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생명의 땅.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죽음의 손길을 뻗는 땅. 수없이 많은 팔을 펼쳐 태양빛을 낚아채는 탐욕스런 나무를 타고 내려와 얼기설기 엮인 덩굴줄기를 따라가다보면 유독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띈다.

그리고 이곳은 아마존 최악의 포식자의 영토이기도 하다. 눈을 자세히 뜨고 살펴보자. 꾸물거리는 저것이 보이는가? 잠깐, 그건 발톱벌레다. 지네의 친척뻘 되는 생물로, 끈끈이를 내뿜어 먹이를 꿈쩍도 못하게 만든 다음 산 채로 뜯어먹는 무시무시한 포식자는 맞지만 지금 설명하려는 짐승은 좀 더 체급이 높다.

"흐아아아~ 아음!" 

이크! 깨어났군. 어서 숨어! 잠깐, 이봐 어디로 가는 거야! 돌아와! 이런, 틀렸군...



젖은 흙을 밟으며 최대한 살금살금 포식자의 영토를 침범하던 불행한 짐승은 한 발짝 더 나아가려다 멈춰야 했다. 어느새 온몸을 옭아맨 정체 모를 무언가는 짐승의 털 밑으로 조금씩 파고들며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캬웅! 캬아웅!"

겁먹은 목소리로 애처롭게 울며 몸부림치던 짐승은 어느새 무언가가 자신의 그림자를 집어삼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캬앗!"

그것은 피같이 붉은 털을 가진 거대한 괴물이었다. 짐승의 살가죽을 찢고 피를 마시겠다고 외치는 것만 같은 붉은 눈이 서서히 다가오자 짐승은 웅크린 채 털을 곤두세워봤지만 죽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의 창백한 이빨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난히 기분 좋은 숙면을 취하고 일어난 아침이었다. 다리를 타고 지나가던 소름끼치는 지네도, 짝을 찾아 밤새도록 울어대는 개구리도, 개구리를 잡겠다고 퍼덕이는 새도, 신경 쓰이게 자꾸 돌아다니는 원숭이도 없이 조용한.

덕분에 그저 보일듯 말듯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버섯 군락이 자아내는 분위기를 즐기며 스르르 잠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를 실감하는 그런 아침. 그렇지만 끊임없이 침입자를 내보내 잠깐의 소소한 행복조차 누릴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망할 놈의 아마존이다.


평범한 인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민감한 귀는 순식간에 침입자를 찾아냈고, 정밀하게 조정된 신경계는 뇌의 명령을 받기도 전에 손을 뻗어 죽음의 올가미로 침입자를 낚아챈 뒤, 목표를 수백 조각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단 한번의 손짓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10미터나 되는 높이를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가볍게 뛰어내리자 눈앞에 드러난 침입자의 정체는... 다소 당황스러웠다.

"뭐야 이거. 너 엄마는 어디 갔냐?" 

"캬아악! 캭!"

와이어에 묶여 벌벌 떨고 있는 새끼 재규어는 제법 신선한 광경이었다. 동시에 평소였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흥미로운 상상으로 이어지기에도 충분했다.

"야, 너... 맛있냐?"

"하악?!"

가만 놔뒀다간 그대로 겁먹어 죽을듯한 표정을 짓는 것이 아무래도 분위기 파악에 능한 녀석인 모양이었다. 그제서야 자신이 새끼 재규어를 잡아먹으려 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포식자.

어느새 붉은 머리가 허리춤까지 자란 붉은 눈의 아담한 소녀, 장화는 어쩐지 이 상황이 너무나 우스우면서도 어딘가 슬퍼서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서 도대체 뭘 하고 있냐..."


당연하지만 브라질 아마존 우림에서 새끼 재규어와 (다소 일방적인) 장난이나 치는 것은 장화가 원하던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본래 계획은 그 망할 인간을 따라가기 위해 펙스의 보급부대에 숨어들어가 아메리카행 화물선으로 밀항하는 것이었다.

그냥 따라가다보면 뭐라도 얻는 게 있겠지 싶어서 충동적으로 내린 결정이었지만 그래도 계획만큼은 완벽했고, 실제로 성공했다. 다만 약간의 문제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아메리카가 왜 남아메리카냐고!!!"

그녀가 목적지 표시를 너무 대충 읽고 넘어갔다는 것이다.


어느새 풀려난 새끼 재규어는 장화의 손에 목덜미를 잡힌 채 대롱대롱 매달려 그녀의 말동무가 되어줘야 했다. 아직까지는 부인하고 있지만 그녀 스스로도 슬슬 자신이 반쯤, 그러니까 평소보다 조금 더 미쳐있다는 사실을 내심 자각하고 있었다.

"그래 뭐, 그건 좋다 이거야. 그냥 다시 돌아가는 화물선, 수송기... 뭐가 되었건 방법을 찾아서 이번에는 목적지 표시를 제대로 읽거나, 아니면 아예 북아메리카로 직행할 방법을 찾으면 됐던 거라고."

