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 https://arca.live/b/supernerimk2?category=%EC%86%8C%EC%84%A4&target=title&keyword=%EC%A1%B0%EA%B8%88+%EC%9D%B4%EC%83%81%ED%95%9C


모음 : https://arca.live/b/lastorigin/207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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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틱

 

로버트가 사라진 연구실 내부에 환한 불빛이 켜지기 시작했다.

벽 한 쪽을 가득 채우는 유리창, 그 너머에 보이는 온갖 제조 캡슐과 버려진 AGS 더미.

빛이 들어오고 나서야 이곳이 원래 어떤 곳이었는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내 등 뒤를 누가 갑자기 찌르지만 않았다면 말이야.

 

 

 

“사령관님?

절 버리고 그렇게 혼자 다 끝내시면 기분 좋으신가요?”

 

“… 으에! 깜짝이야…”

 

 

 

누군가 내 볼을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댔다.

얇은 손가락에 길고 잘 관리된 손톱.

분홍색 매니큐어까지 칠해진 것을 보니 누구의 장난인지 단번에 알 수 있겠다.

 

 

 

“… 알파.”

 

“앉아 있는 저만 덩그러니 내버려 두고 혼자 분위기 잡아버리시면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잖아요.

연구실을 산책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미 볼 건 다 본 것 같네요. 넓긴 하지만.

그것도 그렇고, 사실 사령관님을 홀로 두고 가기엔 너무 찜찜하더라고요.”

 

“네가 오메가의 해킹은 다 풀어줬다면서?

그럼 걱정할 게 뭐가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이죠.

저 로버트라는 AI가 어떤 알고리즘을 토대로 동작하는 건진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요.

그 잠깐 사이에 사령관님을 도륙 내버렸으면 어쩌려고요?”

 

“… 그럴 분위기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AGS를 상대로 분위기를 논하시는 분은 사령관님 밖에 없을 거에요.

저 AGS들은 모두 프로그램 된 기계들이란 걸 잊고 계신 건 아니죠?”

 

“참 낭만 없는 소리한다."


"이런 세계에서 낭만을 찾으시는 분도 사령관님이 유일하실 거고요."


"원래 그런 애들이 사람들의 예측을 뚫고 짜잔 하고 나타나는 게 멋있는 거야.

로버트가 지금 그런 것처럼.”

 

“그런가요?

하여튼 사령관님은 제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분이시니까요."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닌 거 같은데..."


"그래도 사령관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괜찮아지겠죠.

저도 썩어빠진 팩스 안에서 너무 오래 있었던 모양이네요. 거기선 AGS 설계 말고 할 일이 없었으니까.

그냥 직업병 같은 거라 생각하세요.”

 

 

 

알파는 당연하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면서 케스토스 히마스를 꺼내, 커다란 홀로그램을 내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골든 하버 인더스트리, 비스마르크 코퍼레이션, 돌 하우스…

모두 팩스의 뛰어난 기술력의 기반이 된 하위 기업들이죠.

글라시아스, 에이다 Type-G. 한 때 팩스 AGS 기술력의 정점에 있던 것들이죠.

지금은 다른 것들이 서서히 대체하려고 하고 있지만.”

 

“… 신기하긴 하네.

근데 갑자기 이건 왜?”

 

 

 

그러더니 알파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내며 한 가지 홀로그램을 더 들이밀었다.

설계도면 위에 적혀 있는 수천 개의 알 수 없는 단어들은 어쩔 수 없었지만, 단 한 가지 나도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커다란 이빨, 기다란 꼬리,

세 개의 두꺼운 발톱과 불을 내뿜기 위한 큰 아가리.

 

 

 

“… 타이런트야? 설마?”

 

“네. 여기 AI의 기록을 살펴보니 마침 블랙 리버 쪽에서 타이런트 설계에 사용한 AI 더군요.

이 기회에 정보 교류를 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 거래를 요청했는데, 그냥 이렇게 주더라고요.

운이 좋았죠.”

 

“로버트가?

걔가 왜 그런 착한 짓을…”

 

“글쎄요. 사령관님 말씀처럼 본성부터 나쁜 AI는 아니었나보죠?

덕분에 제가 사령관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이 더 많아졌네요.”

 

“뭔 소리야? 뭘 줘?”

 

"제가 그럼 빈 손으로 여기까지 온 줄 아시나요?"




손가락을 빙빙 돌리며 떠오른 홀로그램을 정리하던 알파가 나른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오르카 호의 AGS 기술력.

