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전전편.


전전편. 


전편.


"이터니티..?"


방문을 열어 이터니티를 불러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가 잠든 것을 확인한 나는 벽을 짚으며 조심히 움직였다. 그녀가 깨어나는 순간 내 계획은 틀어질 것이다.


현관문을 조심히 열고 바깥으로 나왔다. 가로등 불빛만이 거리를 밝혀주고있었다.

옷 사이로 새어들어오는 찬바람에 살짝 몸이 떨렸다. 당장이라도 따뜻한 이불 속에 들어가 몸을 녹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다녀올께요.."


누구에게 인사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현관문을 향해 조용히 인사를 했다.

어미니가 손을 흔들며 내게 잘 다녀오라며 인사를 받아주시는 포근하고 따뜻한 풍경이 살짝 보였지만 눈을 한번 깜빡이니 어둡고 차갑기 그지없는 현관만이 있었다.


멍하니 현관만을 바라보다 정신을 차린 나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해가 뜨기 전에는 집에 돌아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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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외곽으로 조금만 더 가면 난민촌이 있었다.

컨테이너와 텐트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난민촌에는 갈 곳 잃은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멸망 전 인간들과는 달리 바이오로이드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하시는 아버지는 갈 곳 잃은 저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집과 음식을 제공해줄려고 하셨지만 지휘관들의 반대로 인해 무산되고 말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고집은 그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결국 지휘관들과 의견을 좁히지 못한 아버지는 절충안으로 난민수용소를 설립하셨다. 

수용소에서 일정기간 교육을 마치면 시민권을 제공해주었지만 난민들의 숫자는 예상보다 엄청났다.


도시의 인구가 포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휘관들은 시민권 제공을 철회했다. 그 소식에 난민들이 분노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아버지께서는 분노한 이들을 어떻게든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 하셨지만 그들의 분노는 유혈사태로 이어지고 말았다.


결국, 이들은 지휘관들이 보낸 프로스트 서펀트의 물대포와 켈베로스의 진압봉에 의해 진압되었다.


이를 분기점으로 시민들과 난민들의 관계는 점점 틀어져만 갔다. 아버지는 어떻게든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을 하셨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수용소의 관리는 점점 뜸해져만 갔고, 일부 난민들은 열악한 수용소에서 벗어나 도시에서 떠돌이 생활을 했다.

도시의 골목에는 난민들이 박스와 거적대기를 덮고 잠을 청하고 있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후..."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무래도 쓸데없는 생각을 너무 한것 같았다.


빨리 일을 처리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쉬고싶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접근금지 팻말과 함께 철조망이 보였다.

언뜻보기엔 교도소나 위험지역처럼 보이겠지만 저 뒤에 있는 것은 난민수용소다.


나는 주위를 한번 살펴본 뒤 가방에서 절단기를 꺼냈다. 내 몸 크기에 맞춰 철조망을 절단한 다음 안으로 들어갔다.

수많은 텐트와 컨테이너들이 보였다. 나는 절단기를 다시 가방에 넣은 뒤 목도리와 모자로 내 얼굴을 가렸다.


난민들이 나를 알아보기라도 한다면 아마 대참사가 벌어질 것이 분명했다.

들고 온 가방을 적당히 철조망 옆에 적당히 숨겨놓은 뒤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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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윽...땔감 더 없지 말입니까?"


"옷이라도 태울까요.."


"점점 미쳐가는 날씨입니다.."


수용소의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티비에서 보여주는건 수박 겉핥기 수준이었다.

그들의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지만 오늘 내가 여기에 온 것은 저들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였다.


텐트를 한번씩 들춰보고 지나가는 난민들의 얼굴도 들춰보았지만 그 녀석의 모습은 보이지않았다.

몇시간동안 수용소를 돌고 또 돌아보았지만 보이지않았다. 몇시간동안 쉬지도않고 수용소를 돌고돌은 나는 바닥에 앉아 숨을 고르며 생각에 잠겼다.


