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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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저게 왜 저기서 나온대?”

 

『..그걸 나한테 물어도 내가 어떻게 알아. 오빠.』

 

“...그렇지?”

 

 인적이 드문 조용한 숲속의 좁은 공터,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조용한 공간에 자리를 튼 사령관은 우거진 나뭇가지 탓에 반쯤 가려진 스크린을 바라보고선 허망한 미소를 지었다.

 

‘..저게 왜 하필 이 타이밍에. 아니, 그것보다 하필 쟤 손에..’

 

“하하하..”

 

 최악에 최악을 얹는다는 게 이런 걸까. 사령관은 이보다 더한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기 어렵다는 사실에 허탈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것은 귀에 꽂힌 이어폰 너머의 소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아. 저건 내 계획에 없던 물건인데.』

 

“인생이란 건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정상이라잖아? 좋게 생각하자. 닥터. 이보다 더 나쁜 일이 어떻게 일어나겠어?”

 

『...뭐. 응. 그렇네. 오빠 말마따나 여기서 저걸 회수해 봐야 반발만 더 심해지겠네.』

 

 포기라는 건 빠를수록 좋을 때도 있는 법, 사령관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목을 매기보단 앞으로의 일을 착실히 진행해 나가는 방향을 선택했다.

 

지-익!

 

“-읏쌰.”

 

 사령관은 처음 느껴보는 빳빳한 원단의 질감을 온몸으로 느끼며 남색 디지털 패턴이 들어간 전투복의 지퍼를 가슴께까지 힘껏 끌어올렸다. 그리고는 전투복의 이곳저곳을 살피며 닥터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이 전투복이란 거. 옛 군인들이 입던 거랬지?”

 

『응? 어어. 응. 멸망 전쟁 이전에 연합 전쟁 당시까지만 해도 입던 물건인데? 왜?』

 

“아니. 평소에는 이런 물건을 보지 못했으니까. 형님이 애들한테 입혔다는 그..개구리? 응. 그것도 그때 처음 봤는데. 내가 살다 보니 이런 옷도 다 입구나 해서.”

 

 사령관은 정복을 차려입는 것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편한 복장, 위엄보다는 편안함을 어필할 수 있는 복장을 선호해 왔기에 이러한 전투복은 그에게 머나먼 의복 중 하나였다.

 

‘영화에서나 보던 의복인데. 뭔가..’

 

『지휘관 언니들은 좋아하겠네! 오빠가 그런 차림으로 전장을 누비는 걸 보면 다들 다시 반할걸?』

 

“그래?”

 

『어때? 옷은 좀 잘 맞아? 오빠?』

 

 생글생글 웃음기가 담긴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는 동생의 물음에 사령관 역시 가벼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좀 빳빳한 게 익숙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점차 움직이면 괜찮아 질 것 같네.”

 

『응응-빨리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야. 아차, 군홧줄 꽉 당겨 묶는 거 잊지 말고!』

 

“오케이.”

 

부스럭-! 부스럭!

 

 평소에는 메이드들이나 부관들이 해주겠다며 자신이 손댈 필요도 없을 끈 묶기였으나 지금은 평소와 달랐다. 주변에는 오로지 나무와 그 사이를 누비는 새나 다람쥐들뿐, 언제나 항시 한 명 이상은 대기 중이던 경호 개체조차도 단 한 명도 없었다.

 

‘...음. 예전 같았으면 조금 불안했을 텐데.’

 

 사령관은 언제나 그녀들과 함께 해왔다. 처음 눈을 떴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홀로 외딴 곳에 떨어져 본 적이 드물었다.

 만일 옛날의 자신이 이렇게 외딴곳에 떨어졌다면 어땠을까, 아마 겉으로는 평탄한 척 굴면서 속으로는 불안에 떨었겠지.

 

‘그건 당연한 거야. 세상은..날 환영하지 않으니까.’

 

 사령관의 사방에는 오로지 적과 또 적의 적뿐이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말은 그의 상황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사령관에게 오르카 1호는, 정확히는 오르카 저항군은 그에게 있어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그리고..

 

‘..형님은 눈을 떴을 때부터 혼자서 철충을 피해 다니셨다고 했어. 그러다 허벅지에 총상을 입으셨고. 그에 비하면 나는 축복받은 놈이야.’

 

 그에게는 이전에 없던 또 다른 버팀목이 하나가 더 있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오르카 1호로 실려 온 남성, 라붕이 작전관이 그에게 그러했다.

 

“..닥터. 작전대로 가는 데에는 문제없지?”

 

『물론-! 니키 언니는 현재 전기 생산 시설의 송신탑 쪽에 있고! 시라유리 언니는 중앙 건물쪽! 그리고 에이미 언니랑 토모 언니는 각각 백사장과 연설장 쪽에 배치해뒀어!』

 

“그래. 생산 쪽 애들은 어때?”

 

『응응. 예상한 대로 참여 비율이 나쁘지 않은 모양이야. 랭크 제한 걸어두길 잘 했다니까! 정말!』

 

“...물론이지. 이건 우리들의 이벤트가 아닌걸. 형님과 여기 애들의 이벤트란 말이야.”

 

‘우리는 들러리에 불과하다, 이 말씀.’

 

“읏쌰. 다 묶었다.”

 

 닥터와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군홧줄을 전부 묶은 사령관은 가볍게 군홧발로 땅 위를 밟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내 그 자리에서 가볍게-혹은 빠르게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타-악!

 

“웃쌰!”

 

파-사사삭!

 

 족히 3m는 넘게 위로 뛰어오른 사령관은 방금까지 자기 머리 위에 있던 굵은 나뭇가지를 오른손으로 쥐어 잡은 채 이번에는 몸을 앞뒤로 움직이며 반동을 주기 시작했다.

 

“하나-둘-하나-두울!”

 

타-악!

 

파-삭!

 

 주변의 우거진 나뭇가지에 달린 나뭇잎들을 흩뿌리며 사령관은 재차 자신의 거대한 체구에 걸린 반동을 멈추지 않고 나뭇가지 하나하나를 바꿔 잡아가며 그 아래를 활보하기 시작했다.

 

파-사삭! 파삭!

 

『오빠? 지금 뭐 해? 이거 무슨 소리야?』

 

“-흣챠! 흣챠! 몸-풀기!”

 

『..할 맘 만만이네. 킥킥.』

 

 사령관의 뇌는 엄밀히 따지지 않아도 ‘인간’의 뇌이다. 하지만 그의 육신은 엄밀히 따졌을 때 ‘인간’의 육신이라는 한계를 이미 한참 벗어났다.

 

‘..그 김지석의 유산이긴 하지만. 거부할 이유도-여유도 없어!’

 

파스슥-!

 

 마치 고전 영화 속 정글 소년처럼 혹은 숲속에 잠복한 특공대원처럼 나뭇가지 위에 올라탄 사령관은 조금씩 달아오른 제 육신의 심장 위에 손을 얹었다.

