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 가족끼리 즐기는 피크닉은 언제나 즐겁네요."


"그러게말야. 안 그러니? 너가 어릴 때는 자주 왔는데말야."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도 웃으면서 내게 말을 걸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부끄러웠다. 그 때를 생각하면 머리카락을 쥐어뜯고싶을 정도로 부끄러운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언제적 얘기를 하시는겁니까.."


"불과 20년전 일이란다. 얘야."


"언제 이렇게 잘 컸는지.."


어머니는 웃으면서 찻잔을 기울였다. 어머니의 왼손약지에 있는 은색 반지가 반짝거렸다.

아버지는 접시 위에 올려져있는 마들렌을 입으로 가져갔다. 아버지의 왼손약지에도 은색반지가 반짝거렸다.


두 분께서 결혼을 하실 때 아버지가 직접 만든 것이라고 오드리 누나가 내게 말해줬다.


"그러고보니. 너, 내가 저번에 말한건 생각해봤니?"


아버지께서 아까와는 다르게 진지한 표정으로 날 보셨다.

저번에 말한것이라면..아마 그 얘기를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제가 저항군 사령관을 맡는거요?"


"그래."


나는 어머니가 따라준 홍차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현재 저항군 사령관이다. 하지만 그 자리가 언제나 영원한 것은 아니였다.


어릴 적 알렉산드라 선생님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마지막 인간으로 발견된 아버지는 저항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인류를 멸종시킨 철충과 별의 아이라는 외계의 존재와 연합기업인 펙스 콘소시엄과 싸웠다.


경호 바이오로이드인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부관이었다고 들었다. 아버지와 함께 그 녀석들과 싸웠다고 들었다.


아버지의 지휘 덕분에 철충과 별의 아이의 숫자는 줄어들었다. 하지만 펙스 콘소시엄의 레모네이드들은 여전히 아버지의 목을 노리고있었다.


"우리 아들? 자고있니?"

 

어머니의 말씀에 나는 찻잔을 떨어뜨릴 뻔 했다.


"아..아뇨..그저..."


말을 더듬거리자 아버지께서 내 손을 잡으셨다.


"내키지 않으면 안해도 된단다. 너에게도 선택할 권리라는게 있잖니? 나야 뭐 그런게 없었지만.."


아버지의 말에 난 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두 분을 존경했다. 언젠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저항군 사령관을 하고싶었다. 하지만 난 아버지와 달랐다.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았고 생각보다는 언제나 주먹부터 날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욱하는 성질을 아직까지도 죽이지 못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런 부분은 어머니의 성격을 닮은 것이라고 닥터에게 들었다.


이런 내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저항군 사령관을 맡는다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좀 더 생각해볼께요.."


"그려무나.."


아버지는 남아있던 마들렌을 마저 입에 넣으셨다.


"아들..천천히 생각해도 괜찮단다."


어머니는 나의 뺨을 쓰다듬어주셨다.


"네..."


차를 많이 마셔서였을까.. 화장실이 가고싶어졌다.

다행히 공원 근처에 있는 화장실이 보였다.


"화장실에 좀 다녀올께요.."


"같이 가줄까?"


"엄마!"


나도 모르게 엄마라는 말이 나왔다. 


"후후. 엄마라고 부르는거 얼마만이니. 다시 엄마로 불러주면 안될까?"


"몰라요!"


나는 어머니께 성질을 부리며 화장실을 향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저런거보면 리리스의 얼굴이 보이는걸?"


"방금 뭐라고하셨나요?"


뒤에서 무어라 말씀하시는게 들렸지만 지금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렇게 화장실에서 꽃밭을 본 나는 손을 깨끗이 씻고 돌아가기로 했다.


그 순간, 누군가와 난 부딫혔다.


"앗!"


얼굴을 보아하니 더치걸이었다. 하지만 어딘가 이상해보였다.

다크서클은 줄넘기를 해도 이상하리만큼 내려와있었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귀에는 붉은색 보석이 박혀있는 은색 귀걸이가 걸려있었다.


"저기.."


사과를 할려고했지만 그녀는 무언가에 쫓기는 듯 아무말없이 떠나버렸다.

순식간에 자리를 떠난 더치걸에 나는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뭐야..?"


그녀를 뒤로 하고 먼지를 털어내며 일어났다.

그렇게 다시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는 장소로 갈려는 순간 무언가가 발에 걸렸다.


작은 선물상자였다. 


'아까 그 녀석꺼인가..?'


선물상자를 집어들고 아까 더치걸이 간 방향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좁디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간 더치걸을 다시 찾는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나중에 찾으면 돌려줘야지..'


선물상자를 주머니 안에 넣어두었다. 나중에 그녀를 발견하면 돌려줄 생각이었다.

