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상처가 어느정도 회복이 된 나는 퇴원을 했다. 그렇다고 아직 완전히 회복이 되지않았기에 휠체어 신세를 면하지는 못 했다.

병원 문앞에는 이터니티가 서있었다. 그녀는 양쪽 치맛자락을 들어올린 뒤 내게 인사를 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도련님."


난 그런 그녀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하면서 천천히 휠체어를 밀었다. 혼자 있고싶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바램과는 달리 그녀는 바퀴에 올린 내 손을 뿌리치고 휠체어를 밀어주었다.


"제가 밀어드리죠."


말려보려했지만 저항군 내에서도 나름 최강자로 꼽히는 이터니티를 이길 수는 없었다.

결국, 난 그녀가 끄는대로 끌려가고있었다. 가는 길목마다 아버지의 사진과 함께 꽃들과 촛불이 놓여져있었다.


아버지가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하고 같이 묻히신다고 하지않았나요?"


적막한 분위기 속에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터니티는 묵묵히 휠체어를 끌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않았다. 별로 밝은 이야기는 아니였기 때문이었다.


단어 선택이 뭔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사과할 생각도 없었다.

그녀는 늘 자신보다 큰 관을 들고다니면서 아버지가 죽으면 자신도 같이 묻히겠다는 소리를 하고 다녔다.


하지만 그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와 같이 있었다. 


"주인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제게 부탁한 것이 있습니다."


"아버지가요..?"


"네..도련님을 끝까지 지켜봐달라는 부탁이 있으셨기에 저는 지금 여기에 있는겁니다.."


그녀의 목소리와 휠체어를 잡은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우직해보이는 그녀 또한 아버지의 죽음은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던 거 같았다.


"그런가요.."


"네. 이제부터 저 이터니티가 도련님이 평온하게 쉬실 때까지 제가 옆에서 지켜드릴겁니다.."


딱히 관심은 없었다. 그녀가 내 옆에 있건말건 무엇을 하건말건 관심따윈 없었다.

그저 아버지와 어머니의 복수만을 생각했다.


"도련님.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녀의 말에 난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평소라면 반가웠어야할 집이었을텐데 지금은 들어가기가 싫었다. 

아니. 들어가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내 바램과는 달리 이터니티는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금방이라도 어머니가 나와 나를 반겨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를 반기는 것은 열려있는 창문 틈사이로 흐르는 찬바람과

캐캐묵은 먼지냄새 뿐이었다. 아무도 집에 오지않았으니 당연한 처사였다.


"도련님.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금방 치워드릴테니깐.."


이터니티는 거실에 나를 혼자 남겨두고 집안을 정리했다.

난 그녀가 정리하는 동안 거실을 둘러보았다. 분명 밝고 따뜻해야할 거실은 이상하리만큼 어둡고 추웠다.


선반 위에 올려져있는 액자가 뒤집혀있는 것을 본 나는 액자를 들어올렸다. 가족사진이었다.

정복차림의 아버지와 하얀색과 검은색이 반반 섞인 옷을 입고계신 어머니. 그리고 둘 사이에 서 해맑게 웃고있는 내 모습이 있었다.


액자를 잠시 내려두고 다른 액자를 들어올렸다. 이번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만이 담겨있는 액자였다.


두분의 왼손약지에는 은색의 반지가 반짝였다. 어머니는 매우 기쁜 표정으로 울고계셨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계셨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랐다.


사진 속의 두분은 정말 행복해보였다. 사진 속의 두분을 쓰다듬을려는 순간 누군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저..도련님..?"


이터니티의 부름에 난 액자를 내려두었다.


"뭐..? 왜..?"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


난 고개를 내밀어 현관을 쳐다보았다. 그 곳에는 마리 이모를 비롯한 지휘관들이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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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거실에 앉아 차를 마시고있으니 어머니와 컴패니언 시리즈 분들과 함께 거실에서 티파티를 즐겼던 것이 다시 떠올랐다.

하지만 그 때랑 너무나도 다른 풍경과 향기에 정신을 차렸다.


"무슨 일로 온거죠?"


지휘관들은 하나둘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마 내게 말하기 껄끄러운 주제인 것 같았다.

마리 이모는 바싹 마른 입술과 목을 차로 한번 축인 다음 입을 열었다.


"도련님께서 말씀하신 그 더치걸 말입니다.."


들고있던 찻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이터니티의 걱정을 뒤로하고 다시 이모의 말에 집중했다.


"시티가드와 함께 모든 병력을 동원해서 찾아보았지만 찾질 못 했습니다."


"뭐..?"


귀를 의심했다. 난 내가 잘못 들은 것이라고 믿고싶었다.

그 많은 인력을 동원했는데 그 작은 바이오로이드 한대를 못 찾는게 말이 되는가?


"걱정하지는마시오..본관들이 반드시 찾을..."


"걱정..?"


들고있던 찻잔을 깨부쉈다. 안에 있던 내용물과 함께 검붉은 피가 거실바닥을 더럽혔다.


"도련님..! 일단 지혈부터.."


이터니티는 피가흐르는 내 손을 붙잡고 걱정을 해주었지만 난 그것을 뿌리쳤다.


"나가."


병원을 나올 때부터 든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혼자있고싶었다.


"도련님.."


"나가라고. 꼴도 보기싫으니깐.."


마리 이모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고 모자를 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 잘 마셨습니다. 그럼 이만 물러나죠.."


다른 지휘관들도 마리 이모와 내 눈치를 한번씩 살피고 그녀를 따라 나섰다.

모두를 배웅시켜준 뒤 이터니티는 구급상자를 들고 내게 왔다.