그게 얼마나 심각한 지는 무적의 용 참모총장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어요.

그 흔한 아라크네 하나도 제대로 만들 수 없다고 하셨죠?”

 

“… ...”

 

 

 

분하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당장 이번 작전만 해도 좀 더 괜찮은 AGS를 만들 수 있었다면 호드나 발할라가 아니라 AGS 부대를 투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애초에 게임에서도 위험한 전투는 바이오로이드가 아니라 AGS로 대체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여기선 내가 주인공인데, 똑같은 전술 쓴다고 뭐라 할 사람 아무도 없겠지.

그럴 만한 기술력이 없다는 게 문제지만.

 

 

 

“그런 분들껜 제가 드릴 수 있는 게 아주 많죠.

괜히 팩스가 세계 최고 AGS 기업이란 소리를 들은 게 아니랍니다.

뭐, 예를 들면 글라시아스를 만들기 위한 청사진을 드릴 수도 있고,

화성의 테라포밍 작업을 진행 중인 총괄 AI와의 연결 통신망을 뚫어드릴 수도 있겠죠.

물론... 엡실론이 방해하지 않아야겠지만 그 여자 성격 상 따로 방해할 일은 없을 테니 뭐, 상관 없겠죠.”

 

“… … 잠깐만.

얘기 규모가 너무 커져서 좀 벙벙하거든?”

 

“역시 화성까지는 조금 너무 갔나요?

그럼 AGS 10만 대로 구성된 강철 부대 이야기는 어떠신가요?

고급 AGS와 저급 AGS를 특정 비율로 섞으면 평소보다 대략 42% 정도 더 효율적인 전투를…

…”

 

 

 

마치 지금까지 뒷방 취급 당했던 걸 되갚아주려는 듯이, 알파는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지상 수천 킬로미터 위의 인공위성을 이용한 광학 위성 단말기 프로젝트라던가,

클라우드 시스템을 이용해 자가 복원, 수거, 복제가 가능한 AGS 부대에 대한 얘기라던가,

상상만 해도 근미래, 아니, 초현실 미래를 실현시킬 수 있는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 그 끝없는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니 누군가가 생각났다.

설마 여기 오렌지도 있는 건 아니겠지?

 

 

 

“…

…니까, 그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오르카 내의 전투적 문제는…”

 

“잠… … 잠깐만.

제발 좀… 잠깐만 좀… … 쉬어봐 좀.”

 

“네?”

 

“…

… 후우…

일단 그런 이야기는 나한테 한다고 될 것도 아니고, 닥터한테 가서 물어봐야지.

사령관이기 이전에 나도 일단 일개 평범한 사람이라고…!!”

 

“평범한 분이 아니라는 건 이미 이 마을에서의 전투에서 보여주시지 않으셨나요?

심지어 제가 그렇게나 찾으려 돌아다녀도 못 찾았던 오메가의 흔적까지 알려주셨는데, 그런 분을 범인과 같이 취급하면 그거야 말로 실례죠.”

 

“… 나 빙의자라니까?

그러니까 그런 거 다 알고 있는 거라고!”

 

“여기까지 와서 그런 말씀 안 해주셔도 다 믿어요.

사령관님이 다른 분이라는 건 이미 머리 속 깊숙이 집어 넣었으니까 이제 그런 판타지 같은 이야기 그만하셔도 된답니다.”

 

“… …”

 

 

 

알파는 아무래도 내 말을 믿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아니, 믿는 건 믿는 건데, 정작 제일 중요한 사실을 믿어주지 않는 것 같다.


하긴 나였어도 누가 빙의했다니 뭐니 하는 헛소리를 믿어줄 것 같지 않은데, 여기 있는 애들이라고 다르겠어?

옛날이야 오늘 죽나 내일 죽나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다들 순진하게 믿어줬지, 지금처럼 뭐 가지고 놀까 고민하는 때에 빙의 같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면 다프네들에게 둘러 쌓여 수복실 신세 지기 딱 좋다.

실제로도 이미 한 번 경험해봤고…

 

 

 

“어이구, 어쩜 저희들을 생각하시는 마음씨가 이렇게나 고우신지.

다른 사람이란 걸 믿지 않을까 봐 그런 이야기까지 만들어주신 거잖아요?”

 

“… …”

 

“지금 같이 여유로운 때야 통하지 않겠지만, 제가 아는 그 인간이 있었을 때처럼 하루하루가 시급하던 때엔 그런 달콤한 신화가 필요한 법이죠.

