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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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쏴-아아아!

 

“...심심해. 칫.”

 

 오르카 저항군 호라이즌 소속 수송부대 대잠전용 바이오로이드, MH-4 테티스. 그녀는 라붕이 작전관을 좋아한다. 물론 그것은 이성에 대한 사랑은 아니다. 그녀는 그저 라붕이 작전관이라는 존재 자체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간다아!”

 

빵-!

 

“야! 네레이드! 여기는 절반이 꼬맹이들이거든! 대체 얼마나 높게 쏘는 거야!”

 

“헤헷! 미안! 운디네!”

 

“...잘 노네. 다들.”

 

 사방에 여성밖에 없는 무리에서 활동하던 테티스에겐 라붕이 작전관은 특색있는 ‘인간’이었다. 멸망 전의 엄숙하고 또 무섭기만 한 인간님들과 달리 자기 장난 정도는 가볍게 받아주고, 또 거기에 더해 자신을 항상 곤란케 하기도 했다. 그 때문일까. 테티스에게 있어 라붕이 작전관은 하나의 짓궂은 오빠와도 같았다.

 

“그 바-보 대장. 왜 이런 델 두고 산에 갔대! 쳇!”

 

“테티-스! 너도 이리 와서 같이 놀자!”

 

“...흥!”

 

 자신의 속내도 모르고 얕은 바닷물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기 바쁜 동료들, 그런 그녀들의 부름에도 테티스는 여전히 백사장의 뒤편에 앉아 고개를 홱 내쳤다. 지금의 그녀는 장난을 칠 기분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바보 대장! 내가 이번 휴가를 내려고 얼마나 용기를 낸 줄 알아?!’

 

 일생일대의 용기였다. 테티스는 자기 자신의 행동을 그렇게 평가했다. 그 어느 누가 휴가 2박 3일을 얻겠다고 직속 상관도 아닌 최고 상관에게 생떼를 부린단 말인가. 하지만 그녀의 용기가 낸 보상은 어제 그에게서 맞은 꿀밤 한 대와 오늘의 무료함이었다.

 

“쳇. 그래. 그렇게 산이 좋으면 산에서 실컷 놀라지. 뭐.”

 

 이제는 이렇게 죽치고 앉아 있는 시간도 아깝다. 테티스는 백사장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같이 놀기 좋아 보이는 대상을 찾아 헤매었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반반으로 갈라져 백사장을 이용하는 본대 인원들과 생산 인원들. 마땅히 자신이 끼일 만한 구석이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얼굴을 익힌 아르망이나 리리스 언니도 없고. 칫..’

 

 사령관도 없고, 라붕이 작전관도 없는 백사장은 그야말로 어색함의 극치였다. 본대 인원은 리조트 건물이 가까운 백사장의 왼편을, 생산 인원들은 그녀들과 반대로 오른편을 나누어 쓰고 있었다.

 간혹가다 본대의 메이드들이 음료수를 들고 찾아오나 그마저도 생산 인원들이 미리 준비해둔 음료 역시 산더미인지라 상호 간의 소통이 시원찮았다. 이럴 거면 대체 어제 왜 로비에 모여서 떠든 건지. 테티스는 백사장 상황마저 마음에 들지 않자 이미 반쯤 삐죽이 튀어나온 입술을 한층 더 삐죽였다.

 

“심심해! 심심해! 심심하다고!”

 

부-우우웅!

 

“...?”

 

 그때, 소녀들의 꺄꺄거리는 소리만이 넘쳐 흐르던 백사장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거친 엔진음이 들려오자 테티스는 하던 생각을 멈추고선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것은 비단 테티스만이 그런 것이 아니었다.

 

“엥? 뭐야? 뭐야?”

 

“무슨 소리야? 이거?”

 

부-웅! 가가가각-!

 

“...? 뭐야. 저거.”

 

 백사장으로 들어오는 입구를 가로지르며 단숨에 백사장의 모래알 위를 밟으며 들어서는 거대한 트럭, 갑작스레 등장한 트럭에 백사장에 있던 본대 인원들과 생산 인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가가각!

 

“꺄-악! 저..저 트럭 이쪽으로 온다! 모두 피해!”

 

우지-끈!

 

“내..내 벤치가아아아!”

 

“뭔가요?! 갑자기! 이게 무슨 소동이죠?!”

 

 정체 모를 거대한 트럭이 느린 속도로 본대 인원들이 있는 백사장 위를 가로지르자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녀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족히 10m는 가뿐히 넘어 보이는 대형트럭은 모래알 파도를 가로지르며 금세 백사장의 한가운데에 멈추어섰다.

 

끼-이이익!

 

“뭐야? 뭐야?”

 

“위..위험하잖아요! 여기에 사람이 몇 명인데!”

 

 갑작스럽게 등장한 트럭 탓에 우왕좌왕하던 인원들이 멈추어선 트럭 근처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호기심을 누군가는 분노를 가진 채 저마다 다른 눈빛으로 백사장 한가운데를 점거한 이 정체불명의 트럭을 향해 걸어오는 것이었다.

 

“대체 안에 누굽니까?! 그 잘난 면상 좀 봅시다. 당장 쏴 버릴..! 응?”

 

덜-컹!

 

끼-이이익!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열릴 줄 알았던 트럭의 운전석 쪽 문보다 트럭의 트레일러 쪽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모두의 눈이 또 한 번 휘둥그레졌다. 천천히 위로 올라가는 트럭 트레일러의 뚜껑, 그리고 그 틈새 사이로 서서히 흘러나오는 새하얀 연기. 모두가 갑작스러운 사태에 숨을 죽이고 있을 때, 트레일러의 그림자 아래서 누군가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내었다.

 

『레-이디즈! 앤! 젠틀맨! 해피-썸머-베케이션! 에브리원!』

 

“-?!”

 

“뭣-?!”

 

 새하얀 연기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해맑은 미소를 짓고 서 있는 스프리건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섬의 하늘 위로 그녀의 얼굴이 담겨 있는 거대한 스크린이 떠올랐다.

 

지-잉!

 

“야! 스프리건! 너 대체 어디로 갔나 했더니!”

 

“...얌마. 또 너 뭐 이상한 거 먹었냐? 응?”

 

 그녀의 어이없는 등장 탓인지 아니면 섬의 정중앙에 걸린 스크린 탓인지 그녀의 부대원들이 모두 눈살을 찌푸리며 트레일러의 무대 위에 우뚝 서 있는 그녈 노려 보았으나 스프리건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관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모두 즐거운 여름 휴가를 보내고 계시는지요! 아차차! 제 소개를 안 했네요! 저는 오르카 1호 소속의 스프리건이라고 한답니다! 모두 안녕하세요~!』

 

“누가 그걸 몰라?! 야! 무시하기야?!”

