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설정과 다를 수 있음

*그동안 쓴 창작 글 모음



서류의 산속에 파묻힌 사령관에게 불쑥 내밀어지는 코코아와 간단한 과자들.

분명 사령관의 머릿속에 이것들을 따로 요청한 기억은 없으니 필시 레오나가 자의적인 판단으로 가져온 것이리라.


"이제 크리스마스가 코앞인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닐까 몰라?"


사령관이 뭐라고 대꾸하기도 전에 레오나는 그를 일으켜 강제로 소파에 앉히고 그녀는 사령관의

바로 옆에 앉으며 커피를 음미하기 시작했다.


"달링은 다 좋은데, 너무 일밖에 모르는 것 같아."


"그건 어쩔 수 없어. 어째 일을 하지 않으면 계속 불안해서."


레오나가 보내는 은근한 압력에 사령관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하기사 이렇게 일에 파묻힌 그를

책상에서 끌어내릴 수 있는 이는 레오나 뿐이었다. 아마 다른 아이들이 그를 쉬도록 하기 위해선

필사적인 노력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달링이 열심히 하는 모습, 난 좋아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거야 달링."


사령관의 대답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하는 레오나지만, 그녀의 표정은 은은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그 누가 일에 열중하는 그를 강제로 끌어내려 함께 쉬도록 하겠는가. 


그것 역시 사령관이 얼마나 그녀 자신을 아끼고 있는지 느껴졌기에,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그 손.. 혹시 이 쿠키들 직접 만든 거야?"


"윽..!"


사령관의 질문에 레오나가 황급히 손을 감추며 그의 눈을 피했다. 그녀의 양 손에는 잔뜩 밴드가 발라져

있었고, 눈치 빠른 사령관이 그것을 놓칠 리 없었다.


'손에 자잘하게 화상이라도 입은 건가? 하긴.. 레오나는 요리가 익숙치 못하니..'


잠깐 뜸을 들이던 사령관은 흐뭇하게 웃으며 레오나가 옆으로 숨긴 손을 조심히 붙잡으며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다.


"레오나야 말로, 익숙하지도 않은 일들을 무턱대고 하다가 다친 거 아닐까?"


"어, 어쩔 수 없잖아! 이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달링에게 주고 싶었는데, 취사장에 아무도 없었으니까!"


"이크! 이거 내 잘못인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사령관이 레오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가 손을 이 지경으로 만들면서

가져온 쿠키는 그 모양과 색깔도 엉성하고 이상했지만, 그만큼 그녀의 정성이 느껴졌기에 맛있게 느껴졌다.


도도한 북방의 암사자라 불리지만, 그녀도 어쩔 수 없는 여자였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주고 싶어서

잘 하지도 못하는 요리를 시도하고, 당직이 아님에도 함께 남아 그의 곁을 지킨다. 사령관이 레오나를

사랑스럽다는 듯 쓰다듬으며 커피를 음미하고 있자 레오나가 슬며시 말을 돌렸다.


"그보다 달링이 보고 있었던 서류, 저거 뭐야? 달링이 그렇게 고민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아.. 저거?"


레오나의 질문에 다시금 표정이 깊게 가라앉는 사령관. 레오나는 괜한 말을 꺼냈나 싶었지만, 이내 시작된

사령관의 대답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번에 스발바르 제도의 방주로 향하잖아."


"그랬었지... 그런데 그게 달링이 그렇게 고민할 일이야?"


레오나의 물음에 사령관은 비교적 최근 들어온 정보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다듬기 시작했다.

그의 결정이 곧 오르카 호가 나아갈 방향이니, 결코 함부로 결정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펙스 측 협력자에게서 들어온 정보에 따르면 델타가 그 방주를 노리고 있다고 했어. 

하지만 지금 항로대로 나아가면 너무 오래 걸려서 방주가 위험하고, 그렇다고 항로를 변경해 

빠른 루트로 가려니 항로 자체가 위험해서 오르카가 위험해질 것이고..."


과연 무엇을 더 우선해야 하는 것일까. 사령관이 복원될 미래를 생각해볼 때, 방주가 갖고 있는 가치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큼 오르카 호의 부하들 역시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뭐야.. 달링, 겨우 그것 때문이었어?"


사령관의 깊은 고민이 무색하게 레오나는 가볍게 대답했다. 그는 사령관의 손을 잡으며 확신에 찬 눈으로

그가 고민을 떨쳐버릴 수 있도록 그녀의 신념을 담은 대답을 건네주었다.


"달링, 예전의 나라면 안전은 신경 쓰지 않고 효율 하나만 따져 빠르게 가자고 했을 거야.

지금은 전시, 전쟁에 희생은 당연하다 생각 했었으니까."


"그럼 지금의 넌 어떻게 생각해?"


흔들리는 사령관의 마음을 이미 눈치챈 것일까. 레오나는 그와 맞잡은 손에 힘을 주면서 확고한 신념이

느껴지는 눈빛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의 나는 모두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겠지."


"모두의... 안전..."


"그래, 모두의 안전. 우리들이 다치거나 죽으면, 달링이 크게 슬퍼할 거니까. 달링은 그런 남자니까."


레오나는 그 말을 하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 차가웠던 그녀의 표정은 사령관이란 남자를 만나고

봄에 눈을 해치고 피어나는 꽃과 같이 환하게 느껴졌다.


"달링의 마음 속에는 이미 결정이 난 것 아니었을까? 난 달링을 믿어. 그리고 그건 나 뿐만이 아닐거야.

오르카 호의 모두가 달링을 믿고 있어. 우리들이 달링을 믿고 따르는 건, 별다른 게 아니야."


"레오나..."


"달링이 옳다고 믿는 일을 해. 그렇다면 우리들은 달링의 그 뜻을 꼭 실현 시킬 거니까."


레오나의 말을 듣던 사령관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 처음부터 그의 마음 속에서는

결정이 되어있었다. 그가 항상 품어온 신념은 그가 내릴 답을 알고 있었다.


사령관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통신기를 집어 들고, 지휘통제실에서 사령관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을  

아르망에게 연락을 넣었다. 더 이상 사령관의 표정엔 망설임이 없었다.


"아르망, 항로 설정해."


-예, 폐하. 어떻게 할까요?-


"안전을 최우선으로, 단 오르카 호의 속도는 될 수 있는 한 최대로 항속한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아르망의 목소리도 이미 사령관이 무슨 결단을 내릴지 알고 있었다는 듯

작은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사령관은 아르망의 웃음 소리를 들으며 함께 미소지었다.


-모두들, 폐하의 하명을 들으셨죠? 최대 속도로! 그리고 안전한 항로로 향합니다!-


"이제야 달링 다운 표정이네."


"고마워 레오나."


레오나는 사령관의 대답에 얼굴을 붉히면서도 그것이 티 나지 않게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고,

그녀의 손가락에서 밝게 빛나는 반지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이래서 내가 달링에게 반한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