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설정과 다를 수 있음

*달다. 약간의 오네쇼타 물

*전편 청출어람 -1-

*그동안 쓴 창작 글 모음

 


#1

사령관이 스스로를 좁은 방에 가두고 며칠이 흘렀다. 그의 미숙한 판단으로 몇몇 대원들이

크게 다친 것이 이번 사건의 원흉이지만, 아직 어린 사령관에게 그녀들의 부상은 큰 충격으로 다가온 듯 했다.


"부탁 드려요, 용 님! 주인님께서 벌써 3일 동안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으셨어요!"


"하아~"


냉정하게 말하면 희생 없는 전장은 없는 법. 하지만 그 사실은 아직 어린 그가 감당하기 어려운

아주 무거운 짐이었다. 그가 하루 이틀 정도 저렇게 박혀 있었다면야 용 역시 그를 지켜보기만 했겠지만,

벌써 3일 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알겠소. 소관이 가서 말을 해 보리다."


"고마워요!"


'그의 심성이 부드럽고 온화한 것은 충분히 알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속 저렇게 처박혀 모든 공무를 내려놓는 것은 좋지 못하다. 

차라리 그가 공무 만을 내려놓았다면 괜찮았을 것이다. 문제는 그가 식사 역시 잘 하지 않는다는 것.


오죽하면 평소 잘 나서지 않는 콘스탄챠가 용에게 먼저 달려와 부탁을 하겠는가. 

그가 홀로 남은 인간인 이상, 그의 몸 상태와 건강은 더 이상 그 혼자만 신경 쓰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



#2

"안에 사령관 각하 계시오?"


"네."


사령관의 방 앞을 지키고 서 있던 리리스가 용의 질문에 짧게 대답했다. 그러나 문 앞을 지키고 서

순순히 비키지 못하겠다는 듯 리리스는 자리를 지키며 용과 대치했다.


"그대도 그저 명령에 따르는 것이겠지. 허나, 진정한 충성의 자세가 무엇인지, 그대가 나보다 더 잘 알 것이라 생각하오."


용 역시 순순히 물러날 수 없었기에 검집에 손을 올리며 리리스의 날카로운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적어도 진정한 충신 이라면 주군이 잘못된 길을 걸을 때 목숨을 내놓을 각오로 간언하고 바로잡아야 하는 법.


용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 목숨을 걸 각오가 서있었다.


"하.."


짧은 대치의 끝에 리리스가 짧막한 한숨을 내쉬며 슬며시 문의 옆으로 물러섰다.

용의 예상대로 리리스 역시 지금의 사태를 방기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부탁 드려요. 설마하니 당신에게 부탁을 할 날이 오리라 생각하지 못했지만.. 분해도 어쩔 수 없겠죠."


"고맙소."


흥 소리와 함께 고개를 돌려 외면하는 리리스지만, 용은 그녀의 진심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 역시 사령관의 명령으로 방문을 지키고 서서 많은 고뇌를 했을 것이다.


"제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들어가기나 하시죠."


"그럼, 실례하겠소."


"잠깐."


가볍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 용이 리리스의 곁을 스쳐 지나가려 하자 리리스가 용의 어깨를

붙잡고 날카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반드시 설득 시키세요. 다시 한번 부탁합니다."


"알겠소. 걱정 마시오."


용은 다시 한번 리리스에게 다짐해주며 굳게 닫혀있던 방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사령관의 방 안은 조금의 조명도 없이 어둡고 음침했다. 용은 먼저 조명부터 켜고 사령관이

누워있는 침대로 걸어갔다.


"그대의 지금 모습이 참으로 한심스럽다는 것 정도는 아시겠소?"


다소 신랄하지만 걱정이 잔뜩 묻어 나오는 용의 말에 등을 돌리고 누워있는 사령관이 움찔거렸다.