 

“...난 모르겠다. 저 녀석이 저런 짓을 벌이는 건 뒷배가 있다는 소리겠지. 내 소관은 아니야.”

 

“스프리건이 저렇게 신났다는 건..뭔가 일어난다는 소리지?”

 

“헤헷! 그리폰! 그리폰! 가 보자! 가 보자!”

 

“야! 꼬맹이! 쟤 근처로 가지 마! 또 무슨..”

 

 익숙한 얼굴 탓에 금세 스프리건이 주도하는 분위기에 동조하는 본대 인원들, 하지만 그런 분위기에 익숙지 않은 생산 인원들은 스프리건이 떠드는 광경을 멀찍이서 바라만 보고 서 있었다.

 

“저기. 오드리. 우리가 저기 끼여도 될까?”

 

“으음. 저도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하다못해 대장이라도 있었으면..”

 

“헹! 그 바보 대장, 아침부터 이상하게 넋이 빠져나가 있던 게 지금 상황에서도 전혀-도움이 안 되었을걸?”

 

“엘븐! 그렇게 말하면 못 써.”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다크 엘븐.”

 

“그..그게..”

 

 저마다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은 눈치가 역력했으나 아무도 쉽사리 트럭의 근처로 걸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들을 제쳐 두고 제일 먼저 트럭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이가 있었으니.

 

사박-! 사박!

 

“...”

 

“응? 테티스! 저쪽으로 가려고?!”

 

“..가도 손해 볼 건 없잖아. 난 갈 거야!”

 

 네레이드의 물음에 앙칼진 목소리로 대답하는 테티스. 그런 그녀의 말에 저마다 무언갈 생각하고 서 있던 생산 인원들은 그녀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저 꼬마 아가씨 말대로네. 가자. 엘븐.”

 

“흥! 네가 말 안 해도 갈 거였거든?!”

 

“..미안해. 럼버제인. 얘가 오늘 아침 일로 대장한테 삐져 있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더 궁금해지는걸. 나중에 별장에서 따로 들려줘.”

 

“야! 남의 과거사를 남이 없는 곳에서 듣는 건 실례야!”

 

 왁자지껄 떠들며 테티스를 따라 자리를 옮기는 목장 인원들. 그리고 그녀들을 시작으로 멀뚱멀뚱 서 있던 생산 인원들 역시 하나둘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오드리. 우리도 가자. 헤헤.”

 

“어머. 방금까지 어쩔 줄 몰라 하던 아가씨는 어디로 갔을까요?”

 

“저렇게 시끄럽게 떠드는데 우리라고 안 보이면 그것도 이상하지 않슴까?”

 

“하아..뭔가 머리 아픈 일이 생길 것 같아요.”

 

“레후 언니도 그렇게 있지 말고 어서 가심다. 나중에 맏언니들 오면 우리가 또 무슨 일인지 모른다 하면 혼남다.”

 

“리제 언니도 즐길 수 있는 일일지 몰라! 다프네 언니! 드리아드 언니들!”

 

“응. 아쿠아. 후후. 다프네도 어서 가요.”

 

“네. 그래도 언니한테는 따로 연락을 넣고 싶은데. 후우..”

 

“포티아씨! 포티아씨! 우리도 가자? 응?”

 

“주..주방장님이 식재료 관리 안 하고 딴짓한 걸 알면 혼날걸요?”

 

“그래도~! 주방장님이 안 계시는데 우리도 즐길 건 즐겨야지~! 본대 규모의 이벤트라면 우리도 빠지기 아쉽잖아!”

 

 저마다 작은 목소리, 혹은 큰 목소리를 내며 삼삼오오 모여 거대한 트럭 무대로 걸음을 옮기는 생산 인원들. 그런 그녀들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수송함대 대원들 역시 서로 눈빛을 맞추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테티스가 기운을 차린 거 같은데?”

 

“흥. 방금까지 손톱만 물고 씹던 애가 저렇게 기운을 차린 것만 해도 다행인가?”

 

“..다들 그렇게 있지만 말고. 저희도 테티스를 따라 가봐요. 후후.”

 

“네-네!”

 

 손이 많이 가는 아가씨지만 어찌 되었든 자신들의 동료다. 기운 없이 앉아 있던 테티스가 저렇게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나가는 모습만 봐도 셋의 얼굴에는 다시금 활기가 차올랐다.

 그렇게 본대 인원, 생산 인원. 거기에 더해 수송 인원들까지. 모든 여성이 마이크 쥐고 흔드는 스프리건의 앞으로 삼삼오오 모여 앉았다.


143)

 

끼룩-! 끼룩!

 

 푸르른 물결이 지평선 너머까지 닿아 있는 풍경이 여실히 보이는 드넓은 백사장. 하늘에서는 따스한 햇살이, 그 아래서는 새하얀 갈매기와 푸른 파도가 일렁이는 가운데- 

 

『이름하여-! 제1회! 배-틀 로얄! 인 요안나 아일랜드-를! 개최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아!"

 

 -수십이 넘는 여성 무리가 환호성을 내지르고 서 있었다. 방금까지 잔잔한 파도 물결에 해수욕을 즐기던 아가씨들의 시선이 몰린 곳은 다름 아닌 백사장의 한 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한 거대한 트럭 세트장.

 정확히는 그 위에 서서 마이크를 들고 환호를 유도하는 스프리건에게로 쏠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몰려 있는 관중 속에는 한쪽 눈만 동그랗게 뜬 소녀가 서 있었다.

 

"배..틀 로얄? 그게 뭐야?"

 

"넌 맨날 만화만 보면서 그런 것도 몰라?"

 

"믓-! 지..짐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 다만 확인 차 묻는.."

 

"모르면 모른다고 해. 이 바보야. 에휴."

 

 곁에 서 있던 그리폰의 타박에도 LRL이라 불리는 이 소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허리춤에 걸치고 있던 튜브를 낑낑-벗어내기 시작했다. 뭔지 몰라도 지금은 해수욕보다 재밌는 걸 찾았다는 생각이 그녀의 직감에 걸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이 소녀뿐만이 아니었던지, 백사장 곳곳에서 여러 여성이 서로 모여서 무언갈 떠들기 시작했다.

 

"배틀로얄이면 한 명만 살아남는 그 멸망 전 게임이지?"

 

"네! 전대장님. 헤헤. 여기서는 그때처럼 아마 서로 죽이지는 않을 걸요?"

 

"에? 그..그 때는 주..죽였어? 진짜로?"

 

"아마 죽였을 겁니다. 참가자들은 전원 바이오로이드로.."

 

"그..그만! 듣고 싶지 않아! 히익-!"

 

'..뭐..뭔가 무서운 건가?'

