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어떻게 된 걸까? 혼란스러웠다. 함포의 직격을 맞아도 한 번이라면 막아낼 수 있는 지휘실에서 내로라하는 바이오로이드들의 호위를 받으며 지내왔다지만 언젠가는 전장의 폭력에 직접 맞서야 할 거라는 예상 정도는 하고 있던 사령관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그 어떤 곳보다 안전해야 할 이곳은 죽음이 닥쳐오기에는 너무나 이질적인 공간이었다.

"주인님!!!"

희미해지던 의식을 부여잡고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려던 사령관을 부축한 리리스와 그 뒤를 이어 달려온 바이오로이드들 사이로 유독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LRL. 그 어리지만 어른스럽고 엉뚱하지만 상냥하던 아이가 어째서 마리에게 짓밟히고 있지? 반항 한번 못하고 구타당하던 LRL과 눈이 마주친 사령관은 당장이라도 그만두라고 외치고 싶었다. 저렇게나 슬퍼하고 있는 아이가 자신을 해칠 리 없지 않냐고 변호하고 싶었다.

그러나 멀어져만 가던 의식은 혈압이 떨어지고 있다느니 당장 해독제가 필요하다느니 하는 아련한 외침을 끝으로 끊어지고 말았다.




'임무 완료.' 간단한 문구가 주는 만족감은 희열 그 이상이었다. 펙스 콘소시엄의 회장 대리이자 임시 총수인 레모네이드 오메가는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이성으로 억눌러야 했다. 회장 대리로서 품위라는 것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그녀에게 부관이자 비서인 유미가 말을 걸어왔다.

"주인님? 감히 먼저 나서는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며 여쭙건데, 임무 완료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제가 모르는 작전이 있었나요?"

평소였으면 괘씸하다며 따귀를 날렸겠지만 오늘은 충분히 자비로워질 생각이었기에 오메가는 흔쾌히 대답했다.

"방금 인간이 죽었거든. 알지? 오르카의 사령관."

잠시 이어지던 정적, 그녀의 비서는 자신 만큼은 똑똑하지 못한 것 같았다.

"사령관이... 죽었단 말씀입니까? 어떻게..."

멍청한 것, 고작 그 정도에 뭘 그렇게 당황한다는 건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던 오메가였지만 아직은 조금 더 친절을 유지하기로 결심했다.

"으음~ 그래, 설명해줄게. 너 LRL 알지?"

"LRL? 그건... 저희 펙스에서 제작한 등대지기 바이오로이드 아닙니까?"

고개를 돌려 의아해하는 유미의 얼굴을 바라보는 오메가의 표정은 이런 것도 모르냐고 묻고 있었다.

"너 말이야, LRL의 생산량이 몇 대나 되는 줄 알아?"

"그건 잘..."

"200대 미만이야."

상상 이상으로 간단하고 이상할 정도로 적은 수. 그제서야 유미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점을 알아챈 것 같았다. 그런 유미의 얼굴을 보며 잠시 즐거워하던 오메가는 대답을 이었다.

"기업논리에 완전히 어긋나지 않아? 저렴하고 용도도 한정 된 바이오로이드 일수록 박리다매는 기본. 그런데 LRL이라는 모델은 거의 수천억에 달하는 최고급 기종과 비슷한 숫자로 팔렸을 뿐만 아니라 충분히 무인으로 대체 가능한 등대에다 처박아놨고 개발비는 이상하게 많이 들었단 말이지."

쯧쯧거리며 혀를 차던 오메가는 강조의 표시로 손가락을 흔들었다.

"게다가 그 등대는 전부 펙스 소유. 쉽게 말해 자사에서만 쓰였고, 개발 기록을 샅샅이 뒤져보니 군용 바이오로이드를 담당하던 부서가 극비리에 참여한 흔적도 나오더라고. 그래서 오직 나 말고는 접근 불가능한 회장님들의 파일을 열어보니까 아주 재밌는 게 나오더라고."

잠시 태블릿을 조작해 파일을 찾은 오메가는 홀로그램으로 화면을 띄운 후 유미의 얼굴을 잡아 돌렸다.

"읏!"

"회장님은 역시...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복안이 있으셨던 거야. 작은 체구, 약해빠진 완력과 덜떨어진 운동신경, 귀여운 행동과 아이같은 언행... 그야말로... 완벽한 스파이지?"

"설마...!"

"그래 맞아, LRL은 인류 멸망 이후에 살아남은 인간이 있을 시 합류한 다음 그자를 암살하기 위해 만들어졌어. 오직 회장님만이 신인류로서의 자격이 있으시니까."

그제서야 오메가와 눈을 마주친 유미는 몸을 흠칫 떨었다. 어느새 오메가는 싸늘한 표정으로 유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게는 고마워해야겠어. 네 덕분에 100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망가져있던 프로토콜을 복구할 수 있었으니까. 정말 고마워, 그러니 이제... 편히 쉬라고."

"하... 아하하... 아하하하하!!"

서서히 다가오는 오메가를 바라보며 유미는 그저 웃어야만 했다. 처음부터 자신은 속고 있었다는 사실이 어딘가 웃겨서 실성한 것처럼 웃어대던 그녀의 목소리는 이윽고 잠잠해졌다.












"...그러니까 LRL이 자신이 사실은 엄청 위험하고 강력한 바이오로이드였다는 시나리오를 써달라고 해서 준 게 이거라고?"

"네 맞아요. 두렵고 잔인하고 반전이 넘치는 시나리오 아닌가요?"


"그 때문에 공포에 질린 LRL이 일주일 넘게 방안에서 함 발짝도 안 나오는데도?"


"...제가 지나치게 유능한 탓이네요."


"가서 달래줘."











"권속... 그는 내 권속이 아니었던 거야... 나, 나는 누구지? 나는... 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