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컷!"


천아의 단호한 사인에 장화의 입이 딱 붙었다. "힉...!"하고 어깨를 떨며 화들짝 놀란 장화는, 슬슬 열이 뻗쳐오르려는 천아의 얼굴을 조마조마한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야! 진짜 답답해 뒤지겠네! 똑바로 안 할래? 시간 얼마 안 남은 거 알잖아!"

"...이걸 왜 해야 하는건지 아직도 납득이 안 가는데."


애써 시선을 피하며 반항적으로 꿍얼거리는 장화를 보고 천아는 벅차오르는 화에 숨을 쓰읍 삼켰다. 하지만, 이내 속으로 삭이고 천천히 호흡을 내뱉었다. 잘 참았어, 천아야. 속으로 되뇌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자아를 찾는 여정이 아니었더라면 이미 바닥난 천아의 인내심이 장화의 미간에 나이프를 두세 자루 정도 선사해 주었을 것이다. 손등에 휘감겨오는 백아의 보드라운 비늘을 느끼며 천아는 최대한 조곤조곤하게 말했다.


"...야. 내가 핫팩이에 관한 일에 있어서 구라 친 적 있냐?"

"...없지."

"그럼 그냥 닥치고 언니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요, 장화 양? 그 좋은 연산 모듈 가지고도 달고 있는 건 왜 빡통일까? 빡통이 아니면 왜 말귀를 못 알아 처먹으실까?"

"벼, 별 말같잖은 소리니까 그렇지.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괜히 어색해지면 그땐 니가 책임질 거야? 그리고..."


장화의 손에 들린 임시 인식증이 반짝 빛났다. 그 플라스틱 카드는 계속 손을 타다 보니 가장자리가 조금 마모됐지만, 어찌나 애지중지하는지 겉면은 손때나 지문 하나 없이 여전히 빤들빤들했다.


"이, 이건... 내가 처음으로 받은... 소중한 물건이란 말이야. 마, 만약에 걔가 준 물건을 이런 식으로 이용했다고... 나에게 실망하기라도 하면..."


홱!


정신이 팔린 틈을 타서 장화의 손에 있던 인식증이 일순 천아의 손으로 넘어갔다. 눈 한번 깜빡이는 찰나에 낚아채는 동작이 끝나니, 집중하지 않았던 장화는 속수무책으로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그르렁거리는 장화의 앞에 천아가 대놓고 조롱하듯 카드를 흔들었다.


"처음에 이거 너한테 준 핫팩도 별 생각 없을 텐데. 애초에 외부 인원이면 ID카드 나오기 전까진 임시로 다들 들고 다니는 거잖아? 잃어버렸다고 그 유미한테 부탁하면 투덜거리면서도 5분 만에 재발급 해주기도 하고. 조또 별거 아닌 거에 의미부여 하는 거 너 혼자밖에 없거든?"

"...빨리 안 내놓으면 죽여버린다? 그리고, 네가 뭘 안다고 그래...? 그게 나한테 무슨 의미인지 알기나 해...?"

"몰라, 씨댕아!"


슬슬 흉흉한 눈빛을 뿜어내는 장화의 얼굴에도 아랑곳않고 천아는 그렇게 쏘아붙였다. 기가 차다 못해 짜증이 뚝뚝 묻어나오는 천아의 힐난이 이어졌다.


"떠먹여 주면 뭐 하냐? 받아 처먹지를 못하는데. 온갖 오글거리는 소리는 눈도 깜짝 않고 하면서 대체 이거 하날 못 하겠다는 이유가 뭐야? 니가 그렇게 환장하는 묶는 거나 목 조르는 생지랄보다 효과 직빵일 거라고 몇 번을 말해?"

"뭐? 생지랄? 마지막 경고야. 너 아가리 한번만 더 털면..."


덜컹!


문 쪽에서 들려온 둔탁한 소리에 둘의 언쟁이 잠시 멈췄다. 그리고, 단속적인 노크 소리와 함께 사령관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들어가도 되지, 얘들아?"


휘둥그레지는 둘의 눈. 하지만 베테랑답게 금세 평정을 되찾았다. 지체 없이 둘 사이로 시선이 수도 없이 교환되면서 복잡한 협상이 오갔다. '진짜, 확실하다니까! 내가 틀린 적 있어?' '없지만...' '그럼 싸물고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핫팩 앞에서까지 한따까리 해볼래?' '...'


노크 이후 흐른 시간은 고작 3초. 하지만 둘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합의점에 이르기까지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천아는 카드를 장화의 손에 샥 패스하며 약삭빠르게 대답했다. 장화는 미덥지 못한 표정으로 마침내 돌려받은 인식증을 소중히 감싸쥐었다.