그런 것도 전부 계산하시고 이런 말씀을 해주신 거라 저는 굳게 믿고 있답니다.

저희 안나 박사님에 대해서도 알고 계신 분이시니, 그 정도 계획은 하고 계셨겠죠.”

 

“… …

알파야.”

 

“네에? 사령관님?”

 

“그럼 내가 그 안나 박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는 건 어떻게 설명할래.”

 

“그거야 사령관님만의 사정이 있으시겠죠.

어떤 말 못할 사정이 있다고 하셔도 저는 다 이해한답니다."


"아니, 나..."


"중요한 건. 사령관님께서도 팩스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계시다는 거. 저와 같은 배에 올라타주셨다는 거죠.

그게 아니라면 이 로버트라는 AI를 대하는 태도에서 동정심이 느껴졌을 이유는 없잖아요?”

 

“… … 아니, 이게 아닌데.”

 

“전 사령관님을 굳게 믿고 있답니다.

정말 제 주인님으로 모시고 싶은 심정이에요.

마음 속으론 이미 제 주인님이시지만, 저처럼 굴러온 돌이 그런 친근감 가득한 애칭으로 불렀다간 이곳 분들의 반발이 심하실 테니 참아야겠죠.”

 

“…”

 

“그래도 사령관님의 손님으로 온 신세에 그런 짓을 해서 사령관님의 체면에 흠집을 낼 수는 없는 일잖아요?

하지만 앞으로도 사령관님을 위해 열심히 보좌할 테니, 부디 그것만큼은 막지 말아주세요.

간곡히 부탁드릴게요. 사령관님.”

 

“… …”

 

 

 

알파는 아까 했던 손가락 찌르기를 다시 내 볼 위에서 펼쳤다.

쿡, 쿡, 뭔가 알 수 없는 애정이 담긴 손가락이 내 얼굴을 감쌀 때마다 안심이 되기도 하고, 뭐랄까…


… 모르겠다.

이제 살만 해지니까 내가 여기 온 이유를 각자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굳이 그거 다 고쳐주면서 난 사실 다른 세계 지구인이다!! 같은 짓 할 필요는 없을 거다.

그럴 시간도 없고…

 

 

 

“… 후우. 그래, 그건 그렇다고 치자.

기술 문제는 나중에 닥터랑 차차 이야기 하기로 하고.

근데 그렇게 손가락으로 툭툭 찌르는 건 누구한테 배운 거야. 대체.”

 

“여기 계신 분들이 생각보다 애교가 많으시더라고요.

특히 그 갈색 머리 단발 아가씨가 특히 그랬죠.

다 사령관님의 작품이겠거니 싶어서 저도 한 번 배워봤는데, 싫으셨나요?”

 

“… … 아냐. 됐다.

근데 누가 애교가 많아?”

 

“갈색 머리 아가씨요.

호드 쪽에서 같이 활동하시고,

뭐 가끔씩 재밍 같은 걸로 지원해주시는 분이신데 혹시 모르시나요?”

 

“… …”

 

 

 

그새 탈론 페더를 만난 건가?

대체 언제?

아니, 그것보다 애가 무슨 애교가 많아?

 

 

 

“칸이란 분께 어찌나 귀염을 떠시던지,

아마 사령관님만 없었다면 아주 자기 대장님만 스토킹 하면서 살았을 거에요.”

 

“너… 그 애 어디서 만난 거냐?”

 

 

 

만난 건 좋다 이거야.

근데, 페더한테는 건들지 말아야 하는 게 딱 하나 있는데 설마…

 

 

 

“그야 아까 호드 분들이 함선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슬쩍 뵌 거죠.

들고 다니시던 패널에도 재미 있는 게 아주 많이 들어있던데.”

 

 

 

아이고.

 

 

 

“… 봤어?”

 

“물론이죠.”

 

 

 

페더야…

 

알파는 그 정도쯤은 당연하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페더도 나름 재밍 관련 전자장비 담당인 걸 생각해보면 그게 절대 당연한 게 아닐 텐데.

 


 

“탈론 허브라니.

이름도 참 귀염성 있게 짓는 아가씨이지 않나요?”

 

“…”

 

“이미 업로드 된 영상만 해도 1136개.

실시간 베스트 영상에 주간 베스트 셀러.

오늘의 추천 체위, 가장 많은 영상에 출현한 인물 순위까지.

볼 거 없는 이곳 분들껜 아주 재미 있는 오락거리겠어요. 후후."


"너 그새 어디까지..."