"캬웅?"

아무래도 친화력이 제법 괜찮은 재규어인가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어디서 처맞고 돌아온 철충 잔당이 항구를 습격하는데? 하필이면 북쪽에서 오더라? 그 망할 인간놈이 또 뭔 짓을 했겠지. 이것저것 박살내는 건 내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걔네도 만만찮더라고. 특히 그 인간! 말로 해서 안 되면 힘으로 한다는 멍청이! 철충이 앞을 막는다? 박살내! 레모네이드 떨거지들이 앞을 막는다? 또 박살내!"

"캬야아웅..."

"너도 봐서 알겠지만 나 은근 세거든. 아니 엄청 세. 홍련 그 잘난척쟁이와 허접한 몽구스 녀석들도 내가 박살을 냈다고! 그렇지만 미사일이 쏟아지는데 내가 뭐 어쩌겠어? 펙스하고 같이 싸운 다음에 도망치거나, 그냥 도망치거나. 그럼 그냥 도망쳐야지. 안 그래?"

"캬웅!"

어느새 둘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실제로 서로가 하는 말을 알아듣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후로 철충이건 바이오로이드건 상관없이 녀석들의 세력권에서 벗어난 다음, 쭉 북쪽으로 향한 일, 불을 피워보려 했지만 실패하고 어차피 병이나 웬만한 독극물에는 면역도 있겠다 그냥 생고기를 먹기로 결심한 일,

악어고기가 특히 괜찮았고 쥐 비슷하게 생긴 놈들은 자주 보이긴 했지만 찝찝해서 넘겼으며, 어제는 하루종일 새 한 마리밖에 못 먹었던지라(이 시점에서 재규어는 장화의 눈을 피했다.) 이번 기회에 재규어 맛이나 볼까 했지만 어려서 봐준다는 등등의 주제로 계속 이어지던 대화는 불청객의 난입에 끝나고 말았다.


"이런, 너도 배고프냐?" 

새끼 재규어의 뱃속에서 울려퍼진 우렁찬 소리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자 그제서야 재규어의 몰골이 장화의 눈에 들어왔다. 뼈가 드러날 정도로 앙상한 몸과 피가 엉겨붙은 상처는 녀석이 생존을 위해 치열한 싸움을 해왔음을 말해줬다.

"캬우웅..."

"그러고보니 수컷 성체는 영역 안에 들어온 암컷과 새끼를 물어죽인다던가? 너는 세상 편하게 사는 부류는 확실히 아니겠네."

어느새 친해졌는지 반항 없이 품에 안긴 재규어가 조용해지자 가볍게 발을 굴러 나무 위로 올라간 장화는 가지에서 가지를 넘어 북쪽으로 향했다.



"찹찹찹찹찹찹..."

새끼 재규어가 마지막으로 고기를 먹은 게 언제인지는 몰라도 턱을 놀리는 속도만 보자면 최소한 1년 이상은 굶은 것 같았다. 

지나가다 마침 눈에 띈 주머니쥐(장화가 쥐 비슷한 놈들이라 불렀던) 한 마리의 목을 손짓 한 번에 날려버리고 순식간에 가죽을 벗겨 건네자 곧바로 눈빛을 바꾸고 달려든 녀석은 자신이 몸집은 작아도 엄연한 대형포식자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맛있냐?"

"찹찹찹... 캬웅?! 캬앗!"

맛있냐는 말 한 마디에 순식간에 주머니쥐를 몸으로 덮어 숨기는 녀석의 행동은 뻔뻔함이라는 단어를 온몸으로 나타냈다.

순간이지만 열이 오른 장화는 이 꼬맹이에게 장유유서라는 사자성어와 버르장머리라는 오자성어를 몸으로 체득시켜줘야 하나 고민했지만 이내 자신의 배에서 울리는 소리를 듣고는 왠지 허탈해져 그만두기로 했다.

"나도 배고픈데 진짜... 그... 쩝... 천아도 뱀이니까 쥐 정도는 먹어보지 않았을까? 이거 따지고보면 쥐하고 그렇게 닮지도 않았는데?"

배고픔이 승리하는 순간. 뭔지 모를 간절함이 담기기 시작한 장화의 눈을 마주한 새끼 재규어는 마침내 한발짝 물러나 (장화가 잡고 장화가 손질도 한)자신의 먹이를 이상하게 생겼지만 그래도 친절한 생물에게 나눠주기로 결정했다.


"와아~ 나도 먹으라고? 역시 가진 거 없는 애들이 나누는 것도 잘한다니까. 잘 먹을게~ 와아아..."



기껏 미국까지 걸어갔건만 사령관은 이미 배링해협으로 떠났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린 장화가 몸집이 조금 더 커지고 스카라는 이름까지 붙은 꼬맹이에게 울화통을 토해내기까지 3달 전의 일이었다.


주머니쥐의 맛은 나쁘지 않았다.






장화 거지 겸 노숙자 밈 너무 귀엽지 않냐


더 괴롭히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