 그는 이미 휩노스 병을 한 번 앓았다. 그렇기에 알고 있다. 그 병은 인간에게 유해하지만, 이 육신에는 지장을 주지 못했다. 그 이유는 명확했다. 바로 지금 자신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어느 미지의 물질, 오리진 더스트의 탓이었다.

 

“닥터. 형님이 주사하고 있는 오리진 더스트의 부작용, 언제쯤 일어날 거라고 했지?”

 

『길어도 1달? 짧으면 2주 안에 일어날 거야. 애당초 그건 인간이 완전히 소화하기 어려운 물건이니까.』

 

“..그래?”

 

 시큰둥하게 말하는 동생과 달리 사령관은 그 어느 때보다 날이 선 눈으로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숲속을 내려다보았다. 이 물질을 완전히 인간이 소화해내는 것은 불가능, 소화한다고 치더라도 소량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인간과 바이오로이드 사이엔 크나큰 벽이 생겨났다. 인간이 소화해내지 못하는 물질을 원초적으로 적응하고 살아가는 그녀들, 그 탓에 인류는 그녀들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 나와 형님은, 아니. 우리는 모두 함께 살아간다.’

 

탁-!

 

 사령관은 스스로의 결의를 다지고선 사뿐히 나뭇가지에서 내려와 땅 위로 착지했다. 어느새 공터에는 그가 흩뿌려놓은 나뭇잎들로 인해 너저분해져 있었다.

 그 너저분한 공간 속에서 사령관은 미리 챙겨두었던 총기 보따리를 끄집어내어 내용물들을 하나둘 챙기기 시작했다.

 

“닥터. 전투 물품 배급은 원활히 진행되고 있어?”

 

『응응. 여유분들은 안드바리 드론을 이용해서 적당한 곳에 숨겨두는 중이야. 찾는 재미도 있어야지.』

 

“안전 수칙과 룰북도 확실히 배급해. 괜히 다치는 사람이 나와선 안 되니까.”

 

『네에~! 애당초 우리 바이오로이드들은 이런 페인트 총 가지고는 안 다친다구!』

 

철-컥!

 

 이어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동생의 핀잔에 사령관은 침묵으로 응수했다. 어느새 그의 가슴둘레에는 권총을 넣어둔 홀스터가, 허리춤에는 자동소총형 페인트 총기에 쓸 탄입대가 둘러매어 있었다.

 

“만일에 만일을 대비하는 거야. 후우-!”

 

『...히힛. 오빠. 말은 그렇게 하면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거 알아?』

 

“...”

 

 최대한 목소리를 깔았으나 이 영악한 동생에게는 먹히지 않았나 보다. 동생의 비아냥을 들은 사령관의 딱딱한 얼굴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하하! 리엔이 나한테 그랬었거든. 사나이의 우정은 난관을 극복할 때, 돈독해진다고!”

 

『게에엑-! 여기까지 와서 또 라붕이 오빠랑 우정 나누기야?!』

 

“형님이랑 친해지려고 여기까지 온 거지! 하하하!”

 

 이제는 질려요, 하고 손사래를 치는 듯 굴고 있을 동생의 얼굴을 상상하며 사령관은 보따리 제일 안쪽에 숨겨져 있던 안경집을 꺼내어 들었다.

 

달-각

 

『남색 전투복이야. 잊지 마. 오빠.』

 

“응. 그래도 혹시 모르니 우선 생산 인원 애들은 최대한 내 쪽에서 떨어지도록 만들어줘.”

 

『라붕이 오빠 쪽은 뇌파 감지가 불가능할 테니까. 간혹 정보가 들어오면 알려줄게. 잘해 봐! 히힛!』

 

 동생의 비웃음인 듯 아닌 듯한 응원을 들으며 사령관은 열린 안경집 안의 내용물을 꺼내어 썼다. 투박한 모양새에 검은 선팅이 말끔히 되어 있는, 평소라면 쳐다도 보지 않았을 검은 선글라스. 하지만 사령관은 오늘만큼은 즐거운 마음으로 선글라스를 꺼내어 제 콧등 위에 걸쳤다.

 

달-칵!

 

“흐흠. 흠. 형님의 시야는 이랬단 말이지?”

 

 나쁘지 않은 착용감이다. 시야가 한층 어두워진 것은 조금 불편하기는 하지만. 분위기를 잡는 데는 혹은 안전 장비로는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스스로 결론을 내린 사령관은 싱긋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사박-사박, 나뭇잎을 밟아가며 숲의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자, 이제부터. 사냥꾼의 시간이다. 어디, 오늘 우리 애들 몸놀림 좀 구경해볼까?”

 

147) 

 

쏴아아-! 

 

철썩-! 

 

 코앞에서 세차게 불어오는 바닷바람, 그리고 발아래의 가파른 해안절벽 아래서 철썩대는 파도 소리.

 그리고 끝 모를 지평선에 걸쳐진 하얀 구름과 푸르른 바다, 만일 탐험가 양반들이 본다면 절경이라며 야-호라도 외치면서 이 시원한 공기를 폣 속에 잔뜩 들이부었겠지. 내 경우에는..한숨만 푸푸 나올 뿐이었지만. 

 

"..하아아." 

 

'내가 여기 온 지도 얼마나 되었더라.' 

 

 살다 보면 예기치 못한 일들이 발생하곤 한다. 그래. 그게 일상이다. 그런데 내 경우에는 조금 그 일상이라는 게 너무 갑작스럽게 혹은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발생해서 문제라는 거지.

 나는 후-하고 짧은 한숨을 내쉬며 장교 코트 대신 걸친 디지털 패턴이 담긴 전투복의 지퍼를 목 아래까지 끌어올렸다. 

 

지익-! 

 

'...시발. 이 전투복을 예비군도 아닌데 입게 될 줄이야.' 

 

 언뜻 과거 기억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하는 디지털 패턴의 전투복을 째릿 노려 보고 있자니 누군가의 손이 내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라붕이 대장님. 여기 벨트입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가느다란 손가락만큼이나 가녀린 목소리를 따라 나는 그녀의 손에 들린 벨트를 허리춤에 두르기 시작했다. 

 

달-그락! 달그락! 

 

 선선한 바닷바람 소리에 내 거친 손길에 흔들리는 버클의 소음이 조금씩 섞일 무렵, 아까 내게 벨트를 건넨 여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섬 중턱에서 여기까지 도망오신 건가요?" 

 

"..네. 어쩌다 보니." 

 

"..대장님도 정말 수고가 많으시군요." 

 

"..." 