"아예 팩스 쪽에 확 뿌려버릴까요? 그러면 오메가, 그 여자 얼굴도 꽤 볼만해질 텐데.

하지만 저희로도 벅찬 사령관님께 남자에 굶주린 수천만 명의 바이오로이드를 더 붙일 수는 없는 일이니 참아볼게요.

더 농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즐거운 일이니까요.♥"




원래부터 이런 애였던 걸까, 아니면 탈론 허브를 보면서 타락해버린 걸까.

말 끝을 야릇하게 흐리는 알파의 모습 속에서 '그' 아스널의 모습이 겹쳐보인다.

어쩌면 내가 지금 괴물 한 명을 더 끌어들인 걸 지도...




"그나저나, 그런 걸 허락해주시다니. 사령관님께서도 생각보다 개방적인 인물이셨네요.

실시간으로 업로드 수가 늘어나고 있으니 아마 지금쯤이면 백 개는 더 늘었을...”

 

“… …”

 

“어머, 사령관님도 알고 계셨던 거 아니셨나요?

제가 지금 혹시 실언 같은 걸 한 건 아니겠죠?”

 

“… 아냐. 됐다.

그냥... 그거 찾았다고 페더한테 말하지만 마.

자기가 운영자라는 건 죽었다 깨어나도 숨기고 싶어 하거든.”

 

“왜죠?

좀 격렬한 정사들이 많긴 하지만 나름 귀여운 장면들도…”

 

“칸이 그런 거 봤다간 뭔 표정을 짓겠어.

하물며 나랑 칸이 했던 영상 다운로드 수가 5000회를 넘겼다는 걸 알면 그 애 진짜 화날 거다.

나랑 하는 것도 부끄러워하는 앤데..."


"에고."


"... 그러니까 운영자 신상 들통나는 날이 페더 기일이라 생각해.

애 하나 죽는 꼴 보기 싫으면 철저히 지켜라...”

 

 


알파는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왠지 모를 비장함까지 느껴지는 그녀의 표정을 보니 나도 덩달아 안심이 됐다.

다른 누구도 아닌 알파니까... 혹시나 하는 상황엔 도움이 되겠지. 




…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된 걸까.

왜, 소설 속엔 그런 게 있다.

백 날 빙의하고 환생하고 전생하고 회귀해도 절대 바꿀 수 없는 무언가가.

 

사랑하는 여주인공이 반드시 죽는다던가,

주인공의 친구는 무슨 짓을 해도 타락한다던가,

뭐 그런 것들 말이다.

 

갑자기 이 얘기는 왜 꺼내냐고?

내가 볼 때, 이 망할 탈론 허브라는 게 그런 거 인 것 같다.

떡 치는 거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는 쓸데 없이 고전적인 잠수함에서는 내가 뭔 짓을 해도 그 빌어먹을 사이트가 탄생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첫날밤이라면 첫날밤, 10p라면 10p, 부대 별 단체 섹스라면 단체 섹스.

내가 봤던 그 어떤 사이트보다 정갈하고, 우아한 UI로 효율적인 관리를 우선시하는 사이트가 바로 탈론 허브다.

 

 

 

"아참, 오늘도 가장 다작한 인물 순위 1위는 사령관님이시랍니다.

전체 1136개 영상 중 1136개 출현!

이거 축하라도 드려야 하나요?”

 

“… 그거 무슨 영상인지 알고는 하는 말이지?”

 

“그럼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말씀 드릴까요?

그 아가씨, 제목도 참 야릇하게 잘 지어요.

미호 씨와의 5시간짜리 머리카락구속화해순애섹스.

블랙 리리스 씨와의 12시간 동안의 짐승굴복발정미약섹스.

아스널 씨와의 1시간 42분짜리 긴급전투하울링섹스.

그거 말고도 또…”

 

“너 지금 나 놀리는 거지.”

 

“설마요?

사령관님이라면 이해해주실 줄 알았는데.”

 

“… 뭐가.”

 

“저희 레모네이드가 칠죄종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건 알고 계시죠?

그럼 저, 레모네이드 알파가 담당하는 칠죄종을 뭐였을까요?”

 

“… …”

 

“네, 그런 거랍니다.”

 

 

 

… 그래, 생각해보니 그런 게 있긴 있었지.

별로 관심 있게 보던 떡밥은 아니어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는데, 이게 이렇게 돌아오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이 사이트를 좆같다고 하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다.

그렇고 그런 영상들이야 뭐, 보고 싶다면 볼 수 있게 해주는 게 이 멸망한 세계에서 도리 아니겠나?

