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 뽀끄루와 봉봉 대소동
https://arca.live/b/creationlist/21564090

사령관의 도주일기
https://arca.live/b/creationlist/21567267


살아있는 유령들의 밤
https://arca.live/b/creationlist/21567659

개장! 오르카 유치원!
https://arca.live/b/creationlist/21493925

레이디 플레이어 원
https://arca.live/b/creationlist/21563401

사랑해주지 않으시렵니까
https://arca.live/b/creationlist/22010186

전설이 아닌 소녀

https://arca.live/b/creationlist/27547480


용사 이야기

https://arca.live/b/creationlist/30299221


캐릭캐릭 체인지

https://arca.live/b/lastorigin/40904791



  *

  사령관의 이야기를 들은 리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 있었지.


  “그런데 왓슨. 진짜로 애들이랑 한 거 아니지?”


  “내가 그 질문을 거의 한 달 동안 받았다. 레오나가 사령관실 문을 박살 내면서 쳐들어오질 않나, 라비아타가 무기를 들고 사령관실에 들이닥치질 않나, 에이미는 일주일 동안 나를 감시를 하고. 애초에 에이다가 그 목록에 있는 걸 보고 거짓말인 걸 알아채라고...”


  지금도 이따금 꿈에 나오는 그 광경에 사령관이 끔찍한 것을 떠올렸다는 듯 몸서리쳤다.


  "아니 그런데 닥터가 뻔히 무슨 짓을 저지를 걸 알면서 두 달 동안 어떻게 아무 준비도 안 할 수가 있어?"


  "네가 지난 두 달 동안 보낸 서류를 절반만 줄였어도 내가 대책을 세웠을걸."


  사령관의 지적에 찔리는 것이 있다는 듯 딴청을 피우는 리앤을 보며 사령관이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우선 발키리를 찾아야겠군. 히루메를 옆에 붙여놔야 애가 조금 진정하겠어. 컴패니언의 다른 애들은?”


  “일단 되는대로 다 부탁하고 있어. 그래도 왓슨이 찾아주면 고맙지. 기왕이면 내 몸도 찾아주면 고맙고.”


  아마 안에 워울프가 들어가 있을 확률이 높지만. 리앤의 말에 사령관이 손을 흔들며 문밖으로 나섰다. 오른팔로 칸을 안아 들고 왼팔로 거의 매달리다시피 붙어있는 히루메를 부축하는 꼴로 오르카 호를 돌아다니고 있으니 오르카 호의 바이오로이드들의 시선이 단번에 모이지... 는 않았다.


  “다들 몸이 바뀌어서 패닉에 빠지니 이쪽은 신경도 쓰지 않는군.”


  아직도 처음 봤던 그 자리에서 지금이라도 가슴의 느낌을 한껏 만끽하겠다는 듯이 가슴을 만지고 있는 나이트 앤젤과 엘리의 몸에 들어가 어린아이가 되었다며 폴짝폴짝 뛰는 레아 같은 웃어넘길 수 있는 모습부터 마리의 몸에 들어가 의기양양해져 날뛰는 브라우니나 안드바리의 몸에 들어가 보급 창고를 한껏 털어먹는 알비스까지 미래가 걱정되는 모습도 적지 않았다.


  오르카 호를 돌아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발키리를 만날 수 있었다. 사령관의 팔에 엉겨 붙어 부들부들 떨던 히루메가 발키리를 발견하자마자 후다닥 달려 나가 귀와 꼬리를 매만졌다.


  “소첩의... 소첩의 귀... 소첩의 꼬리...”


  히루메가 자기 꼬리를 한가득 품에 안아 들어 음침한 웃음을 흘리며 쓰다듬기 시작했다. 꼬리를 향한 히루메의 집착은 단순히 잃어버린 무언가를 되찾은 것이 아니라 광기에 물든 무언가에 가까웠다. 그 모습은 먼 옛날 영화에서 등장한 반지를 바라보는 괴물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꼬리를 쓰다듬던 히루메가 문득 바닥에 질질 끌려 먼지투성이가 된 모습을 보고 벌떡 일어나 발키리를 향해 소리쳤다.