 

 스카이나이츠 전대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떠드는 것을 귓동냥 삼아 듣던 LRL은 잔뜩 부풀어 올랐던 기대감이 팍 식어 내리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재밌어 보여도 뭔가 무서운 거라면 발을 빼고 싶어지는 것이 소녀의 가녀린 마음, LRL은 재빨리 발목 아래까지 내렸던 튜브를 다시 허리춤 위로 쏙 들어 올렸다.

 그런 그녀의 행동 변화에 그녀를 빤히 내려다 보고 서 있던 그리폰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바보야! 우리가 저런 걸 할 리가 없잖아."

 

"...진짜?"

 

"으휴! 이 답답이."

 

 단기간에 의기소침해진 LRL의 되물음에 그리폰이 무언갈 한마디 더 하려던 사이, 그녀들 앞에 누군가가 새하얀 전단지를 쏙 내밀었다.

 

펄-럭!

 

"자자-참가하고 싶은 분들은 여기 이 전단지를 확인해주세요~"

 

"응? 캐럴.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헤헤. 이런 축제에 내가 빠질 수는 없잖아? 나는 지금 홍보 담당~나중에는 스프리건양이랑 같이 중계할 거야."

 

"저..저기. 나도..아니. 짐에게도 한 장을 다오!"

 

"응~! LRL. 여기!"

 

"헤헤.."

 

"어디. 나도 좀 봐."

 

 새하얀 전단지를 캐럴에게서 건네받은 LRL은 언제 시무룩 해졌냐는 듯 다시금 밝은 미소로 전단지 위에 적힌 문구들을 하나둘 읽어내렸다. 그러는 사이, 거대한 전광판을 여럿 띠운 채 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던 스프리건이 다시 한번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었다.

 

『참가 자격은 개체 등급 A등급 이하! 각 부대 별로 20명 제한 및 3인 스쿼드로 제한! 전투 모듈이 없는 생산 인원은 4인의 스쿼드를 결성할 수 있습니다! 또..또 아! 생산 인원 한정해서 SS랭크 및 S랭크 4인의 참가는 허가되었습니다!』

 

 전단지 위에 적힌 참가룰 중에 하나를 밝은 목소리로 읊는 스프리건, 그런 그녀의 설명에 전단지를 읽어내리던 그리폰은 가볍게 혀를 찼다.

 

"...쳇. 나는 못 참가하네."

 

"응? 왜?"

 

"저번 승급 시술로 내 등급은 이미 S란 말이야."

 

"..아!"

 

"-그런 게 어딨어!"

 

"맞아요! 여기 있는 인원 대부분은 S랭크 이상이란 말이에요!"

 

 스프리건이 말한 룰에 적용되는 인원들이 한 둘이 아니었는지. 백사장 곳곳에서 환호 대신에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하자 무대 위에 서 있던 스프리건의 얼굴에 쓴웃음이 걸렸다. 하지만 반대로 고개를 끄덕이는 자들 역시 존재했다.

 

"우리 생산 인원들은 대부분 A랭크 이하니까..승산이 있어!"

 

"응응! 전투 모듈은 없지만 그래도 4인 스쿼드면 어떻게든.."

 

"그러고 보니 우리 쪽에 S랭크 이상 4인은 참가 가능이라고 했잖아. 그거..혹시?"

 

 뭔가 자기들끼리 아는 것이 있는지. 각자 무언갈 떠들기 시작하는 생산 인원들을 빤히 바라보던 LRL은 순간 무언가가 퍼뜩 떠올랐다는 것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이윽고 그녀는 드러난 한쪽 눈을 글썽이며 제 곁에 서 있는 그리폰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그리폰!"

 

"응? 뭔데?"

 

"그...그럼 나 누구랑 같이하면 되는 거야?"

 

"...아."

 

 스프리건이 말하길 3인 스쿼드까지는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 작은 소녀에게는 그렇게 많은 동료가 없었다. 그나마 같이 스쿼드를 짤 친구들이라고 한다면 제 곁에 있는 그리폰이나 체구가 비슷한 더치걸과 아쿠아, 그리고 산에 끌려간 알비스 정도지만.

 

"꼬맹이들이랑 같이 하면 되는 거 아니야?"

 

"하..하지만. 걔들도 다른 사람들이랑 스쿼드를 짜면.."

 

"가서 물어봐. 아마 걔들도 너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잖아."

 

"..."

 

 LRL이 아무리 작은 소녀라 할 지라도 알 건 안다. 스카이 나이츠 대원들이 떠드는 걸 들어보니 전투를 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나마 자신 중에 전투에 특화되어있는 알비스마저 훈련 탓에 자리를 비운 지금, LRL과 비슷한 체구의 소녀들이 모여 봐야 어떻게 이기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자길 넣어줄 무리가 따로 있을까. LRL은 최대한 자신의 작은 머리를 열심히 굴리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 무대에서 모두의 야유를 한 몸에 받던 스프리건이 분위기를 전환 시킬 겸 이번에는 승리 조건을 외치기 시작했다.

 

『룰은 간단-! 현재 이 섬 어딘가에 있을 사령관님과 라붕이 대장님! 이 두 분 중 각각 한 분만 잡아도 승리!』

 

"...그 바보 인간! 또또!"

 

"헤헷. 권속이 벌인 일이구나."

 

 스프리건의 입에서 사령관이라는 단어가 터져 나오자 백사장 인원의 절반이 꺄르륵 웃어대기 시작했다. 사령관이 또 이상한 걸 주최했구나, 역시 사령관님이다. 이런 소리가 백사장 위에 만연한 가운데 스프리건의 머리 위에 떠 있던 거대한 스크린에 사령관이 아닌 다른 남성의 얼굴이 포착되었다.

 

삐-익!

 

"어? 저 인간. 여기 배속 받은 그.."

 

"-심판자다!"

 

"...어. 그래."

 

 화면 너머로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남성, 일명 라붕이 작전관. 어제 본대 인원들이 모여 있던 연설장의 한구석에서 다른 지휘관들과 티타임을 나누던 중이었는지 화들짝 놀란 모양새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남성의 등장에 이번에는 생산 인원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하하! 대장이다! 대장!"

 

"대장님 얼굴 봐봐! 진짜 당황했나 봐!"

 

"우릴 여기다 던져둔 천벌이다! 이 짜샤! 덤으로 아침에 날 무시한 것도 포함이야!"

 

"어머. 또 병사들 잡으러 간 줄 알았더니. 후후. 다른 커맨더들과 티타임이라도 하는 중이었나 보네요."