일단 아까 그 더치걸에 대한 생각은 잠시 잊기로하고 어머니와 아버지와의 피크닉을 좀 더 즐기기로 했다.


"왜 이리 늦었니?"


"아까 어떤 더치걸이랑 부딫혀서요.."


"더치걸?"


"네. 귀에 붉은색 보석이 박힌 귀걸이를 하고있던대요?"


"뭐..?"


어머니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살면서 어머니의 그런 얼굴은 처음 보았다. 아버지도 표정이 굳어졌다.


'찰칵.'


그 순간. 주머니에서 찰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주머니 속에 있는 것은 아까 그 더치걸이 흘린 선물상자였다.


'찰칵.'


불길함에 난 선물상자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찰칵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그것을 본 어머니는 내 손에 들려있는 선물상자를 쳐냈다.


그리고 푸른색의 커다란 장미 두송이가 화려하게 피어올랐다. 어머니의 무장인 로자아줄이었다.

어머니는 그 푸른 장미로 나를 감쌌다. 


'찰칵.'


작은 선물상자에서 큰 폭발이 일어나고 난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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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을 땐 하얀 천장이 나를 반겼다.

기억 나는 것이라고는 로자아줄이 나를 감싸고 선물상자가 터졌다는 것이었다.


'아버지..어머니...'


난 두 분이 걱정이었다. 제발 무사하기만을 바라며 일어나보려했지만 몸은 누군가 누르는 것 처럼 무거웠고 오른쪽 팔과 다리에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 몰려왔다.


처음 느껴보는 고통에 눈물이 찔끔 흘렀다.

몸부림을 치며 고통을 떨쳐내보려했지만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고통은 더 선명해져만 갔다.


"아아악...! 아아아아악!!!!"


내 비명소리에 다프네와 리제들이 들어왔다.


"도련님! 진정하세요!"


"진정하세요! 지금 움직이시면 안돼요!"


그녀들은 나를 붙잡으며 무어라 말을 했지만 지금 내 귀에는 그런것 따윈 들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는..?! 어딨어?! 어딨냐고!!"


"일단 진정하세요! 도련님!"


"어딨냐니깐?!"


아직 멀쩡한 왼손으로 다프네의 멱살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녀를 벽으로 집어 던졌다. 


"꺅!!"


어머니의 유전자를 일부 물려받은 나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 힘조절을 하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 따윈 중요한 것이 아니였다.


"어딨냐고! 말해!!"


"진정제 놔주세요! 더 이상 안되겠어요..!"


그녀들은 더욱 더 나를 꽉 붙잡았다. 그리고 내 목에 무언가를 꽂았다.

분명 주사를 놓은 것이 분명했지만 주사의 고통은 느껴지지않았다.


"말해..어..디..."


난 또 다시 정신을 잃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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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정신을 차렸을 땐 불굴의 마리 이모가 내 앞에 서있었다.

아버지가 가장 신뢰하는 지휘관들 중 한명이었다. 어릴 적 그녀의 부대원들과 놀았던 적도 있었다.


"일어나셨습니까.."


애써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랑 어머니는...괜찮은건가요..?"


내 질문에 마리 이모는 아무런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내가 누워있는 침대의 난간을 꽉 쥐고있는 것이 보였다.


"말해줘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구고있었다. 


"말해!!"


나의 호통에 그녀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저항군 사령관 각하와 그의 부관이자 아내인 블랙 리리스는...."


말을 이어가지를 못 했다. 냉정하고 언제나 상황판단을 잘하는 그녀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탓에 두 눈이 흔들렸다.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만 아니였으면 바랬다.


"사망하셨습니다.."


"뭐...?"


병실에는 침묵만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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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날 폭발에 휘말려 죽었다.

하지만 난 어머니가 로자 아줄로 감싸준 덕분에 살아남았다. 하지만 완전히 감싼 것은 아니였다.


왼쪽 부분은 로자 아줄 덕분에 멀쩡했지만 오른쪽 부분은 폭발의 여파로 인해 엄청난 화상을 입고말았다.

회상으로 인해 피부가 쪼끄라들고 붉게 물들여졌다. 


어느 만화에서나 볼 법한 악당처럼 변한 몰골에 다들 나를 볼 때마다 놀랬다.

하지만 난 그런 것 따윈 신경쓰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는 온통 한 생각 뿐이었다.


'복수할거야...'


침대에 누워있는 내내 많은 대원들이 오고가고 지휘관들이 나를 찾아와 위로 해주었지만 난 그들의 위로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죽인녀석들을 잡아족치고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어머니는 내게 늘 말씀해주셨다.

아무리 화가나고 억울하고 울고싶어도 생각을 한번하고 움직이라고.


난 그런 어머니의 말씀이 늘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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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다가 문득 생각나서 끄적여봤습니다.

더 이어갈지는 미지수 입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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