  "소첩의 꼬리가 바닥에 질질 끌리고 있지 않으냐! 꼬리를 소중히 여기지 못하겠느냐!!"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는 꼬리를 움직이는 법을 모릅니다만..."


  히루메의 눈빛에 당황한 발키리가 한걸음 물러나며 말을 흘렸다. 꼬리를 들어 아랫부분을 살핀 히루메가 비명을 내질렀다.


  "세상에! 꼬리 아래 먼지가 한가득 끼어있는 것을 보아라! 정녕 소첩을 죽여야 속이 후련해지겠느냐! 따라오거라! 내 지금 당장 꼬리를 빗어야 하겠느니라!"


  그렇게 말한 히루메가 발키리를 허리에 단단히 끼우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히루메에게 끌려가는 발키리가 당황한 눈빛으로 사령관을 바라보았지만, 그가 해줄 수 있는 건 손을 흔들어주는 것밖에 없었다.


  "자. 발키리도 찾았겠다, 남은 건 누구지?"


  사령관의 품에서 디바이스를 꺼내 조작한 칸이 리앤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리앤에게 연락이 왔다. 컴패니언의 포이, 페로와 뒤바뀐 사람을 찾지 못했으니 찾아달라고 하는군. 펜리르와 하치코, 스노우 페더 쪽은 찾은 모양이다."


  "누구랑 뒤바뀐 지도 들었어?"


  "페로는 현재 우르, 포이는 용의 몸에 들어가 있는 듯하다. 반드시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불쌍한 동생들. 얼마나 불안할까..."


  칸의 말에 리리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불안에 떠는 히루메의 모습을 페로와 포이에 겹쳐보았는지 슬픈 표정을 짓던 리리스가 문득 메이의 몸을 내려다보더니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용케 이런 쓸모없는 몸뚱이로 살았군요. 팔다리는 짧고, 머리는 크고. 가슴에 붙은 쓸데없이 크기만 한 지방 덩어리 때문에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올라요. 이 몸뚱이로 여태까지 주인님도 제대로 유혹하지 못했으니 도대체 이 몸뚱이가 쓸모있는 곳이 어디인가요?"


  리리스의 독설에 사령관의 옆을 걷던 메이가 발끈하며 리리스를 향해 소리쳤다.


  "누가 키 작고 머리 큰 꼬마라는 거야!"


  "어머? 쓸모없는 몸뚱이라는 말은 부정하지 않으시네요?"


  리리스의 말에 발끈한 메이가 씩씩거리더니 리리스의 허리를 잡고 훌쩍 들어 올렸다. 순식간에 공중에 떠오른 리리스가 버둥거리며 메이를 향해 소리쳤다.


  "이익...! 이거 놓으세요! 자기 몸에 그런 짓을 하다니 부끄럽지도 않나요?!"


  "흐흥! 꼬마가 돼서 내려오지도 못하고 버둥거리는 기분이 어때?!"


  “나중에 원래 몸으로 돌아가면 두고 보자고요!”


  리리스의 허리를 붙잡고 공중으로 들어 올린 채 한참을 놀리는 메이를 본 사령관이 칸을 LRL에게 맡기고 메이에게서 리리스를 뺏어 들었다.


  "뭐 하는 거야. 안 그래도 정신없는데 너희 둘까지 왜 그러냐."


  자연스레 사령관의 품에 안긴 리리스가 새빨갛게 얼굴을 물들이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가... 감사합니다..."


  리리스의 머리를 두어 번 토닥거린 사령관이 리리스를 내려놓자 리리스가 비틀거리며 메이에게 다가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나... 나쁘지 않네요..."


  리리스의 붉게 물든 표정에 메이가 심통이 난 듯 입을 삐죽 내밀더니 사령관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뻐억 소리와 함께 야구방망이로 얻어맞은 듯한 격통에 사령관이 비명을 내지르며 펄쩍펄쩍 뛰었다.