 

 라붕이 작전관의 등장에 꺅꺅거리는 더치걸들과 그를 향해 중지를 세우는 엘프, 그리고 그를 바라보면 싱긋이 웃고 서 있는 오드리까지. 모두가 라붕이 작전관의 등장을 열렬히 환호하던 사이, 스프리건은 환호성에 힘입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사령관님은 이미 섬 어딘가에 모습을 숨긴 상태! 라붕이 대장님은~! 얼른 지금 자리를 떠주시길 바랄게요!』

 

"잠깐만! 함장! 우리도 전원 S랭크 이상이잖아?!"

 

"...아. 그러면 저희도 참가 불가네요."

 

"에이-! 아깝다! 대장이랑 놀 좋은 기회인 줄 알았는데."

 

"..."

 

 라붕이 작전관의 모습이 스크린에서 사라지자 생산 인원들은 저마다 옹기종기 모여 무언갈 떠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트럭 무대 위에 서 있던 스프리건은 재빨리 다음 대회 룰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회 시작까지 앞으로 30분! 종료 시각은 오후 4시! 그 사이 동안에 사령관님 혹은 라붕이 대장님을 잡은 분들께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저마다 다른 상품을 지급해드립니다!』

 

"상품도 걸려 있어? 하긴. 그 바보가.."

 

『사령관님을 잡은 우승자에게는! 오우! 이럴 수가! 놀랍게도 내일 사령관님과 오붓한 오후 데이트권이 지급됩니다!』

 

"-이 바보 멍청이가아아!"

 

"그럴 수가! 그럼 참여 못 하는 인원에게는 사령관님과 데이트도 못 한다는 소리잖아!"

 

"이 바보 주인님! 저런 걸 함부로 내걸면 어쩌자는 겁니까!"

 

 아까보다 한층 더 강한 불만이 백사장 위에서 터져 나오는 가운데, 스프리건은 식은땀을 닦아내기 보다는 뭔가 좀 더 관심을 돌릴 만한 이야기를 하는 편으로 가야겠다는 심산으로 다음으로 준비한 상품을 그녀들에게, 정확히는 별다른 호응이 없는 생산 인원들에게 내던졌다.

 

『그리고! 라붕이 대장님을 잡으신 분에게는-무려! 라붕이 대장님의 신체 교체 시 연령을 선택할 권한이 주어집니다!』

 

"...대장이 저런 걸 허락할 리가 없는데?"

 

"재밌어 보이는데. 저건."

 

"예쓰! 그 바보 대장! 내가 이겨서 아주 꼬맹이로 만들어 주지! 어때?! 다크 엘븐! 너도 하자!"

 

"...꼬마 대장. 응. 해보자."

 

"대장의 연령을 선택할 수 있다니. 음. 저도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네요."

 

 본대 인원들의 삼삼한 반응과 달리 이번에도 자신들끼리 무언갈 단합하기 시작하는 생산 인원들. 그런 그녀들의 모습에 LRL은 무언갈 결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짐은 저쪽 인원들과 팀을 꾸리겠노라!"

 

"뭐? 너 방금까지 저기 있는 애들이랑 못 섞여서 울상이었잖아."

 

"그..그건!"

 

 생산 인원들과 백사장을 함께 쓰게 되었다 한들, 그녀들 사이에는 뭔가 벽이라는 것이 있었다. 같은 소속이지만 서로 다른 곳에 근무했던 탓일까. 서로가 서로에게 어색한 바람이 불고 있던 와중이었기에 생산 인원이 백사장의 반, 본대 인원이 백사장의 나머지 반을 이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쩐지 오늘만큼은 저쪽 인원들과 함께 놀고 싶다. LRL은 순수한 마음으로 그 어색함이라는 이름의 벽을 부수고자 들었다. 그때, 누군가 모래 위를 사박사박 밟아가며 잔뜩 움츠린 LRL의 곁으로 걸어와 말을 걸었다.

 

사박-! 사박!

 

“저기..헤헤..”

 

“-읏!”

 

 본대에서 마주치는 더치걸보다 조금 더 통통한 감이 있는 생산 인원 쪽의 더치걸이 머쓱한 웃음과 함께 걸어와 말을 걸자 LRL의 어깨가 꽁꽁 굳어버렸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어깨 위를 그리폰은 가볍게 두들겨 주며 가벼운 목소리로 그녀의 등을 밀었다.

 

“...뭐야. 저쪽에서 일부러 와 줬네. 어서 가 봐. 바-보. 킥킥.”

 

“으..응.”

 

 뜻하지 않게 바라던 상황이 와서 그런 걸까. LRL은 평소보다 배로 굳어진 얼굴로 여전히 뒷머리를 긁적이는 더치걸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지..짐은 사이클롮-! 으갹!”

 

“혀 씹은 거야? 괘..괜찮아?”

 

“에엑...”

 

“...멍청이. 으휴..”

 

 첫 만남이라는 귀중한 기회를 혀 씹는 것으로 넘기다니, 그리폰은 여전히 믿음직스럽지 못한 칠칠이라는 생각과 함께 울상을 짓는 LRL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때, 여태껏 무대 위에서 뭔갈 떠들어 대던 스프리건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간질였다.

 

『그럼 이제부터-어? 잠깐만요. 네. 네네. 네. 네?』

 

“...? 뭐야?”

 

 무대의 아래쪽에서 무슨 소란이 있는지 스프리건은 뭔갈 말하다 말고 고개를 숙여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길래 떠들다 만대?”

 

“크..크흠! 다시 한번 짐이 누구인지 밝히겠노라! 이 몸은 진조-!”

 

“네가 그 유명한 본대의 LRL이지? 커뮤니티에서 많이 들었어. 헤헤. 이렇게 보니까 반갑네.”

 

“에-? 나..날 아니 짐을 아느냐?”

 

“응응. 네가 사이클롭스 프린세스? 응. 우리 건물 지하에 있는 서적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하고 다닌다고 해서.”

 

“-여기에 서..서고가 있느냐?!”

 

“응. 다음에 같이 갈래? 거기 가면 영상 자료도 있고 뭐 많아. 헤헤.”

 

“응응! 갈래! 꼭 갈래!”

 

“...멍청아! 우선은 같이 파티하자고 해!”

 

 보물을 발견한 아이처럼 들뜬 LRL의 모습 탓에 그리폰의 입가에 싱긋이 미소가 생겨났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이들의 순수한 면모는 어른이 따라가기 어려운 것인가, 하고 그리폰이 웃고 서 있을 때-

 

『네..네네. 네?! 이걸 특상품으로요?!』

 

“...? 뭐야?”

 

『여..여러분! 특종! 특종! 아..아니! 특상품이 들어왔습니다!』

 

“? 특상품?”

 

-음? 또 뭐가 있는 걸까요?

 

“그러게. 대체 또 뭘 준비한 거야? 그 바보는.”

 

-사령관님이 이러시는 게 한두 번도 아니긴 합니다만! 저로서는 심심할 때가 없어서 좋군요!

