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령관이 아니다.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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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이 많은 레오나에 의해 내 방에서 쫓겨난 나는 이젠 일과라고도 할 수 있는 별생각 없이 어슬렁거리기를 실시하고 있었다.

반가운 얼굴인 아스널은 사령관에게 보고하고 조금 쉬다가 씻고 저녁에 찾아간다며, 눈짓으로 묘한 시그널을 보내곤 그대로 헤어져 버렸으니 지금으로선 이 행동이 내 최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여전히 드넓은 오르카의 복도를 걸으며 오늘밤은 어떤 플레이를 할까 생각했다.

물론 레오나도 껴서 함께하면 나름 신선하고 재밌겠지만...

 

“그 레오나가 순순히 함께할 리가 없지.”

 

엉덩이를 때려 줄땐 싫은 척 난동을 부리면서도 좋아했던 레오나가 발광하면서 거절한 게 3p다.

나 참, 그렇게 싫어하는데 이걸 억지로 같이 하자고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뭐, 절대로 내가 힘에서 밀리니까 하는 소리다만.

 

“근데, 생각해보니 열 받네...”

 

궁디 팡팡은 내가 발작적으로 일으킨 일이니 그러려니 해도, 잔뜩 흥분해서 본인 입으로 하자고 해놓곤 아스널이 난입하니까 그만둔다고?

어차피 같은 여자고, 둘 다 내 여자인데 거 뷰지 한번 보였다고 너무 한 거 아닌가?

 

아무리 둘이 사이가 별로라지만 한 쥬지를 나누는 사이, 그래 거의 자매라고도 할 수 있는 그런 사이인데 어떻게 그런 식으로 거절을 한다는 말인가.

 

캣 파이트? 뭐야 그거, 내 하렘엔 그런 건 존재하지 않게 만들 것이다.

 

하렘도 어찌 보면 가정이라고 할 수 있으니 가장된 도리로써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당연.

이럴 때 확실하게 남자로서의 위엄을 보여야...

 

우웅-

 

“응?”

 

난데없는 울림에 나는 현실로 돌아와 이 작은 울림의 근원인 오르카 폰을 꺼내 보았다.

뭐, 연락을 주고받는 이라곤 유일한 인간 친구인 사령관과 아스널, 레오나 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방금 전 까지 그런 일이 있었으니, 레오나나 아스널이겠지 싶어서 알림을 확인했다.

 

「(ㅇㅇ)

사진을 보냈습니다.」

 

“뭐지?”

 

오르카톡으로 모르는 이한테 온 톡. 보낸 이는 ‘ㅇㅇ’.

저번에 닥터에게 듣기론 혼선을 줄 수도 있기에 실명이나 코드명으로 설정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했었다. 분명 그랬는데...

 

그럼, 얘는 뭐지.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익명성이라는 얄팍한 그늘에 숨어 내게 톡을 보냈다는 건 그리 당당한 내용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이래보여도 나는 모르는 사람이랑 함부로 대화하지 말라는 엘리트 교육을 무려 유치원을 다니기 전부터 받았었다.

 

그렇다. 모르는 이가 어떤 식으로 친근하게 다가와 나를 해코지 할지도 모르는 일이니 당연히 조심스러워 지는 수밖에.

 

“흐음.”

 

머리가 슬슬 아파오기 시작했다. 익명으로 나한테 톡을 보낸다? 상대방도 그리 떳떳하지 못한 거겠지.

아니, 익명으로 보낸 것 말고도 내게 온 톡이라는 게 이상하다. 내가 할 일이 별로 없고 하찮아서 여기저기에 골고루 얼굴을 들이민 적이 많다고 하지만, 이렇게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이는 딱 셋이다.

 

그렇게 소거법으로 하나씩 지워나갔다. 오랜만에 제대로 굴려본 머리는 생각보다 회전이 빨랐다.

그래. 익명이니 중요 전달 사항도 아니고, 톡을 보낸 지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재촉하듯 연달아 보내지도 않은 걸 보면 급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익명으로 잘못 보냈다거나, 아니, 근데 왜 하필이면 사진을...

 

“허억!”

 

순간 머릿속에서 찰나의 번뜩임이 일었다.

