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설정과 다릅니다.


외전같은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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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굴의 마리는 이따금씩 꿈을 꾼다.

자신이 태어난 세상이 불타고 자신이 아는 모든 것들이 폐허가 되어있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녀는 이 모든 상황이 꿈이라는 것을 자각하고있었지만 마리는 꿈에서 일어나기가 싫었다.


"대장. 뭐하심까?"


익숙한 목소리를 가진 누군가가 마리의 어깨를 툭툭치며 그녀를 불렀다.

그녀가 뒤를 돌아보자 그 누군가는 마리에게 담배 한개비를 건냈다.


"마지막 남은검다. 대장님 가지십셔."


"....."


마리는 그녀가 건넨 담배 한개비를 받았다.

주머니 안에서 험한 세상 풍파를 다 맞았는지 담배는 누군가 씹다 뱉은거 마냥 찌그러져있었다.


"죄송함다..대장님 드릴려고 주머니 속에 고이 모셔뒀는데 그만..."


마리는 그녀에게 담배를 건냈다. 


"아니, 이건 자네가 피도록.."


"아닙니다. 대장 피십셔. 전 아까 잔뜩 피웠슴다."


"그런가..."


마리는 폐허가 된 세상에서 나오는 매캐하고 쓴 공기를 삼키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마리를 향해 활기찬 미소를 지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마리는 손에 쥔 찌그러진 담배를 입에 물고 자신의 드론을 이용하여 담뱃불을 붙였다.


연기를 들이킨 뒤 내뱉었다. 저 멀리 폐허가 되버린 건물에서 나오는 연기처럼 하얀 연기가 자신의 입에서 피어올랐다.

그리고 자신에게 담배를 준 그녀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기 위해 옆을 쳐다보았지만 자신의 옆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늘 이런 식이지.."


마리는 그녀가 서있었던 자리를 쳐다보았다.

피로 고여있는 웅덩이 위로 그녀가 착용했던 장비만이 덩그러니 놓여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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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는 다시 눈을 떴다.


꿈 속에서 보았던 세상과는 달리 불타지도 않았으며 자신이 알고있던 모든 것들이 폐허가 되어있지도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숨을 들이키고 내쉬었다. 상쾌하고 시원한 공기가 자신의 코를 타고 폐까지 전해지는 것을 느낀 마리는 꿈에서 깨어났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닫게 된다.


"...."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쓰러져있는 거대한 구체의 뒤로 달이 떠올라있었다.


마리는 침대 옆의 서랍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들고 방을 나왔다.


방을 나온 마리는 스틸라인 부대원들이 가꾸는 텃밭을 지나 뒷산을 올랐다.

산을 오르고올라 어느덧 정상까지 다다른 그녀는 자신의 앞에 있는 십자가 무덤 앞에 서게 되었다.


"오랫만이군."


그녀는 가져온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인 뒤 연기를 살짝 들이켰다.

담배에서 연기가 나오는 것을 본 마리는 십자가 무덤 앞에 담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무덤 앞에 앉아 담배가 타들어가는 것을 묵묵히 쳐다보았다.

눈을 지그시 감은 뒤 마리는 입을 열었다.


"슬슬 나오지 그러나?"


그녀의 말에 붉은빛의 안광을 내뿜는 누군가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부사령관이었다. 그는 슈트의 헬멧을 내리고 마리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새벽부터 등산하는 줄 알았는데..아니였나보군.."


"등산이라니..내가 그렇게 나이들어 보이는가?"


"뭐 나이야 나보다 많겠지.."


부사령관은 마리의 옆에 서서 십자가 무덤을 바라보았다.


"아는 인간이야?"


마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내 예전 부관..사령관을 만나기 전에 전사했지.."


"미안.."


"아니, 사과할 필요는 없어.."


마리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냈다.

자그마한 케이스에 담겨져있는 것은 깨져버린 유전자 씨앗이었다.


"그건 뭐지?"


"여기 묻혀있는 부관의 유전자씨앗이지..지금은 보다시피..깨져있지만.."


"그렇다면..복원하면 걔를 다시 볼 수 있는거 아닌가..?"


"그래..그렇게하면 저 녀석을 다시 볼 수야 있겠지...하지만..뭐랄까..난 그 녀석을 다시 마주할 용기가 나질 않는군.."


"어째서지?"


마리는 대답하지않았다. 

부사령관도 굳이 캐묻지않고 그녀의 옆에 앉았다.


"마주할 용기는 없다면서..무덤에서 마주할 용기는 있는거야?"