 

 뭔가 이상한 목소리가 계속해서 자신의 귓가를 간질이는 줄도 모르고 그리폰은 뭔가 금광을 발견한 사람처럼 손을 덜덜 떨어대는 스프리건을 노려다 보았다. 그리고 덜덜 떠는 스프리건의 손에는-

 

『사령관님과 라붕이 대장님 둘 모두를 잡은 분께는! 이..이! 출처 불명의 반지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아아!』

 

“-하아아아아?!”

 

“바..바바바반지?! 잠..짬깐!! 그거 어디서 난 거야?!”

 

“주..주인님의 반지. 주인님의 반지라니!”

 

“아아악! 안 돼! 룰 때문에 반지를 놓치다니! 이건 사기잖아아아아!”

 

 특상품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탄식의 향연, 하지만 그 혼돈의 도가니 속에서 순수하기 짝이 없는 두 소녀와 한 명의 로봇은 서로 손을 맞잡고 섰다.

 

-어이쿠! 이것 참! 놀랄 노자로군요! 사령관님이 뭔갈 큰 걸 준비하신 것 같군요. 이거 궁금해서 더는 안 되겠습니다! 아가씨들! 저도 그 모험에 함께 해도 되겠습니까?

 

“에? 저 로봇 아저씨는 누구야? 아는 사람이야?”

 

“그는 괜찮다! 헤헤!”

 

“음..뭐. 나도 재밌어 보이니까 괜찮아. 어차피 본대 사람들이랑 놀면 재밌을 거 같아서 이쪽으로 온 거니까. 이곳 지리는 잘 모르지? 내가 안내해줄게.”

 

“응응! 고마워! 히히!”

 

-고맙습니다~! 여기 분들은 모두 밝고 해맑군요! 어이쿠? 똑같은 동의어였을까요? 아무렴 어떨까요. 좋은 게 좋은 거면 더 좋은 것이죠!

 

 그렇게 갑작스러운 반지의 등장으로 인해 시끌벅적한 백사장의 위에서 두 명의 소녀와 한 대의 로봇으로 이루어진 이색적인 파티가 하나 결성되었다.

 

144) 

 

『이름하여-! 제1회! 배-틀 로얄! 인 요안나 아일랜드-를! 개최하겠습니다!』

 

쏴-아아아! 

 

"...후." 

 

 저 멀리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목소리와 함께 세차게 불어오는 산들바람, 리리스는 그 산들바람에 머리카락을 온전히 맡긴 채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서 있었다.

 하지만 분명 눈을 감고 있을진데, 그녀의 손가락에 걸린 두 정의 권총은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방아쇠에 걸린 그녀의 검지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회전하기 시작했다. 

 

휘릭-! 휘리릭! 

 

찰-칵! 찰칵! 

 

 수차례 공중에서 걸쇠가 여닫기를 반복하던 사이 어느새 두 정의 권총은 이내 그녀의 팔이 이동함에 따라 눈을 감고 서 있는 리리스의 얼굴 앞에 도달했다. 

 

휘리릭-! 

 

철-컥! 

 

"...후우!" 

 

 그리고 자신의 가슴 앞에 권총들의 걸쇠와 양팔이 십자로 마주보고 서자 그제야 리리스는 감았던 두 눈을 천천히 뜨기 시작했다.

 

"...좋아요. 컨디션은 최고네요." 

 

 아무도 없는 한적한 비축창고 앞의 공터, 얼떨결에 이곳에 정착한 블랙 리리스가 과거의 승리 포즈를 되새기던 중. 그 광경을 멀찍이서 지켜보던 그녀의 동기가 한심하다는 눈초리와 함께 그녀의 등에 대고 말을 걸어왔다. 

 

"..무얼 그리 벌써 어깨에 힘을 주고 있사옵니까? 방금까지 모든 걸 포기하듯 말하던 아가씨가." 

 

"므...뭐뭣! 그럴 때도 있는 법이죠!" 

 

"...후우. 소첩은 또 어쩌다 이런 일에 휘말려서 부군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온지"

 

 공터 한구석에 놓인 간이 의자에 앉아 귀찮은 일에 얽혔다는 것처럼 긴 한숨을 내쉬는 소완, 그런 그녀의 중얼거림에 블랙 리리스의 귀가 쫑긋였다. 

 

"부..부군?! 잠깐만요! 당신 아직 주인님께 반지도 안 받았으면서..!" 

 

"받았사옵니다. 그것도 꽤 오래전에." 

 

"그건 저쪽에서잖아요!" 

 

 소완은 리리스의 항의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의 왼손을 눈앞에 펼치곤 가느다란 자신의 검지를 바라보았다. 

 

"...저쪽이든 이쪽이든. 부군은 부군이옵니다." 

 

 아무것도 없는 왼 검지였으나 그곳을 바라보는 소완의 눈은 무척이나 그리운 것을 떠올리는 듯 애절해 보이기까지 했다. 갑작스러운 소완의 변화에 리리스는 으르렁거리던 것을 멈추곤 팔짱을 끼곤 볼멘소리를 내었다. 

 

"...흥. 반지를 받은 건 너뿐만이 아니거든? 나도.." 

 

"후후. 그 말썽꾸러기도 부군께 간택을 받았사옵니다." 

 

 리리스의 불만 섞인 목소리에 소완은 아까의 그윽한 눈빛을 감추곤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섰다. 일어서는 소완의 허리춤에는 그녀의 메인 장비인 중식도 두 자루가 햇빛 아래서 번쩍이고 있었다. 

 

"헌데 소첩은 사격전을 못 하옵니다만. 이런 전장에서 그대만 너무 메리트가.." 

 

"..흥. 내가 그렇게 치사한 년 같은 줄 알고. 자, 여기." 

 

휙-! 

 

"?" 

 

갑자기 리리스가 자신을 향해 무언갈 홱 내던지자 소완은 반사적으로 그 물건을 허공에서 낚아채었다. 

 

"이건..칼집이옵니까?" 

 

 무색의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진 멋없는 물건, 하지만 생김새가 왠지 자신의 중식도에 딱 들어맞는 물건이라 생각한 소완은 칼집의 이곳저곳을 둘러 보았다. 

 

"뭐, 칼집 사이로 페인트가 새어 나오도록 해놓은 거야. 공격 면적은 좁겠지만 네 실력이면 커버되겠지." 

 

"..후후. 그 사고뭉치 것도 준비되어 있사옵니까?" 

 

"그 바보 멍청이. 기껏 준비해둔 물건이 쓸모없어지게. 걔껀 언니 걱정만 하는 동생들한테 넘겼어. 어찌저찌 넘어가면 다행이네." 

 

"나름 준비는 확실히 했사옵니다?" 

