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철충의 포격에 휩쓸렸어.


다행히 외상은 없지만...


오빠가...기억상실증에 걸렸어.


오르카 호의 사기를 유지하기 위해서 비밀로 하고 있지만...


지휘관들에게는 사실을 전할 수 밖에 없었어.


......지휘관들과 대화를 하면서 오빠가 기억을 되찾기를 바라는 수밖에...


......


라는 설정이야.


 

포격에 휩쓸린 건 사실이지만 털끝 하나 안 다쳤어.


이걸 기회로 이런 장난을 꾸미다니...오빠도 참 장난꾸러기라니까.


하지만 재밌을 거 같으니 나도 참가했어.


우선은 칸 언니에게 오빠가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알려줬어.


역시 신속답게 당장 오빠에게 달려가더라.


자, 어떤 대화가 이루어질까?




 

......


 

들어가겠다...사령관.


 

......실례지만...누구세요?


 

......나조차 잊은 건가...


 

C-2 신속의 칸이다. 앵거 오브 호드의 지휘관이자...


 

사령관의...


 

......


 

부하다.


 

어...안녕하세요...신속의 칸 씨?


 

칸...으로 충분하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사령관의...부하니까.


 

(부하라는 것을 너무 강조하는데?)


 

(반지를 낀 손을 계속 만지작 거리는 것을 보면 다른 관계임을 밝히고 싶어하는 거 같다.)


 

(미안하면서도...사랑스럽다.)


 

예...칸.


 

말도 편하게 하도록.


 

네...아...응.


 

......얼마나 기억하나?


 

......일단...닥터에게 이것저것 설명을 듣기는 했는데...모르겠어...뭐가 뭔지.


 

기억이 혼란스러운 건가...


 

......나에 대해서...전혀...기억을 못하나?


 

......미안.


 

......괜찮다.


 

사령관이 무사하다면...


 

(윽! 죄책감!)


 

안정을 취하고 있다보면 나중에 기억이 돌아올지도 모르지.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사령관과의 관계는 다시 쌓으면 되지 않겠나.


 

그리고...내가 기억하고 있다.


 

사령관이 어떤 사람인지...나와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러니...옛 기억이 필요하다면 나에게 말해라. 최선을 다해서 돕겠다.


 

나는...어떤 사람이었어?


 

오르카 호 저항군의 사령관...


 

아니...이런 것을 묻는 것은 아니겠지?


 

사령관 개인에 대해 말하겠다.

나의 주관이 많이 섞여 있겠지만 최대한 객관적으로 설명하도록 하지.


 

사령관은...


 

......


 

사령관은 독선적이고, 어린아이처럼 장난기가 심했다.


 

변태에, 뜬금 없는 짓을 빈번히 저지르고, 색정과 관련되는 거라면 일단 끼어들고 봤지.


 

(칸! 나 싫어했어!?)


 

그렇지만...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다.


 

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 인망도 두텁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의 고통과 슬픔에 공감할 줄 알았다.


 

오랜 세월 홀로 슬픔을 감내하던 나에게 다가와...내 슬픔을 덜어주었다.


 

......손을 잡아도 되겠나?


 

응.


 

고맙다.


 

사령관의 손은 여전히 따뜻하군.


 

내가 이 손에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는지 모른다.


 

그리고...이제는 내가 사령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기쁘다.


 

......


 

나를 의지해다오. 최선을 다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사령관을 돕겠다.


 

나...칸에 대해서 기억 못...하는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내가 기억하고 있는데.


 

그리고 기억 못한다고 하더라도 기억이야 다시 쌓으면 되는 거 아니겠나.


 

기억을 새로이 쌓는다고 나의 사령관에 대한 감정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감정?


 

......


 

......


 

사령관이 기억을 잃은 것을 기회 삼아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려는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기 위해서 말은 하지 않았다만...


 

내...감정은 숨길 수 없군.


 

사령관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 나보다 더 소중한 사람.


 

나의 오랜 삶에 처음으로 사랑을 일깨워 준 이.


 

내 평생의 유일한 사랑...


 

...내...사랑...


 

......미안하다...


 

어? 칸...울어?


 

......나는...너무나도 많은 전우를 잃었다.


 

그러나...이번에...사령관이 철충의 포격에 휩쓸렸다고 했을 때...


 

내 삶 그 어떠한 때보다 더 큰 절망감과 슬픔을 느꼈다.


 

내가 평생 동안 쌓아왔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사령관이 무사하다고 했을 때...안도했지만...

사령관이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을 때...슬픔을 느꼈다.


 

모르겠다...지금의 내 기분을.


안도와 슬픔이 눈물이 되어 넘쳐버리는군.


 

추한...모습을 보여 미안하다.


 

그래도...나는 사령관의 무사함에 기쁨을 느끼는 것이 더 크다.


 

고맙다...무사해서.


 

기억상실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마라.


 

나 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도와줄 테니. 


 

나에게 맞춰줄 필요는 없다.


 

사령관은 사령관답게 자신이 원하는 데로 행동해라.


 

과거 사령관이 그럴 때면 언제나 최선의 결과가 나왔다.


 

이번에도...마찬가지 일 것이다.


 

......


 

안정을 취해야하는 사람을 상대로 말을 너무 길게 했군.


 

쉬어라, 사령관.


 

칸.


 

응?


 

미안...


 

무엇이 말...


 

......


 

진짜...미안...장난이야.


 

......


 

화...났어?


 

어떨 거 같나?


 

진짜 미안. 진짜.


 

지금 내가...방금 전의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아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 대해서 다 잊었다고 했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추억은 이제 나 혼자만의 것이 되었었다.


 

전우를 잃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기억이, 추억이 오직 나 혼자만의 것이 되는 게 얼마나 끔찍한 지 아나?


 

함께 그 추억을 나눌 이도 없고, 대화를 나누면서 상기시킬 일도 없이.


 

기억과 추억은 오직 내 안에 고여서 서서히 독으로 변해 나를 병들게 한다.


 

피를 토할 것 같았다.


 

미안해...칸.


 

......


 

그렇지만...


 

사령관이...무사하고...나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안도가 된다.


 

물론 화는 덜 풀렸지만...


 

그래도...용서는 할 수 있다.


 

......사랑하니까.


 

......앞으로 이런 장난 안 칠게.


 

정말 미안해.


진심으로 사과를 하는 건가?


 

응. 용서를 구할 수 있으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


 

나에게 그렇게 사과하고 싶다면 내가 바라는 것을 이뤄줄 수 있나?


 

당연하지. 뭔데?


 

......


 

새로운...추억을 쌓고 싶군.


 

방금 전의 슬픔과 분노를 덮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


 

......이리 와. 칸.


 

우리 두 사람이...세상에서 사라져도...남을 정도로 강렬한 추억을 만들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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