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설정과 다를 수 있음

*달다

* 그동안 쓴 창작 글 모음



지독한 원시 덕분에 언제나 좁은 세상을 바라보는 불편함을 차분히 말하는 우르.

그녀는 손에 쥔 따뜻한 코코아를 바라보며 살며시 미소 지었다.


"장거리 저격을 위해 이렇게 만들어진 거지만.. 역시 불편함은 어쩔 수 없나 봐."


그녀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코코아를 한입 마시고 다시 내게 시선을 옮겼다.

약간은 흐리멍텅한 그녀의 눈, 그것은 눈 앞에 작은 소녀가 감당하기엔 너무 잔혹한 것이었다.


"이렇게 소중한 사람도, 가까이 있다면 바라볼 수 없으니까."


나는 얌전히 그녀의 말을 들어주며 그녀의 고충을 공감해주었다. 비좁고 잔뜩 흐린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을 과연 나는 이해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도움이 되고 싶었다.


"우르, 역시 지독한 원시는 감당하기 힘들지?"


"....응."


살며시 웃으며 힘없는 대답을 하는 그녀를 바라보면, 나 역시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과연 무엇이 저 작은 소녀의 시야를 앗아간 것일까. 과연 그것은 합당한 이유였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녀를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눈이 이러니까.. 자주 어딘가에 부딪히고는 해. 자주 넘어지기도 하고.."


"우르..."


체념한 듯, 그녀는 평온한 어조로 말했지만 그녀가 겪는 이 불합리한 불편은 잔혹한 것이었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그녀의 어조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은 사람 마냥 초연 했다.


"그래도 역시 난 이 눈을 포기할 수 없어."


코코아를 쥔 작은 두 손에 힘을 주며 우르는 힘주어 말했다. 그녀의 표정은 절망의 그것에서

어느새 결연함이 깃든 신념에 찬 목소리로 변해있었다.


"내 눈은, 많은 것들을 포기했지만 그 덕분에 세상에서 가장, 아니.. 내 눈보다 소중한

너를 지킬 수 있는 힘이 되어주니까. 난 힘들지 않아."


우르는 그 말을 하면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신체의 가장 중요한 기관 중 하나인 눈을,

그녀는 거리낌 없이 내려놓았다. 나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서.


"무엇보다 불편함 말고, 썩 나쁜 점들만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럼 좋은 점도 있다는 거니?"


내 질문에 그녀의 미소가 더욱 밝아졌다. 그녀는 잔뜩 흐리고, 보이지 않는 세상을 밝게 보려는 듯

눈에 힘을 주며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가까이 있는 너를 잘 볼 수 없지만, 그 덕분에 항상 나를 걱정하고 아껴주는 너를 만났잖아."


나는 그녀의 기특한 대답에 자리를 옮겨 그녀의 옆에 앉았다. 팔을 뻗어 그녀를 내 품에 살며시

잡아당기니 그녀는 말없이 내 품에 머리를 기대어왔다.


"좋은 냄새.."


"하핫, 며칠은 씻지도 못했는데."


바쁜 일정이 계속 이어져 지금의 내 모습은 가관이었다. 잔뜩 삐져나온 지저분한 수염과

땀내에 절은 옷가지, 그리고 부스스한 머리카락. 하지만 그럼에도 우르는 내 품에 더욱 밀착하며 미소 지었다.


"상관없어. 왜냐면 그것들 모두 너의 것이니까."


"우르, 네 불편한 눈 있지."


"응."


내 품에 안겨든 그녀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나는 차분히 내 마음을 표현했다.

나를 위해 소중한 것을 포기한 그녀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보았다.


"그 어떤 말로 위로나 도움이 되지 못하겠지만.. 앞으로 내가 살아있는 그 시간 동안

내가 언제나 너 만을 위한 눈이 되어줄게."


"사령관.."


우르의 흐린 눈동자에 살며시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눈물을 조심스레

닦아주며 그녀의 이마에 살며시 입을 맞춰주었다.


"전쟁이 끝나면 함께 살아가자. 내가 너의 눈이 되어,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줄게.

지독하게 나쁜 내 어휘력으로 얼마나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항상 네 곁에 있을게."


"하핫, 그게 뭐야~"


처음으로 우르가 환하게 웃었다. 천진난만하고, 제 나이 또래의 소녀들 같은 미소를 되찾은

그녀를 바라보니 나 역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도.. 고마워, 사랑해 사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