 

"아무렴. 이건 주인님과 우리가 처음 맞이하는 이벤트니까. 소홀히 할 리가 없잖아." 

 

 흙먼지가 풀풀 휘날리는 공터에서 블랙 리리스와 소완이 한참을 떠들고 서 있던 사이, 그녀들과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비축창고 안에서 세 여성이 걸어 나왔다. 

 

"언니! 저희 준비 끝났어요!" 

 

 공터로 걸어오는 세 여성 중 선두에서 걸어오는 소녀의 밝은 외침에 블랙 리리스는 언제 인상을 찌푸렸냐는 듯 금세 밝은 얼굴로 돌아섰다. 

 

"어머. 안드바리양. 실키양들. 모두. 괜히 휘말리게 해서 미안해요." 

 

 블랙 리리스의 가벼운 사죄에 실키들은 밝게 웃으며 저마다의 알통을 과시하며 으쓱거렸다. 

 

"아뇨? 전혀요! 맨날 하는 물자 점검보다는 재밌어 보이는걸요!" 

 

"극기훈련에서는 저희가 할 게 없었는데. 이거라면 저희도 뭔갈 할 수 있잖아요!" 

 

"..후후. 준비한 보람이 있네요." 

 

 들뜨다 못해 밝기까지 한 실키들의 우렁찬 대답에 블랙 리리스 역시 밝은 웃음으로 회답해주었다. 그리고 실키들을 뒤이어 안드바리 역시 밝은 듯 혹은 비장한 얼굴로 작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이번 이벤트에는 저희 대장님이 걸려 계신걸요! 작지만 저도 힘을 보탤게요!" 

 

"어머. 안드바리양이라면 제게는 큰 힘이랍니다? 후후." 

 

"헤헤.." 

 

 블랙 리리스가 여기서 머문 지도 어언 한 달, 그녀와 창고 인원들의 유대 관계는 예전보다 훨씬 끈끈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그녀에게만 해당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삐-빅! 삑! 삐-빅! 삑-! 삑-! 

 

"응? 이건.." 

 

"..소첩의 것이옵니다." 

 

 창고 인원들과 블랙 리리스가 서로 하하호호하는 장면을 멀찍이서 바라보고 있던 소완은 요란한 소리를 내는 단말기를 시큰둥한 얼굴로 집어 들었다. 

 

"...무슨 일이옵니까." 

 

-주방장님! 백사장에서 다 들었어! 

 

"...? 무엇을 말이옵니까?" 

 

-그..그! 배틀 로얄에 참가하시는 거죠? 저희도 힘을 보탤게요! 

 

"..." 

 

 단말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들에 소완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녀와 반대로 안드바리의 머리를 쓰다듬던 리리스의 입가에는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어머. 솔로로 참가하는 줄 알았는데. 용케 스쿼드를 짰네?" 

 

"..하아. 알겠사옵니다. 주방에 가 있으시옵소서." 

 

-네에~! 우리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을게! 

 

 단말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아우로라의 밝은 목소리를 들은 소완이 통신을 끊으려던 찰나, 어느새 소완의 곁으로 다가온 리리스가 단말기에 대고 입을 열었다. 

 

"뭣..얼굴 저리 치우십시오." 

 

"아우로라양?" 

 

 질색하는 소완의 타박에도 리리스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이어갔다. 

 

-어? 리리스씨 목소리네! 헤헷. 주방장님이랑 같이 계셨구나? 

 

"네. 후후. 혹시 다프네양들은 뭐하고 계신가요?" 

 

-다프네들이라면 반반 나뉘어서 중앙건물 쪽이랑 산 쪽으로 달려가던데? 

 

"..후후. 잘 전달 되었나 보네요. 고마워요." 

 

-응응! 

 

 하나 남은 걱정거리마저 사라지고 나니 리리스는 그제야 속이 후련하다는 얼굴로 소완에게서 물러섰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소완은 여전히 눈살을 찌푸린 상태였지만. 

 

"...후. 그녀가 참전하면 우리가 더 불리한 것이온데." 

 

“이번 이벤트는 뭐, 기획 단계에서부터 망했잖아? 여기서 더 망해봐야 뭐 별다를 게 있겠어?”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사옵니다.”

 

 속 시원한 듯이 말하는 리리스의 모습에 소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둘이 떠드는 사이, 섬 전체를 뒤덮은 대형 스크린 위로 그녀들이 익히 봐왔던 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령관님은 이미 섬 어딘가에 모습을 숨긴 상태! 라붕이 대장님은~! 얼른 지금 자리를 떠주시길 바랄게요!』

 

“...”

 

 하늘 가득히 떠오른 주인의 얼굴에는 당혹스러움, 혹은 분노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소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번만큼은 공동 전선이옵니다. 소첩이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주인의 육신을 노리는 자의 숫자가 적지는 않을 것 같으니.”

 

“...뭐. 좋아. 너랑 싸우는 것보다 주인님을 지키는 게 더 우선이니까.”

 

 소완의 제안에 리리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창고에서 이미 실용성이 없다는 것을 이야기였지만, 그녀들이 그리 순순히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그녀들뿐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라붕이 대장님을 잡으신 분에게는-무려! 라붕이 대장님의 신체 교체 시 연령을 선택할 권한이 주어집니다!』

 

“장난기 많은 애들이라면 대장을 일부러 곤란하게 만들 구상 정도는 할 거예요.”

 

“대장님을 먼저 발견해서 보호! 그리고 승리로 이끄는 게 저희의 본 목적이죠? 언니!”

 

“네~! 그렇답니다! 정말. 이렇게 우군이 든든해서는 질 생각도 안 드네요!”

 

와-락!

 

“으겍!”

 

 그 순간을 못 참고 안드바리를 품에 안은 채 볼을 비비적대는 리리스의 만행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소완은 그녀들로부터 몸을 돌려세웠다. 이제는 그녀도 걸음을 옮길 시간, 시작까지 앞으로 20여 분밖에 남지 않은 탓에 소완 역시 몸이 바빠졌던 탓이었다.

 

또각-!

 

“...뭐. 그 본대의 리리스인가 하는 아가씨는 애당초 조건상 참전이 불가능하오니. 소첩은 주인을 찾아 주방으로 인도하겠나이다. 그쪽도 그쪽 알아서 행동하십시오.”

 

“네네~! 어련히 하겠사와요~!”

 

 서로 닮은꼴은 지독히도 서로를 싫어한다고 했던가. 본대의 리리스에게 날을 세우던 눈앞의 리리스는 그녀가 조건상 참전이 불가하다는 것에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는지 하이톤으로 대답해왔다.

 하지만 기분이 좋은 이유는 단지 그것만이 아니었는지 리리스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뒷말을 덧붙이려 들었다.