"도련님..일단 지혈을..."


"이터니티..나 혼자 있고싶어.."


"하지만.."


짜증이 몰려왔다. 병원을 나올 때부터 날 귀찮하는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누가 너 필요하다고했어?! 혼자 있다고싶다고했잖아!"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하고 이터니티에게 화를 내고말았다.

난 그제서야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그저 아버지의 부탁을 따르고있는 것인데 내가 그녀의 마음에 비수를 꽂아버렸다.


황급히 그녀에게 사과를 하려했지만 그녀는 치맛자락을 올려 내게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아닙니다..도련님의 기분을 파악하지 못한 저의 불찰이지요...그럼..."


큰 거실에 혼자남은 나는 거실바닥을 더럽히고있는 웅덩이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화상으로 인해 심각하게 쪼그라들고 썩어문들어진 오른쪽 피부. 그에 비해 아직 멀쩡한 피부. 그 모습에서 난 누군가가 떠올랐다.


검은색과 흰색이 아름답게 어우러져있는 아름다운 여인. 블랙 리리스. 바로 어머니였다.

단지 오른쪽 왼쪽의 색이 다르고 떠오른 것이 아니였다. 난 어머니를 그냥 빼다박았다. 성격이나 행동이나 모든 것을 말이다.


웅덩이에 비친 내 모습을 계속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못 찾았다고..? 더치걸을..?'


'더치걸을 찾는게 그렇게 어렵나..? 그 작은 녀석 하나 찾는게 그렇게 어려워..?'


'지휘관들이 모르는 길이 있을거야...'


'그녀들을 믿을 수 있을까..?'


'아니..'


'내가 직접하는게 더 빠를거야..어머니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너라면 해낼 수 있어..'


"직접...?"


난 다시 웅덩이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유전자를 일부 물려받은 나는 바이오로이드와 호각을 이룰 정도의 힘을 가지고있기는 했다. 때문에 난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 힘조절을 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어머니가 그런 내게 해주었던 말씀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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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거 그만하면 안돼요..?"


달걀을 쥐고있는 손이 바들바들거렸다. 자그만한 달걀을 깨뜨리지않고 들고있는 것은 어린 내게 있어서 고역과도 같았다.

어머니는 그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면서 말씀하셨다.


"안돼."


"그치만 이거 힘들단말이에요.."


"나중에 엄마가 간식줄께. 조금만 참자? 알았지?"


"네..."


난 다시 달걀에 집중했다. 조금이라도 힘조절을 잘못했다간 깨져버릴 것이었다.

어떻게든 달걀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손가락의 관절 사이사이의 온 신경을 집중하여 달걀을 쥐었다.


"으으..."


"잘한다. 우리 아들. 잘해.."


"헤헤...앗..!"


어머니의 칭찬에 기쁜 나는 실수를 저질러버리고 말았다.

달걀에 금이 가버리고 그 틈 사이로 흰자가 흘렀다.


"씨이..."


화를 참지 못하고 달걀을 집어던졌다. 달걀은 거실바닥을 더럽혔다.

그 모습에 어머니는 살짝 놀라신 눈치였다. 난 그제서야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달았다.


"이건...그러니깐..나쁜..."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어머니께서 손을 올리셨다.

날 혼내시려는 것인줄 알고 난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혼내시기는 커녕 오히려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화..안 내세요..?"


어머니는 그런 내 질문에 웃으면서 대답해주셨다.


"화야나지..저걸 치울거 생각하면.."


"그런데 왜 안 내세요..?"


"그건..주ㅇ...아아니. 너희 아빠랑 약속했기 때문이란다."


"아빠요..?"


"그럼.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절대 화내지 않기. 그리고 생각을 한번 한 뒤에 움직이기. 너를 가질 때부터 했던 약속이란다."


아무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어머니는 내 뺨을 쓰다듬어주셨다.


"우리 아들도 이 엄마랑 약속 하나 해줄래?"


"뭔데요..?"


"아빠가 엄마에게 했던 약속하고 똑같은 약속."


"아빠가 엄마한테 했던 약속을 왜 저한테도 하는거에요?"


난 그저 순수함 때문에 질문을 했다. 하지만 난 그제서야 왜 그런 약속을 하자는 것인지 이해가 됐다.

어머니는 내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난 그것을 받을까말까 고민에 빠졌다.


"그건. 너랑 엄마는 비슷하기 떄문이란다."


"제가요..?"


"너도 언젠간 알게 될거란다.."


날 그윽하게 쳐다보는 어머니의 눈빛에 난 어머니의 새끼손가락을 붙잡았다.


"약속하는거다..?"


"네.."


"좋아. 약속했으니깐 간식줄께."


"진짜요..?!"


"엄마와 약속한 착한 아들에겐 상을 줘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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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그 말씀은 늘 싫었지만 어머니와 한 약속을 깨뜨리는 것은 두려웠다. 

웅덩이를 바라보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어머니와 한 약속을 깨는건 싫어..'


'그렇다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복수를 포기할거야..?'


'아냐...'


'이대로라면 복수는 커녕 다른 누군가가 죽거나 다칠거야.'


'아냐...'


'내가 직접하면 아무도 안 다칠 수 있어.'


결론을 도출한 나는 휠체어에서 일어났다. 아직 몸이 성치 않았던 탓에 제대로 걷는 것이 힘들었지만 상관없었다.

오른손에 박힌 유리조각을 떼어내며 선반 위에 올려져있는 액자를 바라보았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고있는 사진이었다.

사진을 바라보고 다시 액자를 뒤집어 놓았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쁜 아들이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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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어나가도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너무 무리수에 뇌절을 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여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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