  "어억! 도대체 뭔데!"


  "흥! 사령관이 잘못한 거야!"


  "지금 평소처럼 걷어찼다가는 내 다리가 진짜로 부러지거든!"


  "바보 메이! 주인님을 때리다니 도대체 무슨 짓인가요!"


  사령관이 정말로 뼈가 부러지지 않았나 걱정이 될 정도로 고통을 호소하는 다리를 부여잡고 있으니 모퉁이에서 누군가가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새하얀 머리칼. 보라색 눈동자. 천아다.


  "흐에에에... 사장님..."


  사령관과 눈이 마주친 천아가 울상을 지으며 사령관에게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사령관에게 폭 안긴 천아가 사령관의 온기를 느끼려는 듯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너, 뽀끄루냐?"


  "흐에에에... 이 몸은 너무 추워요..."


  놓치지 않겠다는 듯 사령관을 꽉 껴안은 뽀끄루가 사령관의 온기에 헤실헤실 미소를 지었다.


  "에헤헤헤. 사장님 좋아해요."


  뽀끄루가 춥지 않도록 끌어안은 사령관이 목을 따듯하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리앤의 말을 떠올리고 목에 손을 가져다 댔다. 목을 간지럽히는 온기에 녹아내리는 듯한 목소리를 흘리는 뽀끄루를 보고 웃던 사령관이 문득 손끝의 위화감에 천아의 목을 어루만졌다.


  "...초커가 없는데?"


  사령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령관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뽀끄루의 몸이 흠칫 놀라며 딱딱하게 굳었다.


  "사장님? 여기서 뭐 하시는 건가요?"


  사령관이 등 뒤를 돌아보자 천진난만한 뽀끄루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뽀끄루의 커다란 눈이 깜빡이며 사령관을 바라보자 사령관이 이해가 안 된다는 눈으로 뽀끄루를 바라보았다.


  "뽀끄루냐?"


  "뽀끄루죠?"


  "그럼 얘는 뭐야?"


  사령관이 품속에 안긴 소녀를 내려다보자 하얀 머리의 소녀가 사령관을 밀치며 품속에서 벗어나 사령관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메이에게 걷어차인 곳을 또 걷어차인 사령관이 비명을 지르며 정강이를 감싸 쥐자 천아가 새빨개진 얼굴로 사령관에게 소리쳤다.


  "잊어버려, 핫팩! 잊어버리라고!! 으아아아! 내가 잠깐 미쳤지!"


  머리를 싸맨 천아가 비명을 지르며 순식간에 복도 너머로 사라지자 사령관이 한탄을 흘렸다.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냐..."



  *

  "헤에. 몸이 뒤바뀐 거군요?"


  사령관의 설명을 들은 뽀끄루가 그다지 놀라지 않은 듯 무미건조한 감탄을 내뱉었다. 천아에게 걷어차인 정강이를 문지르며 사령관이 뽀끄루를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너는 왜 안 바뀐 거냐? 닥터가 너한테 안 갔어?"


  "닥터요? 며칠 전에 저희 숙소에도 왔었어요. 뭔가 검은색 초커 같은 걸 나눠주던데요."


  "그것 때문에 이 사달이 난 건데 말이다. 너는 왜 안 찼냐?"


  사령관의 질문에 뽀끄루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에이. 할로윈 때 그렇게 큰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닥터가 내미는 수상쩍은 물건을 아무 의심도 없이 받아서 차겠어요."


  뽀끄루의 말에 사령관이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을 바라보았다. 마치 [얘도 의심하는데 니들은 왜]라고 따져 묻는 듯한 사령관의 눈빛에 모두가 합죽이가 된 듯 입을 다물고 사령관의 눈빛을 피했다.


  "사장님, 지금 저한테 조금 실례되는 듯한 생각을 하고 계시지 않나요?"


  "착각이다, 착각. 오히려 기특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먼저 이런 수법에 걸려들 것 같은 애가 홀로 걸려들지 않다니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뜰 노릇이다.