설마, 아니, 그래... 그럴 수도 있다. 일단, 내 상황을 곱씹어 보자.

 

나에겐 아스널이 있었지만, 그녀가 없는 동안 레오나라는 새 여자가 생겼지. 그리고 레오나의 행동으로 나와 레오나의 관계가 퍼져나갔다.

가뜩이나 2번째 남자라서 주목이 되는데 여자까지 늘어서 화젯거리가 된 임자 있는 남자에게 익명의 톡이 온다? 그것도 사진으로?

 

꿀꺽-

 

전개가 어딘가 익숙하다. 그것을 깨달은 나는 마른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왜인지 모를 오싹함에 눈을 감자 자연스럽게 어떠한 상황이 그려졌다.

 

음습한 곳에서 살아가던 금발에 태닝까지 한 양아치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양지에서 햇빛을 받으며 잘 지내는 여성의 일탈을 우연히 접하게 되고... 순식간에 사진과 영상이 찍혀 불쌍한 먹잇감이 되어버린 여인은 행복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그가 요구한 대로 딱 한 번의 실수를...

 

“NTR 전개 멈춰!”

 

나는 발작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NTR이라니, 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머리가 아파왔다. 언제지? 언제 찍힌 거지?

누구랑 할 때였지? 아스널? 아니면 레오나?

아니, 그보다 왜 나지? 난 남자인데?

 

어떻게 찍혔는지는 굳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억지스러운 전개에도 금태양들은 항상 영상과 사진을 남겨서 협박을 한다는 기본적인 틀이 있기에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오르카폰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남잔데, 뭔 병신 같은 협박가지고 두려워 하냐고?

그래, 그 말대로 내가 몸으로 때우는 건 두렵지 않다. 왜냐면 나도 남자니까 오히려 좋아 죽지 않을까?

...상대가 정말로 머리가 이상한 녀석이 아니고서야 말이다.

 

그래. 그런 걸 빼고도 문제라면 하나 밖에 없다.

 

“레, 레오나한테 맞아 죽을 지도 몰라!”

 

솔직히 말해 어떤 협박이든 내겐 통할 리가 없다. 야스비디오? 사람이 야스 좀 할 수도 있지.

그걸 가지고 협박? 그런 것 보다 풋풋한 사랑 고백 하나면 기꺼이 안아줄 자신이 있다.

그런데, 내가 협박을 당했다는 사실에 그 금태양이 레오나한테 맞아죽을 거고, 가만히 있던 나도 협박에 못 이겨 몸을 섞든 안 섞든 레오나한테 뒤지도록 두들겨 맞겠지.

 

결국 어떤 선택을 하든 들키면 처맞는다는 소리다!

 

“이 얼마나 잔혹한!”

 

나는 당장에라도 눈물을 흘리며 입안에 주먹을 쑤셔 박고 싶었지만 내 주먹을 쑤셔놓기엔 내입이 너무나도 작았다.

아아, 운명은 내게 슬픔을 느낄 수도 없게 만든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봤자. 미래의 나는 확정적으로 레오나한테 먼지 나게 맞는 것이다.

 

“...”

 

우울해진 나는 차라리 이 손에 쥐어진 오르카폰을 저 멀리 던져버리고 도망갈까 생각했지만 닥터와 사령관이 웃으며 건네준 물건을 차마 함부로 던져서 망가뜨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이걸 평생 숨기기엔 레오나의 독점욕도 엄청난 것 같아서 폰을 보여 달라고 하면 그땐 정말 좆되는 거다.

그렇다고 이 금태양을 무시한다면 계속해서 내 평화로운 일상을 위협하겠지... 떡인지 처럼!

 

선택의 기로에 놓여 덜덜 떠는 히로인 마냥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모른 채 계속 걸어 나갔다.

쳐다본다고 나아지는 건 없으니 이걸 눌러 서 확인해야 할까 고민을 하면서도 역시 눈은 오르카 폰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으앗!”

 

“읏!”

 

그리고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한 나는 그만 누군가와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다.

 

“아앗,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한눈을 팔아서, 안 다치셨나요?”

 

“네, 저는 괜찮습니다.”