'허탕이야..?'


'아직 못 찾은데가 있을거야. 분명..'


'전부 뒤져봤잖아. 여기에 없으면 도시에 떠도는 애야.'


'이제 곧 해가 뜰거야. 돌아가야해.'


시계를 보았다. 이제 곧 있음 해가 뜰 시각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쉰 뒤 자리에서 일어나 먼지를 털어냈다. 이터니티가 깨어나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꺅!"


그 순간. 누군가 나와 부딫혔다. 토모였다. 귀에는 붉은색 보석이 박혀있는 은색 귀걸이를 하고있었다.


"죄..죄송해요.."


그녀는 내게 황급히 사과를 하고 어디론가 뛰어갔다.

나도 딱히 개의치않았다. 내가 찾던 더치걸이 아니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발걸음을 돌릴려는 순간 난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잠깐.."


저 토모. 붉은색 보석이 박혀있는 귀걸이를 하고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귀걸이였다.

내가 찾는 녀석이 하고있던 귀걸이랑 똑같은 귀걸이였다. 나는 불빛에 홀린 나방마냥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어느 텐트였다. 그녀가 들어간 것을 본 나는 텐트의 입구를 살짝 열어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는 블랙 웜을 필두로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이 앉아있었다. 그들의 귀에는 저 토모와 마찬가지로 붉은색 보석이 박혀있는 귀걸이가 있었다.


"늦었군요."


"죄송합니다.."


블랙 웜이 괜히 핀잔을 주자 토모는 몸을 움츠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헛기침을 한두번하고 입을 열었다.


"이번 저항군 사령관 암살계획이 성공을 했습니다."


그녀의 말에 주위에 있던 바이오로이드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조용히 박수를 쳤다.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인 녀석들이 바로 눈 앞에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쳐들어가 저 년의 면전에 주먹을 날려주고싶었지만 숫자가 너무 많았다. 일단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하지만 아직 그의 아들이.."


"상관없습니다. 비록 살아있다고 한들 그가 우릴 막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옆에 있던 바이오로이드의 말을 간단히 끊고 그녀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다음 계획은 잘 진행되고 있나요?"


"네. 일단 도시에 떠돌고있는 저희 측 대원들이 준비를 하고있습니다."


"좋아요."


블랙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휘관들은 아마 이 사건을 해결하느라 지금 정신이 없을겁니다. 우리는 그 틈을 노려 그들을 칠 것입니다."


손발이 떨렸다. 봐서는 안될 것을 본 것 같았다. 

내가 해결할 수있는 범위를 넘어도 한참을 넘어섰다고 생각했다.


두려움에 뒷걸음질을 치다 바닥을 나뒹굴고있는 깡통을 밟아버렸다.


"썅.."


"누구인가요?"


텐트 안에 있는 블랙 웜과 눈이 마주친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뛰었다. 여기서 잡히면 아마 뼈도 못 추릴 것이다.


"잡아요!"


바이오로이드들이 내 뒤를 따라왔다. 나는 그들을 따돌리기 위해 난민들이 장작으로 쓰고있는 드럼통을 발로 차거나 텐트를 무너뜨렸다.

난민 수용소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뭐하는 짓이야?! 이게!"


"시발! 앞 좀 보고 다녀!"


난민들이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욕을 내뱉었지만 그것을 신경 쓸 시간은 없었다.

빨리 내가 왔던 곳으로 도망쳐야만 했다. 기억을 더듬어보았지만 미로처럼 얽히고 섥혀있는 수용소는 나의 생각을 더 어지럽게 만들었다.


"시발..! 안돼..안돼..."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철조망과 콘트리트 벽으로 둘러싸여져있는 밀실에 욕을 한번 내뱉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 텐트 안에 있었던 바이오로이드들과 블랙 웜이 점점 나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당신. 누구죠?"