  "우선 리앤의 몸을 찾아야겠군. 리앤에 방에 가보도록 하고... 닥터도 찾기는 해야겠다만."


  "닥터가 어디 있을까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사령관. 이미 점심시간이다. 모두 식당으로 모였을 테니 식당에서 찾는 게 더 빠르지 않겠나?"


  칸의 지적에 사령관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12시 50분. 이 시간이면 이미 대부분 식당에 모여있을 것이다.


  "좋아. 우리도 점심을 먹기는 해야 할 테니. 식당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을 뒤바뀐 사람들끼리 짝을 지어줘야겠어. 그러면 아무래도 혼란이 덜하겠지."


  사령관의 말에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던 메이가 LRL에게서 칸을 받아드는 사령관을 향해 말했다.


  "그런데 사령관.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가장 사고가 많이 터지는 곳이라는 뜻 아냐?"


  메이의 말에 사령관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물들었다. 사령관이 칸을 던지듯 메이에게 맡기고 식당을 향해 달려갔다. 식당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커지는 굉음이 사령관의 불안을 부추겼다.


  문을 부술 듯이 열어젖히고 헐레벌떡 식당으로 들어간 사령관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자신이 한발 늦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페로의 몸으로 마구 뛰어다니는 스틸 드라코.


  므네모시네의 능력을 조절하지 못해 냉기를 마구 뿜어내는 지니야.


  오베로니아의 몸에 들어가 전기 충격기가 되어버린 엘리.


  스노우 페더의 날개를 생각하지 못하고 움직일 때마다 온갖 것을 엎지르고 부수는 미호.


  코코의 몸으로 술을 마시려다 콘스탄챠에게 제지당하는 키르케.


  우르와 몸이 뒤바뀌어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세 발짝 걸을 때마다 부딪히는 살라시아.


  네오딤의 몸으로 수저부터 식판까지 온갖 쇳덩이를 몸에 붙이고 질질 끌고 다니는 엠피트리테.


  아쿠아의 몸으로 식당 하늘을 날아다니는 하치코.


  에밀리가 되어 제녹스를 타고 질주하는 애니까지.


  말 그대로 지옥을 그려놓은 듯한 모습에 눈앞이 캄캄해져 비틀거리고 있으니 누군가가 난장판을 헤치고 사령관을 향해 걸어왔다.


  "주인님..."


  초췌한 얼굴의 드라큐리나가 사령관을 향해 걸어왔다. 시끄러운 소리에 귀가 아픈 듯 귀를 틀어막고 사령관을 향해 걸어오는 드라큐리나는 희망이라는 빛을 잃은 듯 절망스럽기 그지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라비아타구나. 드라큐리나의 몸으로 여기는 힘들겠지. 내가 정리할 테니 나가 있어."


  "네... 감사합니다..."


  초췌한 표정으로 비척비척 걸어 나가는 라비아타를 마중한 사령관이 식당 안으로 돌아와 큰 소리로 외쳤다.


  "주모오오오오옥!!!"


  소란을 부수고 울려 퍼지는 사령관의 목소리에 식당이 침묵에 가라앉고 모든 이들의 눈이 사령관을 향했다. 충분히 이목을 모았다고 생각한 사령관이 식당 구석에 놓인 확성기를 들고 엄숙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지금부터 소란을 피우는 자는 닥터의 실험체가 되고 싶다는 뜻으로 간주하겠다."



  *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에 사령관은 거의 두 시간 동안 밥도 먹지 못하고 상황 정리에 착수해야만 했다.


  단순히 몸이 바뀐 자들은 짝을 찾아 전우조 행동을 명령해두고 므네모시네나 오베로니아 같이 능력이 폭주할 위험이 있는 바이오로이드와 뒤바뀐 사람들은 별도로 격리를 해두었다. 컴패니언 부대와 뒤바뀐 바이오로이드는 메이와 칸에게 인계해 리앤 쪽으로 보냈다.