 

“후후-애당초 저희에게는 전투 모듈이 탑재되어 있답니다! 그리고 주인님이 주신..후훗.”

 

“네? 언니, 대장님에게서 뭔갈 받으셨어요?”

 

“아-니요! 주인님은 제게 경호원 뱃지 하나 안 주셨답니다. 안드바리, 다음에 주인님을 만나면 꼭 좀 부탁드려요.”

 

“헤헤..우리로서는 리리스씨가 여길 안 떠나는 게 더 좋은데. 안 그래? 안드바리?”

 

“에-..헤헤...아! 소완 언니!”

 

 자리를 떠나려는 소완의 뒷모습에 리리스의 품에 안겨 있던 안드바리가 다급한 목소리로 그녀를 멈춰 세웠다.

 

“안녕히 가세요! 조금 있다가 봬요!”

 

“...그쪽도 너무 무리하지 마시옵소서. 불리한 일은 거기 있는 주책바가지에게 다 떠넘기는 것이 좋을 것이옵니다.”

 

 안드바리의 상냥한 배웅에 소완의 싸늘한 속눈썹이 살짝이 누그러질 무렵, 그녀들이 예의주시하지 않고 있던 하늘 위에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령관님과 라붕이 대장님 둘 모두를 잡은 분께는! 이..이! 출처 불명의 반지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아아!』

 

“-반지?”

 

 갑작스러운 스프리건의 포효에 안드바리와 실키들의 고개가 하늘로 향해 올라갔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한눈에 봐도 반지 케이스요, 하는 물건이 맞긴 했다. 하지만 저런 물건이 상품으로 올라올 거라는 설명은 듣지 못했던 그녀들이었기에 놀람보다는 당혹감이 앞섰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그녀들의 코앞에서 무언가 흘려들을 수 없는 소음이 터져 나왔다.

 

슈-칵!

 

까-앙!

 

“-에?”

 

 철과 철이 맞부딪히는 소리, 갑작스러운 마찰음에 하늘을 향해 있던 여성들의 고개가 곧장 흙바닥으로 돌아섰다.

 

 그곳에는, 방금까지 소녀를 안고 행복해하던 리리스와 곧장 주방으로 걸어가던 소완이 각자 양손에 무기를 쥔 채 한참의 거리를 두고 서로 대치하고 서 있었다.

 

“어..언니?”

 

“후후후! 저걸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너는 알았어? 주방장? 응?”

 

“...소첩이 알 턱이 있겠사옵니까? 어쩐지 동맹 제안을 그리 쉽게 받아들이더니. 이런 속내가 숨겨져 있었을 줄이야. 후훗. 이거 한 방 먹었사옵니다.”

 

“에? 에? 에?”

 

 쌍권총을 쥔 채 두 눈에 핏발을 세우고 있는 자신의 언니, 그리고 방금까지 느긋하게 서 있던 것과 정반대로 양손에 중식도를 든 채 허리를 낮추고 서 있는 소완까지.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실키들과 안드바리가 멍한 얼굴로 서 있을 때, 리리스가 먼저 권총을 다시 홀스터 안으로 집어넣었다.

 

휘-리릭! 찰-칵!

 

“...보아하니 둘 다 몰랐던 것 같네. 후후.”

 

“지금 소첩 앞에서 무기를 거두는 것이옵니까? 저걸 포기한다는 의사로 받아들이겠사옵니다.”

 

“그럴 땐 먼저 의문형으로 물어보는 게 예의가 아닐까? 응?”

 

“저걸 단숨에 먹을 수만 있다면야. 무엇이 문제이오리까?”

 

 중식도 사이에 연결해둔 쇠밧줄을 잡은 채 붕붕 돌려대는 소완의 모습에 실키들과 안드바리들은 서로를 꼬옥 끌어안은 채 말없이 상황을 주시했다. 방금까지의 훈훈한 분위기는 이미 저 하늘 너머로 보낸 지 오래였다.

 

“...좋아. 아까 말했던 대로 휴전은 휴전이야.” 

 

“호오..”

 

“다만. 게임이 시작되고 나면..알지?”

 

“좋사옵니다. 후훗. 그렇게 하지요.”

 

휘-릭!

 

 서로 뭘 알았다는 건지. 소완은 리리스의 제안에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빙글빙글 돌리던 중식도 두 자루를 금세 허리 뒤로 감추었다. 그리고는 아까보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아니. 매우 빠른 걸음으로 비축창고 앞에서 모습마저 감추었다.

 

“-후후후! 아아-저걸..이곳에서 이렇게 일찍 보게 될 줄이야! 아아-!”

 

 소완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기는 한 건지, 방금까지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하던 언니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웃기 시작하니 안드바리와 실키들의 안색은 여전히 새하얗게 물든 채였다.

 

“주인님! 아아-주인님! 착한 리리스가-!”

 

“어..언니.”

 

“-어머!”

 

 가슴의 끝자락에서 용기를 쥐어 짜낸 안드바리의 물음에 리리스는 홱-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른 속도로 고개를 그녀들을 향해 돌려세웠다. 그 모습이 너무나 요사스러워 실키들은 서로를 꼬옥 끌어안은 채 덜덜 떨어댈 뿐이었다.

 

“안드바리양! 실키양들! 왜 그렇게 다들 꽁꽁 얼어붙어 있을까요? 후후후훗!”

 

“어..언니. 저희들..대..대장님 지키러 가는 거 맞죠?”

 

“-물론이죠! 제 주인님! 아니, 라붕이 대장님을 지키는 게 제 사명이자 임무인걸요? 후훗! 아무리 기뻐도..그 사실은 잊지 않았답니다?”

 

“히..에에엑...누..눈이 무서워..”

 

“리..리리스씨. 귀신 들린 것 같아아..”

 

 분명 평소처럼 눈도, 입도 웃고 있다. 하지만 왜인지 모를 귀기가 스며 나오는 듯한 그녀의 웃음소리에 실키들과 안드바리는 오들오들 떨어댈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이 그러든 말든, 리리스는 그 어느 때보다 황홀한 얼굴로 하늘에 걸린 대형 스크린 속의 반지 곽을 바라보며 감탄을 자아내었다.

 

“-주인님! 이 착한 리리스는-오늘이 너무나 행복하답니다! 주인님께 다시 저걸 받을 날이 이리도 일찍 올 줄이야!”

 

“우..우리 괜히 끼어든 거 아닐까?”

 

“착한 리리스가 될게요! 주인님! 주인님과 저를 방해하는 모든 장애물을 넘어서! 저 리리스가! 이번에야말로 주인님의 진정한 첫 번째가 되어드릴게요! 기다려주세요! 주인님!”

 

“어..어언니..” 

 

“후후..후후훗! 아-하하핫!”