용은 사령관의 침대에 살포시 앉아 등을 돌린 그에게 들으라는 듯 홀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소관 역시 과거에 부하들을 잃고 크게 자책하며 몇 날 며칠을 홀로 지낸 적이 있었다오."


지금은 아득히 멀어진 과거의 기억. 인류의 문명이 멸망하기도 훨씬 이전인 기업 간의 전쟁에서

용은 수많은 부하들을 잃었었다. 그때를 회상하면 다소 목이 잠겨왔지만 용은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아직도 그녀들의 이름과 식별 번호 그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있지."


도저히 떨쳐내지 못한 가슴 아린 기억들, 그것들을 털어 놓으며 용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아무리 슬퍼하고, 모든 것들을 내려놓아도 그녀들과 함께한 기억들을 떨쳐 놓을 수 없었소."


'나마저 그녀들을 잊는다면 그녀들은 영원히 잊혀질까, 그것이 두려웠기에.'


"용..."


등을 돌리고 누워있던 사령관이 어느새 용을 향해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용은 사령관의 시선을 느끼고 그의 손을 살포시 붙잡았다.


"며칠 전 있었던 실패는 그대가 어쩔 수 없었던 것이었소. 충분히 위험한 작전이었고,

그 당시에는 그 방법 뿐이었으니. 그리고 그것은 그 작전에 참여한 모든 대원들 역시 각오하고 있었던 것이오."


하지만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용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용 자신은 지금의 사령관과 다르게 부하들이 다친 것으로 끝나지 않고 죽어 희생된 것이었지만


부하들을 영원히 잃을뻔 했다는 것은 아직 작고 어린 그에게는 큰 트라우마가 될 것이었다.

용은 사령관이 그저 자책하지 않기를 바라며 그를 계속 위로했다.


"물론 매정하게 희생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 잊어라. 같은 말은 하지 않겠소. 그것들은 잊고 싶다고

잊을 수 있는 것도, 쉽게 떨쳐지는 기억도 아니니까. 그것은 소관이 가장 잘 알고 있소."


거기까지 말하고 용은 몸을 돌려 사령관의 옆에 눕고 그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아앗..!"


갑작스러운 용의 행동에 사령관이 당황한 듯 몸을 꿈틀거렸으나 용은 그저 말없이 그를 안은 손에

힘을 주며 더욱 그를 강하게 품에 잡아당겼다.


"소중한 부하들을 잃을뻔 했다는 그대의 아픈 기억을, 그저 소관에게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덜어주었으면 좋겠소."


"용... 누나..."


사령관은 용의 따뜻한 손길에 울먹이기 시작했다. 오르카 호의 사령관으로 아무리 의젓하게 행동하고,

아무리 태연하게 있으려 해도 근본적으로 그는 아직 어린 소년이었다.


작은 소년의 어깨에 모두의 운명을, 인류 문명의 재건이라는 무거운 짐을 얹어 놓는 것은 가혹한 것이다.

용은 사령관의 울음 소리에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차분히 말했다.


"오늘 만큼은 마음껏 울도록 하시오. 사내의 눈물이란 함부로 보일 수 없는 무거운 것.

이럴 때가 아니라면 언제 울어 보겠소?"


차분히, 마치 어머니가 아이를 품에 안고 달래주는 듯 용이 사령관을 품에 안아주었다.

용의 품에서 작은 울먹임이 어느새 흐느끼는 통곡이 되어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한동안 공무는 소관이 대신 하겠소. 그대는 마음을 추스리는 것을 우선으로 하되,

식사는 꼭 거르지 말고 하시구려. 많은 이들이 그대를 걱정하고 있으니."


"응.."


용의 품에 안긴 사령관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으며 더욱 안겨 들었다. 평소 사령관의 권위를 교육하기 위해

다소 엄하게 그를 대하고는 했던 용이지만, 오늘 만큼은 그를 달래주는 인생의 선배로써, 누나로써 있어주었다.




청출어람 -2- 完

다음 편 청출어람 -3-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