  간신히 식당의 소동을 수습한 사령관에게 남은 것은 안도감이 아니라 불안감이었다.


  닥터도 리앤도 찾지 못했다.


  닥터가 뒤바뀌었을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바뀌지 않았을 확률이 높고, 설령 바뀌었다 해도 다른 사람이 들어간 자기 몸을 함부로 돌아다니게 두지는 않겠지. 자기 몸만 있으면 사건 해결이 한결 쉬워진다는 걸 닥터가 모르지는 않을 테니.


  리앤의 몸을 찾지 못한 것은 뼈아프다. 식당에서 리앤의 몸을 발견하지 못했다. 정작 워울프는 소완의 몸에 들어가 있었으니. 이제 리앤을 어디서 찾는다...


  생각에 빠져 복도를 거닐고 있으니 복도의 방문이 작게 열리고 두 쌍의 손이 개미지옥처럼 불쑥 튀어나와 사령관을 붙잡고 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순식간에 눈앞이 뱅글뱅글 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닥에 누워 누군가가 허리에 올라타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아스널?"


  사령관의 위에 올라탄 아스널이 비장한 눈빛으로 사령관을 내려다보았다. 평소와는 다른 아스널의 눈빛 뒤로 갈색 머리의 여인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사령관이 그렇게나 애타게 찾아 헤매던 리앤이었다.


  "사령관이 저번에 나한테 그랬어. 나는 아직 어린애라고. 그래서 안된다고."


  사령관이 무어라 말하기 전에 아스널의 낭랑한 목소리가 사령관의 귓가를 간질였다. 아스널이 아니다. 하긴, 당연히 그렇겠지만. 그렇다면 지금 자신을 깔고 앉은 이 소녀는 누구란 말인가? 사령관이 기억을 더듬었다. 정체를 짐작하지 못하고 있는 사령관을 보며 소녀가 말을 이어 나갔다.


  "나 이제 대장이 됐으니까 어른이 된 거야? 사령관이랑 사랑할 수 있어?"


  소녀의 말에 사령관이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소녀를 올려다보았다.


  "...에밀리?"


  "응. 나 에밀리."


  그렇게 말한 에밀리가 천천히 사령관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서툰 손놀림으로 웃옷의 단추를 풀기 시작한 에밀리를 보며 사령관이 비명을 내질렀다.


  "에밀리!!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사령관의 외침에 에밀리가 무슨 당연한 것을 묻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사랑하려면... 옷을 벗어야 하잖아?"


  "그걸 몰라서 묻는 게 아니야!"


  사령관이 에밀리에게 소리치고 있으니 리앤이 다가와 사령관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사령관. 움직이면 안 돼."


  "넌 또 누구야!"


  사령관의 처절한 질문에 리앤은 빙긋 웃어 보이기만 했다. 웃옷의 단추를 다 풀어 헤친 에밀리가 사령관에게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 사령관. 대장이 이럴 때는 기세에 몸을 맡기면 된다고 했어."


  "아스너어어얼!!!"


  옴짝달싹 못하는 사령관의 위에서 옷을 벗어 던진 에밀리가 사령관의 가슴팍에 손을 얹고 잠시 멈추어 섰다. 한참을 움직이지 않은 채로 사령관을 바라보던 에밀리가 리앤을 향해 말했다.


  "네오딤. 이제 어떻게 해야 해?"


  사령관이 고개를 돌려 리앤을 바라보자 리앤이, 아니 네오딤이 멍한 표정으로 에밀리를 향해 말했다.


  "나도 모르는데.."


  네오딤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사령관이 에밀리를 끌어당겨 가슴팍 위에 눕혔다. 머리를 쓰다듬는 사령관의 손길과 귓가에 맴도는 고동 소리에 에밀리가 미소 지었다.


  "응. 이걸로도 괜찮아."


  사령관의 가슴팍에서 미소 짓는 에밀리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 사령관을 보던 네오딤이 멍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사령관. 나는?"



  *

  침대에 몸을 던진 사령관이 메마른 신음을 뱉어냈다.