 

미안함과 쪽팔림에 벌떡 일어난 나는 혹여나 화나진 않았을 랑가 잔뜩 쫄은 채 사과를 했고,

따듯하게 보듬어 주는 것 같이 들려온 부드러운 미성에 그제야 고갤 들어 상대방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힘을 숨긴 것 같은 실눈. 살짝 무뚝뚝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확실한 미인상. 보랏빛의 머리칼은 길게 늘어뜨려져 있었고 판타지 수녀님들이나 입을 법한 옆트임이 심한 검은 수녀복을 입은 그녀는 나의 걱정에 자신은 괜찮다며 과하게 노출된 오른쪽 다릴 훌훌 털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하, 이것 참 거듭 말씀드리지만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사과까지 하실 필욘 없습니다. 이리 만나 뵙게 된 것도 빛의 뜻. 너무 마음에 담아 두시지 마시지요.”

 

“아, 네. 감사합니다.”

 

“...”

 

“...”

 

거북하다. 응. 확실히 미인이라서 기분은 나쁘진 않은데, 아무래도 종교인들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신앙심이라곤 1도 없는 내겐 이런 쪽의 사람들이 그냥 조금 많이 불편했다.

대화를 이어갈 껀덕지도 없어서 그냥 막연하게 서있었다.

 

“그, 어딜 그리 바삐 가셨던 겁니까?”

 

“스틸라인 분들의 종교활동이 끝나 정리하고 돌아가던 길입니다.”

 

그냥 어색해서 대화를 걸었지만 덕분에 여기에도 종교활동이 있다는 것만 알아낼 수 있었다.

여기도 뭐 초코과자랑 사이다 같은 거 주나?

 

“아, 네. 그렇군요. 들어가 보세요.”

 

딱히 할 말도 더 이상 없었고 너무 어색한 상황이라 나는 급히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러나 급히 떠나려던 나를 이 실눈 수녀님이 불러 세웠다.

 

“잊은 물건입니다.”

 

“아.”

 

요 수녀님은 바닥에 떨어진 오르카 폰을 주웠다 아까까지 내 고뇌의 원인이 되었던 그것 말이다.

이제, 저것만 돌려받고 빨리 자릴 떠야지 싶어서 감사히 받으려 했다.

응. 그래야 했는데...

 

“이 무슨... 옳지 못한...”

 

수녀님이 당황한 목소리로 오르카 폰을 내밀자. 거기에는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화면 속에는 웬 나신의 여성이 검지와 중지 이 두 손가락으로 흔히 ‘브이’자를 만들어 중요 부위를 가린 채 거울 앞에서 찍은 사진이 띄어져 있었다. 의도 한 것인지 목 위로는 미묘하게 잘려서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 누군지도 모를 알몸이 왜 내 폰에 있는 건데!

 

“하하...? 왜 이런 게 나와 있을까요?”

 

나도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바보처럼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금태양이 나를 협박하려고 보낸 사진이 나의 음밀한 사생활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알몸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일단, 눈앞의 수녀님이 뭔가 기분이 나빠질 수도 있으니 빨리 해명을 해야 한다.

그래 누군가가 잘못 보낸 겁니다! 이렇게 만 말하면 일단 해명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이게 말이죠...”

 

우웅-

 

내 말이 본론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새로운 울림이 있었고 그곳에는 내가 읽어서 1이 줄어든 걸 확인하고 보낸 게 확실한 메시지가 와 있었다.

 

「(ㅇㅇ)

♥

 

분명 하트는 사랑이나 심장을 의미 하는 것일 텐데 이 문자를 보자마자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세상에 뭐 이런 타이밍도 다 있다냐...

 

“빛이 당신을 시험하시는군요...”

 

그리 말한 수녀님은 더러운 벌레라도 본 듯한 불쾌함이 가득 서린 피 같이 붉은 눈으로 나를 쏘아 볼 뿐이었다.

 

“뎃?”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아니, 무슨 빛이 나를 시험한다는 건지. 기도는 또 왜 해준다는 건지, 그런 것 보단 내겐 구원이 더 급해 보였다.

이런 저런 종교적인 말을 꺼낸 수녀님의 얼굴은 점점 더 혐오로 일그러지고 있는 중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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