마리는 눈을 지그시 감고 숨을 한번 들이켰다.

시원하고 상쾌한 공기였지만 그녀에게는 아까 꿈에서 느낀 매캐하고 쓴 공기처럼 느껴졌다.


"뭐랄까..잊어서는 안될거 같아서..."


"그런가..."


부사령관은 고개를 숙인 마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부사령관도 잊어서는 안돼는 사람이 있는가..?"


마리의 말에 부사령관은 슈트 안쪽에 집어넣은 사진을 꺼냈다.

사진 속에는 한 여인과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는 아이가 담겨져있었다.


"아들인가? 귀엽군."


"응..."


부사령관의 손이 떨리는 것을 본 마리는 그제서야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해 자각했다.


"미..미안하다..."


"아냐. 어차피 둘은 이미 죽었고. 너가 신경 쓸 일은 아니야."


부사령관은 사진을 접은 뒤 다시 슈트 안쪽에 집어넣었다.

알 수 없는 공기가 흐르는 가운데 마리는 이 자리가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아까 너가 말했지? 잊어서는 안돼는 사람이 있냐고."


부사령관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의 말에 마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내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어. 하지만 난 그들을 거부했어. 나같은 놈한테는 너무나도 과분한 행복이었다고 생각했지.."


마리는 아무런 말 없이 그의 말에 집중했다.


"그래서 난 그들을 피했어. 일을 핑계삼아 외박하기 일쑤였고, 집사람하고는 언성이 높아져만 갔지..그러는 와중에 아들놈은 나와 같은 군인 되고싶다고 했어.. 아들은 나와 같이 있고싶다는 생각에 그런 말을 한거겠지만.. 나한테 있어서 그 말은..


스스로 지옥에 들어가겠다는 말처럼 들리더군.."


마리는 이번에도 아무런 말을 하지않았다.


"그렇게 어느날 내가 어김없이 근무를 하고있던 와중에 광신도 놈들의 공격으로 그 녀석이 깨어나버리고 말았지.."


"그 녀석이라면.."


"마커.."


마리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마커가 어떤 물건인지 그녀 또한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기 때문이었다.


"난 내 가족을 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 지옥도를 건넜어. 하지만 내가 마주한건...더 한 지옥이었지.."


부사령관은 그 때의 일이 다시 떠올랐다.

속이 매쓰꺼웠고 당장이라도 자신의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개워버리고 싶을 만큼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그는 참았다.


불굴의 마리는 그저 부사령관의 어깨를 토닥여줄 뿐이었다.

지금 그에게는 그 어떤 위로의 말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 그녀가 생각한 최소한의 위로였다.


"잊고싶어도 잊을 수 없어.."


"그런가.."


마리는 눈을 천천히 굴려 부사령관을 쳐다보았다.

침착해도 너무나 침착한 그의 얼굴에 마리는 조금 당황스러운 눈치였다.


"사령관이었다면 아마 지금 쯤 식은땀을 흘리거나 구토를 했을텐데 부사령관은 괜찮은가보군.."


"아이작 그 녀석은 일반인이고..난 군인이니깐..냉정하게 판단해야할 때가 많이 있지..그 덕분인거 같아.."


"그 점은 공감이 가는군..군인은 언제나 냉정하게 판단해야하지만..가끔 그러지 못해서 죽는 녀석들이 많았지.."


마리는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케이스를 만져댔다.

그녀가 만질 때마다 케이스 안에 담겨있는 유전자 씨앗이 흔들렸다.


"우린 뭔가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을지도.."


마리의 말에 부사령관은 마리를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뜻이지?"


하지만 마리는 아무런 말을 하지않고 무덤 앞에 놓았던 담배가 전부 타들어간 것을 보았다.


"아니다..나중에 이야기 해주지.."


그녀는 자리에 일어나 다리와 엉덩이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냈다.

그녀가 일어나자 부사령관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마리. 오늘 이야기는..."


"알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겠다. 나도 그 정도 쯤은 알아. 같은 군인이잖아?"


마리는 부사령관을 향해 쓴웃음을 지으며 산에서 내려왔다.

부사령관은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을 곱씹어 생각했다.


'같은 군인이라..'


부사령관은 십자가 무덤 위에 올려져있는 다 타들어간 담배를 발로 지진 뒤 산에서 내려왔다.


'










가족을 구하기 위해 지옥을 건넜지만 그 앞에 펄쳐진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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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일상편도 아마 부사령관이 주인공일 거 같습니다.

아마 순애일지도..? 


아무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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