"응, 핫팩. 들어와~"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온 사령관이 본 것은...


"어... 둘이 뭐해?"


침대 위에 누워서 마치 신원을 숨기려는 듯이 얼굴 윗부분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자신이 예전에 주었던 인식증을 가슴팍에 얹고 있는 장화와 천아였다.


천아는 살짝 주저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 자기소개 먼저 할게요... 엠프레시스 하운드 소속, 천아입니다. 장화랑은... 아는 오빠랑 자주 같이 자도 괜찮은 사이구요..."

"...!"


심상찮은 몸의 떨림에 천아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하지만, 지금은 억누를 때였다. 더 큰 즐거움을 위해서. 미소를 지우고, 천아의 말은 천연덕스러우면서도 뻔뻔하게 이어졌다.


"키는 164센치에... 몸무게는 마지막으로 쟀을 때는 46킬로그램 왔다갔다 했는데... 요즘 그 오빠 때문인지 가슴이 좀 커져서요..."


사령관은 혀 위에 침이 고이는 것을 느꼈다.


"특기는 암살이고... 잠자리 취향은 천천히 오랫동안, 한 여섯 시간 동안 꼭 안은 채로 떨어지지 않고 계속 하는 거예요. 근데... 요즘은 오빠가 사정없이 빠른 페이스로 푹푹 박아주는 것도 가르쳐 줘서... 점점 익숙해지니까 좋아하게 됐어요..."


결국, 어떤 방식이건 다 좋아한다는 뜻 아닌가? 사령관의 마음에 슬몃 들었던 음탕한 의문이 무언가를 일깨워가고 있었다.


"원래는 일신상의 이유로 혼전순결을 유지하려고 했는데... 헤헷, 오빠랑 하는 야한 짓이 너무 좋아서 그냥 깨버렸어요."


천아는 혀를 빼꼼 내밀면서 귀엽게 웃었다. 앙증맞으면서도 응큼한 선언이었다.


그리고, 다음에 뒤따르는 것은...


"저, 저도... 엠프레시스 하운드 소속... 장화예요... 처, 천아랑은... 어쩌다 보니 사랑하는 오빠를 공유하게 된 사이구요..."


서투르고 조금 더듬거리면서도 꾸준하게 또박또박 말은 이어졌다. 


"키는 156센치에... 몸무게는... 천아보다 조금 무거운... 4...9... 킬로그램... 입니다..."


부끄러움을 참는 언동과 어색함. 하지만, 이 상황에 더없이 어울렸다.


"특기는... 공장이나 중요 시설 사보타주고요... 잠자리 취향은... 굵은 자지에 기절할 정도로 뒤로 푹푹 박히는 거예요... 뒤로 박히면 깊이 닿으니까... 근데 요즘은... 꼭 껴안고 느릿하게 하는 것도 배우고 있어서... 개발되니까 기분 좋아서, 사랑하는 오빠의 자지를 깊숙이 넣고 몇 시간이고 안고 있는 것도 정말 좋아해요..."


장화의 입술이 잠시 다물리고, 물결치듯 부르르 떨렸다. 침을 살짝 바르고, 촉촉한 입술이 다시 힘겹게 열렸다.


"저,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오빠에게라면... 어떤 플레이를 당해도 앙앙거리며 보지를 적시는 변태라서... 이 오빠랑 꼭 결혼해서 평생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두 소녀의 음탕하면서도 추잡한 고백, 가슴팍에 얹힌 인식표, 인식표에 박힌 둘의 프로필 사진. 사진 속의 둘은 때묻지 않고 순수하고 단정한 얼굴로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으나, 사진 밖의 둘은 야릇한 침대 위에서 눈가를 급하게 가리고 있었고, 미처 가리지 못해 드러난 얼굴의 아랫부분은 모종의 기대에 찬 음란한 웃음을 띄고 있었다.


정체 모를 배덕감이 사령관의 몸을, 특히 어떤 부위를 휘감았다. 그리고, 곧 침대 위로 세 번째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천아는 예상이 들어맞은 것에 속으로 환호했다. 장화에게 복화술로 그것 보라며, 자신이 들어맞았다는 것을 자랑하려는 그 때, 그림자가 더 몸집을 키우기 시작했다. 


...저 정도로 흥분하는 건 예상에 없었는데?


둘의 얼굴이 행복과 공포로 일그러졌다. 인식증도 곧 말 못할 부끄러운 즙으로 더럽혀져서 못 쓰게 될 자신의 운명을 알아챈 것일까? 자연스럽게 둘의 가슴에서 흘러내려 침대 위로 힘없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