 

 어딘가 내 처지를 이해한다는 듯한 그녀의 말에 나는 버클을 채우던 것을 멈추곤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 

 

 절벽 근처로 세차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진분홍빛 장발을 아무렇게나 흔들리게 두는 가련한 인상의 아가씨, 그녀의 어딘가 초연하기까지 한 분홍빛 눈동자에 어쩐지 내 고개가 자연스레 숙여졌다. 

 

"...나이트앤젤씨야 말로. 고생이 많아 보이시네요." 

 

"..하하. 서로 피차일반이지요." 

 

"...하아아." 

 

"...후우우." 

 

 서로 해서는 안 될 말을 나눈 기분이다. 나는 버클을 대충 결합하곤 양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며 중얼거렸다. 

 

"..사령관님은 언제나 이렇게..서프라이즈를 즐기십니까?" 

 

"..예전에는 종종 이러셨는데. 요새는 빈도가 많이 줄었었죠." 

 

"..." 

 

 빈도가 줄었다라, 줄어든 게 이 정도인가. 나이트 앤젤의 대답에 내 아랫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런 내 반응을 예상이라도 했는지 그녀는 뒷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대장님이 오시고 난 이후부터는..조금 옛날처럼 돌아가신 것 같네요." 

 

"..." 

 

 사람이라는 게 언제나 발전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가끔은 퇴보라는 것도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스스로 지치니까. 

 

'..근데 왜 날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는 격으로 만드냐고!' 

 

 다시 생각해봐도 이건 내가 감당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자니 내 곁에 서 있던 또 한 명의 위장약 복용자가 끊겼던 대화를 이어갔다. 

 

"반지라..정말이지. 큰일에 휘말리신 것 같네요. 대장님." 

 

"...예. 그..그런 것 같습니다." 

 

 내 고통을 십분 이해한다는 것처럼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얼굴에서 손바닥을 떼곤 그녀를 다시 바라보았다. 

 

"..." 

 

"..." 

 

"...하아아.." 

 

"...후우..." 

 

 도대체 이게 몇 번째 한숨일까. 내가 산 중턱에서 도망쳐 도달한 이 절벽에서 그녀와 마주친 지가 어언 십여 분. 나는 그녀에게서 도망치기보다는 도움을 받는 쪽을 택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서로 보는 순간, 측은지심이라는 게 먼저 통했기 때문이었다. 

 

"저희 대장님과는 얼굴을 익혔다고 들었는데..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뭘요. 듬직한 대장님 아니 십니까." 

 

"듬직하기보다는 칭얼대는 타입이죠.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데는 독보적이신데." 

 

"차마 부정은 못 하겠네요." 

 

 도망치기 전의 상황을 떠올려 보면 초연하게 자신의 대장을 까내리는 나이트앤젤의 말을 차마 부정하기 어려웠다.

 게임 속에서 스크립트만 읽어봐도 골치 썩이는 대장인데 평소에는 얼마나 제 부관의 속을 썩힐련지. 

 

'..아니야. 지금 내가 남 팔자 걱정할 때가 아니지.' 

 

부스럭- 

 

 재수가 좋다면 좋았다. 도망치고 처음 마주친 인물이 나이트앤젤이라는 게. 그녀의 등급은 최소 S등급, 대회 참가요건에 벗어나는 아가씨이니까. 

 

‘재수라면 재수네. 하아..’

 

덜그럭-! 

 

 보따리 안에 들린 물건 중 탄입대를 꺼내 들어 허리춤에 두르기 시작하자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가씨가 반쯤 감겨 있던 두 눈썹을 살짝 위로 올려세웠다. 

 

"...생각보다 본격적인 장비들이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탄입대부터 총기까지. 이거 진짜 게임이 맞긴 한 것인지." 

 

"저희 본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물건인데. 용케 사령관님이 찾아내신 것 같네요." 

 

철-컥! 

 

 탄알집 하나를 꺼내어 예전에 자주 봤던 총기에 결합하자 시원한 쇳소리가 내 귓가를 파고 들어왔다. 시발. 옛 생각이 절절히 나는구만. 

 

'페인트 총이라지만 왜 이렇게 실사스러운 거야?' 

 

 실제 BB탄 총기도 사실과 가깝게 생겼다는데. 이 페인트 총도 그런 부류인가. 나는 겉면이 맨들맨들한 총기를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때, 저 멀리서 쾌활한 아가씨들의 목소리가 바람에 섞여 들려왔다. 

 

"나이트앤젤 부대장니임-! 주변 정찰 끝냈어!" 

 

"주..변에는..아직..아무도..안 왔네요." 

 

"...이상 무. 복귀했습니다." 

 

"..그렇다네요. 다행이네요. 대장님." 

 

"..." 

 

 절벽까지 걸어오는 몇몇 아가씨의 목소리에 내 어깨가 반사적으로 움츠러들었다. 지금은 누가 와도 불안할 따름이니까. 하지만 그런 내 의중을 읽었다는 것처럼 나이트앤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희는 게임에 참가할 생각이 없습니다." 

 

"...진짜로?" 

 

"진짜입니다." 

 

"에-?! 하지만 부대장님! 나랑 여기 먹보랑 밴시는 A등급인데?!" 

 

"..." 

 

 그렇다네요. 나는 금세 나이트앤젤로부터 몇 걸음 물러섰다. 아, 아니다. 

 

'여기서 차라리 시작하자마자 탈락이라도 할까?' 

 

 아예 시작하자마자 잡힌다면 별문제가 없지 않을까. 뭐? 그러면 재미없다고? 시발. 내가 지금 여기서 헌팅 게임에 던져진 토끼밖에 더 돼? 

 

'그럴 바엔 차라리...!' 

 

 신체 연령 변경권이니 뭐니. 말이 나오지도 않는 상품에 관해선 여기 나이트앤젤이라면 왠지 잘 넘겨줄 거 같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곤 다시 그녀와 거리를 좁혀 거래하고자 했으나-

 

"우리 부대는 대장님보다 선수 치지 않는 걸 신념으로 두고 있습니다. 그러니 대장님이 참가 못 하는 이 게임에 참가해봐야 힘만 빼는 셈이죠." 

 

"에에-재미없어. 쳇." 

 

"대장님도 그렇게 걱정하지 마십시오. 게임이 시작되시면 재빨리 저희 사령관님을 찾아가시면 될 것 같으니." 

 

"...아, 예." 

 

 단호하기까지 한 나이트앤젤의 언동에 내 얄팍한 생각을 저기 저 절벽 아래로 떨어뜨려 버렸다. 정말이지.

 

'생각대로 되는 일이..' 

 

"대장님. 대장님." 

 

"...?" 

 

 뭔가 발랄한 목소리가 날 부르자 나는 그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거기에는 풍만하다 해야 할지, 통통하다 해야 할지. 뭐라 말하기 어려운 체형의 아가씨가 싱글벙글 웃으며 서 있었다. 

 

"헤헤헷!" 

 

"...어.." 

 

분명 쟤 개체명이.. 

 

'..뭐였지?' 

