 아는지 모르는지 라붕이 작전관은 아예 자신의 오른 검지를 허공에 빙글빙글 돌리며 여전히 그녀에게 수수께끼를 내던졌다.

 

“자고로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건 남이 괴로워하는 순간을 보는 것이고.”

 

“...무슨 사악한 발상이야. 그거.”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괴로운 건 남이 자기가 괴로워하는 걸 그냥 지켜만 보는 거라고.”

 

“...대장님. 정말 이런 말을 하는 건 좀 그런데. 혹시 기억이 돌아오시면 전에 하시던 일이 뭔지 좀 알려주세요.”

 

“돌아와도 안 알려줘. 메롱이다. 노움.”

 

부우우웅-!

 

‘...가만 보면 우리 대장이나 그 네 명이나. 속이 시커먼 건 똑같지 않나?’

 

 유유상종이란 말은 이럴 때나 쓰는 게 아닐까. 이프리트는 방금까지의 홀가분함이 사라지고 대신 뭔가 불길한 무언가가 코앞으로 닥쳐올 거라는 직감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난 몰라. 이제. 앞에 뭐가 터지든 그건 대장 책임이지. 내 책임이 아니야.’

 

지-이잉!

 

 애당초 이 양반이 여기에 온 것부터가 문제가 아니었나 싶어 이프리트는 모든 걸 내려놓은 채 지프차의 창문을 내리곤 우거진 수풀 너머로 보이는 푸르른 바다 위를 멍하니 응시했다.

 

쏴-아아!

 

“-아. 바람 한번 시원타. 대장. 그냥 이대로 핸들 꺾어서 바다나 가자.”

 

“여기 일방통행이야. 이 멍청아. 그리고 그러면 너 마리 소장님한테서 살아남을 자신 있냐?”

 

“..대장이 직급이 더 높잖아. 대장이 지켜줘.”

 

“그런 거 없다. 나도 너희 대장님 앞에선 딱딱하게 굳는다고. 말만 대장이지 내가 무슨 수로 너희 백전노장 소장님을 이겨?”

 

“..예예.”

 

 무능한 상관의 변명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이프리트는 창문 턱 위에 자신의 작은 턱을 올린 채 시원한 산들바람에 온정신을 도 맡겼다. 정말 낮잠 자기 좋은 날씨라고 그녀가 멍한 눈으로 바깥 풍경을 만끽하던 때에 그녀들은 전혀 관심도 가지지 않고 있던 뻥 뚫려 있는 지프차의 트렁크 쪽에서 작은 재채기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엣..에엣취!”

 

덜-컹! 덜컹!

 

“...킁! 뒷좌석에 앉을 걸 그랬다아..”

 

부-우우웅!

 

“..지금이라도 뒷좌석으로 가고 싶다고 말할..으으. 에..에엣! 엣-취!”

 

 그렇게 네 명의 여성과 한 명의 남성을 태운 황갈색의 지프차는 거친 산 비탈길 위를 계속해서 내달렸다. 그들이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진 아직 10여 분이 남은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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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도 토박이인데 난 아직도 경상도 사투리랑 전라도 사투리를 구분 못 하겠다. 둘 다 외계어야.


 그리고 혹시 몰라 써놨던 세이브 다 끝났어.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