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이만 가 볼게. 나중에 한 잔 만들어줘."
"물론이지, 다음에 또 부탁할게."
럼버제인은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훑고 나선, 바를 나섰다.
리앤은 그런 럼버제인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다, 시선을 바 테이블로 옮겼다.
그리곤 검지를 코팅된 바 테이블에 가져다대고 문댔다.
"그나저나, 되게 매끈하네. 나중에 코스터(잔받침) 같은 것도 부탁해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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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워울프였다.
"어서오세요, 바 오르카입니다."
워울프는 가장 왼쪽 자리에서 한 칸 떨어진 자리에 앉으며 바텐더에게 말했다.
"맥주 한 잔 줘, 얼음 담아서."
곧이어 맥주가 나왔다.
"그나저나, 바라니 신기하네, 이 잠수함에 바가 들어설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바를 만들어달라는 바이오로이드들이 많아서요."
"뭐, 나야 좋지, 캔맥주 말고 진짜 맥주가 그리웠다니까."
워울프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벌써 다 마셨네, 빨리 취하고 싶은데. 한 잔 더 줘."
리앤은 새 잔을 꺼냈다.
맥주잔이 아닌, 길다란 잔이었다.
"뭐야, 다른 맥주잔 없어?"
"아뇨, 빨리 취하고 싶으시다길래."
워울프는 팔짱을 끼고, 허리를 늘어트리며 말했다.
"그래, 한 잔 만들어 줘."
"이번에 제가 만들어 드릴 건 칵테일입니다."
"뭐야, 웬 칵테일? 나 단 거 안 좋아하는데."
"단 건 아니에요, 좋아하실 겁니다."
리앤은 길다란 잔에 각얼음을 가득히 채워넣고, 길다란 스푼으로 얼음이 담긴 잔을 휘휘 저었다.
"생맥주는 시원하게 먹는 게 최고죠. 칵테일도 시원하게 먹는 게 최고구요. 그래서 잔을 차게 합니다. 이걸 '칠링'이라고 하죠."
몇 번 더 섞은 뒤, 리앤은 잔에 고인 물을 전부 따라냈다.
그리고 얼음이 담긴 잔에 맥주를 반 정도 채우고, 지거(바에서 쓰는 계량컵, 보통 1온스(oz)이다.)와 보드카를 꺼내고, 잔에 보드카를 1온스하고도 조금 더 따랐다.
"러시아에서 보드카는 '생명의 물'이라고 불린다고 해요, 술맛이 물처럼 아무 맛도 없거든요."
"아무 맛도 없으면서 40도나 되는 술이어서 인기가 많이 없었지만, 칵테일에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보드카는 칵테일에 없어선 안 될 술이 됐어요."
"자, 여기요, 요르쉬(Yorsh)입니다."
"오, 고마워 고마워."
요르쉬를 맛본 워울프는 입을 닦으며 말했다.
"이야, 이거 최곤데. 맛은 맥준데 목이 후끈거리네."
"보드카는 도수가 40도니까요, 맥주의 열 배 정도 돼요."
"그러면 이 한 잔이 맥주 열 병이랑 똑같다는 건가?"
"아뇨, 맥주랑 섞여서 2~3배 정도 돼요. 10도 정도?"
"이거 대단한데, 한 병 마시는게 맥주 두세 잔이랑 똑같다니. 벌써부터 취기가 올라올 정도야."
워울프는 잔에 남은 술을 모조리 들이켰다.
"고마워, 맛있었어. 다음에 또 올게."
"안녕히 가세요, 손님."
워울프가 가고, 리앤은 잔을 닦았다.
보드카를 다시 있던 자리에 되돌려놓으려던 리앤은 무심코 술병을 보았다.
'잠깐만, 스피리터스?!'
다음 날 아침, 오르카 선실에는 의문의 토사물로 가득했다.
*스피리터스 : 알콜 도수가 90도대인 미친 술.
스피리터스
지거에 술을 따르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