  에밀리는 비스트 헌터와 파니에게 넘기고 네오딤은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껌딱지처럼 사령관에게 달라붙은 것을 간신히 떼어내 리앤에게 넘겼다. 리앤은 네오딤을 데리고 닥터가 만든 초커를 분석하기 위해 자신의 숙소로 향했고, 사령관은 비교적 멀쩡한 바이오로이드들을 이끌고 닥터를 찾아 나섰지만, 도대체 어디에 숨은 건지 닥터는 눈에 띌 생각을 하질 않았다.


  그렇게 내일을 기약하고 침대에 누워 졸도하듯 잠이 든 사령관을 깨운 것은 허리춤에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감이었다.


  "뭐야... 뽀끄루냐..."


  "헤헤. 오늘도 왔어요, 사장님."


  허리 위에 올라타 배시시 웃는 뽀끄루를 보며 사령관이 한탄을 흘렸다.


  "나 오늘 조금 피곤한데."


  "그래도 해주시는 사장님이 정말 좋아요."


  뽀끄루가 웃으며 살며시 웃옷을 벗었다. 옷을 벗는 뽀끄루의 얼굴이 평소보다 붉게 물든 것은 기분 탓일까. 뽀끄루의 보드라운 맨 허리를 쓸어올리자 뽀끄루의 새된 신음이 입술을 비집고 밖으로 새어 나왔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반응에 사령관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뽀끄루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사령관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오늘은 조금 민감한 날이니까... 상냥하게 부탁드릴게요?"


  뽀끄루의 말에 사령관이 웃으며 뽀끄루를 끌어당겨 안았다. 평소처럼 살결을 쓸어 넘기며 뽀끄루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는 사령관의 입술에 미묘한 위화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사령관의 머리가 스파크가 튀듯 번쩍였다.


  할로윈의 사건을 겪고 닥터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아마 사령관이 LRL을 덮쳤다는 것이 탈론페더의 질 나쁜 장난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겠지. LRL이라면 모를까 어쩌면 에밀리나 네오딤한테 뒤처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네오딤은 사령관에게 마음이 있는 것이 분명했고, 에밀리는 아스널의 은근한 푸시가 있다.


  네오딤과 에밀리보다 어른스럽다 자부하고, 실제로 둘보다는 정신연령이 높은 닥터에게 있어 그 둘에게 따라잡히는 것은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성장약을 먹고 무턱대고 사령관의 방에 쳐들어간다 해도 사령관과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튼 기정사실만 만들면 되는 것이다.


  처음 한 번이 어려운 것이지 두 번이 어려울까?


  설령 그게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간 닥터라 하더라도.


  아스널과 리앤의 몸으로 사령관과 관계를 맺으려 한 네오딤과 에밀리처럼.


  뽀끄루는 모두 몸이 뒤바뀌었다는 대사건에 어째서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반응했을까?


  누구보다 빨리 뛰어와서 울먹이며 난리를 피웠을 뽀끄루가?


  닥터를 의심해서 초커를 착용하지 않았다고? 순박하고 의심할 줄 몰라 닥터의 말 몇 마디에 순식간에 속아 넘어가 초커를 받아들 뽀끄루가?


  만약 그게 사실이라 해도 어째서 뽀끄루의 목에 초커가 채워져 있는 걸까?


  아스널을 제외하고 사령관과 가장 관계를 많이 맺고, 사령관의 침실로 숨어들어 간다고 해도 의심받지 않을 뽀끄루.


  그 몸에 들어가길 원하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디바이스로 몰래 리앤을 호출한 사령관이 뽀끄루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두 팔로 단단히 껴안고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닥터 확보오오오오오!!!!!"