그거까지 막아버리면 ㅈ간 새끼랑 다를 게 없을 거다.


근데 거기 출현하는 남자 배우가 죄다 나다.

아니, 나일 수 밖에 없다.

 

그럼 그 영상을 보고 한껏 물 오른 아이들이 자기 성욕을 어디에다가 풀려고 할까?

처음 한두 번은 자기 혼자 풀겠지.

근데 바이오로이드는 설계 구조 자체부터 레즈비언은 존재할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오리진 더스트 수용을 위해 여성 호르몬을 대체, 강화하는 화학적 호르몬이 끊임 없이 분비되고, 이건 남성에 대한 강렬한 애정을 불러 일으킨다.

 

멸망 전이야 기업들이 자기들 나름의 노하우로 그걸 다 조절해서 판매했다.

초창기 삼안의 포이 리콜 사태는 이 기술이 부족해서 생긴 해프닝이라고 했을 정도니까.

 

근데 우리한테 지금 그럴 기술이 어디 있냔 말이다!

옛날에는 죄다 급한 대로 막 찍어냈지!

다시 말하자면, 저 오리진 더스트 수용을 위한 여성 호르몬이 흘러 넘치다 못해 줄줄 흐르는 애들이 오르카 호에 득실댄다는 거다!


심지어 그 애들이 옛날에 만들어져서 경험이 많아 싸움은 또 기똥차게 잘하지…

그야 말로 우리 함선의 에이스 중에 에이스들인 셈이다.

 

그 에이스들이 자기 여성 호르몬을 감당하지 못하고 달려드는 최종 종착지가 바로 나다.

탈론 허브는 그런 애들을 더 자극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 거고.

오락거리가 필요한 마당에 무조건 없앨 수도 없고, 그러자니 내가 감당해야 할 애들이 두 배로 늘고…

… 내가 짜여 죽기 전까지 열심히 사는 수 밖에.

 

 

 

“… 너 생각보다 엄청 깬다…

깔끔하고 일 잘하는 비서 같은 앤 줄 알았는데.”

 

“깔끔하고 일 잘하는 비서는 맞답니다.

그 밖에 ‘약간’ 부수적인 것들도 있을 뿐이죠. 후후.”

 

“… …”

 

 

 

왠지 모를 오한이 흐른다. 

쓸데 없이 넓은 연구실 안에 커다란 컴퓨터가 둥둥 떠있고, 거기엔 알파와 나 둘뿐이다.

긴장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노릇이지…

 

힘 빠진 채로 바닥에 털썩 주저 앉은 나를 향해 알파가 부드러운 미소를 보내며 손을 건넸다.

이 칙칙한 곳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고자 난 그 손을 잡아 몸을 일으켰다.

 

 

 

“… …”

 

“너무 그렇게 긴장하지 마세요.

그냥 가볍게 농담 한 번 건네본 거니까.”

 

“… 그래. 그랬으면 좋겠네.”

 

“팩스 안에선 이런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거든요.

거기는 늘 삭막하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는 곳이죠.

그런 곳에서 사령관님의 품 안으로 들어오니, 저도 잠시 긴장을 풀 수 있었어요.

고마워요.”

 

“… …”

 

 

 

그 말을 듣고서야 알파는 내가 알던 그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약간 곱슬거리는 머리카락과 크게 반짝거리는 눈.

삐빅대는 케스토스 히마스와 섞여 왠지 모를 지적미를 뽐내는 그런 알파 말이다.

 

 

 

“여기 너무 오래 계셨네요.

서둘러 가시죠. 사령관님.”

 

“그래… 지친다. 지쳐.”

 

 

 

나는 알파의 보좌를 받으며, 천천히 연구실 밖으로 향했다.

날 죽이려는 총도, 칼도 나오지 않는 고요한 복도는 적막하기 그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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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글 쓰는 법을 좀 배우려고 요즘 이거 저거 보고 있는 중이다

이번은 그냥 약간 만담식으로 채워바씀

저번 화도 야쓰 알프레드 드립 댓글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로버트가 다 잡아먹어버렸더라

그래서 좀 아쉬웠음


곧 100화인데 뭐라도 해야 하나. 이거도 기념이라면 기념인데.

완결도 안한 마당에 QnA 같은 거 하는 것도 웃기고 말이야

라오 문학 중에 100화 넘는 거 뭐 있지 좀 참고 좀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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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씩만 '해줘'



아무튼

절대 애 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