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설정과 다를 수 있음

*달다. 약간의 오네쇼타물

*그동안 쓴 창작 글 모음



"집중하시오."


"죄, 죄송합니다.."


"그대의 존대 하는 말버릇도 좋지 못하오. 물론 평시라면 상관 없겠지만, 지금은 전시.

그리고 그대는 이 저항군 모두의 상관이오. 항상 그 점을 잊지 마시오."


엄하게 사령관을 꾸짖는 용의 말투와 다르게, 그녀의 표정은 온화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눈 앞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사령관은 아직 어린 아이였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전선을 책임지고, 냉철한 판단을 요구하기에 그의 나이는 많은 걸림돌이 되었고

그에 따라 모두의 최선임 계급인 용이 그의 교육을 맡게 된 것이다.


"후훗.."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공부하는 사령관의 모습을 보며 용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 서로 마주했을 당시의 그는 콘스탄챠의 뒤에 숨어 자신을 바라보던 작은 소년이었다.


'최후의 인간을 발견했으나, 너무 어렸기에 바이오로이드들 모두 골머리를 썩는다고 했었지.'


처음 착임한 그녀를 소개할 겸 사령관 없이 지휘관들만 모여 티타임을 갖던 중, 레오나가 했었던 말이다.

유독 자신을 무서워 한다고 하소연하던 그녀의 뚱한 표정이 떠올랐다.


'뭐, 소관을 처음 봤을 적에도 무서워 하는 것 같았지만..'


지금의 사령관은 종종 그녀를 '누나' 라고 부르곤 했다. 그만큼 친밀해 졌다는 증거겠지만

문제는 이곳이 군대이고, 군이란 절대적 계급 체계로 돌아가는 곳이란 것에 있었다.


"그래, 어려운 부분은 없소?"


"이게 잘 이해가.."


작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한 지점을 가리키는 사령관을 보며 용의 시선이 그의 손이 향한 곳으로

옮겨졌다. 그가 가리킨 것은 고지에 강력한 방어 거점을 마련한 적을 공략하는 부분이었다.


본디 해군 출신인 그녀였기에 썩 자신 있는 분야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 역시 사령관의 완벽한 교습을 위해 시간이 허락하면 다시 전략 전술을 공부하고는 했었다.


"어디 보자.. 아! 그 부분이구려, 이것은..."


차분히 예시를 곁들이며 설명하는 용과 그의 설명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집중하는 사령관.

그들의 공부 시간이 흘러가며 용은 이 작은 사령관의 교육에 더욱 열정적으로 임했다.




"조금 쉬도록 하십시다."


"수고했어요!"


"후훗, 상관의 노력은 언제나 힘이 되는 법. 오늘도 집중해서 학습에 임해주어 고맙소."


콘스탄챠가 따뜻한 차를 가져온 것을 기점으로 휴식을 제안하는 용. 용은 사령관의 나날이 성장하는

모습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처음 마주친 작은 소년은 여전히 작고 나약해 보였지만, 그의 장점은 따로 있었다.


'언제나 겸손하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다른 이들을 진심으로 따르도록 하는구려.'


그것은 지휘관이라면 능히 갖춰야 할 덕목이지만, 그것을 완벽히 갖추기란 힘든 것이었다.

무릇 인간이라면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기 마련이고, 그것은 자만심이란 이름으로 표출되고는 했었다.


'옛 인간들 중 그런 자들을 많이 봐왔지.'


그러나 사령관은 그러지 않았다. 언제나 겸손하며, 부하들을 진심으로 아낀다.

눈 앞의 이익보다 부하들의 안전에 더 신경을 쓰는 그의 마음씨는 덕장이라고 칭하기에 충분했다.


'너무 감정에 치우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긴 하오만..'


그것은 자신을 더불어 유능한 부하들이 그를 보좌하면 해결될 일이다. 아직 그의 나이가 어린 만큼

앞으로 교정될 여지 또한 충분히 있다고 판단되었다.


"저.. 용.. 누나."


"왜 그러시오?"


씁쓸한 녹차를 마시며 혼자만의 감상에 잠겨있는 용에게 사령관이 조심스레 무언가 내밀었다.

그의 작은 손에는 꽃으로 만들어진 반지가 올려져 있었다.


"이건.. 무엇이오?"


"그, 오늘 콘스탄챠가 스승의 날이라고 말해줬어. 옛날에 스승의 날에는 이렇게 스승 님에게

작은 감사의 선물을 했다고 그래서.."


"아.."