 

 아. 씨발. B등급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잠깐만 분명 네 이름이.. 

 

"지니야. 그러고보니 지니야는 대장님과 구면이었네요." 

 

 맞다. 지니야. 분명 그런 이름이었지. 근데 얘가 나랑 구면이라고? 나는 처음 들어보는 사실에 고개를 갸웃거리려다 곧장 그 행동을 멈추었다. 

 

'가만. 구면에 본대 출신이라면..' 

 

"...너, 혹시?" 

 

"이 아이. 대장님의 극기훈련 1기 수료생입니다." 

 

"헤헤-! 그때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오랜만이에요! 대장님!" 

 

“...아! 기억났다. 너, 너!”

 

“헤헤헤!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으시네요!”

 

 밝게 웃는 녹색 머릿결 소녀의 대답에 내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이제 보니 그때 연병장에서 먼지나게 구르던 그 녀석이구나. 왜 이렇게 다시 보니 반가운지. 나는 괜히 목청을 세워 지니야에게 농을 치기 시작했다. 

 

"-훈련생! 여기가 어딘지 알고 또 왔나?" 

 

"악-! 그때 밥맛이 잊기 어려워서 다시 왔어요! 헤헤헤!" 

 

"밥맛? 또 비닐밥이나 먹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나? 하하하!" 

 

꼬르륵-! 

 

"...진짜냐?" 

 

"에헤헤.." 

 

 바람 소리만이 넘실거리는 이 절벽 언저리에서 당차게 배꼽 알람을 울려대는 지니야, 그런 그녀에게 나는 마치 바깥에서 군후임을 만난 것처럼 들뜬 기분으로 대해주었다. 물론 그녀와 나는 조교와 훈련생의 관계지만 뭐 그놈이 그놈 아니겠나. 

 

"...생각보다 죽이 척척 맞군요. 둘 모두." 

 

 나와 지니야가 이렇게 합이 맞을 줄은 몰랐다는 듯 나이트앤젤은 그 어느 때보다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긴 나라고 이럴 줄 알았나. 하지만 반가운 건 반가운 거다. 

 

"너는 수료한 지 2주 만에 또 이 지옥으로 걸어 들어왔냐?" 

 

"에헤헤..저도 여기 온다는 이야길 듣고 얼마나 기겁했는데요." 

 

"기겁하긴! 대장! 당신이 여기서 알려준 비닐밥인가 뭔가 그거 때문에 얘가 돌아오고 나서 어쩌는 줄 알아?" 

 

"? 비닐밥?" 

 

 지니야와 한창 떠드는 와중에 나와 그녀 사이로 파고 들어온 가벼운 언동의 여성, 실피드의 물음에 나는 영문을 몰라 눈썹을 위로 치켜세웠다.

 하지만 그녀의 다음 말을 유추한 듯한 지니야는 열리려는 실피드의 입술을 막으려 들었다. 

 

"마..말하지 마!" 

 

"으웁-! 웁!" 

 

"..." 

 

대체 뭔 짓을 하고 다닌 거야? 뭔가 말 못 할 행동이라도 한 모양이구먼. 나는 내 앞에서 아옹다옹 다투기 바쁜 두 사람을 보며 입꼬리를 씨익 올려세웠다. 

 

148) 

 

"얘 숨 막히겠다. 지니야. 적당히 풀어줘. 크크크." 

 

"윱! 우웁!" 

 

"말 안 하겠다고 해! 안 그럼 안 풀어줄 거야!" 

 

 어떻게든 실피드의 가벼운 입을 막으려는 지니야, 그리고 어떻게든 지니야의 통통한 손바닥을 치우려는 실피드.

 거기에 아까까지의 초연함이 얼굴에서 확 사라진 남성, 라붕이 작전관의 모습에 그를 빤히 바라보던 나이트앤젤은 싱긋이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짓궂은 분은 아니군요. 병사들과 잘 어울린다는 풍문,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네요." 

 

 저쪽에는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속삭이듯 말하는 나이트 앤젤의 평가에 그녀 곁에 서 있던 두 여성도 조용히 말을 덧붙였다. 

 

"그..러..게요." 

 

"..훈련 영상과는 조금 다르네요." 

 

 나이트앤젤은 일찍이 봤던 극기훈련 영상이 아닌 커뮤니티에서 간혹 올라오던 그의 사진을 떠올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이 모습이 그의 진면모겠지. 

 

"자자-! 지니야. 애 숨 막히겠다. 어디 그렇게까지 숨기고 하려는 이야기를 들어 볼까?" 

 

 그녀들이 그렇게 떠드는 사이, 라붕이 작전관은 어느새 지니야의 두툼한 팔뚝을 잡아당기고 서 있었다. 

 

"대..대장님! 팔 당기지 마요! 대..대장님! 히..힘 왜 이렇게 세요오?!" 

 

"약 기운이 다 돌았거든!" 

 

타악-! 

 

"-푸하! 이..이제야 풀려났네! 야! 너 꼭 이럴 때만 힘 쓰더라?!" 

 

"히잉.." 

 

 부하들에게 언제나 점잖은 태도로 구는 사령관과는 다르다. 신사다운 면모보다는 장난꾸러기 같이 구는 라붕이 작전관과 그 주변의 시끌벅적함에 나이트앤젤은 입가에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그 안으로 선뜻 들어섰다. 

 

"대장님. 저희 지니야는 복귀 이후에 종종 잔반통을 바라보며 침을 흘리고 다녔습니다." 

 

"...?" 

 

"비닐밥이 생각보다 맛있었다면서 옥수수 대신 비닐을 항시 챙겨들고 다니기도 했고요." 

 

 자신의 말이 어지간히 충격적이었던 것인지 방금까지 실실 웃고 서 있던 라붕이 작전관의 얼굴이 금세 딱딱해졌다. 짙은 선글라스 선팅 탓에 눈은 잘 보이지 않았으나 뺨의 씰룩임으로 봐선 속눈썹도 파르르 떨고 있을 테지.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라붕이 작전관은 딱딱한 목소리로 고개를 푹 숙이고 서 있는 지니야를 향해 입을 열었다. 

 

"...지니야." 

 

"네.." 

 

"...그러지 말자. 우리 제발." 

 

"네에에.."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지니야를 뒤로 한 채 나이트앤젤은 하늘 위를 빙빙 돌아다니는 여성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대장님. 슬슬 가셔야 할 시간 같군요." 

 

"...저건?" 

 

"본대의 기동 대원들입니다. 아마..물자와 인원을 나르는 중인 것 같네요." 

 

 멀리서도 느껴지는 뇌파들, 나이트 앤젤은 그녀들의 손에 들린 흐릿한 것들이 참가 인원이라는 것을 대충 파악해내었다. 그리고 그녀의 설명을 들은 라붕이 작전관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진짜로 할 심산인가." 