입을 열 수 없었다. 입을 여는 순간 내 정체가 탄로날 것이 분명했다.


"흠..당신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우리 계획을 들은 이상 그냥 보내드릴 수 없죠."


블랙 웜의 뒤로 4개의 거대한 방패가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아무래도 그냥 벗어나기는 글렀다.

나는 목도리를 꽉 졸라맸고 모자도 꽉 눌러썼다. 그리고 주먹을 꺼내들었다.


일전에 어머니에게 호신술과 격투술을 배운 적이 있지만 실전으로 써보는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녀에게 달려들었지만 그녀의 방패들 중 하나가 내 몸을 가격했다. 


"커헉..!"


방패를 맞은 나는 벽에 처박혔다. 아무리 어머니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고 한들 고급개체인 블랙 웜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벽에 처박힌 내게 블랙 웜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녀는 나의 목을 붙잡고 들어올렸다.


"어설퍼요. 그런 허접한 실력으로 개미새끼 하나 다치게 할 수 있겠어요?"


화가 났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의 마음에 비수를 꽂았다. 그녀의 면상에 뭐라도 처박아주고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않았다.

내 목을 붙잡은 그녀의 손이 점점 나의 정신을 잃게 만들었다. 


눈이 뒤집히고 숨이 막히는 와중 누군가가 보였다.

하얀색에 살짝 연한 보라빛이 감도는 머리칼을 가진 여인이었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며 나를 쳐다보았다.


점점 흐릿해져가는 정신에 여인의 얼굴은 보이지않았지만 목소리만큼은 선명하게 들렸다.


"아들-!"


그 여인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전류가 흐르는 듯한 짜릿한 감각이 온 몸을 타고 뇌리에 바로 꽃히는 기분이었다.

정신을 차린 나는 그녀의 손목을 양손으로 꽉 붙잡았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무...무슨..! 힘이..! 아악!!"


결국 고통을 이기지 못한 그녀는 손의 힘을 풀었다. 그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나는 그 틈에 도망쳤다. 

뒤를 살짝 돌아보았다. 다행히 블랙 웜을 걱정하느라 나를 따라오지는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계속해서 움직였다. 그렇게 철조망 옆에 숨겨놓은 가방을 챙기고 수용소를 빠져왔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는 것을 본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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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이터니티가 깨어나기 전에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목도리와 모자를 벗어던지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침대에 누운 나는 멍하니 내 손을 바라보았다.


'아까 그거..대체 뭐지..?'


다시 한번 그 때의 감각을 떠올려보았다. 블랙 웜에게 목이 졸려 정신을 잃는 와중에 짜릿한 감각이 온 몸을 타고들었다.

분명 아프고 고통스러워해야하는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고통스럽다긴 보다는 짜릿하고 통쾌한 감각이었다.


그 기분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싶었다. 하지만 그 기분을 다시 한번 느껴보자고 그 짓거리를 또 하는건 미친 짓이었다.

나는 머리를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이거 생각보다 일이 너무 커..지휘관들한테 알려야 해.'


'알려준다고 한들. 그녀들이 너의 말을 믿을까?'


'아까 봤잖아. 숫자가 너무 많아. 게다가 도시에도 있다고했는데. 혼자서 처리하기엔..'


'할 수 있어.'


'아냐..'


'할 수 있다고.'


'아냐..!'


생각이 좀처럼 정리가 되지않았다.


"샤워라도 할까.."


생각을 정리하는데 있어 샤워만큼 좋은 건 없었다.

따뜻한 물을 맞으며 멍을 때리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렇게 웃옷을 번어던지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아아....아얏..."


허리를 비롯한 온몸에 고통이 몰려왔다.

아까 블랙 웜의 방패를 정통으로 맞았으니 당연한 처사였다.


"아앗...아야얏...아얏..."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침대의 난간에 다시 앉았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상처가 더 깊어진 것을 본 나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닥터한테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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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뇌절에 재미도 없는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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