 

 산 중턱에서 울려 퍼지는 광기가 가득 묻힌 웃음소리, 그 소리는 한동안 산 중턱의 모든 동식물의 소리를 지워 버리기 충분할 정도로 길고-아주 크게 울려 퍼졌다.

 

145)

 

철-컥! 철컥!

 

 휑한 바람만 흘러들어오는 어두운 공장의 내부, 모두가 자리를 떠난 지금. 그곳에 남아 있는 인원은 단 둘뿐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색으로 도배한 고양이 소녀는 자신의 눈앞에서 새로운 총기를 점검하는 제 언니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언니. 저희는 참가 자격에서 제외일 텐데요?”

 

“어머? 우리가?”

 

“닥터양이 미리 설명했잖아요. S랭크 이상은 참가 불가. 그런데 언니와 저는..”

 

“SS랭크지. 응.”

 

“..그런데 그걸 아시면서 왜 지금 그 페인트볼용 권총을 분해하고 계세요?”

 

“...음. 비밀? 후훗.”

 

 수차례 확인차 물어보는 자신의 질문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새로운 총기의 점검을 지속하는 언니의 모습에 페로는 후-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언니가 룰을 어기는 등의 무뢰배와 같은 짓을 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음..무뢰배라. 후훗. 그런 역할도 꽤 재밌을 거 같지 않니?”

 

“-언니!”

 

 담담한 어조를 이어가던 여동생의 입에서 앙칼진 외침이 터져 나오자 그제야 그녀에게서 등을 돌리고 서 있던 블랙 리리스는 자신을 부르는 동생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눈살을 찌푸리는 동생과 달리, 그녀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응. 듣고 있단다. 그렇게 안 불러도 돼.”

 

“듣고 있으면 대답 좀 깔끔하게 해주세요. 평소에는 이런 일에 잘 참견도 안 하시던 언니가 갑자기 왜..”

 

“...갑자기 왜라..응. 맞네. 네 말처럼 나는 이런 일에 관해서는 대부분 웃어넘겼지. 응.”

 

 보통 이런 사건을 일으키는 주체는 자신의 주인이다. 그렇기에 블랙 리리스는 그의 의사를 존중해 그가 무슨 일을 일으키건 묵묵히 제 임무를 수행해왔었다. 오늘 이 섬에서 벌어질 일들 역시 사실 제 주인이 일으키는 것, 그렇기에 그저 웃고 넘겨야 했으나..

 

“..페로. 너는 어제 오늘 만난 이곳 리리스가 어떻게 보였니?”

 

“여기 리리스씨요?”

 

“응. 그녀. 어제는 로비에서, 오늘은 이곳에서 봤잖니.”

 

찰-칵!

 

 분해했던 페인트 권총을 다시 재조립하는 데까지 성공한 블랙 리리스는 비어있는 권총의 탄창 자리에 탄창을 집어넣었다. 물론 페인트탄이 한가득 든 것으로.

 

“...후우. 전 언니가 왜 그렇게까지 그녀를 경계하는지 모르겠네요.”

 

“네 육감에는 뭔가 잡히지 않았니?”

 

“..언니가 그녈 도발했을 때,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끼긴 했지만. 그건 언니들이니까 가능하다고 전 생각해요.”

 

“도발이라니. 내가 그런 짓을 언제 했다고.”

 

“....언니. 지금이라도 그만두세요. 이 이상 주인님이 계획하신 일에 끼어들어선..”

 

휘-릭!

 

 페로의 사근사근한 재촉에도 불구하고 블랙 리리스는 무덤덤히 제 홀스터에 페인트 탄이 한가득 담긴 권총 두 자루를 집어넣었다. 그 광경에 페로는 고개를 가만히 가로저을 뿐이었다.

 

“...뭘 하려고 가시는 건가요? 언니.”

 

또각-! 또각!

 

 자신에게 마지막이라는 듯 물어오는 여동생의 물음에도 블랙 리리스는 말없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녀를 지나쳐 밝은 햇살이 내리쬐는 총기 생산 공장의 바깥으로 걸어나갔다.

 

또각-! 또각!

 

“-으음! 여기 날씨는 정말 좋네! 페로. 나중에 우리끼리 피크닉이라도 갈까?”

 

“..지금 가요. 언니.”

 

 하늘을 향해 양팔을 쭉 뻗어 올리는 언니의 모습이 너무나 여유로워 보인 탓일까, 페로는 후-하고 한숨을 내쉬고는 힘이 쭉 빠진 목소리로 그녀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대답을 들은 블랙 리리스는 웃음소리를 내며 그녀에게 다시 물음을 내던졌다.

 

“후훗. 어지간히 내가 저 전장에 끼어드는 게 싫은가 보구나?”

 

“괜히 언니가 여기 인원들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잔뜩 흥분하던 처음과 달리 냉정함을 되찾은 동생의 경고 아닌 경고에 블랙 리리스는 그제야 동생에게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응. 알겠어. 나도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

 

“저희는 내일이면 이 섬을 떠나요. 그건 알고 있으시죠?”

 

“아무렴. 그냥 산책만 하고 올 거란다? 너무 걱정하지 마. 그럼 다녀올게?”

 

“...네. 언니. 다녀오세요.”

 

 평소처럼 자신에게 허리를 꾸벅 숙이는 동생의 배웅을 뒤로 한 채, 블랙 리리스는 단숨에 공장 건물의 벽면 이곳저곳을 박차고선 하늘 위로 붕-하고 날아올랐다. 마치 한 마리의 벌새가 날아다니듯 몸 주변에 바람을 일으키며 공장 지대 지붕 위를 내달리는 그녀의 모습은 영화 속 경호원보다는 암살자에 가까웠다.

 

타-다다닥! 타-닥!

 

“..너무 걱정하지 마렴. 페로. 나는 그 라붕이 대장님이라는 사람을 해치려는 게 아니니까.”

 

타-다닥! 타-닥!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저는..아니 저희는. 저희의 주인님을 만나러 여기까지 온 것뿐이랍니다?’

 

“...나는 그저. 주인님을 정체 모를 무뢰배들로부터 지키러 가는 거란다!”

 

타-악! 파스슥-!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자신과 똑 닮은 도플갱어와의 첫 만남을 되새기며, 블랙 리리스는 단숨에 공장 지대를 벗어나 우거진 수풀 사이로 몸을 숨겼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는 그저 선선한 바닷바람만이 넘실거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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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나도 천아줘요. 장화줘요. 장화 드랍이라면서요. 어딨어요? 나도 행복하고 싶어요. 장화 나올 때까지 무기한 연중 때려버릴 거야. 아니야. 얼른 나와 줘. 내가 잘못했어. 자원 다 꼴박했어. 미안해. 얼른 와줘. 씨발련아.


장화 먹는 게 세구빛 18각보다 빡세노.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