 

"이제 와서 무르기에는 판이 커졌죠." 

 

"..그렇죠. 예예."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 그의 모습이 어딘가 자신과 닮은 것 같다. 나이트 앤젤은 쓴웃음을 지으며 아직 어색한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별 일 생기겠습니까?" 

 

"..상품으로 제 육체 연령이 걸려 있는 것도 화딱지가 나는 판인데요." 

 

"그건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진심으로 짜증이 난다는 듯한 그의 대답에 나이트앤젤은 고개를 가만히 저었다. 자신이 생각해봐도 심각하다면 심각한 상품이니 본인은 어떻겠는가.

 하지만 이 남자는 생각보다 현실을 빨리 수긍하는 타입이었다. 

 

찰-칵! 

 

"이 총, 이제보니 가늠자도 있었네. 지니야! 너 저기 가서 나뭇가지에 내 코트 좀 걸어 봐라!" 

 

"? 네네!" 

 

"..? 뭘 하시려고요?"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둠 브링어 대원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그는 말보단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듯 20m 정도 떨어진 나뭇가지에 걸린 제 코트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찰-칵! 차칵! 

 

"어디 보자..이 쯤인가." 

 

 개머리판을 겨드랑이에 끼우곤 머리를 살짝 기울인 라붕이 작전관의 행동을 그녀들이 유심히 보는 사이, 그의 페인트 총에서 시원한 발포음이 터져 나왔다. 

 

푸슉-! 푸슉! 

 

"...우와. 저 코트, 한동안 못 쓰겠는데?" 

 

 총구에서 뿜어져 나온 페인트 탄이 옅은 갈색빛의 코트 안쪽을 분홍색으로 물들이자 실피드는 질린 기색으로 라붕이 작전관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라붕이 작전관 본인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가늠쇠를 매만질 뿐이었다. 

 

"어디보자. 위 둘, 좌 둘 정돈가." 

 

찰-칵! 찰칵! 

 

 물 흐르듯 조준선을 수정하는 라붕이 작전관, 그런 그의 행동에 나이트앤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장님. 이런 건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어디서 배우긴요. 훈려...어아아니. 여기에 있는 스틸라인 애들한테 배웠습니다! 하하하하!" 

 

 자신의 물음에 과장이 한가득 섞인 목소리로 대답하는 그의 언동이 어딘가 수상하다 여겼으나 나이트앤젤은 굳이 그 이상 캐묻지 않았다. 

 

'사령관님도 그렇고. 생존하신 인간님들은 다들 독특하군요.' 

 

 사령관이 철충에 관해 해박한 것처럼 이 남자도 어딘가 해박한 구석이 있겠지. 나이트앤젤은 가볍게 자신의 의구심을 거두곤 탄알집 개수를 세기 시작한 그에게 말을 다시 걸었다. 

 

"이제 가셔야 할 시간이군요." 

 

"예. 아무래도 시간이..얼마나 지났지?" 

 

"대..충.." 

 

"대충 4분 정도 남았네요." 

 

"4..분.." 

 

"쓰읍. 혹시 제가 살아남을 팁이라던가. 그런 건 없을까요?" 

 

"..팁이라. 저도 마땅히 떠오르는게 없네요." 

 

"남았..어요." 

 

"대장님. 그러고 보니 그 지휘봉은 어디 있으세요?" 

 

"지휘봉?" 

 

"네. 그 왜, 훈련 때 들고 다니시던 그거요. 저희 찌리릿-! 하게 만들었던!" 

 

"...아. 있었는데 없어졌습니다 그거." 

 

"우와..네이밍 센스 구려." 

 

"대..장님." 

 

 지니야의 물음에 라붕이 작전관은 잊고 있던 뭔가 떠올렸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거 너희한테 쓰지 말라던데?" 

 

"전투 모듈을 멈추는 그 지휘봉 말씀이시군요?" 

 

"아, 네네. 그거 쓰면 한 3일 간은 전투 모듈이 비활성화되는 지라.." 

 

 확실히 그녀들에게는 껄끄러운 물건이다. 라붕이 작전관이 머쓱 해하는 이유도 십분 이해했다. 그렇지만 나이트앤젤은 말을 흐리는 그에게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이렇게 몰린 마당인데. 화끈하게 쓰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까?" 

 

"..어. 그래도 되겠습니까?" 

 

"참가요건에 A랭크 이하라고 명시된 이상 주요 전투 인력들은 전원 불참입니다. 괜찮을 겁니다." 

 

 어차피 이곳을 떠난 이후 행선지는 가고시마라 불리는 섬, 가는 데만 이틀이 소요될 터. 나이트앤젤은 계산된 스케쥴을 떠올리며 선뜻 그에게 지휘봉  사용을 권유했다. 

 

"흐음.." 

 

 그런 자신의 제안에 솔깃하긴 한 것인지 라붕이 작전관은 턱을 짚고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게 분명 지휘봉은 중앙 건물에 있고. 그리고..어." 

 

"? 무슨 문제라도?" 

 

"..." 

 

 갑자기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는 그의 모습이 어딘가 불안해보여 나이트앤젤은 고갤 갸웃거렸다. 그러나 그들이 그러는 사이, 조용하기만 하던 하늘 위에 팡파레가 울려 퍼졌다. 

 

펑-! 퍼퍼펑! 

 

[지금부터 제1회 배틀로얄 인 요안나 아일랜드를 시자아아아악! 하겠습니다!] 

 

"...시작되었군요." 

 

달그락-! 

 

 다시 하늘에 걸린 거대한 스크린, 그 속에서 방긋방긋 웃고 있는 스프리건의 등장에 라붕이 작전관은 말없이 페인트 총을 어깨에 둘러메었다.

 

“..아. 이것도 잊지 말랬나?”

 

덜그럭-!

 

 보따리의 한구석에 놓여 있던 연녹색의 방탄모를 집어 든 라붕이 작전관은 이 물건이 뭐 하는 물건이냐는 듯 눈살을 확 찌푸렸다. 하지만 없는 것보다야 낫겠다는 것처럼 그는 후-하고 한숨을 한번 내쉬곤 방탄모를 머리 위에 쓰려 들었다.

 그때, 하늘에 걸린 스크린 속 여성의 쾌활한 목소리가 다시 한번 섬 전체를 웅웅-뒤흔들었다.

 

[대회 참가 인원들은 모두 전투태세로! 비참가 인원들은 세트장이 설치된 연설장 혹은 지금 제가 있는 백사장으로 와주세요~! 중계는 이 두 곳에서만 진행됩니다!] 

 

"..그렇다네요. 저희는 이제 대장님이 계실 연설장 쪽으로 가보겠습니다." 

 

 이제는 정말로 헤어져야 할 시간이 도래했다. 나이트앤젤은 하늘을 향해 인상을 찌푸리는 라붕이 작전관에게 선뜻 오른손을 내밀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즐거웠습니다." 