  *

  아니나 다를까 뽀끄루의 몸에 들어간 사람은 닥터였고, 닥터의 자백대로 오르카 호 깊은 곳 으슥한 창고에서 의자에 몸이 꽁꽁 묶인 채로 결박당한 뽀끄루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닥터의 생체 데이터를 얻고 몸을 바꾸는 프로그램을 장악한 리앤은 이른 아침 프로그램을 정지시키고 추후 악용되는 일이 없도록 초커를 모조리 회수했다. 큰 소동은 없었다. 원래 몸으로 돌아간 나이트 앤젤이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처절하게 울부짖은 것만 뺀다면. 리앤의 활약 덕에 저녁 즈음에는 오르카 호는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단 한 사람만 빼놓고.


  "저기, 오빠? 이 어여쁜 여동생을 의자에 묶어두고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뽀끄루의 몸으로 의자에 묶인 닥터가 불안한 듯 눈을 굴리며 사령관에게 물었다. 불안한 닥터의 목소리에도 사령관은 아무런 대답 없이 침묵을 고수했다. 한참의 침묵 끝에 사령관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많은 사람이 몸이 뒤바뀌어서 오르카 호는 난리가 아니었지. 물건이 부서진 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고, 경비에 구멍이 나 철충이나 레모네이드의 침략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뒤바뀐 몸의 능력이 폭주해서 큰일이 날 뻔하기도 했어."


  "그... 여기는 우리 영역이라 레모네이드나 철충이 접근하지 못하잖아? 능력도 내가 나름 제한을 두어서 그렇게 큰일은..."


  "조용."


  사령관의 낮은 목소리에 변명을 늘어놓던 닥터가 입을 다물었다.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닥터가 다시 무언가를 말하려 할 때 사령관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네 처분을 결정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다른 사람의 몸을 멋대로 바꾸는 장난을 쳤으면, 벌도 그에 맞는 것으로 받아야겠지."


  "저기, 사장님? 들어가도 될까요?"


  사령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밖에서 가녀린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가.


  문이 열리고 나타난 것은 조금은 부끄럽다는 듯이 헤실헤실 웃는 갈색 머리의 소녀였다. 그것도 평소 모습과 달리 어른이 된 닥터의 모습이. 투명한 네글리제 사이로 풍만한 몸매가 가는 빛을 받아 반짝였다.


  "오... 오빠?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사령관이 뽀끄루의 손을 잡아 이끌어 자기 무릎 위에 앉혔다. 사령관이 네글리제의 어깨끈을 잡아당기자 옷이 살결을 스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가슴이 드러났다.


  "말했잖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커다란 가슴을 부드럽게 움켜쥔 사령관이 가녀린 쇄골에 입을 맞추었다. 닥터의 목소리로 달콤한 신음을 뱉는 뽀끄루를 보며 닥터의 얼굴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눈 앞에 펼쳐진 충격적인 광경에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 닥터가 허벅지를 쓸어올리며 사타구니로 파고드는 사령관의 손을 보고 커다랗게 소리쳤다.


  "안돼애애!!! 오빠 내가 잘못했어어!!!!"



  *

  물론 사령관도 벌이라고 해도 진짜로 할 생각은 없었다. 원래 몸으로 되돌아온 닥터가 자기 몸을 끌어안으며 이해 못할 소리를 흘렸다.


  "뭐지? 정신은 처녀인데 몸은 처녀가 아닐뻔하게 됐는데? 이 경우에 나는 처녀인가? 아닌가? 정신은 처녀인데 몸은 처녀가 아닌 건 어떻게 되는 거지? 이게 처녀빗치인가?"


  거기까지 중얼거린 닥터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눈을 번쩍이며 말했다.


  "어라? 나쁘지 않은데?"


  이상한 결론으로 빠지려는 닥터를 재빨리 더 혼낸 사령관이 닥터를 방 밖으로 쫓아냈다. 간신히 사태를 해결하고 벌도 주고 정신없는 하루를 보낸 사령관이 침대에 몸을 던지려 돌아서자 뽀끄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안 돌아갔어?"


  "에헤헤. 제가 아까 사령관님 때문에 살짝 흥분해 버렸거든요?"


  그렇게 말한 뽀끄루가 사령관에게 슬쩍 치마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마지막까지 어울려 주실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