조심스레 그의 선물을 받아 들은 용의 얼굴에 숨기지 못한 미소가 떠올랐다. 냉정 침착하게

보이는 그녀의 인상과는 전혀 다른 온화하고 따뜻한 미소.


사령관이 내민 이 작은 선물 하나가 용, 그녀에게 얼마나 큰 감격을 주었는지 알 수 있었다.


"고, 고맙소. 하핫! 이거 전혀 예상치 못한 기습이구려, 내가 당했소."


너털웃음을 짓던 용이 사령관을 바라보며 그를 향해 곤란한 듯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눈 앞에 선물을 내미는 이 순진한 소년에게 약간의 장난기가 생겨났다.


"하지만, 그것 아시오?"


"어.. 어떤 걸 말하는 거야?"


"옛날 인간들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반지를 선물했다오. 왼손 약지에 서로 선물 받은 반지를 끼움으로써

영원히 변치 않을 사랑을 맹세했지."


용의 말에 사령관의 얼굴이 눈에 띌 정도로 붉게 달아올랐다. 그저 장난스레 툭 던진 말이었지만

사령관은 진심으로 당황하며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아! 그, 그게..!"


'이런, 너무 짓궂었나.'


너무 당황하는 소년을 바라보니 역시 자신의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 짓궂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 용은 스스로를 너무 주책없다 생각 하면서 그에게 손사래를 쳤다.


"아니, 그게 농담이었소. 너무 놀라지 마시.."


"다, 다음에 내가 크면 반드시 가장 예쁘고 멋진 반지를 줄게!"


"에..?"


사령관은 용의 대답을 듣지 못한 듯 잔뜩 붉어진 얼굴로 창피해 하면서도 결코 용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아직 작고 어린 소년이지만, 그의 눈빛은 한 명의 사내와도 같았다. 올곧고 짙은 각오가 묻어 나오는

멋진 남성의 시선이 되어 용과 마주친 눈을 피하지 않았다.


"조, 좋아하는 사람에게 주는 반지는 이, 이것보다 훨씬 크고 예쁜 걸로 줄 거야!"


"조, 좋아한다니.."


이쯤 되니 용의 얼굴 역시 잔뜩 붉어지기 시작했다. 항상 작고 어린 소년으로만 보였던 사령관이

그녀와 시선도 피하지 않은 채 그녀에게 낯 뜨거운 사랑 고백을 하고 있었다.


"나, 나는 용 누나를 정말 좋아하니까! 약속할게!"


'윽! 그, 그건 반칙이오..'


청출어람이라는 말이 있다. 푸른색은 쪽에서 나왔지만 쪽보다 더 푸르다는 사자성어로,

항상 상대방을 굴복 시키는 방법을 가르치는 입장이었던 용이 그녀의 제자인 사령관의 공세에 핀치로 몰린 것이다.


"이번에 하치코가 예쁜 꽃들이 있는 장소를 발견했다고 들었어! 내가 그곳에서

용 누나한테 예쁘고 가장 큰 반지를 줄게!"


순진하게 웃으며 말하는 사령관의 모습을 보니 용의 가슴에 알 수 없는 고양감이 밀려왔다.


'으.. 마, 마리 소장이 왜 그대에게 푹 빠졌는지 이제야 소관도 알겠구려..'


결국 그의 자신만만한 공세에 용이 환하게 웃으며 항복을 고할 수 밖에 없었다.


"이거.. 소관이 졌소. 그대의 공세는 그 어느 때보다 소관을 궁지로 몰아 넣는 구려.

그럼.. 그 시간이 언젠가 오기를 기대해도 되겠소?"


"물론이지! 기다려줘 용 누나!"


용이 결국 너털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그녀는 환하게 웃는 사령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와 눈을 마주치고 또다시 교육을 이어나갔다.


"그럼, 언제나 하던 군사 교습이 아니라.. 여인의 마음을 훔친 사내로써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가.

그것을 그대에게 가르칠 시간이 온 것 같소."


"에..? 내가 용 누나의 마음을 훔쳐?"


"그렇소. 무릇 바로 된 사내라면 자신이 입 밖으로 낸 말은 꼭 지켜야 하는 법이라오.

하물며 그것이 그대가 좋아한다고 공언한 여인의 앞이라면 더더욱."


용이 다시 녹차를 마시며 사령관에게 교육이라는 명목의 대화를 시작했다.

어느새 그녀의 일과 중 가장 소중한 일과인 그와 하는 대화에 용의 얼굴에 숨기지 못할 미소가 피어났다.




청출어람 -1- 完

다음 편 : 청출어람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