 

 나이트앤젤의 악수 요청에 라붕이 작전관은 황급히 얼굴색을 되돌리며 그녀가 내민 오른손을 맞잡아주었다.

 

"저야말로. 덕분에 조금 진정이 되었습니다." 

 

"대장님! 응원하고 있을게요!" 

 

"오. 그래. 오늘 내가 구르는 거나 실컷 구경해라. 캬캬캬!" 

 

"힘..내세..요." 

 

"건투를 빌게! 라붕이 대장님." 

 

"...열심히 하세요." 

 

“예-! 다들 푹 쉬십쇼!”

 

덜-걱!

 

 악수 탓에 뒤로 미뤘던 볼품없는 방탄모까지 완비한 라붕이 작전관, 그는 그렇게 둠 브링어 대원들의 응원을 한몸에 받고선 페인트 범벅이 된 코트를 두고 자리를 떠났다. 

 

타다다-! 

 

 들어섰던 때와 같이 산길을 향해 질주하는 라붕이 작전관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이들 중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다름 아닌 다이카였다.

 

"대..장님. 저..헬멧.." 

 

“..알아요. 무슨 말 하고 싶은지. 생각보다 재밌게 흘러가겠네요. 이 게임.”

 

"이 코트는 어쩌지? 부대장님?" 

 

"여기 인원들에게 넘기죠. 아마 오드리 개체가 한 명 있었던 거 같은데. 그녀에게 맡기면 될 겁니다." 

 

"...이 페인트. 빠지는 거긴 할까?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운 소잰데, 여기다 총을 갈길 생각을 다 하네." 

 

 나이트앤젤이 라붕이 작전관이 표적지 대용으로 써먹은 코트를 챙기고 자릴 뜨려던 무렵, 누군가 그녀의 옆으로 소리 없이 다가와 섰다. 

 

"...부대장님." 

 

"레이스! 어디 있었던 거야?" 

 

개체명답게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 부대원의 부름에 나이트앤젤은 고개를 뒤로 돌렸다. 

 

"레이스. 무슨 문제라도?" 

 

"..아니요. 그게 제 선ㅂ..아니. 팬텀씨를 본 거 같아서요." 

 

"...?" 

 

본 거면 본 거지 본 거 같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이해 못 할 그녀의 말에 나이트앤젤의 미간이 자연스레 좁혀지려 들 때, 레이스는 가만히 부연설명을 이어갔다. 

 

"멀지 않은 수풀 속에서 은폐장이 느껴져서 다가가 봤습니다만.." 

 

"팬텀씨가 이 근처에 있었나 보네요." 

 

 수많은 오르카 대원 중 자신들의 탐색 기능을 빠져 나갈 만큼 훌륭히 숨을 수 있는 재간을 지닌 개체는 몇 되지 않았다.

 나이트앤젤은 시큰둥한 얼굴로 품에 코트를 접어 들었다. 어차피 S랭크 이상인 그녀는 이 대회에 참가가 불가능할 터, 별로 큰 문제는 아니었을 터였다. 

 

"벌써 자리를 떴나요? 같이 가면 좋았을 텐데." 

 

"...예. 이미 자리를 뜬 것 같네요." 

 

"그러면 되었습니다. 저희도 그녈 따라가죠. 오늘 망할 꼬마대장님이 지시한 자유낙하 훈련은 날로 먹었네요. 갑시다." 

 

"얏호-! 백사장 가자! 백사장! 칙칙한 연설장보다 거기가 더 좋단 말이야!" 

 

“가면 먹을 게 많을 거예요! 헤헤헤!”

 

“그러죠. 어차피 우리 망할 꼬마 대장님은 저희 없어도 잘 살 테니까.”

 

"망..할..꼬마..대장님." 

 

 다이카의 쓴웃음과 함께 둠 브링어 대원들은 일제히 요안나 아일랜드 자유낙하장을 벗어나 백사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만 장신의 여성만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림자만이 드리운 수풀 속을 응시하고 서 있었다. 

 

"...뇌파가 선배와 조금. 다른 것 같았는데." 

 

"레이스! 얼른 갑시다!" 

 

"...네." 

 

 어느새 산길로 들어선 부대장의 부름에 레이스는 머릿속에 남아 있던 께름칙함을 머리 한켠으로 치워 버린 채 그녀 역시 부대원들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149)

 

짹-! 짹!

 

 한적한 요안나 아일랜드의 어느 오솔길 위, 방금까지 수많은 인원이 지나갔다는 듯 다수의 발자국만이 흥건히 남아 있는 이 흙길 위로 갑작스레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펄-럭!

 

“여기쯤이면 되겠죠? 여러분?”

 

“네-에!”

 

“메-르시! 엔젤!”

 

 태양을 등진 채 거대한 한 쌍의 날개를 펄럭이며 땅 위로 내려서는 순백의 천사, 그리고 그녀의 품에 안겨 있던 두 명의 소녀들은 금세 그녀의 품에서 벗어나 흙길 위에 발을 디뎠다.

 

“흐-으으음! 여기 공기 정말 좋다!”

 

“대장님은 근처에 계실까? 응? 운디네?”

 

 주홍빛 머릿결을 흩날리는 소녀의 물음에 운디네라 불린 금발의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나도 잘 모르지. 라붕이 대장이 산에 있다는 것만 알지 어디 숨은 지는 아무도 모르잖아.”

 

“저기, 저기. 천사님. 천사님은 하늘도 날 수 있으니까 대장 찾기 쉽지 않아?”

 

“네리! 아자젤씨를 더 피곤하게 만들면 못 써!”

 

“후후훗.”

 

 방금까지 해수욕장에서 온 힘을 다해 놀던 에너지가 어디 가지는 않았는지. 두 소녀는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서로 떠들기 바빴다. 그런 그녀들의 모습에 아자젤이 살포시 미소를 짓고 있던 사이, 그녀의 정수리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펄-럭!

 

“-흥! 여기다. 내려라.”

 

“어머?”

 

 자신의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아자젤은 고개를 하늘을 향해 들어 올렸다. 그때, 그녀의 머리 위로 두 명의 금발 소녀들이 떨어져 내렸다.

 

“꺄-아악!”

 

“히-야아악!”

 

“-!”

 

 땅에서 그리 높은 위치는 아니었으나 평소 지니고 다니던 기동장치가 없던 탓일까, 두 소녀는 품에 무언갈 꼭 끌어안은 채 아자젤을 향해 자유낙하를 하고 있었다.

 

“위..위험해요오오!”

 

“꺄-아아아악!”

 

“함장님! 테티스!”

 

“히-야아악!”

 

 동료들의 애절한 비명에 미리 땅에 내려섰던 아가씨들마저 허둥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아자젤은 단지 후우-하고 짧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새하얀 날개를 좌우로 활짝 펴내었다.

 

펄-럭!

 

“-길 잃은 어린 양들이여. 부디 제 품으로.”

 

 자신의 키만 한 거대한 양 날개를 활짝 펼치며 새하얀 깃털 위로 투명한 보호장을 형성하는 아자젤의 모습은 가히 세라핌이라는 이명이 어울리는 고귀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고귀한 안배 위로 비명을 내지르던 소녀들이 떨어져 내렸다.

 

풀-썩!

 

“꺄-아...어?”

 

“히끅-!”

 

 대천사의 거대한 날개의 안배에 닿은 두 소녀는 비명을 지르던 것을 멈추곤 숨을 몰아 내쉬기 시작했다. 아자젤은 그런 두 소녀를 제 품에 한 번 안아주고선 조심히 그녀들을 내려다 놓았다.

 

“휴...휴우..”

 

“헤엑-! 헥! 헤엑!”

 

 아자젤의 품에 안겨 간신히 땅에 착지한 두 사람은 서로 가슴께를 부여잡은 채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래서 안절부절 서 있던 동료들이 그녀들을 향해 한달음에 다가와 각각의 등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테티스! 숨셔! 숨!”

 

“둘 다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

 

 땅에 떨어지는 그 순간에도 품에 안은 무언가를 꼭 놓지 않고 서 있는 두 소녀를 빤히 바라보던 아자젤은 이내 고개를 들어 제 곁으로 내려오기 시작하는 동료에게 낮게 깔린 음색으로 말을 걸었다.

 

“...사라카엘.” 

 

“흥. 무슨 소리하려는 지 대충 알겠군.”

 

“알면서 왜 이런 짓을 한 거죠?”

 

“왜? 왜 했냐고 물었나?”

 

 분명 혼나야 하는 쪽은 이 검은 천사일 텐데, 사라카엘은 마치 자신도 따질 것이 있다는 것처럼 아자젤의 물음을 되물었다.

 

“분명 우리는 이런 섬에서 한가롭게 즐길 때가 아닌 걸 제일 잘 알고 있을 네가. 어째서 구원자 한 명을 설득하지 못해서 이런 곳에서 시간을 죽치고 있어야 하는 거지?”

 

 보랏빛 홍채 속에서 새하얀 동공을 번쩍이는 사라카엘의 기백에도 아자젤은 가만히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녀를 타이르려 들었다.

 

“..모든 것은 구원자의 의지대로. 사라카엘, 당신도 그 점을..” 

 

“흥-!”

 

 아자젤의 말이 채 끝맺기도 전, 사라카엘은 질린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홱하고 반대편으로 돌려버렸다. 이미 자신이 두 소녀를 하늘 한가운데서 떨궜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 따윈 없어진 지 오래였다.

 

“흥! 교단의 천사나 이단심문관이나. 모두가 그 구원자에게 빠져 교리를 지키지 못하고 있군.”

 

“...율법과 교리는 모두 구원자를 위해 있는 것입니다.”

 

“-아니! 네 말은 틀렸다! 아자젤!”

 

“...”

 

 자신의 반박에 사라카엘은 큰 목소리와 함께 다시 고개를 자신에게로 홱 돌려세웠다. 그녀의 새하얀 동공은 어느새 아까보다 확연히 커져 그 속에서 예기(銳氣)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 기백에 아자젤은 물론이요. 그녀들과 조금 떨어져 이야기를 나누던 4명의 소녀의 시선이 일제히 이빨을 아득아득 갈아대는 검은 천사에게 집중되었다.

 

“현재 우리 교단이 아무리 세를 다했다고는 하나, 이렇게 규율도. 질서도. 교리도. 율법도. 무엇 하나 지키지 않는 것이 옳다고 보나?”

 

“...사라카엘. 당신은 아직 눈을 뜬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세계가 어떤지 잘 모릅니다. 지금은 우리가..”

 

“흥! 믿고 따라야 할 사람이 그 구원자인지 아닌지 모를 인간 한 명뿐이라고 하겠지!”

 

“...”

 

 자신을 향해 삿대질까지 해가며 열변을 토해내는 사라카엘의 모습에 아자젤은 후-하고 한숨을 다시 내쉬었다.

 

‘...대체 어떻게 이 심판자 아가씨를 설득하죠?’

 

 눈을 뜬 이후부터 여기저기 사건 사고를 터트리기 일쑤인 교단의 동료 탓에 아자젤의 입술이 살짝이 바깥으로 삐져나왔다. 하지만 그런 동료의 속앓이에도 사라카엘은 도리어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제 말만 이어갈 뿐이었다.

 

“하지만 넌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이곳에는 그 구원자 이외에도 다른 한 명의 인간이 있다는 것을.”

 

“...예?”

 

 갑작스럽다면 갑작스러운, 혹은 예상 가능 범위 내라면 예상이 가능했던 그녀의 발언에 아자젤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앞에는 어느새 싱긋이 입꼬리를 뺨 위로 끌어 올리고 있는 말썽꾸러기가 검은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다.

 

“어제는 그 구원자가 일부 인원만 하선시킨 탓에 만나보지 못했지만. 오늘은 이야기가 다르지.”

 

“...그에게는 함부로 다가가지 마세요. 그는 아직 우리에 대해..”

 

“아니. 그를 심판자로 임명한 건 바로 너와 나다. 아자젤. 그에게 그 칭호를 내린 이상, 그는 더 이상 외부인이 아니야.”

 

펄-럭!

 

“-사라카엘!”

 

 자신이 미처 검은 날개를 쥐어 잡기도 전, 하늘 위로 다시 날아오르는 검은 천사를 향해 아자젤은 소리를 빼액 내질렀다. 하지만 그녀가 그러거나 말거나 검은 천사는 그녀를 한번 흘깃 내려다보고는 섬의 상공을 향해 다시 날아올라 곧장 그녀들의 시야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하아아아.”

 

“...저기. 무슨 큰일이 난 걸..까?”

 

“...히이잉.”

 

 사태가 어느 정도 소요되었다고 판단한 네레이드가 조심스레 다가와 말을 걸자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서 있던 아자젤은 아까까지의 점잖던 태도를 내버리고선 네레이드의 전투복 위로 쓰러졌다.

 

풀썩-!

 

“우왓! 날개 되게 무거워!”

 

“..대체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저 천사는 매번 저만 봤다 하면 저렇게 눈을 부라리는 걸까요?”

 

“응? 네리는 그런 거 잘 몰..”

 

“모르겠다고 하지 말고요. 네? 어린양. 못난 제게 가르침을 내려주세요. 저 천사를 복원한 것부터가 문제였을까요? 반ㄹ..아니. 구원자에게 큰 도움이 될 거라고, 그녀의 복원을 적극적으로 추천했던 과거의 제가 문제였을까요?”

 

“아..아하하하..그..그건 말이야. 어..”

 

“이제 어쩌죠? 저 천사가 여기서 난장판을 부리면 이제 막 교세를 회복하기 시작한 우리 교단의 명망이..아아아-!”

 

 이제는 아예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목 놓아 울기 시작하는 아자젤의 추태에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 네레이드조차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말없이 바라보던 운디네는 작은 목소리로 곁의 두 명에게 속삭였다.

 

“...왠지 네리가 귀찮은 아주머니한테 붙잡힌 실정이 되어버린 거 같은데?”

 

“아..하하하. 제가 다가갔어도 저랬을 거예요. 아마.”

 

 운디네의 물음에 그녀들의 리더에 해당하는 세이렌은 쓴웃음과 함께 뺨을 긁적였다. 하지만 그녀들과 반대로 오히려 침착함을 유지하고 서 있는 인물이 있었으니.

 

“..뭐. 저 착한 언니가 저렇게 된 건 아쉬운 일이지만. 우리는 우리 대로 빠르게 움직여야 해.”

 

 언제나 깝죽대기 바쁘던 평소와 달리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여는 테티스의 모습에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테티스는 여태껏 전투복 팔짱 사이에 꼬옥 끌어안고 있던 물건 중 하나를 끄집어 흙바닥 위에 활짝 펼쳤다.

 

펄-럭!

 

“응? 테티스? 너 근데 그건 뭐야?”

 

“뭐긴 뭐야. 보면 몰라? 이 섬의 약도지.”

 

“오오..”

 

 섬의 간략한 외관과 각 주요 시설물들의 배치도, 거기에 간이도로까지 그려진 약도의 등장에 운디네는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딱히 약도가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이 꼬맹이가 이런 물건을 챙겼다는 게 신기한 것이었다.

 

“이런 건 어디서 구했어요?”

 

“대회 시작 전에 여기 애들한테 약도 없냐고 물어서 하나 받아왔죠. 히힛.”

 

 이상한 곳에서 꼼꼼하다. 세이렌은 묘하게 평소보다 머리를 잘 굴리는 것 같은 제 부하의 모습에 눈을 끔벅였다.

 하지만 약도를 가만히 보던 운디네는 뭔가 이상하다는 점을 눈치채고선 약도를 빠르게 훑는 테티스에게 미심쩍다는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 야, 테티스.”

 

“뭔데? 나 지금 태어나서 처음으로 머리 굴리는 중이거든? 방해하지 말아 줄래?”

 

“이런 데서 머리 굴린다고 자랑하기는. 아니, 그것보다. 너 어떻게 이 대회 참가 자격을 따낸 거야?”

 

바-스락!

 

 운디네의 가벼운 물음에 테티스는 약도를 훑던 것을 멈추곤 고개를 들어 자신을 내려다보는 운디네와 눈을 맞추었다.

 

“..왜? 싫어?”

 

“누..누가 싫대? 아니. 그냥! 참가 자격 요건에 우리는 포함이 안 되는데 네가 어떻게 우리 참가권을 그 태닝 진행자에게서 따냈냐는 거지.”

 

“그러게요? 본대 분들이 참가 요건을 완화 시켜 달라고 아우성이셨을 때도 묵묵부답이시던 분이..”

 

 사라카엘의 난폭한 주행 탓에 어질어질해 있던 머리가 점차 되돌아오기 시작한 세이렌은 이제야 자신이 처한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테티스? 또 무슨 무리한 짓을 한 건 아니죠? 네?”

 

 혹시나 여기 오기 전처럼 제 상상을 넘는 행동을 해서 따낸 참가권은 아니겠지. 세이렌은 혹시 모를 가능성에 노심초사하는 눈초리로 계속해서 제 시선을 피하는 테티스의 눈길을 쫓기 시작했다.

 

“...뭐요. 함장이 걱정할 만한 짓은 안 했어요.”

 

“그럼 어떻게 따낸 거야? 본대 사람들 시위해도 안 주던 참가권인데. 심지어 상품 기회도 있는 정식 참가권이잖아.”

 

“...그냥. 분실물을 반납했더니 참가권을 주던데? 선행으로 받은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설명을 늘어놓는 테티스 탓에 운디네와 세이렌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실물?”

 

“...분명 좋은 기회는 좋은 기횐데. 뭔가 께름칙한 게..”

 

“-운디네에에에! 함자아아아앙! 나 좀 도와줘!”

 

“엑-”

 

 좀 더 자세히 캐물어야 할까, 하고 둘이 고민하던 사이. 테티스의 기행 탓에 잊고 있었던 동료의 절규가 그녀들의 정신을 빼앗았다.

 

“도와-줘어어!”

 

“아아-구원자에게는 뭐라 설명해야 할까요? 아아-이 사실을 베로니카양에게 알려서 말리는 게 나을까요? 그게 낫겠죠? 네?”

 

“내 전투복 다 찢어지겠어어어-!”

 

 어느새 천사의 날개 부피에 못 이겨 흙바닥 위에 쓰러진 네레이드는 자신의 어깨를 놓아주지 않은 SS랭크 개체의 악력 속에서 허둥대고 있었다. 그 어이없는 광경에 운디네와 세이렌은 일순간 눈을 껌벅이다 곧장 사태를 파악하곤 다급한 얼굴로 흙바닥 위를 뒹구는 두 사람에게 달려갔다.

 

타-다닥!

 

“네리! 자..잠깐만! 지금 당장 꺼내 줄게!”

 

“아..아자젤씨! 이제 진정하세요! 네?!”

 

“아아-구원자가 이곳으로 가자고 할 때 말렸어야 했을까요? 어차피 시간이 조금 있어서. 괜찮다고 생각한 제가 어리석었던 걸까요?”

 

“무슨 이야긴지 우리는 전혀 모르겠어요! 앗-! 네레이드 전투복이!”

 

“꺄아아아-!”

 

 이제는 네 명이 뒤엉킨 개판 속에서 테티스는 여전히 손에 들린 약도를 유심히 훑어보다 이내 조용히 웃음을 터트렸다.

 

“..히히힛-!”

 

꾸짖-!

 

 작달막한 소녀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자 그 손에 들린 약도에 꾸김이 일어났다. 하지만 테티스는 가만히 제 연푸른빛 눈동자를 빛내며 아무도 없는 숲속을 빤히 응시하며 아까와 마찬가지로 작게 중얼거렸다.

 

“꺄하핫-! 어디 열심히 이 섬 안에서 도망쳐 다녀봐요! 바보 대장! 대장을 잡는 건 다름 아닌 제가 될 테니까요!” 

 

 아무도 없는 수풀 속을 빤히 응시하는 테티스의 얼굴에는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 혹은 소악마스러운 기색이 한아름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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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맞췄드아아아! 난 해방이다! 끼효옷!


사랑니 발치한 곳에 염증 생겼어. 죽을 것 같아.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